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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용사, 오백 년 만에 눈을 뜨다.

 
그 이름, 용사
작성일 : 19-10-28 00:53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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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이름, 용사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신은 궁핍에 겨운 인류를 불쌍히 여겨 한 남자에게 용사라는 직책을 수여했다.

 

  용사勇士. 그건, 그는 무언가 특별해서 용사로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그저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사랑이 많고 용감했을 뿐.

 

  하지만 그 조금의 차이가 쌓이고 쌓여 결국엔 커다란 차이를 만들었으니.

 

  인류에게 있어서 용사라 하면 그들 모두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사람.

 

  가장 고귀한 사람.

 

  가장 위대한 사람.

 

  ——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남자는 어느덧 스스로의 이름을 잊었고, 500년 가까이 용사로 남아 인류를 위해 봉사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자애로운 행로의 말로는 실로 비참하다.

 

  더 이상 곤궁이 무언지 모르는 인간들이 그들의 손으로 용사를 형장으로 이끈다.

 

  광기어린 군중의 외침. 신의 뜻을 따른다는 교도의 외침. 그리고 북소리가 한데 어울리고

 

  모두가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가운데에, 용사라 불리우던 이는 그가 사랑하던 이들에게 목이 잘려 목숨을 잃고 만다.

 

  ↓

 

 용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오랜 시간 끝에 용사가 다시금 눈을 뜬 곳은 폐허가 된 지하묘지 안이었다. 많이 눈에 익은 장소다. 살아생전 그가 수많은 것의 유해를 묻었던 이곳. 건축양식만 보고도 그는 이 위로 무엇이 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모두에게 배반당하고 그들의 손으로 죽임 당한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흐릉달······. 어떻게······. 이곳에 내가······.”

 

  용사는 천 년 전 고대어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흐릉달, 인류를 위해 용사가 세운 도시의 이름이다.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주변엔 먼지가 가득 쌓여 있다. 인기척은커녕, 벌레 한 마리 돌아다니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용사는 고민한다. 스스로 왜 살아있는지, 왜 살아났는지, 아니—— 어떻게 살아났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까?

 

  솔직히 생각하기를, 어찌 되든 이제 와선 상관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용사는 움직인다. 허무에 짓눌려 고꾸라질 정도로 그는 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려 목에 힘을 주었지만 고개는 돌아가질 않았다. 천천히,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킨다. 모래처럼 쌓인 먼지가 솨아아,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개는 땅에 처박혀 움직이지 않고, 그저 일어섰다는 감각만이 선명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더 움직이는 걸 택한다. 머리와 몸의 유대가 끈처럼 이어져있다. 그 직감을 따라가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집어 든다. 소름끼치도록 기괴한 감각이지만, 이보다 더 한 경험을 많이 해봐서일까? 그는 별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눈이 몸을 바라볼 수 있도록 머리를 돌리자,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용사의 육신 아닌 육신이 보인다. 백골은 말 그대로 허옇게 뼈만 남았지만 무척이나 선이 굵었고 또 강직해 보였다. 설령 용이라고 해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을 것만 같은 해골이다.

 

  '내 뼈가 맞군.'

 

  온몸의 뼈를 보면서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비록 근골의 형체는 인간이지만 인간 치고는 그 구성이 정말로 완벽하다. 이런 뼈를 가진 인류가 자신 이외에 있을 수 없다고, 용사는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용사가 된 후로, 450년 가까이 단련에 힘 써 왔기에, 인간의 몸에 대해서라면 웬만한 의사보다도 박식하다. 몸의 내부, 특히 뼈를 단련한다는 건 단순한 운동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용사도 그랬다. 격렬한 사투 중에 골백번은 부러졌을 뼈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어느새 강철보다도 단단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런 뼈도 용사의 힘 앞에선 무력한지, 그가 두개골을 목뼈에 꽂듯이 맞추자 홈이 있는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실상은 그냥 뼈를 부러뜨려 힘으로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러자 드디어 그가 몸을 돌리는 데로, 머리를 회전하는 데로 시야가 따라온다. 그리고 용사는 한 걸음 한 걸음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는다.

