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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1화
작성일 : 19-10-22 10:54     조회 : 463     추천 : 0     분량 : 1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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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최치원의 서자 동희 라는 크나큰 앎을 자부하면서, 안으로 의심하는 데 주저하면 안 된다는 걸 상기시켰다.

 “마음의 길을 터주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즉시 답은,

 “비로자나 진 법 신”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늘의 광명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켜 최치원에 대해 찾아보았다. 고운 최치원은 한국문학사에 우뚝 서 있는 위대한 산이며 유구한 한국문학사 전체를 보더라도 그만큼 높은 봉우리는 손으로 꼽을 만하다는 것과, 더구나 당시 세계제국이었던 중국 당나라에서도 높은 수준에 빼어난 문학가이며 신라인으로서도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은 작가였다는 것을 알았다. 최치원은 불교, 유교, 선에 두루 통달했었고 특히 불교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컴컴한 밤과 같은 신라 말기에 시대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선비로서의 양심을 끝까지 견지하다 홀로 빛을 발하며 스러져간 외로운 존재였다’ 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선방에 들어가 선에 들어 반문하였다. 신라 김씨 성을 가진 여인이 내 어머니라는 것이 확실한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안으로 반문해 보았다. 신라에 태어난 동희는 어머니 성을 가졌다고 했다. 그 시대에 어머니 성을 가질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어 그 날은 선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도 허공 중에 모든 부처님께 간절히 청하였다. 전생의 이론이 정말이라면 천 년 전의 나는 무슨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어떤 벼슬을 하고 강릉까지 왔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무지막지 알려달라고 안으로 관하였다. 빚쟁이가 빚 받으러 온 것처럼 다그쳤다.

 ‘이이! 성질머리 못된. 지난번에도 천천히 알려준다고 했는데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 나이에 힘이 있을 때,’ 이 우주 공간이 다 힘이고 에너지인데 뭘 그리 걱정하느냐’는 뜻으로 들었다.

 최치원에 관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문헌을 찾으려 했지만 도서관에는 시집 한 권밖에 없었다. 그 시집에 있는 시를 옮겨보았다.

 최치원의 시 중에 ‘은거를 꿈꾸며’에서

 

 갈매기

 

 물결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다

 가벼이 털옷 터니 참으로 신선일세.

 자유로이 세상 밖 드나들고

 거침없이 선계를 오고가네.

 맛난 음식 좋은 줄 모르고

 풍월의 참맛 깊이 사랑한다네.

 정자의 나비 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대를 보다가 잠든 이유를 알 테지.

 

 마음으로 알아지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나는 동희가 되기로 했다. 그러려면 나이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1,100년 전 신라 하대로 들어가야 한다.

 서라벌 장안은 민심이 불안하여 저녁이면 주막이나 방에서나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방안 윗목에는 팔 폭 병풍이 펼쳐있고 서책이 몇 권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아직 이른 초저녁인데 방 안의 두 사람 가슴에 이별의 무게가 버거워 마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마음 둘 곳이 없이 살다가 당신을 만나 5~6년 동안 정말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보았소.”

  최치원과 미향이다. 다섯 살 동희(전생의 나)는 놀다 피곤하였는지 자리를 깔고 자고 있었다. 최치원은 자고 있는 동희를 안쓰러운 듯 손이며 얼굴을 만진다.

 “그동안 저 아이가 있어 행복하게 살았소. 저 어린것을 당신에게 맡겨놓으려니 가슴이 메이오.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였으니 어찌 이 서라벌에서 당신과 편안하게 살 수 있겠소.”

 “제 걱정은 마십시오. 저 어린것이 아버지를 모르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지만 서방님을 어찌 제가 탐을 내겠습니까? 나와 저 아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자손으로 훌륭하게 키워낼 겁니다.”

 “고맙소. 저 아이를 당신 성을 따서 김씨로 하였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기 바라오.”

 그 소리에 미향은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술잔을 들고 마셨다. 최치원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이제 어디든 떠돌아다니며 살기로 했소. 발 닿는 대로 다니다 죽을 것이요. 당신을 두고 떠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저 아이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 미안하오.”

 “그런 소리 마세요. 저는 지금 죽는다 해도 소원이 없습니다. 당신을 닮은 저 아이가 있어 무엇을 더 바랄까요. 잘 키워서 당신 보듯이 보겠습니다.”

