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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이돌x아이
작가 : LEEEUL
작품등록일 : 2018.12.30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배우 원태인의 죽음! 그것도 연극 공연 중에 벌어진 공개적 죽음이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고인가, 사건인가?
연예계와 매스컴은 태인의 죽음을 앞 다투어 재구성 하려한다. 삼류 연예지 ‘진실과 상상’의 기자 주채성도 그 중 하나. 채성은 태인의 평전을 써서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그러나 태인의 죽음을 파헤쳐나가면서 자신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진실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아이돌x아이_파티의 끝 2
작성일 : 18-12-30 18:51     조회 : 197     추천 : 0     분량 : 8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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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성은 벌써 몇 시간 째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진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흐릿한 기억을 더 흐릿하게 만들 뿐이었다. 포커스도 제대로 맞지 않은 사진은 시선 가까운 쪽에 있는 원태인은 그나마 알아볼 수 있게 해줬지만, 왼쪽 편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소녀는 잘 아는 사람이라도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심령사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소녀는 유령처럼 보였다.

 

 

 

  ‘정말 볼수록 기가 막히게 못 찍었네.’

 

 

 

  당연했다. 이런 류의 사진이란 게 워낙 급박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찍어대는 거니까. 수십 컷을 찍어도 제대로 된 사진 하나 건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넌 도대체 뭘 찾고 있는 거냐?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라고. 그래도 좀만 더 잘 찍었다면 뭔지 모를 그걸 알아볼 수는 있었겠지…… 가만, 잘 찍은 사진? 잘 찍은 사진이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돌파구는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채성은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배우 원태인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본 팬카페 WANT IN은 배우 원태인의 추모 카페로 변경되었습니다.

 

 

 

 

 

  검은 리본과 눈물 아이콘으로 도배가 된 팬카페는 그 숙연한 분위기에 맞춰 각각의 게시판 타이틀들이 무채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추모나 애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채성은 금세 깨달았다. 관련 기사 스크랩이나 원태인 사진을 검색하는 것 등 그 어떤 것도 불가하도록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가입은 이미 오래전에 되어 있었지만 활동은 전혀 없었던 채성에겐 기껏 가입인사란과 추모 게시판만이 허용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채성은 자신이 생각해도 심히 꺼려지는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채성은 자신이 찍은 원태인의 사진을 추모 게시판에 업로드 했다. 피폐한 낯빛에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한 채, 찍히기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는 원태인의 사진을.

 

 

 

 

 

 

  “역시 듣던 대로 멋지십니다.”

 

 

  각 잡힌 빳빳한 제복을 잘 차려입은 지배인이 홀로 향하는 입구 앞에서 말했다.

 

 

 

  나도 알아요. 고급 수제화에서부터 내 몸의 실루엣을 그대로 옮긴 맞춤 수트, 완벽한 메이크업에 스타일링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는 거. 오늘은 신경 좀 썼으니까.

 

 

  그의 행커치프 포켓에 지폐 한 장을 꽂아준다. 수표였던가? 아무렴 어때?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냥 넣어두세요. 제 성의니까.”

 

 

 

  좋으면서 괜히 내숭은. 이런 곳에선 제대로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며? 너저분한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니까. 철저하게 비밀스럽고 품격 있는 곳이라니까.

 

 

  마침내 살롱의 중앙홀로 들어서자 소문이 거짓이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대리석 바닥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섬세하게 조각된 높다란 중앙 분수대를 지나쳐 거대한 샹들리에에 매달린 수 백 수 천의 수정 조각들이 매혹적인 빛을 사방으로 퍼트리고 있다. 그 아래선 누구나 다 아름다워 보였다. 빛과 어둠의 완벽한 앙상블이 그들을 축복해주듯. 살결보다 부드러운 드레스를 갖춰 입은 셀러브리티들, 우아함과 기품으로 가득 채워진 빛의 스카이라운지.

