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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방랑자들(Wanderers)
작가 : 나그네쥐J
작품등록일 : 2016.8.22

(마크 트웨인 '왕자와 거지' 원작)외모 뿐만이 아니라 나이와 생일도 똑같은 잉글랜드의 두 소년. 하지만 한 명은 매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왕궁 탈출 시도를 하는 사고뭉치 왕자로, 다른 한 명은 왕자가 되어보는 것이 소원인 거지 소년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요크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고 옷을 바꿔입게 되는데...3개월 동안 그들에게 벌어질 일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될까?

 
4. 이게 무슨 일이야
작성일 : 16-09-25 20:59     조회 : 457     추천 : 0     분량 : 8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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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헉∙∙∙너 진짜 뭐야!”

 

 요크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말을 멈추려고 왕자와 실랑이를 벌이던-실상은 혼자 왕자를 저지하려고 애썼던-해결사는 지친 듯 헉헉거렸다. 반면에, 그와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에도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가며 여유롭게 피하던 왕자는 멀쩡한 상태였다.

 

 “나 하나도 저지 못하다니 실망이다.”

 

 “아니! 네가 무슨 물고기도 아니고 이리저리 피해서 그런 거거든!”

 

 “칭찬 고맙군.”

 

 “이게 칭찬으로 들리냐?!”

 

 왕자의 뻔뻔한 태도에 해결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잘 피한다는 소리 아닌가?”

 

 “그건 맞는데∙∙∙!”

 

 “그럼 칭찬 맞네, 뭐.”

 

 “∙∙∙됐다, 내가 더 이상 말을 해서 뭐하냐.”

 

 그리고 잠시 쉬다 해결사는 말을 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것이긴 한데 너 재수 없어.”

 

 “∙∙∙∙∙∙.”

 

 “일단 멈춰봐.”

 

 “왜지?”

 

 “왜긴 왜야, 계약서 쓰려고 그렇지.”

 

 “계약서?”

 

 왕자는 말을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응, 원래 의뢰를 받으면 계약서를 쓰거든.”

 

 “왜 쓰는 거지? 일종의 증표 같은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래야 신뢰성이 더 높아지니까. 또 아주 가끔이지만 의뢰를 들어줬는데 그에 따른 보상을 안 주고 도망가는 인간들이 있어서 말이지.”

 

 해결사는 보상을 안 주고 도망간 인간들을 생각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파렴치한 인간들이군. 그런 인간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했지?”

 

 왕자가 호기심이 생긴 듯 물었다.

 

 “어? 당연히 끝까지 쫓아가서 보상을 받아냈지.”

 

 “그래,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 잘했다.”

 

 “너한테서 칭찬 들으니까 뭔가 이상하다? 아, 계약서 써야지.”

 

 해결사는 무언가를 찾는 듯 말에 걸어둔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뭘 찾는 건가?”

 

 “종이랑 펜, 분명히 여기 있을 텐데∙∙∙.”

 

 “계약서는 어떻게 쓰면 되는 거지?”

 

 “기다려봐. 지금 찾고 있잖∙∙∙.”

 

 해결사가 고개를 돌린 순간, 왕자가 끝부분이 둥근 종이-정확히는 거대한 꽃잎 두 장-과 펜꽃(마치 펜처럼 글씨를 쓰거나 색칠을 할 수 있는, 끝부분이 뾰족한 보랏빛의 꽃. 왕자가 자주 애용한다.)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들은 모두 왕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만든 것이었다. 거대한 꽃잎에 가려진 그의 두 눈은 어느새 에메랄드 빛으로 변해 있었다.

 

 보통 사람이면 어디서 났냐는 말부터 시작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겠지만 해결사는 왕자가 거대한 종이와 화려한 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만 했을 뿐, 계약서를 쓸 수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그냥 넘겼다.

 

 “있으면 말을 하지, 이리 줘봐.”

 

 “불러, 내가 쓸 것이다.”

 

 왕자는 자신의 눈을 가리기 위해 꽃잎을 얼굴 가까이에 밀착시켰다. 갑자기 눈 색깔이 변한 것을 보면 그가 왕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왕족임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

 

 “어서.”

 

 왕자의 말에 해결사는 계약서에 써야 할 내용을 차례대로 불렀고 왕자는 그것을 받아 적고 또 다른 꽃잎에도 옮겨 적었다.

 

 이 계약서는 서로의 동의에 따라 작성했음을 명시한다.

 

 1. 의뢰인과 해결사는 서로의 계약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며, 이 조건이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계약을 파기한다.

 -의뢰인: 해결사의 임시 조수가 되어 해결사의 의뢰를 돕는다. 단, 의뢰가 해결되면 임시 조수의 일도 함께 끝난다.

