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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너에게 가는 길
작가 : 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우주에는 ‘넵툰’이라는 청록색의 신비로운 행성이 있다. 그 곳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딸 ‘라미아’가 거대한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다.
우주에서는 삶이 무한하고, 아름다움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에 우울증에 빠진 ‘라미아’가 아버지에게 ‘지구’로 보내달라고 간청하는데,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를 하다 결국 3년 안에 돌아오라는 약속을 하며 허락한다.
‘라미아’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어떤 범상치 않는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1회
작성일 : 19-11-10 17:38     조회 : 339     추천 : 0     분량 : 8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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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새까만 바다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혜나는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찾아 온 여자는 자연스럽게 파란 색 대문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바다 마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닷바람에 낡고 노쇠한 집은 눈에 띄지도 않을 테지만, 유난히 파란 색깔의 대문은 어젯밤에 칠한 것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도 살지 않고 방치돼있었던 파란 대문 집에서 며칠을 나오지 않더니 어느 저녁 홀연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혜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녀 주변을 맴돌다 아주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 때문인지 그녀의 몸 전체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고, 혜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요, 뭘 그렇게 보세요? 아무 것도 없는데.”

 “바다. 바다가 안 보이니?”

 “바다야 보이죠. 그런데 바다에 아무 것도 없잖아요.”

 “아니, 바다에는 네가 모르는 세계가 있어.”

 혜나는 얼마 전 여자가 처음 마을에 나타났을 때 혜나의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멀쩡한 척 하는 노숙자이거나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혜나는 어쩐지 그녀의 얼굴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태평양이요, 대서양이요? 저도 알 건 다 알아요.”

 “넵툰.”

 “넵툰?”

 혜나는 눈을 깜박 거리며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의 눈에서 깊고 푸른 바다가 보였다.

 

 그래, 넵툰.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 어딘가 염소자리와 물병자리 사이.

 넵툰은 파란색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하게 낯설고 초록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맑고 투명한,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신비로운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정확히 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지만, 두 가지 색깔이 뒤섞인 청록색이라고 하는 편이 그나마 가장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신비로운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는 이 곳은 지구에도 감춰진 비밀스러운 행성이자 우주를 통 틀어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곳이기에 틀림 없다. 행성은 칠흑같이 어둡고, 하루 종일 태풍과 번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같기도 했고, 어쩌면 그만큼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표식 같기도 했다.

 행성 안에서 보이는 곳은 오롯이 바다다. 그리고 끝없는 바다는 잠시도 쉴 틈 없이 거대한 파도가 무섭게 들이치고 있었다.

 넵툰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지의 바다, 아주 깊고 깊은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요란한 번개 소리나 파도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 환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속에는 여전히 어떤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바다의 심연에서 불현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곳이 있었다.

 새로운 공간을 알려주는 구획은 저 멀리 금으로 휘황찬란하게 둘러놓은 삼지창 두 개가 세워진 아치형의 입구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마치 작은 동굴의 입구 같기도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입구라고 하기에는 거대한 허허벌판이 펼쳐졌고, 그 앞의 삼지창의 높이도 족히 4미터는 되어 보였다. 삼지창의 높이만한 문은 안쪽으로 활짝 젖혀져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번쩍거리는 삼지창의 존재가 실로 두렵게 느껴졌다.

 입구는 기다란 복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긴 복도를 지나면 입구보다 2배는 더 높아진 천장을 따라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다시 셀 수 없이 수많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장 안 쪽, 유난히 눈에 띄는 공간은 특별히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양쪽으로 열리는 두 개의 문이 있어 입구가 넓었다. 문은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투명하고 매우 섬세한 문양으로 만들어져 더욱 신비감을 주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안 쪽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채기란 힘들었다. 방이라기보다 응접실 같은 널찍한 바로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맞닥뜨리게 된다.

