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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시집살이.’ 며느리들의 가슴을 철정 내려앉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며느리만 힘들까? 자신도 겪어온 며느리 시절을 잘 아는 시어머니가 왜 며느리를 괴롭힐까? 어쩌면 그 시어머니는 나름대로 잘 해보려는 게 아닐까?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며느리는 자신의 며느리를 어떤 태도로 대할까? 어쩌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던 그 시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진 않을까?

“네가 뭘 안다고 끼어들어?!” 사건 당사자들이 그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경험했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다.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날 위한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자신만을 위해 싸우니 해결도 있을 수 없다.

만연해 있는 고부갈등을 제3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끝없이 맞물려 있는 이 복잡한 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단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 나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분도, 그도, 그녀도, 그 아이도 다 잘못 만났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잘 모른다. 당사자인 만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같고 상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 같다.

‘힘들어봤자 나보다 더 힘들까.’
‘내 주제에 지금 누굴 위로하고 있나.’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사치가 된 세상. 하지만 위로할 수 있어야 위로받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음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난세(亂世)살이를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불쌍히 여기며 감싸 안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어쩌면 상대를 시대의 피해자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꽤 대단한 사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런 소소한 소망 하나를 던져주는 것이 이 책에 나올 인물들의 역할이다.

이 소설은 올해 서른셋이 된 주인공(나)이 세 살 즈음에 가지고 있었던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하지만 지울 수 없는 강력했던 몇 가지 기억을 토대로 전개된다. 그리고 올해, 세 살 즈음이 된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을 동시에 섞어가며 그들을 지배한 각각의 시대를 조금씩이나마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올해 ‘세 살 즈음’이 된 등장인물들의 스펙은 저마다 찬란하게 서글프다.

- 일흔 세 살 즈음에
올해 일흔 세 살이 된 고모는 1946년에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비상한 머리를 써보지도 못한 채 국졸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194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독일광부로 파견나간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늦게나마 실현하려던 꿈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포기해야 했으며 194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애틋한 마음 한번 품어볼 기회 없이 원치 않는 결혼을 치러버려야 했다. 그리고 여생을 딸과 손녀를 위해 헌납해야 했다.

- 예순 세 살 즈음에
올해 예순 세 살이 된 아빠는 195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주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우울한 대학시절을 맛보아야 했으며, 그토록 가혹했던 70년대의 군대를 경험해야 했다. 195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직장도, 집도 쉽게 구했지만 평생을 가족을 위한 ATM기계로 살아야 했고 퇴직 시기에는 첨단문명과 벗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 쉰 세 살 즈음에
올해 쉰 세 살이 된 엄마는 196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끝까지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대학을 포기해야 했으며 남편이 번 돈으로 편히 산다는 시선 속에 무시를 덤으로 받으며 살아왔다. 거기에 196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맞벌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에 노년기를 맞아야 했고 결국 황혼육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마흔 세 살 즈음에
올해 마흔 세 살이 된 외삼촌은 197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군대를 다녀오자마자 IMF라는 난국에 부딪혔다. 197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렵게 워크맨 사업을 시작했지만 MP3의 등장으로 사업을 시원하게 말아 드셨고,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여 얼른 MP3사업으로 전향했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또 다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 서른세 살 즈음에
올해 서른세 살이 된 나는 198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미국발 경제위기와 마주했다. 취업난은 극도로 심각해진 상태였고 뭐라도 좋으니 해 보자며 원치 않는 직장에 들어갔다. 198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친 듯이 벌어도 내 집 마련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친구들은 “그 나이 되도록 자리도 못 잡냐?”는 핀잔에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 스물세 살 즈음에
올해 스물세 살이 된 조카(고모의 손녀) 유진이는 199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IMF와 함께 유아기 시절을 보냈다. 199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할머니(나의 고모)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어려운 시대임을 알고 꿈을 하나 둘 접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하는 건데 욕심이 많아 결혼을 안 하고 있다는 핀잔까지 덤으로 들으며 살아간다.

- 열세 살 즈음에
올해 열세 살이 된 사촌동생(외삼촌의 아들) 영우는 2006년에 태어난 우등생이다. 하지만 임대아파트 스펙 덕에 친구조차 마음대로 사귈 수가 없다. 200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곧 다가올 이십대를 4차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고, 그동안 죽어라 공부한 외국어도 다 쓸데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꿈도 함부로 꿀 수 없는 그에게 어른들은 꿈이 없다며 혀를 찬다.

