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이돌x아이
작가 : LEEEUL
작품등록일 : 2018.12.30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배우 원태인의 죽음! 그것도 연극 공연 중에 벌어진 공개적 죽음이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고인가, 사건인가?
연예계와 매스컴은 태인의 죽음을 앞 다투어 재구성 하려한다. 삼류 연예지 ‘진실과 상상’의 기자 주채성도 그 중 하나. 채성은 태인의 평전을 써서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그러나 태인의 죽음을 파헤쳐나가면서 자신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진실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아이돌x아이_이카루스의 처녀비행 1
작성일 : 18-12-30 17:07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803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눈을 감아, 길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 그리고 이제 천천히 빛을 끌어 와. 그 빛이 영사한 네 삶이 보여? 역겨울 정도로 악랄했던 지난날들이? 알아, 알고 있어. 나는 나의 유일한 관객이니까.

  그럼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 아무 이유도 없이 네게 고통 받고, 네게 잘못을 빌던 아이들 말이야. “미, 미안해…… 내가,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 아이들은 굴욕과 수치로 몸을 떨며 울부짖었지. “다 내 자, 잘못이야. 내가 네 눈에 띈 것도, 아, 아니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그, 그러니까, 그래, 우리 부모 탓이야…… 쓸모없는 나 따윌 낳아서, 네 기분을 상하게 했어.”

  아니지, 넌 그 때 걔들을 보며 웃었어. 반쯤 짓이겨진 벌레를 희롱하는 꼬마처럼 말이야.

  “잘못 했어, 저, 정말 잘못했어요.”

  진짜 네 잘못은, 뭔지 알아? 그건 희망을 품었다는 거야. 남들은 죽을힘을 다해 쥐어짜낸 희망을, 절망 끝에 길어 올린 희망을 넌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얻으려 했다는 거야. 알아?

  “모, 모르겠어…… 하, 하지만 기회를 줘. 널 화나게 한 이유를 꼬, 꼭 알아낼게.”

  그래놓고 지금 너를 노려보고 있는 연습생들이 왜 너를 괴롭히는지 모르시겠다? 너무 뻔뻔한 거 아냐? 네 꿈을 방해했다고? 네가 꿈이란 걸 가지고 있긴 했어?

  “제, 제발…… 시키는 건 뭐,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줘.”

  뭐든지 하시겠다? 좋아. 그럼…… 죽어. 죽으라고? 지금 여기서?

 

  무릎이 털썩 꺾인다. 혀가 기도로 말려든다. 헛구역질이 나온다. 이제 한계다. 아직이야, 아직 한 마디가 더 남았어. 터져 나오지 못한 울음이 소리 없는 절규가 된다.

 

  “나, 나에게 단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을 텐데.”

 

  됐어, 이제 그만해도 돼. 영사기는 꺼지고 머릿속 어딘가의 기억은 툭 하고 끊어진다.

 

  끝인가.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심사위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연기 맞아요?”

 

  “첨에 절뚝거리던 거랑 갑자기 쓰러지는 거 전부 다?”

 

  “오, 나 소름 돋으려고 하는데.”

 

  “원태인이라고 했나?”

 

  술렁이던 분위기는 차 연출이 슬쩍 들어 올린 손으로 정리되었다.

 

  “잠깐만요. 심사위원 분들, 채점 잠시 미뤄두시죠.”

 

  차 연출이 내게로 다가와 무릎을 굽혀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곤 갑자기 내 다리를 들어 신발을 벗겨냈다. 새빨갛게 물든 양말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경악했다.

 

  “설마 연기를 위해 일부러 이랬다고 하진 않겠지? 투혼이라며 칭찬이라도 받고 싶었나?”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삶이 연기보다 먼저다. 제 몸 하나 관리 못하면서 연기를 하겠다고? 제 삶도 가누지 못하면서 또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돌아가. 가서 치료부터 받아. 넌 아직 준비가 덜 됐어.”

 

  삶…… 내 삶? 난 그런 거 없다니까요! 난 이제 이 삶이 아니면 안돼요.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고요!