 가장 안 쪽,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방 가장 중앙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가 이 성의 주인임이 틀림없다. 방이라고 하기에 그 공간은 너무 커서 끝이 어디인지 결코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방 한가운데 층층 계단은 평범한 사람이 서서 쳐다 본다면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크고 높았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높고 거대한 의자는 그가 앉고 난 후에도 분명 충분한 공간이 있어 보일 정도로 컸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는 터무니없이 작게 느껴진다. 의자 아래로 그의 푸른색 가운이 길게 늘어 뜨려 있었다.

 그는 몸 전체에서 빛이 났다. 밖으로 드러난 근육질의 상반신은 말도 안 되게 새하얗다. 그의 눈은 파랗고 깊었으며, 이미 하얗게 샌 머리는 거짓말처럼 풍성했다. 머리와 달리 아직은 회색 빛이 도는 눈썹은 마치 바람이 분 것 같은 모양대로 높이 솟아 그의 표정을 더욱 엄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의 머리 위에 가볍게 놓인 금 장식의 왕관이나 두꺼운 팔찌는 그의 하반신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파란색 가운과 대조적으로 샛노랗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휘황찬란했던 입구의 삼지창보다 덜 빛나지만, 더 크고 더 긴 삼지창이 그의 왼 손에 꼿꼿이 세워져 있었다. 삼지창은 마치 그와 한 몸인 것 같아 보였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가 놓여 있는 층층 계단은 마치 제단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그 계단의 가장 아래 쪽에 그의 정체를 알려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포세이돈’.

 그의 이름은 포세이돈, 넵툰의 지배자이자 넵툰을 다스리는 하나뿐인 지도자였다.

 “아버지.”

 끝을 알 수 없는 성의 크기만큼 포세이돈이 거느리는 식구들의 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포세이돈을 ‘아버지’라 부르며 서있는 여자가 그의 딸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파란 머리와 금방이라도 빠져 들 것만 같은 깊은 눈은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그것과 같았다.

 “아버지, 지구로 가게 허락해주세요.”

 “그 이야기는 지난 번에 끝났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돌아가거라.”

 포세이돈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아버지, 지구는 우리에게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라고 하셨잖아요. 왜 저만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라미아.”

 리비에는 포세이돈과 달리 아주 상냥한 말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라미아 곁에 서서 그녀를 달래듯 양쪽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리비에는 포세이돈의 아내이자 라미아의 어머니였다.

 “라미아, 네가 어렸을 때 몇 번이나 지구에 다녀왔다고 엄마가 이미 말했잖니.

 네가 기억을 못 하는 것뿐, 너는 이미 지구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단다.”

 “그러니까 어머니, 왜 유독 지금 지구로 가는 걸 허락 못 해주신다는 거죠?”

 “라미아,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네 형제 둘이나 절체절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아직 어둠의 존재를 찾아 내지도 못했다. 이제 더 이상 지구도 안전을 보장 받을 수는 없어.”

 포세이돈이 여전히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투는 단호했다.

 “그 위기라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제가 어느 형제, 자매들보다 아버지를 닮아 강하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라미아, 어째서 위험이 꼭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예상치 못한 포세이돈의 질문에 라미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 스스로를 컨트롤 하기에 너는 아직 너무 어리다.”

 라미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답답하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포세이돈과 리비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리비에가 조심스럽게 포세이돈에게 말했다.

 “포세이돈,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잖아요. 라미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세요.”

 “리비에.”

 리비에를 부르는 포세이돈의 목소리에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라미아의 마음을 가장 잘 안다는 그녀의 어머니조차 알지 못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포세이돈은 고개를 떨구며 크게 한숨을 쉬더니 더욱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나타났소. 라미아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오.”

 포세이돈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삼지창으로 가볍게 바닥을 쳤다. 바닥부터 시작된 물결이 멀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넵툰에는 여느 때보다도 매서운 번개가 바다 정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라미아는 방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리비에의 타이름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라미아가 소리 없는 투쟁을 시작한 지 나흘 째 되던 날, 포세이돈을 찾아 온 이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하늘 밑 짙은 회색 빛의 바다가 한 시도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넵툰에 하얀색 빛이 반짝였다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날카로운 삼지창 두 개가 지키고 있는 입구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지창은 미동도 없이 서있었지만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남자가 삼지창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비로소 그를 지켜보던 눈빛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불현듯 그의 눈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어서오시오, 삼라바.”

