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호텔의 실내에 흐르는
게으른 다홍색 공기
반짝이는 유리조각을 싣고 미적미적 유영한다.
따뜻한 수조 안에 들어있는 느낌이랄까.
손끝부터 반신이 녹아 같이 흐르고, 의식도 녹아드는지 점차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전부 녹아갈 적에
천장이 뚜껑처럼 열렸다.
그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하더니...
느닷없이 돈다발들이 쏟아졌다.
풍덩, 슈구우우우....
물속에 발포한 총알처럼 속도가 다하자, 여러 장의 초록 종잇장으로 나뉜 지폐들이 천천히 내렸다. 나뭇잎 수백 개가 동시에 떨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사이사이로 빛줄기도 내렸다.
먹이를 받아먹는 수조 안 물고기의 기분은 이런 것일까
그렇다면 그 수조는 분명 알코올 비슷한 걸로 채워져 있으리라
아니면 연기일지도 모른다. 회색, 아니, 다홍색 연기.
길다란 호흡에, 폐가 습하게 달궈졌다.
깊게 취한다.
빛줄기.
지폐들.
침대 위로 내린다.
시간도 같이 취해버린 것 같다. 한없이 느리다.
충혈 된 눈을 반만 감은 수면의 상태와 같이 둔해 빠졌다.
이걸 원했던 건가 나는
그랬던 것 같진 않다만
뭐 별로 상관없다.
천장이 닫혔다.
빛이 사라지고
다시 다홍색.
바닥에는 가라앉은 유리조각이 모래사장처럼 깔려 있다. 찬란하게 빛난다.
그 위로 심장 하나가 가라앉고 있었다.
내 건가
천천히 내려오다가, 툭.
바닥에 안착했다. 근처의 유리조각과 지폐들이 붕 떠올라, 부산스레 굴다가 도로 가라앉는다.
그 태연스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슬슬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저 아래서 차츰 박동을 멈춰가는 심장 때문인 것 같다. 역시 나의 심장인걸까.
애초에 이런 각오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조금 걱정되니 지금 심장을 주워둬야겠다.
몸을 밑바닥으로 기울였다.
기울이려, 했다.
기울이려 했지만.
...아, 맞아.
기울일 몸이 없잖아. 이미 전부 녹아버렸다.
그럼 어떻게 하지? 숨은 더욱 막혀 온다. 뷰륵. 바닥에서 생성된 한 줄기의 기포가 방 안을 오르지만 아직도 호흡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숨을 못 쉬는 게 원래 이렇게 아픈 거였나?
아아, 아프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 아픈데 이거. 가슴을 칼로 찢는 것만 같잖아. 조금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 무슨 방법이...!
―그래. 천장.
아까 잠시 천장이 열렸을 때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열 수 있는 몸이 없으니 아까처럼 누군가 열어주어야만 한다. 누군가. 아무나. 아무나 좋으니, 열어주기만 하면 되는...!―커흑!! 참지 못하고 숨을 토했다. 부륵, 부륵. 바닥에서 다량의 기포가 생겨 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오른다. 뷰르르르륵. 물속의 소나기. 돈다발이며 유리조각들, 그리고 심장이 부유해 어지러이 섞인다. 어쩌지, 점점 더 아프다.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아프다. 이건 위험해. 위험해. 진짜 위험하다고! 아무나 좋으니 어서 이 쓸모없는 돈다발들 말고 천장을 열 몸이나 망치를 내놓으란 말야! 아아, 숨 쉬고 싶어. 숨 쉬고 싶어요, 신 님! 제발!! 죽겠다는 말은 장난이었으니까!!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다시는 그런 말 따위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 한 번만!! 아으으윽!!! 아파아아아―!!!!
―덜컹. 천장이 열리고
아까 보았던 누군가의 시커먼 실루엣이 열린 천장을 가득 메우며 이곳을 들여다보았다.
신님. 분명 신님이다. 아아아...! 이제 살 수 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 그런데 어째서지? 천장이 열렸는데 아직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 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저기에 있는 저 신님이 나를 꺼내주실...!
“평생 그토록 원하던 건 넣어 줬잖아. 뭐가 문제야.”
.....네?
“양 손 가득 쥐고도 부족해보여서 넣어줬더니 말야.”
그, 그건 그렇지만! 저는 지금 숨을 쉴 수 있도록 할 무언가를 원합니다!! 시, 시간이, 없....! 뷰르르르르르르르륵. 소용돌이. 수압이 단숨에 높아졌다. 얼굴은 녹아버려 없지만, 눈알이 혈관 채로 뽑혀 나올 것만 같다. 유리조각이 심장의 거죽에 생채기를 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덮쳐온다. 뷰르르르르륵. 사방을 뒤덮은 수라장 속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바알...! 부탁이니 숨을 쉴 수 있는 무언가를!!!
―쿨럭!! 그렇게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숨을 토해낸 것과 동시에....
“이제 못 나가 너.” /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그게....
그게 무슨 뜻...!
“못 나간다고. 애진작에 닫혔어. 40년이 되도록 열려 있었는데, 그동안 나갈 생각도 없어 보이더만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 정말 이해 못할 생물이라니깐.”
뭐라 말하는지도, 이제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아픈 건 이제 모르겠다. 감각이 죽어버리니 그토록 소란스런 소용돌이마저 덧없다. 그저 의식이 꺼져갈 뿐.
힘을 다한 전구같이, 깜빡깜빡.
성난 고래의 날숨같이, 부르르륵.
“아, 그리고, 또 하나.”
늘어진다.
둔탁하게.
“몰랐나본데...”
의식이 꺼지기 직전, 신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너 평생 그 안에서 살았어.』
대충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천장이 닫히고,
다홍색 공기가 사라졌다.
돈다발이며 유리조각, 떠올랐던 가구며 침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부유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만 심장만은 없었다.
허나 시체만이 있었다.
―암전.
투명한 액체가,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들을 태우고, 조용히 호텔 바닥을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