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 그래! 자네가 정미경이구나! 그런데 이게 뭐냐? 이 놈이 귀한 집 여식한테 소 똥 치우라고 시켰어? 내가 저 놈을 정말!”
김근수의 어머니가 정미경의 팔을 붙잡아 여기저기를 살피면서 미안해하고 있었다. 정미경이 눈물을 흘리며 당신 아들이 저 모양이라며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지만, 인상을 찡그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래서 안 되겠다. 내하고 같이 목욕탕 가자. 아이고 내가 정말 저걸…….”
밖으로 나오던 김근수가 어머니 말을 듣고 쏜살같이 쫓아가 정미영의 팔부터 붙잡고 다급하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이 참! 엄마! 다음에……. 다음에 ……. 미경아! 저기 뒤에 우물 있다. 아니지! 내가 물 데워줄게.”
김근수의 어머니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왜? 임신했어? 임신한 애에게 이 고생을 시켰어?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삽시간에 오가는 대화에 정신을 못 차린 정미경이 비틀했다. 모자가 동시에 정미경을 붙잡았다.
“아이고 안 되겠다. 방에 가서 조금 누워야겠다. 너는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너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면 임신한 애한테 시키면 어떻게!”
김근수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어머님! 제발 헷갈리지 마세요. 저요! 개과천선 중입니다 요!’
김근수가 정미경을 끄덕 들듯이 부축해 마루로 가면서 수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참! 엄마! 그게 아니라니까! 시험 기간이라서 이 친구가 좀 무리해서 그래. 조금만 쉬면 돼.”
그러나 어머니는 지난번에 아들의 말은 잊어버리고 화난 얼굴로 계속 야단만 치고 있었다. 잠시 뒤에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김근수 아버지도 같이 들어왔다.
“야 이놈아! 오려면 조금 빨리 오지. 너! 저기 뒷산에 숨어서 타작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왔지? 아이고 이놈아!”
그 뒤로도 김근수를 탓하는 소리로 웅성거리기만 했다. 어떤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임마! 빨리 와서 거들어.”
“아! 예!”
대답만 하고 정미경의 옆으로 가 몸을 부축해서 아버지 옆으로 데려왔다.
“미경아! 우리 아버님!”
쓰러지기 직전의 정미경이 힘겹게 중심을 잡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미경입니다.”
뒤 밭에 흔해빠진 오이로 얼굴 마시지를 한 게 아니고 하필이면 마구간에서 소 똥으로 얼굴 마시지를 한 정미경의 아래 위를 살펴보면서 엷은 신음소리부터 내고 말했다.
“그래! 자네 얘기는 귀가 닳도록 많이 들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을 건데 저 놈의 철없는 놈을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따뜻한 물에 몸 좀 녹이고 쉬거라.”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머리 속엔 온통 파리새끼만 윙윙대고 있었다.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설마 있는 그대로 다 한 건 아니겠지? 믿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고개를 돌렸지만 김근수는 타작한 뒷마무리를 하러 가고 눈에 띄지 않았다.
김근수의 부모님도 일하는 어른들도 살갑게 대해주었지만 ‘이런걸 이방인이라고 하는구나’을 느끼며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김근수의 어머니가 난감한 얼굴로 손짓을 하며 따라 오라고 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깜빡 하고 잊었다. 인두로 고문을 당했다는 걸 생각 못했네. 부끄러워하지 마라. 자! 내 등을 한번 보거라!”
한숨이 섞여 나오는 말에 섬뜩한 느낌이 들어 궁금하긴 해도,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미 허벅지사타구니에 있는 상처와 똑 같은 상처가 정미경의 눈에 들어가버렸다. 정미경이 입을 막고 상처만 보고 있었다.
“자네처럼 고문을 당해 난 상처는 아니다. 내 실수로 가마니 솥뚜껑에 대여서 났지만 흉물스러운 것 같지. 날씨가 추우면 많이 시리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해. 물 데워 줄 테니까 우선 씻어라.”
김근수 어머니의 말투와 성격이 김근수와 같이 강단이 뚜렷하고 거침도 없어 정미경은 바짝 긴장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엄마와 같이 따뜻한 면도 있는 것 같아 정감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다른 게 하나가 있다면 자신감이 넘치는 부분이었다.
그런 자신감이 나온 이유를 욕실에서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나 호텔의 욕실을 구경한 적이 없어 그 속의 구조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봐 온 욕실 중에는 최고로 깔끔하고, 있을 건 다 있었다. 이렇게 갖추려면 돈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들게끔 했다.
김근수가 말한 논 두 마지기를 떠올리자 웃음부터 나왔다. 정말로 두 마지기였으면 절대로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 오자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있으니, 그의 어머니처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김근수의 어머니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온 정미경이 머쓱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갔다. 아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집안의 어른들이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사람이 정미경을 긴장시켰다.
“그럼 우리 조카 며느리가 되는가요?”
김근수의 어머니가 빙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다고 하면 바늘방석이 되지 않을 건데 정미경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애들이 좋다고 하면 나야 좋지. 빨리 손자도 보고 싶고. 허허허!”
민망하고 당황하긴 했지만 김근수 아버지의 말에 약간의 위안은 들었지만 눈치 볼 일만 하나 더 생긴 셈이 돼 정미경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근수의 어머니에게 갔다.
“허허허! 아가야! 몸이 좀 괜찮으면 영감들 말 듣지 말고 밖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너라.”
“허허허! 벌써 아가야 하는 걸 보니 조카 며느리로 좀 찍었네. 아가씨! 우리 조카가 아주 많이 건들거려서 그렇지 애는 괜찮은 놈이니까 횡재했다 생각하고 거둬들이세요. 허허허!”
제일 어려 보이는 아재가 하는 말에 50대쯤 보이는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참! 별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 젊을 때는 다 그래!”
그때 김근수가 문을 반쯤 열고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김근수 어머니도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정미경을 일어설 때 어려 보이는 아재가 말했다.
“그럼 결혼식 때 봅시다. 우리 조카 성질이 고약해서 신발 바꿔 신으면 평생 동안 괴로울 겁니다.”
정미경은 이 말에 대답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머쓱하게 웃으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예!”
한바탕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미경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려 내리고 있었다. 김근수의 어머니가 빙긋이 웃으며 눈치를 줬다. 다소곳이 일어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루 밑에 있는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근수가 멋쩍게 웃으며 팔을 잡고 마당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