 최치원은 미향을 품에 안았다. 내일이면 다시는 못 볼 남편이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들은 동희를 사이에 두고 짧은 밤을 보냈다. 미향은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이 정처없이 길 떠나는 보따리에 먹을 것을 챙겨 넣었다. 최치원은 동희를 무릎에 앉히고 미향과 아침을 먹었다. 못 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잘 먹고 잘 놀아야 한다고 목이 메인다. 본가에 자식이 있었지만 그리 정을 주지 못하고 살았다. 사랑하는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동희. 사십의 늦은 나이에 낳아서 그런지 동희에게 사랑을 듬뿍 주었던 것이다. 미향은 눈물을 참을 수 없어 부엌으로 나왔다.

 “아버지, 형아들처럼 칼싸움도 배우고 말도 탈거야.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우리 동희 할 것도 많네. 아버지가 보고 싶어도 절대로 남자는 눈물을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단다.”

 “아버지가 여기 있는데 왜 보고 싶어? 아버지가 좋아요.”

 “그래, 아버지가 없이도 잘 커야 한다.”

 “왕이 있는 대궐로 들어가는 거야?”

 “그런 게 아니고 공부하러 멀리 간단다.”

 “싫어요! 나도 아버지 따라갈래요.”

 애기 때부터 글을 배우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중국의 문화며 문물에 대해 그가 보고 겪은 것을 낱낱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아버지를 동희는 좋아했다. 잠잘 때도 최치원의 품에서 잤다. 최치원과 동희는 잘 통했다.

 ‘이 아이를 어쩔 것인가? 못할 짓이로구나. 아버지를 못 잊어 평생 그리워하며 살 것을 생각하니 어찌 떠날 것인가?’

 부엌에서 물을 들고 들어온 미향은 동희를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동희 선물 사러 중국에 가신대. ‘아버지 다녀 오세요’ 인사하자.”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 평생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았다. 최치원이 떠난 자리가 너무 컸다. 아버지를 찾을 때마다 속으로 울었던 세월이 얼마였던가. 동희를 달래기 위해 사람을 들여 학문을 익히는 데 마음을 쓰게 했다. 살아가는 데는 걱정이 없었다. 집에 부리는 사람도 있고 토지도 꽤 있었다. 그녀는 동희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동희를 보여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키웠다.

 열두 살에 당으로 유학을 떠났던 최치원의 생에 비하랴. 동희는 어머니의 열성으로 학문을 배우며 청년으로 장성하였다. 시간 나는 대로 무술이며 말 타는 것을 즐겨 배우며 벼슬길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벼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신라는 고려에 패하였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지 9년 만에 신라의 경순왕을 복귀시켰다.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겼지만 패망한 신라 궁궐에서는 새로운 왕권을 회복해 보려는 노력으로 최치원의 복귀를 원하였다. 왕의 어명을 받았지만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였고, 그들의 말을 들었다 하여 귀를 씻어내기도 하였다. 궁에서는 최치원의 천재적인 자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골품제도의 권력에 희생양이 된 최치원의 행방을 찾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나뭇가지에 옷과 갓끈만 걸려 있을 뿐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인재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고 그를 바로 쓰지 못한 죄책감에 권력가들은 왕 앞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라를 구해보려 노력했던 최치원은 고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을 버리고 관직을 떠나 유람하였다. 신라를 다시 일으킬 명목이 없어진 신라 왕실은 최치원을 찾았지만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고려 왕실이 안정이 되자 첫 과거시험이 실시되었다. 서출인 내가 과거에 급제하였다.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얻는다면 외지로 나가 아버지를 찾아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무렵 명주 군왕의 3대를 이을 새로운 왕이 나왔다. 그것을 서라벌 왕실에 알리기 위해 군왕이 신라로 들어왔다. 며칠을 묵으며 고려왕을 알현코자 했다. 그것이 인연이 될 줄 몰랐다. 왕건의 칙사로 고려 왕실에서 주는 큰 벼슬을 수여받고 명주군 하슬라에 가기로 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새 파란 나에게 새 왕실의 칙사로 명주 군왕과 대등한 직위를 주어 새 정권이 시작 되는 발판이 되었다.

 왕건이 하사한 벼슬이기에 신라 기존의 벼슬을 가진 사람들은 무어라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명주 군왕의 입지도 불투명한데 입을 봉하였다.

 왕건은 동희를 크게 쓰리라 생각하고 먼 곳까지 자원해 준 마음이 기특하여 훗날 다시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신라의 잔재가 곳곳에서 반란의 조짐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작은 고을 병방이기는 하였지만 새로운 왕권의 틀을 세우기 위한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명주 군왕의 세도를 멈추게 하여 고려에 이입하려는 수단이라 생각하였다.