 

 

 

  여긴 이 도시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하늘에 수놓아질만한 선택받은 사람들만 모이는 곳. 바로 여기야. 내가 그토록 바랐던 곳이. 이 사람들을 좀 보라고, 얼마나 쿨하게 무심한지. 밥도 못 먹게 달라붙는 파리 떼 같은 너희들이랑은 달라, 내 옷가지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사진 찍자고 사인해달라고 괴성을 지르지도 않아. 나를 보곤 입을 가린 채 서로 귓속말을 나눌 뿐이야.

 

 

 

  ‘원태인이 나타났어. 오늘의 주인공이.’

 

 

 

  좋아, 아주 좋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최소한의 관심은 보여줘야 하잖아. 그게 예의 아닌가? 나야, 나. 나 원태인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악수 정도는 허락해 줄 테니 다가 와봐. 어서! 빨리!

 

 

 

 

  “손님, 잔을 치워드려도 될까요?”

 

 

 

  뭐지, 언제 이렇게 마신 거야? 텅 빈 잔들만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잖아. 뭐야, 왜 아무도 다가오지 않아? 왜 그렇게 멀찍이 서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냐고? 그따위 조롱 가득한 눈으로 말이야. 내가 웃겨? 이봐, 웨이터. 당신도 내가 웃겨? 잠깐, 너는?

 

 

 

  “너…… 환규 맞지?”

 

 

 

  “태, 태인이?”

 

 

 

  환규는 잔을 치우던 손을 멈칫하고 나를 바라본다. 한 때 우정 어린 동료였던, 이제는 진짜 스타가 되어버린 눈앞의 존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 우연이 너무도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보게 되다니, 정말 반갑다야. 여기서 일하는 거야?”

 

 

 

  “어? 어, 으응…… 꽤 됐어. 넌 요즘 정말 멋있더라, 연기도 훌륭하고.”

 

 

 

  그래, 이정도면 딱 좋잖아? 그럼 지금 내 급은 어때 보여?

 

 

 

  “그런가? 근데 여기 사람들이 날 보는 눈빛은 왜 하나같이 저 따위들일까?”

 

 

  마치 내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마치 당신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곳에서 살아왔다는 듯이. 뭐가 그리들 잘 나셨어? 어디 언제까지 그따위 가면들을 쓰고 있을 수 있는지 볼까?

 

 

 

  “난 이만 가볼게.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줘.”

 

 

 

  “아, 안 그래도 마침 딱 필요한 게 있었는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모두들 똑똑히 지켜보라고.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 그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올라서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환규를 분수대 앞으로 데려갔다. 환규는 당황해하며 물었다.

 

 

 

  “내가 뭐, 뭘 도와주면 되는데?”

 

 

 

  “엎드려.”

 

 

 

  “뭐?”

 

 

 

  “여기 엎드리라고. 내가 밟고 올라설 수 있게.”

 

 

  “무, 무슨...”

 

 

 

  “평소 같음 그냥 올라가겠는데 말이야... 이상하게 갑자기 발이 아프네? 왜? 아, 그거! 에이, 그래도 친군데 내가 그냥 부탁하겠어?”

 

 

 

  나는 환규의 상의 주머니에 지폐를 밀어 넣었다. 환규는 반쯤 넋을 잃은 듯, 천천히 엎드렸다. 나는 환규를 밟고 분수대 위로 올라서서 외쳤다.

 

 

 

  “여러분! 여기 잠깐 주목 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배우 원태인입니다. 이렇게 멋진 파티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여러분들의 환대와 친절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작은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는데요, 괜찮으시다면 함께 해주세요. 어, 그게 어디 있더라, 잠시만요. 아, 여기 있네.”

 

 

 

  안주머니에 있던 지폐와 수표다발을 꺼내 양손 가득 쥔다.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제가 생각하기에 개같이 버는 제일 쉬운 방법은 진짜 개가 돼버리는 거예요. 자, 이것들 전부 다 가져가세요. 물론 제일 개 같은 분께서요.”