 “오랜만입니다. 레비아탄.”

 레비아탄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의 눈빛은 매서웠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굴부터 몸 전체에 어색함이 흘렀다. 마치 뱀이나 악어가 사람 분장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눈매는 날카롭게 위로 올라가 있었고, 몹시 부리부리했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큰 얼굴에 적당히 넓은 어깨는 처음 보는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 충분했다. 온 몸을 덮고 있는 피부는 매끄럽기보다는 동물의 껍질처럼 두꺼웠고, 마치 물고기의 비늘과 같은 여러 겹으로 겹쳐진 회색 빛 무늬를 띄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삼라바에게 인사를 하며 살짝 눈을 내리 깔았지만, 그를 지켜보던 삼라바의 눈에 레비아탄의 흰자위가 보였다. 하지만 삼라바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레비아탄은 삼라바보다 앞서 걸었다. 뒤따라 걷던 삼라바의 눈에 레비아탄의 늘어뜨린 두툼한 꼬리가 보였다. 하지만 삼라바는 이미 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물 속을 걷고 있어서 인지 긴 복도를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안개에 싸인 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포세이돈.”

 마침내 포세이돈이 있는 방까지 다다르자 레비아탄의 끔찍한 모습에도 평온했던 삼라바의 눈빛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는 레비아탄이 삼라바에게 그랬던 것 이상으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삼라바,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대지를 뒤흔드는 바다의 신,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이여, 삼라바가 인사를 아룁니다.”

 “삼라바, 도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송구합니다.”

 포세이돈이 삼라바를 부를 때마다 그의 음성이 바다 전체로 멀리 울려 퍼졌다. 여전히 한 손에 삼지창을 든 채 의자에 앉아 있는 포세이돈은 눈이 부시게 빛나며, 그의 앞에 있는 모든 존재를 압도했다.

 “삼라바, 특별한 명이 있어 자네를 불렀네.”

 포세이돈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포세이돈이여, 그대는 내가 모시는 단 하나의 존경하는 신이자 저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하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내 명을 그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킬 수 있겠는가?”

 “제 목숨을 바쳐 따르겠습니다.”

 삼라바는 고개를 들어 포세이돈을 바라봤다. 삼라바의 얼굴에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포세이돈에게는 그의 비장한 심정이 느껴졌다.

 “삼라바.

 내 딸, 라미아의 수호자로서 함께 지구에 가주게.”

 포세이돈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그 어떤 때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들렸다. 포세이돈은 바다를 다스리는 초월적인 존재인 신이자, 바다를 지배하는 넵툰 전체의 왕이었고, 20여 명의 여신들의 남편이자 40명이 넘는 자식들의 아버지였다. 그에게 주어진 많은 역할 가운데 지금 이 순간 그의 말투는 바다를 지배하며 신하에게 명령을 하는 신 또는 왕의 그것이 아닌 한 명의 아버지로서 하는 부탁과 같이 느껴졌다.

 삼라바는 라미아라는 이름을 듣자 옆에 서 있던 리비에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리비에의 표정이 어두웠다.

 “하지만 지구는……”

 “딱 3년 일세. 지구에서의 시간이 정확히 3년이 되는 그 날에 라미아를 데리고 다시 이 곳으로 꼭 돌아와야 하네.”

 삼라바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아무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흘러갔다.

 “자네가 할 일은 정확히 세 가지라네.

 우선, 지구에 나타날 지 모르는 어둠의 존재로부터 라미아를 지킬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의 두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어둠의 존재의 정체를 밝히고, 그의 시신을 내 앞에 가지고 올 것.”

 포세이돈은 약간의 뜸을 들이더니 마지막 조건을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지구에서 1990년 3월 8일, 400년 만에 환생한 그 사람과 라미아를 결단코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일일세.”