- 세 살 즈음에
올해 세 살이 된 나의 아들 우림이는 201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텅텅 빈 어린이집에서 7시 반까지 부모를 기다려야 한다. 201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진귀한 문명세계를 누리며 자라고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더없이 막막하게 다가올 뿐이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인생의 5대 난관인 ‘학업’, ‘결혼’, ‘군대’, ‘직업’, ‘육아’에 따라 뒤섞어볼 것이다. 누구라고 더 쉬울 것 없었던 각자의 난세살이를 잠시나마 여유롭게 구경해 보자.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 어쩌면 위로를 던질 여유까지 생길지 모른다.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잡으셨다 (2)
작성일 : 18-12-31 01:53     조회 : 158     추천 : 0     분량 : 6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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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잡으셨다 (2)

 

 

 

 공황상태에 이른지 한 달 즈음, 아빠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위문편지다!’

 

 가끔 부대로 생면부지의 아이들로부터 편지가 온다. 학교에서 강제로 쓰게 하는 군위문편지다. 누가 봐도 강제로 쓰게 한 것이다. 그날도 아빠 앞으로 편지가 왔다. 물론 부대에 한꺼번에 온 것을 랜덤으로 분배한 것이지만 어쨌든 아빠 자리에 있으니 아빠 앞으로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대부분 큰 기대를 하면서 읽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아이들의 그 편지를 보고 힘을 낼 수는 있지만 그 힘이 오래 갈리는 없다. 편지를 보며 피식 웃는 것도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아서가 아니라 어설픈 아이들의 문장력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냥 귀여워서 웃는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날따라 아빠는 조금 진지해지셨다. 진심이 없는 위로라도 간절히 받고 싶어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편지를 펼쳤는데 의외로 진지한 문장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6학년 학생 같았고 읽어보니 진짜 6학년 학생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쓴 이 녀석……. 꽤 진실한 녀석이었다. 6학년이라 그런가, 정말 진심으로 쓰는 것 같았다.

 

 <국군 아저씨께>

 

 사실 아빠 입장에서 이 대목이 살짝 거슬리긴 하셨다.

 

 ‘아저씨라니. 아저씨라니……. 형도 아니고 아저씨라니!’

 

 그래도 관용어라 생각하고 읽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화곡초등학교 6학년 편주한입니다. 오늘도 저희를 지켜주시는 군국 아저씨 때문에 저희는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상투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아빠는 그마저도 고마웠다. 아저씨라는 표현도 거슬리지 않았다. 물론 잠시 웃음도 나왔다. ‘군국’이라니……. ‘국군’을 ‘군국’으로 쓰는 것은 위문편지에 종종 나타나는 전형적인 실수인데 6학년도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싶어 아빠는 잠시 웃었다.

 

 <저는 국군 아저씨가 참 고맙습니다. 33개월 동안 집을 떠나, 그리고 엄마를 떠나, 추운 곳에서 저희를 지켜주시니까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라면 정말 힘들 것 같아요. 너무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이런 내용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내용이 아니었을 그 편지가 아빠에게는 막혀있었던 눈물샘을 터뜨리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아빠는 ‘33개월이나’ 그 한마디에 무너지셨다. ‘33개월밖에’ 안 하니 원망하지 말자며 자신을 억압하던 아빠가 ‘33개월이나’라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셨다. 당연한 게 아니라, 분명 힘든 일이었다. ‘조사’ 하나에 거대한 위로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래. 난 지금 33개월이나 고생하고 있어. 힘든 건 힘든 거야. 난 이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정말 심각한 고생을 하고 있어.’

 

 힘든 것을 힘들다고 인정하고, 선임들을 원망할 수 있게 된 순간(물론 속으로) 아빠는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인데, 아빠에게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이전까진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 아빠였다. 더 고생한 사람 앞에 할 도리가 아니며,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할 생각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다. 그러니 병이 날 수밖에!

 그런데 그 아이, 아니 지금은 아저씨가 된 주한 아저씨가 쓴 편지를 보고 아빠는 달라졌다.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그 문장을 읽고, 33개월이나 고생해서 안타깝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달라지신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마음을 다잡으며 솔직해졌다. 솔직해지니 병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생을 고생이라 여기고 원망거리가 있을 때 마음껏 원망을 하니 한결 시원해졌다. 그전보다 더 견딜만해졌다. 그렇게 아주 긴 시간을 지나 제대하게 되었다.

