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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낯선 자들의 밤
작가 : 환상좀비
작품등록일 : 2018.11.16

신화의 존재들이 생존한 세계.
암암리에 출몰하는 그들의 존재는 인간들의 암인가, 새로운 지성체들인가?
구마사제 준영은 끊임없는 시험 앞에 선택을 종용받게 된다.

 
23화. 천국의 계단 (6)
작성일 : 19-01-16 15:11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4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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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색 바랜 하얀 벽지 위로 끈적한 붉은 피가 튀었다. 사방을 비추는 백열전구의 노란 불빛들이 진득한 피의 색감을 한층 선명하게 만들었다.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핏줄기 앞에서 준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하와 뒤엉켜 있는 할머니를 응시했다.

 

 끼야아악! 누군가의 비명,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준영은 소하에게 몸을 던졌다. 준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하의 자세가 무너지며, 할머니를 향하던 과도가 허공을 갈랐다. 할머니는 자신의 쇄골 위로 깊게 파인 상처와 소하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리던 할머니는 상처 부위를 대충 손으로 억누르며 소하를 향해 기어갔다.

 

 "다가오지 마세요!"

 

 소하를 붙잡고 있던 준영이 할머니에게 외쳤다. 할머니는 준영의 외침에 잠시 움찔할 뿐, 소하를 향해 기어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얘기·· 우리 얘기 몸에서 나와라. 잡, 잡귀 녀석아."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하의 팔다리를 쓰다듬고 주물렀다. 소하에게 당한 자상 아래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지만, 할머니의 시선은 오직 소하에게만 집중됐다.

 소하는 그런 할머니를 향해 잔인하게 웃어 보였다.

 

 "할머니·· 나 소하야. 할머니가 알던 소하."

 

 피범벅이 된 소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니 그 모습이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 이상 할머니를 방치할 수 없다 생각한 준영은 밖에서 웅성대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할머니를 옮겨요! 어서! 보기만 하지 말고 도와달라고요!"

 

 준영의 외침에 머뭇거리던 마을 사람들 몇몇이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방 안으로 들어와 할머니를 끌고 나왔다. 마을 장정 몇몇이 준영과 소하에게도 다가오려 하자, 준영은 그들에게 악을 써가며 물러나게 했다.

 

 "물러나! 아직 귀신이 남아있어! 귀신 씌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물러나!"

 

 준영의 경고에 방 안의 모두가 혼비백산하며 물러났다. 준영은 자신의 말이 모두 거짓임에 좌절했다. 차라리 진짜 아직 소하의 몸 안에 귀신이 있었더라면·· 귀안으로 바라본 소하의 몸 안에는 어떠한 잡귀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할머니를 찌른 건 소하 본인의 의지임이 분명했다. 준영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준영은 일단 방 안의 모든 문을 닫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준영은 돌아서서 아직 바닥에 누워있는 소하를 바라봤다.

 

 소하는 환하게 웃으며 안아달라는 듯 양손을 펼쳤다. 그리고 앙상한 다리를 벌렸다.

 

 "신부님, 신부님도 날 원해? 그래서 문도 다 닫은 거야?"

 

 소하의 말이 철퇴처럼 준영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 사건의 시작에 대해 어렴풋하게 짐작한 준영은 아이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소하야·· 올해로 몇살이니?"

 

 "나? 열두 살."

 

 "누가 소하를 괴롭혔구나. 그래서 화가 난거지? 몸 안으로 들어온 귀신 친구가 소하에게 칼을 쥐어준거야?"

 

 "어··· 비슷해."

 

 "그래? 귀신이 뭐라고 했어?"

 

 "그냥 몇 가지만 알려줬어. 요기, 요기, 요기가 흥분된다고. 또 요기, 요기, 요기가 찌르기 좋다고."

 

 닫힌 문밖으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를 부르는 여러사람들의 목소리에 준영은 밖에서 무슨 사단이 났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주여··' 잠시 눈을 감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한 준영은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소하를 바라봤다.

 

 "원하는게 뭐니?"

 

 "그 새끼 핏줄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

 

 "왜? 진짜 그걸 원해?"

 

 "뭐야? 왜 알면서 모른 척해? 그 새끼가 내게 뭔 짓을 했는지 몰라? 신부님은 경험이 없어서 몰라?"

 

 소하는 피에 젖은 과도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영은 그제서야 소하의 다리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음을 깨달했다. 소하가 환하게 웃었다.

 

 "그 새끼를 낳은 애미도 방금 죽은 거 같아? 그렇지?"

 

 범인이 아버지인가. 갈수록 첩첩산중으로 꼬여가는 이야기에 준영은 눈 앞이 깜깜해졌다. 문밖으로 웅성이는 소리, 절규하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섞여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소하는 그 목소리 하나마다 환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과도가 든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던 소하가 점차 준영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죽기 전에 한번 할래?"

 

 "소하야! 네가 보던 세상, 그게 전부가 아니야! 넌 앞으로 다른 세상을 살 수도 있어. 귀신이 보여준 세상만이 전부가 아냐!"

 

 소하는 준영의 다급한 애원에도 아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소하가 과도를 높이 치켜들자 준영은 심장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에 두 눈을 꼭 감았다. 생존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저지르려는 원죄를 두 눈으로 지켜보기 힘들어서였다.

 

 아이의 짧은 평생 중 아버지란 세상의 전부라는 걸 준영도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 준영은 아이가 느꼈을 고통과 공포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자기방어를 위해 올라갔던 준영의 손이 점차 내려갔다. 아이가 자신에게 달려들면 그땐 받아들이고 안아주리라. 그리고 꼭 기도하리라. 준영은 마음속으로 맹세하며 또 체념했다.