 

 

 

  탈락이었다.

  최종 합격자는 장발로 결정되었다. 이미 다 정해져 있었던 일이라고, 오디션은 연습생들의 사기 진작과 동기부여를 위한 이벤트였을 뿐이라고 했다. 좌절한 몇 몇 연습생들이 회사를 떠났고, 나도 그 중 하나가 될 참이었다. 텅 빈 연습실에 주저앉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끝이야, 이대로? 좋은 꿈이었지? 잠시나마 나라는 지긋지긋한 놈을 벗어날 수 있었던 달디 단 단꿈. 그걸로 충분하잖아. 충분…… 하다고? 무슨 헛소리야! 내가 왜, 왜 포기해야하는데? 왜 나한텐 단 한 번도 기회를 안 주는 건데, 왜, 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려 이를 악물었다. 거울 속에 반사된 수많은 내가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었다.

 

  거 봐, 안 된다고 했잖아. 진작 포기했으면 좋았을 걸, 한심해, 한심해, 한심한 등신 새끼.

 

  닥쳐, 닥쳐, 닥쳐!

 

  나는 발악하며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아직도 병원에 안 간 모양이군?”

 

  얼마나 그러고 있었던 걸까. 어느 새 내게로 다가온 차 연출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무릎을 굽혀 풀려버린 붕대를 능숙하게 다시 감아주며 말했다.

 

  “잘 결정해라. 연예인이 될 지 연기자가 될 지. 그건 전적으로 네 뜻에 달렸으니까.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건 아니지만, 다만 네 자신에게 항상 진실해라.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너 자신만은 속이지마라. 그럼... 건투를 빈다.”

 

  지금 뭐하자는 건데? 끝까지 그 잘난 설교질이야? 당신이라는 인간은 정말……

  그 저주스러운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수왕 형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 왔다.

 

  “태, 태인아! 됐어, 네가 됐어! 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무슨... 말이야?”

 

  “장발 그 자식, 딴 데랑 이중계약 했었대. 위에선 이제야 알아챘고. 그런데 차 선생님이 너를 적극 추천해 주신 거야!”

 

  “그, 그럼?”

 

  서, 선생님…….

 

  나는 절뚝이는 다리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차 연출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대중문화예술인(연기자중심) 표준전속계약서 표준약관 제 10063호

 

  [대중문화예술인] 원태인 (이하'을'이라 한다)[는, 은] 다음과 같이 전속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다.

 

 

 “이게 뭐시여? 지금 딴따라 짓거리를 하겠다는 말이여? 니 주제를 알아라, 이눔아!”

 

 

 10장 남짓한 종이들. 여기 내가 통과해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가게 해줄 꿈이 담겨있다.

 

 

  제 2조 2 항 … 갑의 매니지먼트 권한 범위 내에서의 연예활동과 관련하여 을의 사생활보장 등 을의 인격권이 대내외적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요런 짓으로 빌어먹고 살믄서 지대로 된 묘자리 찾아가는 인간 못 봤다. 엄한 소리 하덜 말고, 고냥 살던 대로 살어. 대관절 니 눔이 뭘 할 줄 안다고 설치는겨?”

 

 

  제 5조 2 항 을은 갑의 매니지먼트 권한 행사에 따라 자신의 재능과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연예활동을 하여야 한다.

 

 

  예상대로 할매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할매의 동의를 받으려 꺼내든 계약서는 동의는커녕 그 손아귀에서 갈가리 찢어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할매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할매, 나 잘할 수 있어. 잘 하고 말거야. 할매도 차희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야.”

 

  “행복? 행복이 별거여? 배 안 곪고 등 따숩게 지내는디 뭘 더 바라는겨?”

 

  “할매…… 할매가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고 울었는지 이제 다 알아. 정말이야. 나 다시는 그렇게 안살아. 이걸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

 

  “누가 지 애비 새끼 아니랄까봐 피는 못 속이지. 니 애비에미 꼴 나고 싶은겨? 서커씬지 뭐신지로 전국을 떠돌아 댕기다 객사한 거, 그게 딴따라들 인생 끝물이여.”

