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격을 당한 주두희 남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된 채로 허둥대고 있었다. 그 동안 알고 지낸 애리 남편은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무시했던 건 자격지심이 발동해서 그랬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란히 해 입사한 직장을 내세워 애리 부부를 무시한 일들은 까맣게 잊고, 오로지 나의 아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추한 행실들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맞장구를 쳐 까발려 버리는 가?

　비열한 놈! 그는 애리 남편에게 실망만 느끼고 있었다. 애리 남편은 언제나 반듯하고 기품이 있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사람을 잘못 봤다는 표정이었다. 눈에는 오로지 당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내 앞에서 퍼붓느냐? 원망! 그것뿐이었다.

　애리 남편은 그런 주두희 남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자기가 가장 싫어하고 바로 후회할 말만 골라 퍼부었다. 이런 말을 하게끔 유도당했단 생각도 하고 있었다. 주두희 남편과 마주보고 있는 자체도 역겨웠다.

　“나가 주세요. 여기는 우리 영업장입니다. 그리고 당신 직장 동료 부인 들이 많이 오시는 건 알고 있죠. 우리가 소문내지 않아도 소문 나기를 원한다면 실컷 떠들고 가세요. 확성기를 원한다면 가져다 주죠.”

　주두희 남편은 두희처럼 입도 가벼웠지만 눈치 또한 주두희처럼 빨랐다. 이 근처에 직장 동료들이 많다는 걸 잠시 잊었던 모양이었다. 기세 등등하게 벌렸던 입을 닫지도 않고 획 돌아서 나가버렸다. 애리는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처신하고 싸돌아 다니길래 저런 새끼가 가게로 오게 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였다. 자기도 입에 담기 민망하다는 의미 같았다. 애리는 언젠가 한번은 이 말을 꼭 들을 줄 알았다. 참 오래도록 참았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지만 억울한 마음은 당연히 있었다.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기 위해 두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딱 한번 ‘앞으로 나란히’ 하듯 따라간 자리가 이렇게 오래도록, 반 년이 훨씬 넘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별 희한한 참변도 있구나! 애리는 헛웃음을 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그 별 희한한 놈이 가져다 준 참변이 여기서 끝나길 빌 뿐이었다. 마흔이 넘어가는 나이에 싸돌아 다녔다는 말을 들은 건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지만 웃으며 넘기기로 했다. 애들 보기에도 민망한 말이었지만 애리는 이 일로 가정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다시는 그런 자리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러나 한번 시끄러워진 일은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지지 않았다. 주두희 남편이 그렇게 나가고 난 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받으려고 했다가 잠시 망설였다. 번호의 뒤 숫자가 아는 번호 같았다. 그때의 소란이 있고 난 뒤 애리는 주두희 주변 사람들과 골프를 치면서 만난 사람들의 번호를 모조리 삭제해버렸다.

　차라리 차단을 할 것을 후회를 하며 휴대폰을 외면 해버렸다.

　성가실 정도로 집요하게 전화를 계속 울렸다. 받지 않고 차단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상대가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 어떻게 병문안도 가지 않느냐며 면박을 주는 문자와 성형외과 병원이름과 호실까지 날려주었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입원해 있는 사람을 친구라고 한 점을 봐서는, 그 친구는 두희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인을 하기 위해 병원에 전화를 했다. 두희가 맞았다. 별 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헛웃음을 치면서 어디가 아파서 입원했는지 물었지만 병원에서 그건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분명히 얼굴 어디에 칼질을 또 했겠지. 벌써 몇 번째야. 한 김에 예뿐이(질) 수술도 또 했겠지. 애리는 무시해버렸다. 허병식은 애리에게 문자를 보내고 천명구를 찾아갔다. 그때 애리 남편인 이선근이 천명구에게 하소연을 겸해 상담을 하고 있었다.

　“한번 나쁘게 보니까 그 이미지를 머리 속에서 지우기가 힘드네요.”

　천명구가 손가락을 낀 채 손가락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 아내는 절대로 주두희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내가 보증하네. 괜한 걱정 말게. 그나 저나 허병식이가 곤란하게 됐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요?”

　눈을 지긋이 감고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주두희 신랑이 갑자기 허병식이 스크린 장에 들이닥쳐 주두희 얼굴을 거의 함몰될 정도로 두들겨 패버렸어. 얼마 전에 병원에 가 봤더니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고 있더군. 아무리 미워도 마누라를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버렸는지. 대충 들어보니까 본래 모습을 찾는 건 어렵다더군.”

　이선근은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소하다는 듯한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그때가 언제쯤인지 들었습니까?”

　“응! 일주일 정도 됐어. 그 일이 있고 거기서 연습하는 회원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렸잖아. 일부는 내한테 오고. 처음부터 허병식이 스크린에 가면 바람 필 짝 이루기 쉽다는 소문이 나서 점잖은 사람들은 다 떠났는데 이번에 그런 일이 있고 회원이 거의 다 떠났다고 보면 돼.”

　이선근이 엷은 신음소리를 내며 주두희 남편이 가게에 와서 난리를 쳤다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괜히 말을 했다가 또 소문만 나서 어쭙잖은 위로의 말 뒤로 들려오는 호기심들을 충족시켜 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본인도 아내도 생각하기 싫은 일에 또 휘말려 들어갈 것 같아서였다.

　천명구는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했는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런데 그 주두희 신랑이란 놈이 사람을 잘못 건드려 그 놈도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

　이선근의 몸이 자동적으로 천명구에게로 바짝 당겨져 갔다.

　“하필 그날 주두희가 오빠 하면서 팔을 붙잡고 아양을 떨던 놈이 병식이가 아는 동생이었는데 주두희 신랑이 그 놈에게 주먹질을 해 버렸는데....... 허허허! 되레 한대도 못 패고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 허허허!”

　이선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누가요?”

　“누군 누구야! 주두희 신랑이지. 건드릴 놈을 건드려야지. 내가 자네에게 얘기했나? 자네 회사에 김인태가 그 친구에게 이래 쳐라 저래 쳐라 입을 대다가 스크린 한판 붙었지. 그날 진 사람이 턱 주걱 맞기로 했다가 김인태 턱 주걱이 날아갔잖아. 허허허!”

　이선근은 자기가 김인태의 턱 주걱을 날린 것처럼 통쾌한 기분이 들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허병식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 그렇게 웃습니까? 같이 웃읍시다.”

　지금 천명구와 허병식의 사이는 좋게 변해 있었다. 천명구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