 -해결사: 의뢰인의 임시 기사가 되어 의뢰인을 런던의 햄튼 코트 궁전으로 데려다 준다. 단, 의뢰가 해결되면 임시 기사의 일도 함께 끝난다.

 2. 해결사는 의뢰인의 임시 기사로서, 계약이 지속되는 동안 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3. 의뢰인과 해결사는 서로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을 가진 ‘사람’임을 명심한다.

 4. 의뢰가 끝나기 전까지 상대방의 동의 없이 계약을 파기시키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5. 의뢰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 계약서를 찢거나 불태우는 등 없애버리거나 훼손시키지 않는다.

 6. 이 계약서는 의뢰인과 해결사, 각자 한 장씩 소중히 보관하며 잃어버리지 않도록 유념한다.

 

 “혹시 더 추가할 사항은 있어?”

 

 “아직은 없다.”

 

 왕자는 완성된 계약서들 밑에 본명(에스테반 테이비르 에델린)이나 작위명(웨일스공)을 적는 대신에 어머니가 부르는 자신의 애칭(반(Ban), ‘에스테반’을 줄인 말이다.)을 적고 사인을 했다.

 

 “네 이름은 뭐지?”

 

 “내 이름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 했네. 엘(El)이야, 엘. 내 이름.”

 

 왕자는 자신의 이름 옆에 해결사의 이름을 적었다.

 

 “반(Ban)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꽃잎들을 엘에게 내밀었다. 그의 두 눈은 어느새 본래의 오렌지 빛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엘은 꽃잎들을 받고서 사인을 한 후, 그 중 한 장을 왕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꽃잎을 둘둘 말아 자신의 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왕자도 꽃잎을 최대한 접고 또 접어서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 이걸로 계약 완료!”

 

 엘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왕자가 그랬다. 서로 민망해진 나머지, 잠시 정적이 흘렀고 왕자는 큼,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러다 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왕자에게 물었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

 

 왕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간 식당은 허름한 뒷골목에 있지만 요크 내에서는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물론 왕자는 이 곳이 맛집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 떠드는 소리, 술 취한 젊은이가 술잔을 테이블에 쾅쾅 두드리며 웃는 소리, 취객들이 서로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소리(물론 거의 대부분은 허풍이다.), 반반하게 생긴 청년이 옆자리 아가씨들에게 수작질하는 소리, 추가 주문을 위해 테이블 위에 있는 벨을 울리는 소리, 서투른 초보 종업원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깨지는 접시 소리, 음식이 나왔다며 서둘러 가져가라는 주방장의 고함∙∙∙이 모든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만찬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항상 조용한 상태로 식사를 해왔던 왕자는 시끄러운 소리들에 귀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식당이 이리 시끄러워?’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엘은 아무렇지도 않게 왕자의 손을 잡고 빈 테이블에 앉았다.

 

 “이 곳은 항상 시끄러운가?”

 

 “그렇지, 인기 많은 곳이니까.”

 

 “그건 그렇고 너 말이야, 왜 자꾸 나한테 반말을 쓰는 거지?”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반말을 쓰는 이는 없었기 때문에 왕자는 불쾌한 듯 투덜거렸다.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지는 않으니까? 또래 아니었어? 너 몇 살인데?”

 

 “올해 12살이다.”

 

 “뭐야, 나보다 3살 더 어리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뭐?”

 

 아차, 왕자는 지금은 자신이 평범한 소년의 신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왕자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내뱉고서 말했다.

 

 “그, 그게∙∙∙네가 내 임시 기사이니 나는 네 주인이니라. 예의를 갖춰라.”

 

 엘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비웃었다.

 

 “넌 내 조수도 되거든?”

 

 “그, 그래도 일단 주인이긴 하니 예의를 갖추거라!”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왕자의 모습에 엘은 그를 놀려먹을 심산으로 비위를 맞추는 척했다.

 

 “아아, 조수님. 알겠습니다. 예의를 갖추도록 하죠.”

 

 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무릎까지 꿇자 사람들은 그들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왕자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 그만하거라! 어서 자리에 앉아라!”

 

 “네, 알겠습니다. 조수님.”

 

 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수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반님이라고 부르거라.”

 

 “네, 반님.”

 

 왕자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말고 나중에, 여기서 나가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조수님.”

 

 “그 놈의 조수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씩씩거리는 왕자의 모습에 엘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흥, 밥이나 먹도록 하지. 여봐라, 당장 달걀 크레페하고 밀크 티를 대령하거라.”

 

 왕자의 명령에 접시를 닦고 있던 식당 주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엘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테이블을 쾅쾅 내리치며 깔깔 웃었다. 그러나 정작 왕자는 사람들이 왜 웃는 건지 그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저기 메뉴판이 버젓이 있는데 보지도 않고서 메뉴판에 없는 것을 시키는 건 뭐예요! 게다가 무슨 귀족도 아니고 음식을 대령하라니! 하하하!”

