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두 개였다.
머리 위를 온통 뒤덮은 푸른 색 하늘 하나.
수평에 속 시원히 미끄러진, 에메랄드 색 하늘이 하나.
이따금씩 빛나는 하얀색 부스러기들은 둘 중 무언가가 깨진 흔적이려나
하지만 고개를 들어도, 내려도, 깨진 기색이라곤 없고
부스스한 내 얼굴만 비쳐 보인다.
끼룩, 끼룩.
닿을 수 없는 어디선가
별 생각 없이 목청을 울렸을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내 심장을, 부웅, 위로 던져 놓고는
다시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진다.
잊을 때쯤 다시
‘끼룩.’
몇 분이나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몸에 묻은 곱고 마른 모래가 떨어지고
정신도 비슷한 모양새로 탈피하고 있었다.
한 알, 두 알, 수십 알, 수백 알.
우수수.
어느새 머릿속에도 맑은 하늘이 개었나보다.
이제야 온통 투명해졌구만.
하늘도
바다도
몸도
정신도
차가운 물을 들이켠 듯이 화창하게 개었다.
“음....”
정면에서 불어오는 나긋한 바람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햇빛은 뜨거운데, 몸은 시원했다.
고운 모래가 발을 간지럽혔다.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이었다.
시끄러운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그건 결국 뭐였던 거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잔잔한 파도소리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뭐, 고민해본들 별 수 있나.
그냥 앉아서 모래사장을 걷는 게 한 마리나 잡아서 놀았다.
그렇게 30분 후.
처음엔 나름 재밌었지만, 30분 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더니 이젠 별로 흥미롭지도 않다.
가지고 놀던 게도 기운이 빠졌는지 내 손 위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다리 몇 개만 까닥거릴 뿐이었다.
그 뒤로 3시간은 모래사장에서 뒹굴어도 보고
3일 동안은 얕은 파도에서 놀아도 보고
3달 동안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헤엄도 쳐 보았지만,
“.......”
재미없어.
그 그림 같던 풍경도 몇 달이나 보고 있자니 지루해지는 법이구나.
아니, 그림 같기에 오히려 더 지루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이상향이라도 그려놓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니까
움직이지 못하기에 그림이고
그렇기에 지루하다.
사람이 그곳에서 살지 못하는 것도 그 ‘지루함’이란 녀석 때문일걸?
이 골칫덩어리 자식. 괜히 사람 바짓가랑이나 부여잡고 변화를 졸라대는 것 말고는 뭐 하나 하는 게 없다.
요놈 탓에 열이 뻗친 사람들이 제아무리 길다란 영상을 만들어보아도 결국 평생 동안은 움직이지 못하는 게 인공물이니, 언젠간 영상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까만 화면이나 주구장창 바라만 보게 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의 한심한 점이리라.
그러니 자연한테 그림 같다는 말을 갖다 붙인 시점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에휴...”그런 한숨을 뱉으며 모래사장에 아무 의미 없는 글씨나 적는 동안에도, 눈앞의 그림은 변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저 가끔가다가 ‘끼룩’하고 갈매기 울음소리나 들리는 것이 고작이다.
드러누워 하늘을 보니, 키 큰 건물들과 수많은 자동차들의 밑바닥이 보인다.
그런 걸 보니 이미 나의 눈꺼풀은 거의 감겨있나 보다.
자각은 못 했지만.
갈매기의 울음도 점점 멀어지고, 모래사장의 감각 대신 시끄러운 도시의 경적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냥 이대로 잠들기로 하자.
나름 버틸 대로 버텼다고 생각한다.
이젠, 너무 졸리다.
까마득한 의식 저편에서 혜성무리마냥 쏟아져 내리는 꿈을 따라, 나는 의식을 놓았다.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나를 깨웠다.
눈을 뜨니 거인처럼 솟은 차가운 유리의 나열과, 그 밑 사람들과 자동차들의 소란이 고스란히 시야에 담겼다.
빵빵. 다시 울린 클락션에 뒤를 돌아보니 웬 신경질적인 여자 한 명이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정말 돌아오길 잘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저앉아있는 동안에 여자가 핸드폰 카메라로 나를 촬영하며 문을 열고 내렸다. 계속 앉아있으면 신고하겠다는 모양이다.
거 참 성미도 급하셔라.
나는 그제서야 엉덩이를 떼어내, 벌레다리처럼 얽힌 삼색 신호등 아래,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사거리의 흰색 페인트 위를 걸었다. 물론 사람들이며 자동차들이 사방 천지에 번잡하게 지나다녔다.
역시 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정적보다는 이 소란스러움이 더 나은 것은 확실해보였다. 한동안은 여기서 지내는 게 낫겠다.
“역시 그 무인도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돼. ....뭐, 여기도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이지만.”
그럼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살아야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나는 걸었다.
“아무리 봐도 몇 달 뒤에는 다시 무인도로 갈 것 같네.”
아마 그게 답일 것이다.
정처는 없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방랑자 확정이니까.
억울하게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렇게나 혼잡하게 섞여 사는 것이겠지.
이리저리.
북적북적.
시끌시끌.
그리고,
끼룩 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