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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낯선 자들의 밤
작가 : 환상좀비
작품등록일 : 2018.11.16

신화의 존재들이 생존한 세계.
암암리에 출몰하는 그들의 존재는 인간들의 암인가, 새로운 지성체들인가?
구마사제 준영은 끊임없는 시험 앞에 선택을 종용받게 된다.

 
24화. 천국의 계단 (완)
작성일 : 19-01-18 18:48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7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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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인적 드문 해안의 좁은 국도는 가로등조차 변변치 않아 어둠이 짙게 깔렸다. 집중하지 않으면 중앙선조차도 구분하기 힘든 어둠을 뚫고 세 대의 차량이 나란히 달렸다.

 좌측에 가파른 산을 두고 도로가 더욱 좁아지자, 제롬은 차량의 속도를 조금씩 줄였다.

 

 "뭔가 이상한데요?"

 

 제롬은 고개를 갸웃하며 전방의 차량을 주시했다. 옆자리의 창기가 고개를 빼꼼하여 차량의 전면 유리에 얼굴을 가져갔다. 제롬이 손가락으로 앞의 차량을 가리켰다.

 

 "속도를 안 줄입니다."

 

 "타고 있는 환자의 상처가 심해서 그런 걸까요?"

 

 "지금 중상을 입은 환자라면 출혈이 심한 할머니밖에 없는데·· 만약에 저라면 할머니를 태운 차량을 선두에 세웠을 겁니다. 추월하려면 중앙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좁은 국도에서 위험한 환자를 뒷 차량에 실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가네요."

 

 일행의 앞에 선 차량은 점차 속력을 높여 결국 앞선 차의 꽁무니까지 따라 붙었다. 뒤따르던 제롬도 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높였다. 계기판의 숫자가 80을 넘어가자 제롬의 표정이 점차 심각해졌다.

 

 가장 선두에 있던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켜고서 옆으로 조금 물러섰다. 자꾸만 속도를 높여 따라오는 뒷 차량에게 선두를 내줄 요량으로 보였다. 선두를 바짝 쫓아 속도를 높이던 차량이 기어코 중앙선을 넘었다. 그리고 앞서 달리던 차량의 옆으로 다가섰다. 추월은 하지 않았다. 마치 경주하듯 나란히 달리는 두 대의 차량에 뒤에서 달리는 제롬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왜 추월하지 않고 나란히 달리는 거지?"

 

 "안돼! 제롬, 저 위!"

 

 순간 뒤에서 준영의 비명이 들렸다. 창기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준영의 손가락이 두 대의 차량 위를 가리켰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제롬은 일단 속도를 줄이려 악셀에서 발을 뗐다. 그 순간, 중앙선을 넘어선 차량이 마주 달리던 차량의 옆을 거칠게 들이박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차량들의 충돌 소리가 뒤따르던 일행들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마치 슬로우모션이 걸린 것처럼 앞 차량들의 범퍼와 바퀴가 천천히 공중에 떠올랐다. 상황을 인식한 제롬은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고개 숙여!"

 

 제롬의 고함과 동시에 정지된 듯한 시간이 다시 돌아갔다. 일행을 태운 차량이 그 속도를 미처 줄이기도 전에 반파된 두 대의 차량을 향해 돌진했다.

 쾅-! 세 대의 차량이 당구공처럼 서로 부딪히며 좁은 도로 위를 팽이처럼 돌았다. 앞 선 두 대의 차량은 좌측의 가파른 산 아래로 처박혔고, 일행을 태운 차량만이 우측 논두렁에 처박혔다.

 

 희뿌옇게 변한 준영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머리에 지독한 충격이 전해졌고 역겨움이 밀려 올라왔다. 헛구역질하며 옆으로 기울어진 차량의 위로 빠져나온 준영은 입안으로 느껴지는 비릿한 짠맛에 급하게 머리를 만졌다. 손바닥 위로 축축한 자신의 피가 느껴졌다.

 

 "제롬! 창기야아!"

 

 시야가 미처 회복되지 않은 준영은 사방을 더듬거리며 일행들을 불렀다. 창기는 괜찮을 거야, 그런데 제롬은? 준영이 다급한 마음으로 다시 제롬을 불렀다. 순간 누군가 거칠게 준영을 잡아당겼다.

 

 준영의 희미한 시야 사이로 제롬이 보였다. 준영은 제롬의 안위를 확인하자 힘이 풀려 제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힘없이 무너져내린 준영의 피 묻은 얼굴을 제롬이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그제야 준영은 주변의 풍경이 또렷이 보였다.

 

 자신들이 탔던 차량은 반파됐고, 창기는 저만치 먼 곳에 쓰러져있었다.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없는 창기는 충돌 당시 그대로 앞유리를 뚫고 날아간 모양이었다.