 

 제대한 후, 아빠는 그 아이를 수소문을 했다. 다행히 학교 정보가 있어서 어느 중학교에 들어갔는지 알 수 있었고, ‘편’씨 성을 가진 학생도 거의 없다 보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아빠와 주한 아저씨와의 만남이다. 사실 편지를 보낸 게 초등학생 시절이긴 하지만 나이로 따지면 열 살 터울이라 엄마와도 동갑이고 아빠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욱 다행인 것은 그 편지가 진심이라는 거였다. 아빠가 그 아이, 아니 중학생이었던 주한 아저씨에게 “편지를 받고 그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당시 주한 아저씨는 비웃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감동받았다. 정말로 그때는 진심을 담아, 한편으론 자신이 가야 할 군대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그 편지를 썼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와 준 것에 대해 정말로 고마워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면제 받은 듯한, 참 착한 학생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주한 아저씨는 학창 시절, 홀어머니 밑에서 지내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그래서 더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모르겠다. 형편도 어려워서 그런지, 애초에 대학은 포기했다고 했다. 그냥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고 효도해야겠다는 생각뿐인 그런 아이였다. 아무래도 그런 모습이 이뻐보였는지, 아빠는 없는 형편에도 틈틈이 챙기며 인연을 이어갔다.

 

 주한 아저씨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군복무 기간이 다시 3개월 줄어들었다는 소식이었다. ‘전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후 단축 결정을 내렸는데, 이유는 병역부당완화라고 한다. 물론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인지를 모르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시나 기간이 중요했다. 아빠는 주한이가 자신보다 3개월이나 덜 복무를 한다는 사실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의 단축은 처음보다 6개월이나 줄어든 것이며 엄밀히 말하면 반 년이나 줄어든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주한 아저씨도 아직 군대 갈 날을 한참 앞둔 상태였지만, 어디 취직이라도 된 양 기뻐했다.

 

 그 이후 아빠는 결혼했고 엄마도 결혼했다. 그러니까, 아빠와 엄마가 결혼했다. 이듬 해 내가 태어났고 몇 개월 후 주한 아저씨도 입대했다. 듣자 하니 주한 아저씨는 100일 잔치 때 나를 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규민아. 너는 군대 안 갈 수 있을 거야. 그때 되면 통일 되겠지! 부럽구나. 하하하.”

 

 주한 아저씨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아직 어려 큰돈을 모으지는 못하지만 어머니를 모실 정도는 되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주한 아저씨의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아 경제생활을 하기 힘들었던 터라, 주한 아저씨는 계획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며 집안 경제를 책임졌다.

 그러다 보니 군입대를 앞두고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어머니였다. 생계형 군면제 신청을 했지만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어머니를 두고 입대해야 했다. 누가 봐도 맞는 조건인데 안 된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고위공직자 청문회만 보면, 그 부자들은 잘도 면제 받았던데.

 

 그래도 한동안 주한 아저씨가 일을 하여, 어머니는 충분히 쉴 수 있으셨고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신 듯 했다. 그래서 군대 간 기간 동안은 소일거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어차피 그 기간 동안은 어머니 자신만 건사하면 되니, 조금만 벌어도 문제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물론 문제가 있다 한들, 안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주한 아저씨는 군대에 가야만 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주한 아저씨의 입대 후, 주한 아저씨의 어머니는 더욱 건강이 더 좋아지셨다. 소일거리로 생활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빠도 이런 저런 도움을 주셔서 사는 데 지장이 없으셨다. 주한 아저씨는 매번 아빠에게도 고맙다며 몸둘 바를 몰라 했고, 아빠는 그때 그 편지 덕에 내가 지금 사람 구실하며 사는 거라며 고맙다는 말 따위는 다신 하지 말라며 둘러댔다. 그러면서도 감사전화가 부대에서 올 때마다 그렇게 뿌듯해 하실 수 없었다.

 

 내가 세 살 즈음에, 그러니까 88년 12월 추운 겨울 날 아빠는 펑펑 우셨다. 내가 아빠의 눈물을 본 게 딱 한 번인데, 바로 그때였다. 물론 내 기억 속엔 아빠가 울었다는 것 정도밖엔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퍼즐이 맞춰졌다.

 그날은 바로 주한 아저씨의 어머니 장례식 날이었다. 주한 아저씨의 어머니는 건강했다. 오히려 몸이 과거보다 더 좋아지실 정도였고 소일거리를 하면서 재미도 붙이셨는지 삶에 활력을 얻으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동안이었다. 아들이 입대한 지 2년 정도가 지나 새로운 병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심각하게 악화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사실 심각하게 악화된 것을 알았던 것은 한 달이라고는 하지만, 병원의 기록에 따르면 이미 3개월 전부터 그 증상 때문에 치료를 받으셨다고 했다. 자식 걱정 안 시키려고 함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면회를 갔을 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주한 아저씨를 만나고 오셨다.

 

 주한 아저씨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면회를 오신 때는 군복무를 시작한 지 27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았지만 이미 병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냥 감추었을 뿐, 그 안에서는 병마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주한 아저씨가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2년 동안 이런 저런 것들이 쌓여 한 번에 터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병의 원인에 대한 추측이 무의미하게 이미 주한 아저씨의 어머니는 떠났다.