 

 

 

  분수대 아래로 수표와 지폐들이 한 장 두 장 흩날리며 떨어진다. 곧 젖은 나뭇잎처럼 물 위로 둥둥 떠오른다.

 

 

  자, 어서! 망설이지 말고. 개헤엄 쳐 봐, 입으로 물어와, 멍멍 짖어 봐, 그럼 다 너희들 거라니까,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뭐해? 너도 뛰어들 수 있어. 아까 준 팁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여전히 엎드린 채 떨고 있는 환규에게 말했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뿐만 아니라 모두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홀을 메우던 지루한 음악도 뚝 멎었다. 잔혹할 정도로 한결같은 눈빛들이 나를 향한다.

 

 

  뭐라고 반응이라도 보여 봐, 한바탕 웃어젖히든지 속마음대로 대놓고 조롱이라도 하든지, 뭐라도 해보라고!

 

 

 

  상식 이하, 인간 이하의 원태인 충격발언! ‘너희는 개다!’

 

 

 

  그 때 저 편 어디선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눈빛 하나가 보였다. 보는 사람을 애달프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그 주인은 평소완 달리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은 차 선생님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서늘한 바람이 선생님과 나 사이로 불어왔다. 선생님은 잠자코 있다가 마침내 입을 뗐다.

 

 

 

  “마음껏 즐겼나?”

 

 

 

  “아이참, 다 보셨어요? 사람들이 너무 가식 떨잖아요. 뭐라고 하셨지? 아, 그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니까요.”

 

 

 

  “요즘 작품 활동은 거의 안하나 보던데?”

 

 

 

  “아닌데? 화보도 찍고 CF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아, TV 같은 거 안 보시죠, 아직도?”

 

 

 

  선생님은 쓴 미소를 곱씹으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내 조언 하나해도 되겠나? 네가 아직 나를 선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럼요,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선생님은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건 그게 형태를 갖고 나면 잘 변하지 않지. 거의 평생 동안 말이야. 어쩌면 넌 네 자신이 많이 변화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야. 넌 지금의 네 자신이 가장 쉽기 때문에 그걸 택한 것뿐이야. 지금의 그 한심하고 뻔뻔한 꼴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가봐라. 언젠간 알 게 될 거다. 정말 네 스스로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때는 너무 늦어 버렸다는 걸. 넌 네 자신에게 이미 중독되어 버렸거든. 얼른 깨어나는 게 좋을 거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야.”

 

 

 

  “으음... 좋은 말씀 감사해요.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는 건 잘 못 변하나 봐요. 여전하신 선생님을 보니까 잘 알겠네요. 하실 말씀은 이게 단 가요?”

 

 

 

  선생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돌아섰다.

 

 

  “아참, 전에 그 배우님은.... 어떻게 되셨죠?”

 

 

 

  선생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그게 바로 증거였어. 네가 아무 것도 제대로 관찰 할 줄 모른다는 증거,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증거. 연기와 실제도 구분 못하다니.”

 

 

 

  아하, 그런 거였어? 그랬구나…… 애초부터 다 가짜였다는 거네? 하, 아무렴 어때. 됐어, 이제 다 필요 없어. 진짜니 진실이니 그 따위 것들. 그런 게 없어도 난 충분히 살아있으니까. 이 순간, 살아 숨 쉬면서 즐기는 게 바로 나니까. 여기 이 높은 곳에서 너희들을 굽어보는 게 나니까.

 

 

 

  테라스의 전면 창에 도시의 불빛과 내 얼굴이 겹쳐져있다. 어느 새 내 얼굴엔 의식하지도 못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 등 뒤에 있는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잔혹한 미소가.

 

 

  나를 위해 밝혀 놓은 저 불빛들, 그래, 더 현란하고 화려하게 나를 비춰 봐. 너희들의 환상과 욕망을 내게 빌어 봐. 혹시 알아? 내가 이루어 줄지?