 

 "장 수사님, 아까 뭘 본 거죠?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넋이 나간 듯한 준영에게 제롬이 물었다. 그는 작은 불꽃들을 만들어 주변에 넓게 펼쳤다. 도로 건너편에 사람 몇몇이 널브러져 있었고, 차 안에도 사람들이 기절한 듯 쓰러져 있었다.

 

 "차량 위로·· 악귀가 날아왔어요. 목매달아 죽은 듯한 귀신이 차량 위에서 춤을 췄어요. 아니, 그저 목을 옭아맨 줄에 매달려 있는 걸 수도···"

 

 충격을 이기지 못한 듯한 준영의 얼굴에 제롬은 일단 준영을 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꽃처럼 조그맣게 피어오르던 제롬의 불씨들이 점차 몸집을 불려가며 주변을 더욱 밝게 비췄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주변이 밝아지자 제롬은 도로 맞은편의 사고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을 꺼! 꺼! 꺼! 꺼! 꺼!>

 

 제롬이 다가가자 귀신의 으름장이 들렸다. 사방에 밝혀진 제롬의 불꽃에 기겁한 듯 보였다. 제롬은 의아한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스펠에서 파생된 이 불꽃은 특히 귀신에게 본능에 가까운 두려움을 일으킨다. 한낱 악귀가 자신과 맞서며 버틸만한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또 악성인가?` 제롬의 추측이 악성으로 향했다. 수르트의 불꽃보다도 두려운 무언가가 귀신의 뒷배경에 있다. 그것 말고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난 너를 볼 수 없고, 넌 나를 해할 수 없어. 서로 피장파장이니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

 

 순간 제롬은 정신을 집중하여 불길이 더욱 거세게 일었다. 저 멀리서도 보일 만큼 하늘 위로 치솟는 불꽃에 공기가 부르르 떨렸다. 그것은 일종의 과시였다. 귀신과 악성에 대한 경고, 그럼에도 악귀는 소름 끼치는 비명만 지를 뿐 제롬의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 망할 불을 꺼! 아니면 여기 냄새나는 이녀석들! 다 죽여버릴 거야!>

 

 빨리 현장을 수습해서 여기 민간인들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사상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제롬의 마음이 점점 다급해져 갔다.

 

 악귀의 비명 같은 경고가 끊이지 않고 제롬을 자극했다. 다급한 제롬의 분노에 솟구친 불길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귀야 물러나라! 지옥으로 돌아가라!"

 

 어느새 도로를 넘어선 준영이 고함을 내질렀다. 귀안을 통해 악귀를 정면으로 바라본 준영의 동공에 수르트의 불꽃이 매섭게 일렁였다. 목이 졸려 있는 악귀는 줄에 걸린 인형처럼 뱅뱅 돌며 급하게 사고 현장에서 물러났다.

 

 <신부놈! 개 같은 신부놈! 여기서 꺼져! 여기는 내 공간이야!>

 

 으름장을 놓은 악귀는 근처 나무 위로 올라섰다. 악귀의 목을 옭아맨 줄이 스스로 나뭇가지에 매듭을 매자, 악귀가 밝게 웃으며 그대로 몸을 던졌다. 악귀의 목이 비틀리고 앙상한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준영은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목이 꺾인 시신이 줄에 걸려 빙빙 돌아가자, 준영의 마음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들어찼다. 그 순간 악귀가 눈을 번쩍 뜨며 준영과 눈을 마주쳤다.

 

 <너도 이렇게 죽을 거야. 너 혼자 비참하게 죽을 거야. 그때 내가 니 살을 파먹을 거야.>

 

 두려움 가득 찬 준영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렁였다. 그 거대한 불길은 악귀와 준영의 사이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준영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제롬이 준영 앞으로 큰 불길을 일으킨 것이다.

 

 "정신 차려요! 악귀의 속삭임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지금 악귀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놀란 마음에 말을 더듬는 준영의 모습에 제롬은 포기한 듯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준영의 앞으로 보이는 숲 속으로 백여 개의 불화살을 만들어 쏘았다. 단 한발만 맞아도 그 위치를 대략 알 수 있기에 제롬은 정신을 집중해 더욱 많은 불화살을 만들었다.

 

 <끄아아아악!>

 

 기어코 불화살 한 발이 악귀의 허벅다리를 관통했다. 매달려있는 나무에서 추락한 악귀 주위로 제롬은 불꽃을 크게 늘어뜨렸다. 마을에서 악귀를 포박했던 방식 그대로 악귀를 나무에 매단 제롬이 악귀 앞에 섰다.