 

  ↓

 

  용사가 눈을 뜬 곳은 지하묘지 최하층. 건축양식은 분명 흐릉달의 독특한 모양새를 따랐지만 그의 시체가 안치된 곳은 단칸방보다 못한 좁은 넓이로, 거구가 간신히 한 몸 눕히면 가득 찰 공간이었다. 바로 눈앞에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다 그는 완전히 무너져버린 신단을 발견한다. 튼튼한 옥으로 만든 신단이다. 세월이 흘렀다한들 일부러 부순 것처럼 깨어져 나갈 순 없다. 이 일을 벌인 주범의 어리석음에 이를 부득—— 간다. 예상대로 다음 층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은 언데드의 무리였다. 당연하게도 이곳에 안치되었을 흐릉달 사람들의 시신이다.

 

  본래 신단이라는 것은 신에게 기도와 공물을 바칠 때 사용되는 소통창구로 기능하지만, 그래도 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 이런 음기 가득한 공간에서는 액막이로 작용하기도 하는 게 신단이다.

 

  용사는 목이 잘리던 오백 년 전, 그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략 짐작할 순 있다. 진실된 신의 사도가 사라진 세상에, 타락해버린 종교가 어떤 패악을 일삼았을지는 보지 않고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용사의 짐작과 현실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주교의 명으로 깨어진 신단은 미력한 가호를 잃고, 역병이 창궐해 흐릉달을 휩쓸었다. 그와 동시에 언데드가 몸을 일으킨다. 이런 일이 흐릉달에서만 일어났더라면 그나마 나으련만, 다른 도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수호자가 없는 인류의 종말이야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용사는 언데드에게 안식을 주기 위한 무기를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때문에 자신의 갈비뼈를 분질러 모든 언데드를 단매에 쳐 죽이면서 지상으로 향한다.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있는 언데드는 없었고, 총 11층을 오르고 나니 지하묘지 바깥의 공동묘지로 나올 수 있었다.

 

  무덤을 파헤치고 나온 좀비들을 마찬가지로 학살하면서 이번에는 흐릉달의 중심가로 향한다. 그곳에는 아직도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어 그때의 아비규환을 눈앞에 보여주는 듯했다. 직접 토대부터 닦아 만들었던 옛 도시를 바라보며 용사는 고민한다.

 

  “신이시여, 보고 계시옵니까? 당신의 종이 흉측한 망자가 되어 일어났나이다.”

 

  조금 더 걷자 딸을 끌어안고 죽은 부모의 시체가 보인다. 언데드가 되지 않은 건 그들의 사랑을 지켜 본 여신의 배려였을까. 평온한 일상 속에서 괴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그들을 보며, 용사는 다시금 인류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의 죄는 무엇인가. 그저 겁 많고 연약한 이들이 몇몇의 인간들에게 선동당하고, 이용당했을 뿐이다. 그 연약함과 우둔함조차도 죄라면 그 죄는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그건 바로 용사 자신이다. 인류에 대한 단 일말의 위협도 용납지 않았기에, 군중은 마치 가축과도 같았다. 그는 그들을 사랑했다 생각했지만 그가 한 것은 먹이를 주며 가축을 기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생각할 기회조차 앗아갔음이다. 이어지는 참상에 들끓던 감정이 그를 무릎 꿇게 만든다.

 

  “이 깊고 깊은 죄를 어찌 떨치오리까. 주여, 부디, 이 죄인이 간곡히 청하옵니다. 부디 다시 한 번 기회를······. 이 가여운 이들을 구원할 힘을 주소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루를 넘어 닷새가 흐르도록 용사는 가족의 시체 앞에 꿇은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어떤 시선도, 가호도, 힘도 그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신의 가호를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500년을 살아가며 기억으로 채득한 정신精神과 백골만 남은 튼튼한 육체肉體 뿐이라, 과연 이 몸뚱이 하나로 무얼 할 수 있을지 용사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신의 부름에 응해 용사가 되었던 그는, 이제 그것이 없다 해도 스스로를 용사라 칭할 수 있음을 안다. 꿇어 엎드려 기도한지 한 달이 되던 날, 용사는 성호를 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커다란 대들보에다가 분질렀던 갈비뼈를 갈아 뾰족하게 만들었다. 일주일을 더 그러고 있으니 대들보는 닳아 없어지고, 그 대신 뾰족하게 날이 선 갈비뼈만이 남았다. 그 끝을 바라보면서 용사는 중얼거린다.

 

  “당신께서 직접 나설 수 없다면, 이 한 몸, 진정 뼈 한 조각마저 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행하리다. 엘로압아쉐אֵלעָצֶה’êlrâdaphʽâtseh (신의 의가 나를 강하게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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