 

 잠시간의 침묵, 눈을 감고 있는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준영이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서 양손에 과도를 쥔 소하가 그것을 자신 입안으로 쑤셔넣고 있었다.

 

 '그 새끼의 핏줄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 소하의 목소리가 준영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런 멍청이! 준영은 자신을 책망했다. 아버지와 관련된 일족을 모두 죽이려던 아이가 정작 가장 증오했던 대상이 누구겠는가.

 

 소하는 아버지의 피가 가장 강하게 섞인 자기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날카롭게 깎인 칼날이 소하의 목젖에 닿았다. 준영은 악을 쓰며 소하에게 달려들었다.

 

 찰나의 시간, 준영의 발이 매끄럽게 닦인 장판을 밟고 미끄러졌다. 균형을 잃고 크게 나자빠진 준영은 바닥에 주저앉아 절망스러운 얼굴로 소하를 바라봤다.

 '하느님, 제발··' 간절한 준영의 기도에도 과도는 무심하게 소하의 입안으로 점차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순간, 낡은 미닫이문이 폭발하듯 쪼개졌다.

 

 콰앙-! 방 안을 울리는 엄청난 굉음과 흩날리는 잔해들의 충격에 소하의 행동이 잠시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잔해들 사이의 남성에게 쏠렸다. 그리고 공기가 다시 요동쳤다.

 

 "흐으으읍. 고오오오온!"

 

 곤의 사자후가 방 안을 뒤집어놓았다. 소하의 몸이 떠올라 벽에 부딪혔고, 피 묻은 과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준영이 눈물 흘리며 환호했다.

 

 

 

 §

 

 

 

 피로 얼룩진 굿판의 모습에 말그대로 마을이 뒤집어졌다. 울고, 절규하고, 경악한 목소리가 마을 안에 가득했다. 목가적인 어촌 마을에 일어난 지옥같은 사건을 주민들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뒤늦게 내려온 제롬은 급하게 짐을 챙겨 창기와 준영을 데리고 나왔다. 다시 돌아온 마을 입구의 비석 앞에서 준영은 제롬의 손을 뿌리쳤다.

 

 "꼭 달아나는 모양새 같아요. 이렇게 사라질 일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아이의 행동과 심리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봐요."

 

 "···맞습니다."

 

 "예?"

 

 "달아나는 것 맞아요. 지금은 혼란스러워 우리에게 신경 쓰지 못하지만, 사건이 진정된 다음에 저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요?"

 

 준영은 놀란 눈을 껌벅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준영의 모습에 제롬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들은 곧 마을에서 벌어진 재앙 같은 일에 분노할 겁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필시 굿판과 관련 있는 우리에게 쏟아지겠죠."

 

 "그것이야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직 아이에겐 제가 필요합니다."

 

 "일단 방향이 정해진 다수의 분노는 사건의 전말과 진실이 어떻든 무언가를 불태우고 집어삼켜야지만 끝이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부정적인 제롬의 말에 준영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제롬의 옷깃을 꽉 붙잡은 준영은 애원하듯 그의 품 안으로 머리를 숙였다.

 

 "아이에게는 아직 제가 필요해요. 지금 소하는 악귀의 영향으로 현실과 내면의 쌓인 분노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어요."

 

 "··· 수사님이 더 잘 아시지 않나요? 저 모든 일은 아이가 직접 선택한 것이라는 걸."

 

 "내면의 분노야 누구든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마음속에 분노가 쌓이면 누군가를 비난하고 해합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만요! 그런데 그 안에 악귀가 침입하면 현실과 마음속 깊은 심연의 경계를 해이해지게 만듭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분노가 자기도 모르게 현실로 튀어나오도록 말이죠."

 

 제롬에게 매달린 준영은 아이의 잘못을 아니라며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애원했다. 제롬은 난감한 표정으로 한동안 그런 준영을 지켜봤다. 크게 한숨을 쉰 제롬은 그런 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알겠어요. 다만, 마을 안으로는 못 들어가요. 우리가 민간인과 싸우게 되면 그땐 진짜 큰일이 일어나니까요. 아이와 할머니는 모두 근방 병원으로 옮겨질 겁니다. 거기서 아이와 만나보도록 하죠."

 

 제롬은 준영을 다독이며 그와 창기를 차에 태웠다. 운전석에 앉은 제롬은 뒷자리에 앉은 준영을 백미러로 바라봤다. 축 처진 어깨로 고개 숙인 준영의 모습에 제롬의 심경도 복잡해졌다.

 

 "장 수사님."

 

 "···예? 부르셨어요?"

 

 "정말 매번 그런 식으로 모든 짐을 떠안고 갈 생각인가요?'

 

 "무슨 말씀인지··?"

 

 다음 사조직의 왕은 모든걸 안고가는 사람입니까? 제롬은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장 수사님의 말을 모두 따르도록 하죠. 대신 제 부탁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예, 제롬 씨의 부탁이라면 뭐든··"

 

 준영은 대수롭지 않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하에게만 정신이 팔려있는 준영의 모습에 제롬은 진지하게 다시 말했다.

 

 "제 부탁이 뭔지 들어보지도 않고 말입니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준영이 고개를 들어 제롬을 바라봤다. 그의 진중한 표정에 당황한 준영은 그제야 제롬의 말에 집중했다.

 

 "언젠가 장 수사님이 갈림길 앞에 섰을 때, 그때·· 한번만 저를 선택해 주세요."

 

 뜬구름 같은 제롬의 제안에 준영은 당황했다. 잠시 고민하던 준영은 한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제롬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준영이라면 불구덩이 속에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것을 알았다. 제롬은 만족한 표정으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곧이어 두 대의 차량이 다급하게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이와 할머니를 태운 것이 분명했다. 제롬이 빠르게 핸들을 돌리며 그 뒤를 쫓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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