 

 "너 같은 놈이 몇이나 더 있는 거야? 악성의 목적이 뭐지?"

 

 <킥. 킥. 킥. 킥. 킥. 킥.>

 

 제롬의 겁박에도 악귀는 그저 기쁜 나쁜 목소리로 웃기만 했다. 분노한 제롬이 불의 검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본능에 가까운 공포에 악귀의 눈동자 아래로 검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악귀는 아무 말도 없이 웃을 뿐이었다.

 

 준영은 악귀의 모습에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자신의 가슴 한편을 얼어붙게 하는 것인가. 준영은 악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악귀의 동공 안에는 어둠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가자 또 다른 어둠이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꺼먼 어둠이 자신을 점차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시켰다.

 

 준영의 머릿속에 축축하고 서늘한 어둠이 펼쳐졌다.

 

 심연 안에 들어선 준영은 점차 악귀와 동화됐다. 악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 준영이 악귀를 따라 똑같이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나간 듯이 불분명한 시야가 조금씩 균형을 잡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소하가 자신의 할머니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소하의 손에 들린 유리조각 아래로 새빨간 핏물이 맺혔다.

 

 "소하! 소하야, 안돼!"

 

 경악한 준영이 심연 속을 빠르게 뚫고 나와 혼신의 힘으로 소하를 향해 내달렸다. 소하와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다. 아이의 종종걸음을 거의 따라잡은 준영은 소하에게 몸을 던졌다.

 

 소하를 안은 채로 바닥을 미끄러진 준영의 등 뒤로 날카로운 사고 잔해들이 사정없이 박혔다. 준영이 입은 하얀 셔츠에 붉은 피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만해요, 신부님. 다 끝난 거에요."

 

 나지막한 소하의 목소리, 준영은 소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고통에 준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하를 바라봤다. 가슴팍에 안겨있던 소하의 손이 하늘 위로 치켜올랐다.

 

 푹-. 준영의 가슴에 날카로운 유리가 박혔다. 준영은 그것이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순수한 아이의 장난 같은 손짓이 준영의 몸에 깊은 생채기들을 만들어냈다. 수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아이의 손짓을 따라 준영의 셔츠가 찢기고 얄팍한 상처 위로 핏물이 맺혔다.

 

 "아, 안돼!!"

 

 그 모습을 본 제롬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준영에게로 몸을 돌렸다. 집중력을 잃은 제롬의 행동에 사방을 비추던 불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경악한 제롬의 눈동자에 희미한 안개가 비추었다. 제롬은 그것이 악귀임을 무의식중에 알아차렸다.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악귀의 서늘한 손이 제롬의 어깻죽지에 박혔다. 어깨 주변에 지독한 한기가 돌며 온몸에 힘이 빠졌다. 무릎이 무너지며 주저앉은 제롬이 분노하며 자신의 주변으로 거대한 불꽃을 퍼뜨렸다.

 

 기겁한 악귀가 크게 물러난 뒤, 소하를 향해 날아올랐다. 소하의 머리 위로 악귀가 빙빙 돌며 춤을 췄다. 준영을 찌르던 소하의 손이 굳은 듯이 멈춰 서며 동공이 사라졌다. 준영을 두고 일어선 소하는 다시 차 안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끄··· 소하야, 안돼. 제발··"

 

 준영은 바닥을 기며 소하의 뒤를 좇았다. 준영이 지나간 자리 아래로 처참한 핏자국이 생겨났다. 미처 준영이 다가가기도 전에 할머니 앞에 선 소하는 피에 젖은 유리조각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늘어진 할머니의 피부를 너무도 쉽게 침범했다. 검붉은 피가 차 아래로 흘러내렸다.

 

 소하의 표정이 환희로 가득했다. 찢어질 것처럼 벌어진 입꼬리 아래로 소하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소하는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순간, 눈물로 흐려진 소하의 시야가 순간 선명해졌다. 할머니는 손을 들어 소하의 얼룩진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소하를 매만지는 할머니의 힘없는 손끝이 조금씩 떨리다 이내 툭 떨어졌다.

 

 "아·· 안돼!"

 

 준영이 피를 토하며 절규했다. 가진 모든 힘을 짜내 필사적으로 소하에게 기어갔다. 간신히 소하의 발목을 잡았지만,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일어설 수 조차 없었다.

 

 준영은 자신의 무기력함에 한탄하며 피를 한웅큼 토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준영의 눈앞에 형언할 수 없는 빛이 쏟아지며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이야, 내 아이야~`

 따뜻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를 소곤거렸다. 정신을 차린 준영이 힘들게 눈을 뜨자 찬란한 계단이 눈 앞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이 없는 하늘 위의 세상, 허공에 떠오른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로 소하를 품에 안았다.