 

  할매가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의 이야기까지 꺼냈다는 건, 당신의 속을 파내는 아픔을 감내하고서라도 반대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할매 미안해.

 

  “난 절대 안 그럴 거야. 만약에, 진짜로 만약에 언젠가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해야 돼. 왜냐하면 할매, 이거 못하면…… 나 당장 죽을지도 모르니까.”

 

 

 

 

  커다란 달이 달동네의 좁은 골목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차희는 기쁨에 들떠 콩콩 뛰어다녔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 우리 태인이 데뷔 축하 축하요!”

 

  벌써 기뻐해도 되는 걸까? 아니, 아직은 아냐. 아직은.

 

  “인아, 난 네가 해낼 줄 알았어, 네가 잘 될 줄 다 알고 있었어. 정말 고생했어. 할머니는 내가 잘 달래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마.”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제부터 넌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거야. 절대 뒤돌아보지 말구. 알았지? 아, 아쉽게도 벌써 다 왔네. 나 먼저 들어간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차희를 붙잡았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입을 맞췄다. 촉촉하고 따스했다. 각자의 뭉클한 감정이 서로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속에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혓바늘처럼 걸리긴 했지만.

 

  “이눔아 이 짓거리들이 지금은 달콤한 열매 같아 보이지? 세상사에 단맛만 있는 건 읎어. 단맛 다 빨고 나면 쓴맛 올라오는 게 세상 이치여.”

 

  살짝 뜬 눈에 차희의 어깨너머로 일렁이는 도시의 불빛이 들어온다. 꿈을 꾸며 깨어있는 사람들이 내는 빛,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빛. 기다려, 이제 당신들에게로 갈게. 저 곳이 날 부른다.

 

  그 밤은 오래도록 부드러웠다.

 

 

  오늘도 하루 온종일 수왕 형과 돌아다녔다. 우리를 찾는 사람도 부른 사람도 없지만 우리는 그들을 찾아가서 말을 건넨다. 우리의 관심은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알기 전 까지는. 그렇개 새로운 세상은 매일 내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나는 매일 배운다. 나는 배우니까.

 

  하루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최근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만 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난 사람보다 많을 것 같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토록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과 포트폴리오가 나오자 그 날부터 수왕 형은 방송국, 광고대행사, 언론사, 모델 에이전시 등 자신이 아는 모든 곳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인사시켰다.

 

 

  “자, 지금부터 제대로 몸 좀 풀어볼까.”

 

  형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몸 풀다가 정신까지 풀려버리겠는데.”

 

  나는 피곤한 척 엄살을 떨었지만 사실 별반 하는 것도 없었다. 형이 시킨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십니까! 신인배우 원태인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90도 인사를 한 뒤 ‘뭐든 맡겨만 주면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게 전부였다.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류는 인사를 인사치레로 처리하고 누가 봐도 뻔한 형식적인 안부를 한 두 마디 건네는 것이다. “아, 예. 고생 많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참 좋죠?” 같이. 그걸 또 우리의 수왕 형은 받아친다.

 

 

  “예, 정말 멋진 날씨네요. 새로운 대형 신인의 등장을 지켜보기 딱 좋은 날씨예요.”

 

 

  다음은 슬쩍 눈치를 한 번 보다가 “예예, 거기 놓고 가세요.” 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일로 냉큼 돌아가는 부류. 그들이 준비해 놓은 커다란 박스, 일명 신생아 박스라 불리는 이삿짐 용 박스에는 이미 각종 포트폴리오와 자기 소개서들이 넘쳐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담겨 있었다. 나와 같은 가시밭길을 헤쳐 왔을 동료이자 경쟁자들이 이미 이렇게나 많이 있다. 더 격렬한 생존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사실에 조금은 위축이 되기도 했다. 박스 제일 위쪽에 내 포트폴리오를 놓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그런데 이것들이 언제 읽히기는 읽히는 걸까. 바닥에 떨어져 찢어지고 너덜해진 봉투 하나를 청소 하는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는다. 물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 했다. 마치 우리가 잡상인이라도 되는 듯 아예 대놓고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부류들도 많았다. 너는 짖어라, 나는 일한다는 태도. 수왕 형은 그런 사람들에게 더 힘주어 꿋꿋하게 말했다.