 왕건은 신라 임금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였지만 실제 주권은 왕건이 쥐고 있는 터라 허수아비의 신라왕이 있을 뿐이었다. 두 임금을 동시에 알현하는 자리는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경순왕 마지막으로 신라 왕실은 공허한 천년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미향은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세상에 의지하고 살았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나라에 명을 받고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고 할 때 보내야 했다.

 그동안 무예를 갈고 닦아 두려움을 모르는 나는 기쁨에 넘쳐 어머니의 마음보다 부친을 찾아보겠다는 기쁨에 젖어 최치원의 자식으로서 부끄럼 없이 살 것을 마음 속으로 기도하였다.

 3대를 이어 새 군왕이 되었음을 궁궐에 알리러 온 명주 군왕 일행은 새 임금이 하사한 동희의 벼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금이 채용해 보내는 인재를 경계하였지만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일이 선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혜가 뛰어나 머나먼 과거의 일을 기억한다고 해도 이런 긴 사연을 더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이쯤하여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적어놓아야 기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자나 부처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동희를 증명하는 길에 부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무식하여 기억력도 없고 부처님이 일러주신다 해도 그 많은 언어들을 어찌 다 기억하겠습니까?”

 짜증스러운 표현으로 성을 내셨다.

 “너 같은 성깔을 가졌으니 가능한 것이지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의 그 많은 일들을 외울 수 없으니 그 때 그 때 필기하여도 좋다. 특히 부처님 말씀은 한 치의 거짓이 없어야 하기에 필기를 하라고 하는 것이니 개의치 말고 기록하여라.”

 “최치원 아들인 너의 진짜 이름은 최무극이다. 그러나 문헌에도 없는 가상 인물이니까. 김동희가 좋겠다. 네 이름은 고려시대에도 신라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령의 이름이 되었다. 역사 속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한 인물들이 어디 너 뿐이겠느냐? 너는 조선시대에도 한 번 태어났다가 죽었다. 사람으로 세 번 태어났으니 참으로 드문 일이기는 하다. 평소 네 생각처럼 이 세상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조선시대에도 역사와 살다 죽었으니 삼세를 살았구나. 인간은 태어날 때 과거는 까맣게 잊으니 얼마나 좋으냐.

 처음 전생이라 느꼈지만 거짓이라고 비웃었다. 신이란, 무녀의 입을 통해 거론되는 신들 중에 아상만 가득한 신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절을 찾아온 사람에게서 무녀에게 사기를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분심이 일어 무녀 집에서 돈을 찾아준 적이 있다.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것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진리 속에는 산신도 신선도 부처님 제자라고 했다. 나는 알아야 했다. 어찌하여 이곳에서 산신이 되었는지.

 옛날 어른들은 산을 향하여 가족과 자식을 위해 빌었다. 현재까지도 자기만 섬기라는 신들이 무녀의 입을 통해 강요되는 건 산신이다. 내가 그런 아상의 산신이었다니? 잠시 불신하는 마음이 생겼다.

 몇년 전에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에 소스라쳐 놀란 적이 있다. 부랴부랴 시간의 촉박함에 직장 다니던 일을 접고 먼 거리의 절을 찾아 갔었다. 3일 만에 절에서 쫓겨났다. 칠천 번의 절을 하느라 몸이 너덜너덜 말이 아니었다. 마음에 속아 달려온 내게 스님은 당장 집에 가라고 쫓아냈다. 갈기갈기 허물어진 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을 떠날 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심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났던 것인데, 3일 만에 쫓겨난 것이 이상하여 그 이유를 안으로 들어가 탐구한 결과 마음에 속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경박한 속임수에 집을 떠났다는 부끄러움보다 그러한 일은 쉽게 경험할 수 없다는 어느 선사의 말씀에 웃기도 했다. 마음에 속은 것을 안다는 것은 다시는 속지 않을 공부를 한다는 교훈이다. 지금까지 마음에 속은 것이 그것뿐이랴, 의심하고 의심하며 살았음에도 아직도 공부가 덜 되어 마음에 속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기에 확인하고 의심하여 탐구하는 것이다. 아직 중생이기에, 기왕에 알아진 전생의 앎이 당연한 것이라 해도 집착을 떠난 환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참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신기하여 ‘스님을 관하여 볼까?’ 했는데,

 세상에나! 놀라운 현상을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생각이 마음과 몸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파동이며, 인간이 99% 노력을 하면 1%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능력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생각은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사랑이요, 무한이요, 영원이기에 현존일념하면 허공이 도와준다.