 

 소하의 발밑으로 검붉은 거대한 불구덩이가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부패한 영혼들이 소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님, 저는 우리 소하를 용서합니다.>

 

 할머니는 나긋한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얘기했다. 그러자 하늘이 응답하듯 할머니의 몸이 계단 위로 떠올랐다.

 

 소하는 날아오르는 할머니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흘렸다.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소하 혼자 남게 됐지만, 허공에 뜬 아이의 몸은 지옥 불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

 

 <꺄아아아악! 안돼! 소하는 우리거야!>

 

 악귀가 다급하게 소하의 목을 졸랐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소하의 몸이 휘청이다 불구덩이에서 올라온 영혼들에게 발목을 붙잡혔다.

 

 <싫어! 싫어요!>

 

 발버둥 치는 소하의 몸이 조금씩 불구덩이 아래로 끌려들어 갔다. 준영은 이를 악물고 소하를 향해 뛰었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준영은 금세 소하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부패한 영혼들에게 붙잡힌 둘은 끊임없이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불구덩이를 지나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던 중, 눈 앞의 풍경이 삽시간에 변했다.

 둘은 이제 붉게 타오르는 폐허 아래 서게 됐다.

 

 썩은 악취와 유황 냄새가 준영의 코에 진동했다. 악귀는 여전히 소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 아이는 여기서 죽을 거야! 죽어서 지옥 속을 맴돌 것이야!>

 

 악귀가 기를 쓰고 소하의 목에 매달렸다. 준영이 다급하게 악귀에게 손을 뻗자,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과 소름 끼치는 이명이 준영을 공격했다.

 머릿속에 점차 공포가 차오르자, 이를 악문 준영은 밀려오는 고통을 뿌리치며 악귀의 손을 붙잡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과 마리아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너희 지옥의 악령들아. 우리를 유혹하거나 해치지 마라!"

 

 준영의 기도에 악귀의 몸이 요동치다 소하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소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두려운 눈빛으로 준영을 바라봤다. 준영은 그런 소하를 꼭 안아주었다.

 

 "돌아가자, 소하야."

 

 준영은 하늘을 올려다 봤다.

 '이제 저희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준영은 마음 속으로 여러번 빌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지옥 그대로였다.

 

 의아한 준영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신의 몸을 살폈다. 깃털처럼 몸이 가벼웠고, 어떤 악취나 이명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순간, 한 줄기 빛이 준영을 향해 떨어졌다.

 

 준영 앞으로 빛에 휩싸인 계단이 내려왔다. 자신 또한 죽은 것인가? 모든 상황을 깨달은 준영은 체념한 듯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소하의 뺨을 쓰다듬었다.

 

 "소하야, 네 삶을 살아라. 귀신과 악이 조종하는 세상이 아닌, 오직 너를 위한 세상을 살아라."

 

 소하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의 눈물을 세심하게 닦아준 준영이 나지막이 일렀다.

 

 "그리고·· 나 역시 소하 너를 용서한단다."

 

 순간 세상이 다시 요동치며 사방으로 펼쳐졌던 지옥이 사라졌다. 찬란한 빛이 소하와 준영을 비췄다. 준영의 몸이 점차 떠올라 새하얀 빛이 수놓은 천국의 계단 위로 올라섰다.

 몸 안에 성스러운 기운이 복받쳐 오르는 걸 느낀 준영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준영의 심장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자신의 허파로 밀려 들어오는 엄청난 숨결에 준영은 거칠게 숨을 토했다.

 

 

 

  §

 

 

 

 

 "커억!"

 

 "됐다! 됐어! 살았어!"

 

 "곤!"

 

 제롬과 곤의 목소리였다. 준영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찬란했던 천국의 계단은 사라지고 사방에는 교통사고의 잔해들과 어지러이 널려있는 제롬의 불꽃들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양옆으로 눈물 흘리는 사내들이 나타났다.

 

 "바보야! 죽은 줄 알았잖아!"

 

 창기로 돌아온 곤은 누워있는 준영을 격하게 흔들었다. 기겁한 제롬이 창기를 말려야 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고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

 

 둘의 야단에 준영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천국의 문턱에 선 자신을 다시 현실로 끌고 내려온 이들에게 준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맙네요. 참·· 소하는 어떻게 됐나요?"

 

 "흠, 뭔가 고맙다는 말의 어감이 좀 이상한데·· 소하는 쥐죽은 듯이 자고 있어. 자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더라. 꿈속에서 반성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원."

 

 준영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너무도 어지러운 탓에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누워서 바라본 세상은 하늘 밖에 보이지 않았다.

 

 준영의 하늘에 새하얀 별들이 하염없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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