 

 

  “제가 발굴한 아입니다. 기회 한번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주 소수긴 했지만 한참을 무시하다가 능청을 떨며 뒤늦게 알은 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이 부류는 대개 한가해 보이는데 바쁜 척을 하고 빈말에 조롱을 담아 던지는 게 특기였다. 가장 짜증나는 부류였다.

 

 

  “어? 박 매니저, 언제 왔었어? 말을 하지 그랬어.”

 

 

  “바쁘신 것 같아서요. 시간 괜찮으세요? 이번에 저희 회사가 발굴한……”

 

 

  “그래, 그래. 언제 작업 한 번 같이 해야지?”

 

 

  “저희야 언제나 5분 대기조 상태죠. 그런데 그렇게 말씀 하신 것도 꽤 됐는데 어째 연락이 통 없으셔서, 바쁘신 줄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하하. 못 본 새 많이 크셨어, 우리 박 씨.”

 

 

  그런 비웃음이라도 수왕 형은 기뻐했다. 하지만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래, 뭐 할 줄 아는데? 한 번 웃겨 봐, 노래 해봐, 춤춰봐.”

 

 

  나는 마침내 터져버렸다, 펑! ……뻥이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어딘가 심하게 구부러져있는 쇠붙이 같던 내 성격이 곧게 펴진 것 같았다. 내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놀라웠다.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기대는 한심한 착각이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니까. 그들이 다른 급들에게는 어떻게 대하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그럴 수 없지만 곧 그렇게 될 거야. 어쨌든 이 세계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이 이끌어나가고 있어. 그들만의 규칙과 약속으로. 아직은 보이지 않아, 느껴질 뿐. 하지만 알게 될 거야, 곧 그렇게 될 거야.’

 

 

  예외적으로 극진한 환영을 받은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유일하게 우리를 반겨준 곳, 바로 인터넷 신문사라는 곳이었다. 부끄럽게도 컴퓨터와는 친분이 전혀 없어서 도대체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야아, 이게 누구신가? 황금팔의 오른팔 박수왕 님 아니십니까? 이거 이거 너무 오랜만이신데. 뭘 또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행차를 다하셨어?”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육중한 남자가 호들갑을 떨며 우리를 맞이했다.

 

 

  “잘 지내셨죠?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서로 바쁜 거 다 아는데 뭘. 자아, 어디보자 뉴 페이스?”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나가는 말과 각 잡힌 인사.

 

 

  “안녕하십니까! 신인배우 원태인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다, 좋아. 기세 좋고 눈빛 좋고 디자인 좋고. 딱 보니까 잘 될 상이네, 내일의 스타감이야. 킹 박, 내 촉 알죠?”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인지,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으쓱해졌다. 하지만 수왕 형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미적지근했다.

 

 

  “감사합니다. 저, 우리 태인이 올릴 만한 자리 어디 없을까요?”

 

 

  “자리? 자리야 많지요. 메뉴를 어떤 걸로 하실 건지에 달렸지. 어디보자, 어디보자. 잘 아시겠지만 기본 옵션으로는 ‘누구 누구 닮은 꼴’이 있고, 근데 이건 개인적으로 추천 안 해요. 아님 뭐 ‘스타의 친구를 소개 합니다’ 정도도 나쁘진 않은데 임팩트가 떨어지고. 역시 ‘이달의 신인’인데 박 터지긴 하지만, 그거야 뭐 다 이거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남자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엄지에 슬쩍 갖다 붙인다.