 다시 그리운 서라벌로 가는 시도를 시작하였다. 장안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을 내 전생의 고향 서라벌은 아버지와 6년의 짧았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풀잎 같은 끈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내 아버지 최치원. 그 이름을 찾아야 한다. 천 년을 넘어온 서라벌 장안거리는 민심은 흉흉하였고, 초겨울 싸리문 안의 인기척들은 아직 저녁 연기가 올라오기에 이른 시간이다. 첫눈이 내린 거리는 싸리비로 밀어 거뭇거뭇 가을 먼지를 말끔히 걷어내기에 어수선한 응달쪽 어귀마다 조금씩 남아 있다.

 이리저리 촉을 세워 장안을 살핀다. 천 년의 시간대를 모두 회전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탓에 한 치의 오차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이 하늘의 도움이 없다면 가능하겠는가. 이 곳을 기웃 저곳을 기웃하다 보니 어느 주막 앞에 발이 멈추어 섰다. 안으로 산책해 본다. 천 년을 뛰어넘은 탓에 허기를 느껴서인가? 분명히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는 둥근 소반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주막에 앉아 지나간 날들을 서로 상통하고 있었다. 내 귓전을 천둥번개처럼 울리는 한 마디가 있어 그 자리에 멈추어 서 다리를 모았다.

 “그 때 최치원을 우리가 내몰지 않았다면 이 나라 신라가 고려로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네!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가 죄인이지.”

 “지금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최치원은 중앙 정계에서 왕의 측근으로 총애를 받고 34세에 차례로 정읍 태수(태산군)로, 충청도 서산 태수(부성군)로 지내다가 4년 뒤인 893년 중앙 정계로 복귀해 국정과제 열 가지를 제시한 ‘시무십여조’를 진성여왕께 올렸다. 여왕은 최치원에게 아찬 벼슬을 주었다. 왕의 심임과 달리 반대파 골품제를 꺾지 못하고 시무십여조가 시행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최치원은 정계에서 물러나 전국을 유람하기 시작하였다. 935년 경순왕 9년에 천 년의 신라가 끝났다. 사회 모순과 개혁을 꿈꾸었던 최치원은 나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유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등에 업고 행세하였던 반대파들은 자기들의 오류로 나라가 망했다고 뒤늦게 후회하고 나라 잃은 서러움을 주막에서 풀고 있었다. 왕건이나 견훤의 세력에 동조할 수 없었던 최치원은 비판적이고 양심적인 천재성을 나라를 위해 펼쳐보지 못하고 전국을 유람하였다.

 나는 그들의 옆에다 술상을 당겨 앉으며 귀를 열었다. 그들 중 눈물을 찔끔거리는 사람도 있고 한숨을 푹푹 쉬는 사람도 있고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술기운에 생각난 듯이,

 “이보게, 아찬 벼슬을 끝으로 궁궐을 떠난 최치원이 장안 기생과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는 걸 아는가?”

 귀를 최대한 열어놓았다.

 “그야 장안에서 다 아는 일 아닌가.”

 그들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내 아버지에게 정이 듬뿍 담겨있는 말들을 하였다.

 “나라에 꿈을 펴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 마음 둘 곳이나 있었겠는가? 지나고 보니 모두가 나라 말아먹을 권력 다툼 때문이 아닌가. 하늘이 내려준 인재를 받지 못한 것은 나라가 기울었다는 증거지.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는 하나 그렇게 이어온 세월이 천 년일세. 입이 있어도 무슨 말을 하겠는가. 최치원이 그 어린것을 장안 기생에게 남겨놓고 떠나야 했던 심정이 얼마나 피눈물이 났을 것인지 지금에야 알 것 같으이.”

 그들의 말에 가슴이 메인다.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순간이다. 그립다 내 아버지가, 다시 또 안으로 관해본다.

 기왓장이 유난히 저녁 노을에 반짝인다. 5~6세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보인다. 어느 부잣집 도령처럼 옷매무새가 정갈하고 얼굴이 맑아 보인다. 부엌인 듯 발등에 찰랑이는 앞치마를 두르고 20대의 후반 나이로 보이는 여인이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동희야! 아버지 들어오시기 전에 씻어야지?”

 더없이 행복한 얼굴이다. 그 아이는 여인을 따라 들어간다. 나도 그림자처럼 따라 들어간다.