 

 

 

 

  ……우리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뿐. 바로 당신이랍니다. 우리의 하루는 당신으로만 채워져 있고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지평선을 가려버릴 만큼 많은 이들이 내 발밑에 모여 말한다.

 

  그런데 다들 왜 그렇게 떨고 있지?

  당신이 우리 곁에서 멀어지려 하기 때문에.

  아니야. 난 언제나 너희들 곁에 있는 걸. 둘러 봐, 세상은 온통 나야.

  당신이 우리를 바라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아니야. 내겐 그럴 여유가 없을 뿐이야. 너희 모두를 한 번에 바라볼 수는 없어.

  당신이 우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아, 아니야! 난 할 수 있는 만큼 했어! 뭘 더 어떻게 하란 말이야?

  우리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당신 자체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그들은 두 손을 기도하듯 가지런히 모은 채 내게로 천천히 다가선다. 어떻게 된 일인지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자, 잠깐! 오지 마, 저리 가!

 

 

  그들은 내 곁에 서서 텅 빈 눈을 한 채 나를 어루만진다. 그리곤 산채로 나를 잡아 뜯기 시작한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찢겨진 ‘나’들에서 새로운 ‘나’들이 증식한다. 나와 쌍생아처럼 닮았지만, 전혀 다른 기형의 생물체들이 꾸물거리며 태어난다. 그들은 각자 기형적인 ‘나’들을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하나씩 품에 안으며 속삭인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뿐. 바로 당신이랍니다.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욱신거린다. 침대는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잠에서 깨어나도 계속되는 악몽, 악몽 속의 악몽. 때론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근데 여긴 어디지? 이 낯선 천장은?

 

 

 

  “태인 씨, 정신이 좀 드세요? 다행이에요. 사고에 비해서 경미한 타박상 정도만 입으셨어요. 잠시 안정을 취하시면 될 거예요. 천만 다행이에요, 정말.”

 

 

 

  아, 병원. 이제야 서서히 기억이 돌아온다.

 

 

 

  그들이었다. 나를 찢어발긴 걸로는 성이 안 찼는지 악몽에서 현실로 튀어나와 택시를 타고 나를 추격했었다. 사이드미러가 맞부딪칠 만큼 위협적으로 접근해서는 질주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이 하는 말이야 뻔했다. 담장이나 차에 지워지지도 않게 휘갈긴 낙서들, 하루에도 수 백 통씩 날아드는 문자 메시지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런 말들. ‘사랑해!’ ‘너 뿐이야!’ ‘너만 있으면 돼!’ ‘얼굴 좀 보여줘!’ ‘내게 웃어줘! 안아줘! 만져줘!’

 

 

 

  내 목소리가 너희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대답해 줄 텐데. 집 앞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며, 내가 버린 모든 것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냄새 맡고 입 맞추는 너희들, 촬영장이나 행사장에서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껴안고 더듬는 너희들, 나를 지켜준답시고 병신 머저리로 만드는 너희들, 너희들은 정말 구역질 나, 진심으로 역겨워!

 

 

 

  “밟아, 더 밟아! 저것들이 계속 따라오잖아!”

 

 

 

  이건 영화가 아니야, 너희들이 하고 있는 짓은 숭배가 아니야. 택시 차창에 바짝 붙어 경직된 미소를 짓는 너희들이 쓰레기 같은 파파라치나 기자들과 뭐가 달라? 너흰 너희들 자신의 삶이라는 것도 없어? 제발 좀 깨어나, 이 망할 것들아! 결국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멈춰선 뒤에야 너희들도 만족하지. 쓰러진 나를 향해 마지막까지 플래시를 터트리면서 말이야.

 

 

 

  “잠시 채혈 좀 할게요.”

 

 

 

  “네? 가벼운 타박상이라면서 피는 왜?”

 

 

 

  “아, 그건…… 태인 씨 피가 필요하신 분이 있다고 해서요.”

 

 

  “그, 그게 무슨?”