 

 엘의 말에 왕자는 고개를 돌려 메뉴판을 봤다. 확실히 왕자가 주문한 음식들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창피한 것보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없다는 사실에 잔뜩 화를 냈다.

 

 “달걀 크레페와 밀크 티가 없다니! 정말 식당이 맞는 것이냐? 참 심각한 일이군!”

 

 그의 말에 식당 주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빈정댔다.

 

 “거 참, 미안하게 됐수다.”

 

 “에헤이, 그냥 제가 시킬게요.”

 

 엘은 테이블 위에 있는 작은 종을 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 이 가게에서 가장 맛있다는 미트 파이 2개 주세요!”

 

 그러자 식당 주인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었고 서빙을 하던 직원이 주방장에게 소리쳤다.

 

 “미트 파이 2개요!”

 

 “미트 파이?”

 

 왕자가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왜? 이 집 미트 파이 엄청 맛있어요.”

 

 “달걀 크레페랑 밀트 티는 없고 미트 파이는 있다니! 허, 참!”

 

 “싫으면 먹지 말든가요.”

 

 “∙∙∙∙∙∙.”

 

 왕자는 입을 다무는 대신 눈빛으로 치사하다는 뜻을 대신 전했지만 엘은 신경도 안 쓰고 휘바람을 불어댔다.

 

 잠시 후, 직원이 그들의 테이블에 바삭하게 구워진 미트 파이 2개를 내려놓았다. 고소한 냄새에 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왕자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뭐야, 아직도 불만스러우세요? 한 입만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요?”

 

 “미트 파이 따위가 맛있어 봤자지∙∙∙.”

 

 왕자는 나이프로 미트 파이를 썰어 포크로 찍은 다음, 한 입 먹어 보았다.

 

 그 순간, 왕자는 크게 놀란 듯 그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바삭한 식감에 속은 촉촉했고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가서 그런지 씹는 맛도 일품이었다. 왕궁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왕자의 12살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는 미트 파이였다. 왕자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다급하게 미트 파이를 썰어 한 입 더 먹어보았다. 다시 먹어봐도 처음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반응에 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 봐요, 내가 엄청 맛있다고 했잖아요.”

 

 왕자는 화들짝 놀라고는 겸연쩍어하며 말을 이었다.

 

 “뭐∙∙∙생각보다 괜찮군.”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그의 반응에 엘은 킥킥 웃으면서 미트 파이를 썰어 먹기 시작했다.

 

 

 한편, 햄튼 코트 궁전에서는 국왕이 내린 벌을 수행하기 위해 제리가 빗자루를 든 시녀장 루아르를 따라 1층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제리는 넓고 화려한 궁 안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아, 정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이구나! 이제 이 곳에서 매일 지낼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복도의 끝에서 발걸음을 멈춘 루아르가 냉정한 목소리로 궁 안 둘러보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그를 불렀다.

 

 “왕자님.”

 

 “네, 네!”

 

 “여기서부터 청소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제리에게 빗자루를 내밀었다.

 

 “아∙∙∙.”

 

 빗자루를 받은 제리는 말없이 빗자루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이런 걸 왜 해야 하냐고 길길이 날뛰고 나서 빗자루를 던지고 도망치시겠군.’

 

 루아르는 그가 도망을 가겠다고 예상을 하고는 미리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제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웬일이시지? 설마 진짜로 반성이라도 하신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 분이 어떤 분이신데. 순순히 응해주는 척하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치려는 계획이시겠지.’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딱 봐도 엄청 넓고 길어 보이는데 이걸 언제 다 청소하지?’

 

 제리는 잠시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말없이 빗자루를 들어 능숙하게 복도에 있는 먼지를 쓸어내기 시작했고 루아르는 근처에 있는 벽에 기대어 그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왕자님께서 이렇게 청소를 잘하시던가∙∙∙?’

 

 

 시간은 어느새 빠르게 흘러 밤이 되었다. 오랫동안 중대한 사항에 대해 국왕과 회의를 하던 대신들은 매우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국왕은 표정의 변화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밤이 늦었군. 나머지는 내일 하도록 하지.”

 

 아, 이 말을 듣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대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씰룩 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신들도 따라 일어났고 문지기들이 문을 열어주자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국왕을 필두로 길게 줄을 지어 복도를 걸어가던 대신들 중 한 명에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아니, 저건 왕자님 아니십니까?”

 

 그의 말에 모든 이들이 저쪽 끝을 바라봤다.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루아르 옆에서 몇 시간 동안 빗자루를 들고 묵묵히 청소를 하고 있는 제리의 모습이 보였다.

 

 “왕자님이 청소를 하고 계셔!”

 

 “설마 지금까지 하신 건가?”