 

 

  “태인아, 앞에 나가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아스팔트에 붙은 껌처럼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강조했던 형이 나가있으라 하니 이상했다. 하지만 문을 나설 때 나는 또 하나의 배움을 얻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규칙과 약속의 거대한 톱니바퀴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게 일부분이었을 뿐이라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어쨌든 수왕 형, 아니 미다스는 그렇게 나를 위한 첫 번째 ‘비공식’ 투자를 했다.

 

 

  “태인아, 피곤하지?”

 

  늦은 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초췌한 얼굴의 형이 묻는다.

 

 

  “벌써 끝났어? 난 아직도 팔팔한데?”

 

 

  나는 일부러 더 유쾌한 척을 한다. 인터넷 신문사에서의 일에 대해 물어봐야 하나, 고마워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형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믿지? 믿어야 해, 난 널 믿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도시락을 퍼먹었다.

 

 

  “아참, 이것 좀 작성하자.”

 

 

  형이 서류철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종이 상단엔 미다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공식 프로필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 이름, 주민번호, 나이, 연락처, 그리고 학력과 경력 사항을 적는 칸들이 텅 비워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왜 또? 연습생 때도 썼잖아.

 

 

  “대충 작성해도 돼. 형식적인 거니까.”

 

 

  학력 칸에서 잠시 머뭇거린 걸 형이 눈치 챘을까. 나는 재빨리 빈칸을 채워 형에게 건넸다. 형의 표정이 미심쩍게 변한다. 두피에서 땀이 솟는 것 같았다.

 

  땀을 멈추는 연기도 배워야 해. 지금 내 표정은 어떨까. 태연해야해, 빨리 바꿔!

 

  다행히 형의 말은 안도감을 주었다.

 

 

  “크으, 천재는 악필이라더니. 태인아, 넌 정말 제대로 천잰가 보다. 천재 배우 원태인! 뭔 글잔지 알아보질 못하겠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아이돌x아이_영원한 커튼콜 2 2018 / 12 / 30 215 0 8576   
21 아이돌x아이_영원한 커튼콜 1 2018 / 12 / 30 205 0 5847   
20 아이돌x아이_지옥에서 보낸 한 철 4 2018 / 12 / 30 216 0 5672   
19 아이돌x아이_지옥에서 보낸 한 철 3 2018 / 12 / 30 226 0 8690   
18 아이돌x아이_지옥에서 보낸 한 철 2 2018 / 12 / 30 195 0 6859   
17 아이돌x아이_지옥에서 보낸 한 철 1 2018 / 12 / 30 216 0 5700   
16 아이돌x아이_파티의 끝 3 2018 / 12 / 30 206 0 7820   
15 아이돌x아이_파티의 끝 2 2018 / 12 / 30 197 0 8238   
14 아이돌x아이_파티의 끝 1 2018 / 12 / 30 198 0 7441   
13 아이돌x아이_별의 주술 3 2018 / 12 / 30 212 0 5944   
12 아이돌x아이_별의 주술 2 2018 / 12 / 30 228 0 6754   
11 아이돌x아이_별의 주술 1 2018 / 12 / 30 219 0 6581   
10 아이돌x아이_이카루스의 처녀비행 3 2018 / 12 / 30 199 0 6997   
9 아이돌x아이_이카루스의 처녀비행 2 2018 / 12 / 30 204 0 7570   
8 아이돌x아이_이카루스의 처녀비행 1 2018 / 12 / 30 216 0 8034   
7 아이돌x아이_기묘한 배우수업 2 2018 / 12 / 30 205 0 7332   
6 아이돌x아이_기묘한 배우수업 1 2018 / 12 / 30 210 0 7579   
5 아이돌x아이_첫번째 연기, 두번째 삶 2 2018 / 12 / 30 201 0 8672   
4 아이돌x아이_첫번째 연기, 두번째 삶 1 2018 / 12 / 30 209 0 5781   
3 아이돌x아이_오프닝나이트 2 2018 / 12 / 30 210 0 6709   
2 아이돌x아이_오프닝나이트 1 (1) 2018 / 12 / 30 236 1 6257   
1 아이돌x아이_프롤로그 2018 / 12 / 30 338 0 214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