 

 

  “실은…… 히히, 제가요. 제가 태인 씨 피가 필요해서요, 히히. 태인 씨랑 같은 피가 몸 안에 흘렀으면 좋겠거든요.”

 

 

 

  귀밑까지 찢어진 입꼬리, 진저리 치게 만드는 웃음소리. 수백 번씩 팔에 꽂히는 차가운 바늘. 어떤 악몽은 계속돼. 몇 번을 깨어나도, 다시 깨어나도. 마치 그게 삶의 또 다른 모습인 것처럼. 이것도 그 계속 되는 악몽의 한 부분일 뿐일까.

 

 

 

 

  “태인아, 괜찮아? 많이 피곤했지?”

 

 

 

  그제야 깨달았다. 난장판 같은 행사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는 걸. 밴에 오르자마 쓰러지듯 잠에 빠져 언제나처럼 악몽을 꿨다는 걸. 그런데 팔은 계속 따끔거리고 있다.

 

 

 

 “형, 스케줄도 퀄리티 좀 보고 골라. 이런 행사는 알아서 좀 빼라고.”

 

 

 

  “아, 미안. 근데 이건 광고계약에 미리 포함되어 있던 거라서. 런칭행사에 참여……”

 

 

 

  “언제 나한테 제대로 알려주기나 했어?”

 

 

 

  “미, 미안해.”

 

 

 

  “그 미안하다는 소리도 좀 작작하고! 후우, 됐어. 관둬. 형하고 길게 말하면 나까지 힘이 빠져.”

 

 

 

  “미, 미안, 아니, 힘내자 우리…… 아, 잠깐만. 네, 원태인 매니저 박수왕입니다.”

 

 

 

  오랜 만에 황금폰이 울렸기에 나도 숨을 죽였다. 제대로 된 작품을 해 본지가 오래다. 시상식 이후 섭외가 끊겼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뭐든 잡히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저것들, 아직도 차 뒤를 쫓아 달려드는 파리떼 같은 저것들은 도저히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수왕 형이 휴대폰을 가리며 전화 받을 수 있겠느냐고 눈으로 묻는다. 황금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들을 내가 받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이 계약이나 협상 같은 중요한 사무적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네받자마자 왜 상대방이 나와 직접 통화를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불쾌감과 혐오감이 숨소리만으로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성공적인 업종 변경 축하드립니다, 원태인 씨.”

 

 

 

  끊어내지 못한 질긴 악연이 다시금 악몽으로 이어진다.

 

 

 

  “이, 이 번혼 어떻게 알아냈어?”

 

 

 

  “안부는 만나서 차차 묻기로 하고, 요즘 좋아 보이던데. 어때, 살맛나?”

 

 

 

  침착해, 난 예전의 내가 아니야. 예전의 나는 기억도 나지 않아. 아니, 예전의 나란 건 원래부터 없었어.

 

 

 

  “한동안 눈에 안 띈다 싶더니, 어디 학교라도 다녀 온 모양이지?”

 

 

 

  “흐흐, 뭘 좀 배우긴 했지. 꽤 많이 깨우쳤고. 이젠 너한테 달려들지도 함부로 하지도 못한다는 것도 알고.”

 

 

 

  “다행이네. 상황파악이 된 걸 보니. 그래, 앞으로도 그런 정신머리로 살아가라. 그럼…….”

 

 

 

  “아, 아, 잠깐. 대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볼까 싶은데 말이야. 널 이기진 못해도 같이 죽을 순 있을 것 같거든? 우린 같은 족속이잖아. 언제나 함께 해야지, 안 그래?”

 

 

 

  “흥, 그럼 그렇지. 너 같은 새끼가 변할 리가 있겠어. 어디 맘대로 해봐.”

 

 

 

  “기대하고 있으라고. 그럼 이만.”

 

 

  전화를 끊자마자 황금폰을 박살내버렸다. 황금열쇠가 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수왕 형은 기겁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이 한 통의 전화로 다시 시작된 악몽이 내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 끝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나락이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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