먼저 어디로 튈지 두리번거리는 토끼처럼 뛸 자세로 쪼그려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물씬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정미경의 코 속으로 다시 파고 들어갔다. 어! 이게 무슨 냄새?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정신이 든 상태에서 손바닥으로 입술 아래를 쓱 움쳤다. 질퍽해진 손바닥에서 진동하던 비릿한 악취가 또 코 속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바로 헛구역질을 한번 하던 정미경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튀어 나온 말!
“어이 씨! 소름 끼쳐! 이게 무슨 냄새야?”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를 킁킁거리며 다시 맡고는 울상이 돼 돌아간 고개가 김근수 어머니의 눈이었다. 정미경의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어야 할 처지가 아니란 걸 정미경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한심한 듯이가 아닌 신기한 듯이가 되어, 쳐다보고 있는 김근수 어머니의 눈이 정미경의 눈을 놔주지 않았다.
“어머님! 죄송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김근수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물었다.
“얼른 씻어라. 일꾼들 올 시간이다. 그런데 근수는 어디 갔나?”
김근수 집이란 것도 지금 막 알았던 터라 김근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 턱이 없었던 정미경이 입술만 툭 밀며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요란스런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젊은 아재였다. 못 볼 걸 본 것 같이 일그러진 인상으로 구시렁거리며 우물가로 쫓아가고 있었다. 그때 김근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젊은 아재가 달려간 우물가를 보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도련님! 왜요? 무슨 일이에요?”
큰소리에 놀란 백송희가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아버렸다. 우물가에서 ‘푸푸’하는 세수소리를 오랫동안 냈던 젊은 아재가 머리를 말리면서 물었다.
“조카는 요?”
“글쎄요! 성화 집에 가서 한잔 더 했는지 안 보이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도련님!”
그때 대문에서 성화 이름이 들렸다.
“형수님! 우리 성화 여기 있지요?”
하루 종일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백송희가 벌떡 일어나 방금 전에 정미경이 하던 때와 똑같이 허둥대고 있었다.
뒤 밭에서 나오던 김근수 아버지가 삽을 창고 옆에 두면서 윤성화 아버지에게 말했다.
“자네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자네 집이 아니고 다른 집에 간 모양이네. 어제 밤에 앞 도랑에서 횃불 들고 고기 잡는 애들이 있더니 오랜만에 동네 애들끼리 어디서 한잔하고 자고 있겠지.”
“하긴! 명절 때보다 모내기할 때나 추수 때가 모여서 한잔 하기가 좋지. 우리도 옛날에 그랬잖아요. 허허허!”
그때 젊은 아재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아! 맞다. 어제 근수하고 성화하고 한잔하러 간다던데 그럼…….”
고개를 갸웃하면서 조심스럽게 일어서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닙니다.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젊은 아재가 일어설 때 또 한 사람이 허둥대며 들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미친 놈들. 죽을 짓을 했지. 맑은 물에 잘 놀고 있는 고기한테 농약을 뿌려 살생을 했으니 당연히 천벌을 받지. 그럼! 그럼! 그런 놈들은 붙잡아가서 조사를 해 봤자 경찰만 더 피곤해. 그런 놈들이나 잡으라고 경찰이 있는 게 아니지. 잘 뒈졌다! 잘 뒈졌어! 우리 사위 힘 안 들게 잘 뒈졌어!”
경찰 사위를 둔 이수현 아버지였다. 추수를 마치고 밤새도록 어디서 한잔 한 것 같았다. 정미경과 백송희가 있는 방에서 나는 술 냄새보다 더 많은 술 냄새를 마당에 뿌리고 있었다. 혀도 아직 덜 풀린 상태로 중얼거리며 마루에 반쯤 눕듯이 앉았다.
그때 젊은 아재 마음이 급했는지 서둘러 말했다.
“형님! 애들이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모르니,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 아까 내려 올 때 물고기 비린내가 제 몸에 베일 정도로 진동을 해서 보니까, 도랑에 살아 있는 고기라고는 한 마리도 없을 정도로 죽어 있었습니다. 물고기들이 얼마나 숨이 막혔으면 모래에까지 올라와 파닥거렸겠습니까? 지금 물위에도 모래 위에도 죽은 고기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한번 맡아 보십시오. 제 몸에 비린내 밖에 없습니다. 온 동네에도요. 제가 근수하고 성화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가니까 걱정은 마십시오. 일단은 가서 시체가 동네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하고 올게요.”
술이 덜긴 이수현 아버지가 꼬인 혀로 젊은 아재의 뒤통수에다가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야 임마! 잘 살펴라. 혹시 아냐! 허허허!”
김근수와 윤성화의 아버지 인상이 한 순간에 일그러졌다. 윤성화 아버지가 숨을 한번 고르고 언성을 높였다.
“그 말 좀 조심해서 하게.”
“그 참! 농담 한번 한 거 가지고. 성화야 똑똑해서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근수는 다르잖아요.”
젊은 아재 뒤를 따라 쫓아 가려고 일어서던 김근수 아버지의 발이 멈칫했다. 이수현 아버지가 시선을 피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빙긋이 비웃고 있었다. 김근수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는 뒤를 따라 윤성화 아버지도 뛰어 나갔다.
전부 나간 줄 알았던 이수현 아버지가 혼잣말로 비아냥거리면서 비틀대 나가고 있었다.
“아이고 이 궁궐을 어떡하나! 허허허!”
그때 김근수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자네 내 눈 좀 보고 가게.”
이수현 아버지가 김근수 어머니를 무시하는 눈으로 보면서 비틀댈 때 정미경과 백송희도 방에서 나오려다가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당신 조부가 우리 집에서 머슴으로 산 게 아직도 부끄럽나? 당신이 지금 가진 땅이 누구 땅이었는지 당신 부친이 얘기 안 해주던가? 당신 딸이 명문대에 갔을 때 제일 기뻐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잊었나? 우리 집에 뭐가 그렇게 섭섭한 게 많아서 대가 끊기길 바라는가? 지금 그 웃음이 뭔가? 도랑에 농약을 뿌리고 먹은 놈이 우리 근수라서 속이 시원하다는 건가? 이제 당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경찰 사위도 봤는데 조금이라도 의젓하게 살게나. 언제까지 그런 자격지심으로 살 건가? 답답하네. 답답해!”
김근수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수현 아버지가 비아냥거리는 눈으로 김근수 어머니 뒤통수를 보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빼면서 침을 퉤퉤 뱉으며 비틀대며 나가 버렸다.
정미경이 벌써 훌쩍거리고 있었다. 백송희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말이야?”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이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디가! 거기 서!”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고함을 질렀던 음성과 같았다. 벌써 두 사람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지금 어머님하고 얘기할 시간이 없다는 ‘제발 우리를 놔 주세요’하는 애절한 얼굴로, 앞 발은 앞으로 꿈틀꿈틀, 뒷발은 땅과 하늘로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근수 어머니의 눈과 손짓은 ‘come on baby(애들아 이리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