 서라벌 주막에서 이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말들을 적는다.

 최치원은 애지중지 정을 주던 다섯 살 난 동희를 남겨두고 정처없는 선객의 길을 찾아 천재 시인은 방랑의 길로 들어섰다. 천백 년 전의 최치원은 천부경을 썼다. 묘향산 석벽에 새겨놓은 것이 있다. 하늘 사람 최치원은 지리산 산신이 되었다. 천부경은 일만 여 년 전의 하늘의 언어로 전해오다가 녹두문자로 적히다가 최치원이 한자로 적었다. 천부경은 하늘의 경으로, 숫자 81자로 모든 우주의 법칙을 담은 내용이지만 최치원을 이어 천부경을 세상에 내어 읽게 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내 전생이 신선이었다 함은 연관성이 유연하다. 산신의 몸은 화려한 호랑나비의 자태였다.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을 밝혀내는 과정은 신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부한다. 한시 오차의 여유도 없었다.

 나는 신선이었고 최치원의 서자 아무개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유토피아적(자신의 공상을 담은 이야기) 정신으로 가능할 수 있게 천백 년 전으로 유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각인되었음에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어려운 고행의 길이다.

 최치원은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선계에 들었다. 그의 시를 보면,

 

 스님들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씀들 마시오

 산이 좋다며 왜 자주 산 밖으로

 나오시는가

 두고보시라 나의 뒷날 자취를,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

  ― 최치원의 산승에게 중에서

 

 그 이후로 절을 찾아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해인사에 은거할 때 지은 시

 

 가슴 속 생각을 적다

 

 세상만사 어지럽게 얽혀 있고

 근심과 즐거움 또한 多産하여라.

 부자도 만족하지 않는 듯하니

 가난한 자가 어찌 안분자족(安分自足)하리.

 통달한 이라야 영예를 버리고

 초연히 홀로 올바로 보지.

 누가 말했나, 허리 굽히는 일 부끄러워

 산수 간에 일찍 돌아가겠노라고.

 힘써 농사지으면 또한 거두는 게 있어

 기한(飢寒)은 거의 면할 수 있지.

 평지에서도 풍파가 일고

 평탄한 길에서도 험난한 일 생기네.

 세상과의 일 사절했으니

 세속 일이 어찌 나를 괴롭히겠나.

 농부가 때때로 찾아오나니

 농사일 하다가 웃기도 하네.

 가고 나면 산에 지는 해를 요량해

 고요히 사립문을 닫네.

 지음(知音)이야 세상에 하나 없지만

 아서라, 한탄해 무엇하겠나.

 

 속세를 떠나 있어도 신라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아쉬움을 시로 노래하며 스스로 마음을 달래는 은둔생활에서 사립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감히 철저하게 최치원의 서자 동희가 되어 글을 이어 나갈 것이다.

 최치원은 가야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걸음마다 동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동희를 생각하면 죄인이다. 5~6년 동안 그 아이로 인해 행복했었다. 동희가 없었다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어디로 지향해 걸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나라 잃은 이가 나만의 죄인이 아닐지라도 그 참담함을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향도 어린것을 혼자 어찌 키울 것이며 아버지 그리는 자식의 눈물을 어찌 보고 있을 것인지 걸음걸음 무거운 길을 걸어야 했다.

 

  편 지

 

  선에서 호랑나비가 출현함에 따라 인연의 실체를 찾게 되는 삶의 프로그램은 진행되었다.

 나의 전생론은 이어져야 한다.

 너무 무섭고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최치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나의 초라한 지식과 삶, 여자라는 조건을 어떻게 이입시켜야 할지를 이 소설에서 확인될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반문해 본다.

 당나라에서 학문과 시로 이름을 날렸던 최치원은 부귀영화를 당에서도 누릴 수 있었지만 28세 885년 신라로 돌아온다. 당나라에서 이방인의 생활 16년의 세월동안 상투를 천장에 달고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한 탓에 18세에 단 한 번의 과거를 치르고 현의라는 벼슬을 받았다. 관직을 받은 지 5년 만에 황소의 난을 종식시켰다 하여 당나라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당의 이름으로 칙사를 전하려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동안 너무 외로웠던 탓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를 환희에 찬 기쁨으로 변화시켰다. 다시는 당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병환을 핑계로 신라에 남아 왕으로부터 육두품 벼슬을 받았다.