 

 “그럴 리가! 분명 계속 도망치시다가 붙잡혀서 저러고 계시는 거겠지!”

 

 대신들의 수군거림에 얼굴을 찡그린 국왕이 졸고 있는 루아르에게 다가가 물었다.

 

 “루아르.”

 

 “응? 아! 아! 전하!”

 

 그녀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숙였다. 청소를 하고 있던 제리는 루아르의 반응에 고개를 돌려 국왕과 대신들을 봤다. 밤에 본 국왕의 굳은 얼굴은 잔뜩 화를 냈을 때를 제외하면 낮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제리는 겁을 먹고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소자(小子)가 폐하를 뵈옵니다.”

 

 제리의 지나치게 공손한 인사에 국왕은 물론이고 대신들까지 당황했다. 왕자는 단 한 번도 저렇게 인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알 리가 없는 제리는 그들의 반응에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루아르, 왕자가 지금까지 청소를 하고 있었나?”

 

 “네, 지금까지 묵묵히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에스테반.”

 

 “네, 폐하.”

 

 “네가 한 일에 대해 충분히 반성한 것 같으냐? 최소한 뭘 잘못했는지는 알겠지?”

 

 “왕자로서 모범이 된 자세를 보이지 못할 망정, 제 욕심으로 궁을 탈출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고생시키며 그들의 시간을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왕실의 체통에 해를 끼쳤고요. 저로 인해 피해를 본 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왕자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그의 브로치를 찾느라 많은 사람들이 이리 저리 기어 다니고 자신을 잡기 위해 쫓아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제리는 대답하였다.

 

 “그래, 잘 알고 있군. 충분히 반성한 것 같으니 이제 청소를 끝내고 방으로 가 쉬어라. 루아르, 너도 마찬가지다.”

 

 “감사합니다, 폐하.”

 

 루아르는 국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서 몸을 돌려 걸어갔다.

 

 “감사합니다만 폐하, 전 이 청소를 끝내고 나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루아르는 당황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서 고개를 돌렸고 국왕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유라도 있느냐?”

 

 “페하께서는 궁 안의 모든 복도를 다 청소하시라고 하셨죠. 전 아직 그 일을 다 끝내지 않았습니다.”

 

 “네 말은 기특하나 그러면 루아르 또한 네가 청소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뇨, 루아르는 그냥 돌려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검사를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 그러면 네 뜻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폐하.”

 

 제리는 빗자루로 남은 복도를 청소하기 시작했고 국왕과 대신들은 그를 지나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대신들과 루아르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고뭉치 왕자가 저런 말과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보고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국왕은 고개를 돌려 제리의 모습을 확인했다. 여전히 그는 묵묵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피곤하구나.”

 

 “재미있으셨어요? 돌아다니는 내내 신기하다는 표정 엄청 많이 지으시던데.”

 

 엘과 함께 시간을 보낸 왕자는 숙소로 돌아오자 피곤한지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엘이 사준 막대사탕과 곰 인형이 들려져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엘은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고 왼 팔에는 왕자를 위한 새 옷가지가 걸려져 있었다.

 

 “내가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다고∙∙∙.”

 

 “이제 보니 굉장히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네요. 좋으면 좋다고 말해요, 누가 뭐라 그런다고.”

 

 “말이 많구나. 근데 이게 방이라고∙∙∙.”

 

 평생을 넓디 넓은 왕궁 안에서 살아온 왕자는 이 코딱지만한 공간이 방이라는 것이 몹시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방 안에 놓인 가구들도 죄다 본 적도 없는 싸구려였다. 자신이 이런 곳에서 지내야 한다니∙∙∙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투덜거리다간 저 해결사가 그리 불만이면 나가라고 할까봐 그는 할 수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네?”

 

 “아니다. 씻고 잠이나 자야겠구나. 욕실은 어디 있지?”

 

 “저기요.”

 

 왕자는 엘이 가리킨 쪽으로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불만스러운 듯 뒤돌아보았다.

 

 “뭐하느냐?”

 

 “네?”

 

 “왜 안 따라와?”

 

 “제가 거길 왜 따라가요?”

 

 엘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야 네가 날 씻겨야 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왕궁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스스로 몸을 씻은 적이 없었다. 물을 자유롭게 소환하거나 다루는 국왕의 능력으로 욕조에 몸을 담그기만 하면 물줄기가 알아서 씻겨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씻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나 이를 알 리가 없는 엘은 뭔 해괴한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혼자 씻을 줄 모른다. 그리고 뭐 어때, 같은 남자끼리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느냐?”

 

 “응? 제가 언제 남자라고 했어요?”

 

 “뭐?”

 

 “제가 언제 남자라고 했냐고요?”

 

 “그게 무슨∙∙∙.”

 

 “저 남자 아닌데요?”

 

 그 말과 함께 엘은 가면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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