 삼라바는 넵툰에 오기 전부터 포세이돈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지구의 시간으로 약 2천 년 전, 포세이돈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후부터 삼라바는 포세이돈과 그의 가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때문에 라미아를 비롯하여 포세이돈의 43명의 자식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그의 자녀들이 모두 장성하고, 라미아가 성숙해졌을 때쯤 삼라바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 때부터 그는 넵툰을 벗어나 온 우주를 돌아다니며 생활하고 있지만, 그의 몸과 영혼은 보이지 않는 줄로 넵툰에 묶여 있음을 느꼈다. 포세이돈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포세이돈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로 그를 순식간에 불러 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삼라바는 새 삶을 얻게 된 이후로 지구 근처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성격은 차갑고 냉정하게 변해버렸다.

 그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가지게 된 삼라바가 지구에 가기 꺼려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구의 시간은 매우 짧다. 그래서 자칫 방심하는 사이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기 쉬웠다. 나이도, 젊음도, 그리고 그가 지켜오던 평정심도.

 그리고 온 대지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인 포세이돈이 저렇게까지 겁을 먹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일이라면 라미아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분명히 나타나고 말 것이다. 그것을 막는 것이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일인지, 도리어 또다시 세상을 어지럽히고 마는 것이 아닌지 삼라바는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삼라바의 고민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포세이돈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포세이돈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삼라바의 말투는 처음과 같이 단호했지만 말끝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져 돌아서는 삼라바를 레비아탄이 이번에는 방 밖으로 안내했다.

 “삼라바, 부디 넵툰에서 자네를 다시 볼 수 있길 바라겠네.”

 레비아탄의 눈동자는 가늘게 빛났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삼라바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 포세이돈이 수호신 삼라바와 함께 간다는 조건을 전제로 지구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미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날 밤, 넵툰에서 큰 파티가 열렸다. 아버지 포세이돈과 어머니 리비에는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딸을 위해 성대한 환송회를 열어 주었다.

 라미아는 파티가 열리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틈 타 몰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깊숙한 곳에 은밀히 숨겨 놓았던 커다란 조개 껍데기 안에서 투명한 유리 조각을 하나 꺼냈다. 길쭉한 조각은 얼핏 보면 다리가 긴 새 모양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분 밖에 없는 불완전한 모양새였다. 라미아는 조각을 조심스럽게 작은 천에 감싸 몸 안 쪽에 감췄다.

 모양도 채 알 수 없는 조각이 어떻게 그녀에게 있게 된 것인지 라미아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에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이 물건이 지구에서부터 온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이 물건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린 시절 지구에 놓고 온 기억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 지구에 가는데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라미아는 삼라바와 넵툰을 떠났다. 지구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은 넵툰에서 고작 1주일이었다. 1주일이면 된다. 라미아가 다시 넵툰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반드시 1주일이어야만 한다.

 넵툰에서 지구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 지구에서의 시간으로는 하루면 충분했다. 맑은 하늘에 하얀 별빛이 반짝였다 사라졌다.

 그 시각 지구에는 갑자기 일기예보에도 없던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마침 새벽녘이라 조업을 나가려고 준비 중이던 어부들은 잠시 일을 멈추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 소나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을 기다려도 비의 기세가 멈추지 않자 결국 혀를 끌끌 차며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새벽 6시가 되어도 밖은 밝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전보다 더 어두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섭게 내리는 장대비와 짙은 어둠 때문에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 새까매진 하늘과 맞닿는 곳에서부터 파도가 거침없이 몰아쳤다. 파도는 거품을 만들며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무언가를 토해내듯 반복적으로 해변가를 향해 일어나 올랐다 사라졌다.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어느새 차가운 바닷물이 인도까지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 새까만 바다 한가운데가 소용돌이 생겨났다. 거대한 파도 속에서 마치 하늘로 튀어 오르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듯한 한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두운 날씨에다가 거센 장대비가 뒤섞여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파도 속에서 나타난 새까만 용은 멀리서 두 개의 형체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점점 해변가로 가까워질수록 사람과 비슷한 두 존재가 나타났다. 그렇게 누구도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존재가 아주 은밀하게 지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뒤로 거짓말처럼 파도가 잠잠해지고 구름이 걷혀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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