 

 여기까지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머니도 결혼할 때부터 주한 아저씨를 알고 지냈고, 비록 동갑이지만 아빠에게는 한없이 어린 동생 같은 사람이라 엄마 역시 동생처럼 여기며 챙겨주셨다고 했다. 그간 사정을 다 알고 아픔을 곁에서 다 보았기에, 아빠가 주한 아저씨와 술을 마신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프리패스를 제공하신 것이었다.

 다 듣고 나니, 슬프고 말고를 떠나 아빠의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엄마가 어찌 이리 소상히 알고 있나 싶어 조금 놀랐다. 그렇게 대화를 깊이 있게 하시는 사이가 아닐 텐데……. 알고 보니, 아빠는 할 이야기가 없으면 군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으셨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때의 고통이 조금씩 추억으로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군대 이야기에 본래 질색하는 분이시지만 아빠가 겪은 상황, 특히 그 마음의 병 전적을 알기에 일단 다 들어주셨다. 그래서 이제는 드라마 한 편을 서술하듯, 나에게 아주 장황하게 설명하실 정도가 된 것이다.

 어느 샌가 그릇 위에 있던 오징어가 다 사라졌다. 오징어가 사라진 빈 접시를 보니 괜히 서글퍼졌다. 물론 나의 이 서글픔은 오징어 때문이 아니라 주한 아저씨의 사연 때문이었다.

 

 문득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문민정부가 시작되고 또다시 군복무 기간이 줄었다. 이번에는 무려 4개월이었다. 이제는 33개월도, 30개월도 아닌 26개월이다. 그때는 군대에 관심이 없었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만 여겼던 터라, 사실 어느 정도 줄었는지도 잘 몰랐다. 4개월이란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 분명한 기억은 그 시기 주한 아저씨와 아빠가 군복무 기간 이야기를 하며 우울한 분위기로 술을 드셨다는 것이다. 술을 거의 안 드시지만, 우울하고 슬플 때 아빠는 술을 조금 찾았다. 그러니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군대 이야기가 오갔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집에 자주 놀러오던 주한 아저씨는 매번 유쾌한 모습이었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듣고 조각이 맞춰졌다. 빈 그릇을 보며 아쉬워하는 나의 마음을 이미 눈치 챈 엄마는 다시 한 마리를 더 굽고 계셨는데, 나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가지 더 물어보았다.

 

 “그럼 그때 주한 아저씨가 우리 집에서 술 먹고 그랬던 날도…….”

 

 주한 아저씨가 밖이 아닌 우리 집 안에서 술을 마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집 안에 술을 들이는 꼴을 절대 못 보시는 엄마가 그때만큼은 허락하셨던 것이라 엄마나 나나 잊을 래야 잊을 수 없었다.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셨는지 엄마는 말없이 오징어를 그릇에 담으셨고, 다시 말씀을 꺼내셨다.

 

 “그치. 그것 때문에 그때 참 서러워했지.”

 “왜 그런지 알 것 같긴 해. 엄마.”

 “만약 주한이 때 26개월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주한이 어머니가 그래도 건강할 때 제대했을 텐데. 그럼 미리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남들이 군 생활을 덜 하게 되어서 질투할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쯤은 기꺼이 축하할 수 있다. 나의 아들도, 나의 손자도 가야 할 군대니까. 그저 주한 아저씨 어머니 때문에 아쉬움이 더해질 뿐이다.

 언제부터 주한 어머니의 병이 진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몇 개월이라도 일찍 제대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아저씨가 93년 이후에 입대했더라면 어머니의 병이 그렇게 방치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발병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진전이 되는 것을 막았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수 있다. 그런데 누굴 탓하겠는가. 어디 이런 경우가 한둘일까.

 

 “에휴. 주한이……. 그 죄책감에 결혼도 안 하고 있잖아. 지 엄마도 못 지킨 죄인이 무슨 자격으로 결혼하냐면서……. 아니, 그런데 결혼을 해야 하늘에 있는 엄마도 안심할 거 아니냐고……. 안 그러니?”

 

 아빠는 그 시간 주한 아저씨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33개월도, 30개월도, 26개월도, 24개월도 아닌 21개월이다.

 

 ‘만약 주한 아저씨가 지금 군대에 갔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그때 지금처럼 21개월만 복무해도 됐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저씨의 어머니도…….’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아까 내가 토해내던 3개월에 대한 서러움은 어느덧 잊혀졌다. 이 3개월 단축이, 혹은 앞으로 또 추가 될 3개월 단축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할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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