  유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러져 가는 신라를 개혁하고 큰 뜻을 펼치고자 하는 꿈이 가득했다. 그의 타고난 글 솜씨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신라의 정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진성여왕에게 자신의 개혁 구상과 정책 대안을 기안하여 ‘시무십여조’를 올렸고 진성여왕은 그를 믿고 나라를 맡겼다. 이미 신라는 기울어가는 정세였지만 기존의 권력자들에게는 지금이나 천 년 전이나 권력에 대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정하지 않았다. 최치원의 갑작스런 등장에 ‘시무십여조’의 개혁안은 왕의 관심은 끌었지만 권력을 탐하는 그들에게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 눈총이 아무려면 어떠랴 기울어진 나라만 건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 뿌리 깊은 세도 골품제에 목숨을 걸고 대대손손 권세를 누리며 살아왔던 그들에 있어 ‘시무십여조’는 그들의 세력을 더욱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성여왕도 그들의 힘을 꺾지 못하고 최치원을 전라도 경상도 변방에 보내 태수의 직함을 주어 고을에 남게 하였다. 4년 간 지방의 태수로 있는 동안 곳곳에서 이름을 날렸다.

 다시 정계에 복귀하면서 국정과제 열 가지를 다시 제시한 ‘시무십여조’를 진성여왕께 올렸다. 여왕은 아찬 벼슬을 주었다. 그러나 반대파의 심한 반대로 인해 시행되지 못하였다. 최치원은 하늘이 자신을 제때에 쓰지 못함을 가슴 깊이 한탄하면서 꿈을 펼치지 못할 바에야 이 곳은 자기가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정계를 떠나게 된다. 그는 저잣거리를 떠돌며 마음 둘 곳을 술로 지탱하고 있었다.

 

 그즈음 저잣거리에 흥행하고 있는 술집마다 알게 모르게 최치원의 소문이 술렁이고 있을 정도였다. 화랑의 정신을 가진 그는 기악과 풍류를 아는 천재시인이었다. 그는 화랑들과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해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토로하며 자기의 개혁 정신을 화랑들과도 공유하였다. 때로는 화랑들에 의해 기생을 불러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술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화랑들과 만나는 밤이면 기생집을 찾곤 하였는데 자연스레 한 여인과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여인은 장안에서도 이름난 고급 기녀로서 궁궐에도 출입하였다. 집과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양반들은 그녀를 자신의 후원에 부르거나 교외로 나가서 춤과 음악을 즐기거나 학문과 시, 글, 그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양반들조차 어지간한 명망이 있는 사대부가 아니면 일패 기녀를 쉽게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주된 고객층은 상류층으로 춤, 노래, 시조, 화훼, 학문 등 수많은 예를 겸해야 했다 그 중 이름난 미향이란 여인은 최치원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빼지 않고 꿰고 있었다. 그와 만나기 위하여 애를 태웠다. 어느 날 그녀의 집을 찾아온 기회를 잡아 그와 정을 통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집안이 몰락하여 스스로 기생의 길을 걷게 된 미향은 상류층 일패 기생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그동안 춤, 노래, 학문을 겸비하였다. 얼굴이 뛰어난 미모로도 알려져 있었고 옷 입은 맵시가 뛰어났다. 화랑들은 그녀를 한 번 보기를 원하였다.

 어느 날 최치원이 사랑에 들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찌하면 그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그들 일행의 방에 들게 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그와 사랑할 수 있다면 미향은 소원이 없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미향은 그의 옆에 앉게 되었다. 함께 온 화랑들은 최치원이 그녀와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술을 권하고 잠시라도 최지원이 미향으로 인해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들이 보기에도 미향은 아름다웠다. 미향은 다른 때와 달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에 홍색이 돌았다.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최치원도 하였다. 그러나 최치원은 시객으로 흥이 있을 뿐이지 여인에 대한 관심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녀의 모습에 반하였다. 자신의 어색한 기분을 감추는 데 서툴다는 것을 미향은 곁눈으로 알아보았다. 그러한 최치원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뛰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미향은 손님 자리에 앉으면 자세를 바로 하고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서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은 함부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날 밤 화랑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미향은 그와 함께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최치원은 미향의 모습에서 고향 같은 향수를 느꼈다. 저잣거리를 걸었다. 그 날따라 하늘엔 보름달이 환하게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때는 5월 나뭇가지의 잎들이 가는 바람에 흔들린다.

 “밤이 너무나 아름답지요? 대감의 소문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오셨을 때부터지요.”

 최치원은 그냥 기분이 좋았다. 서라벌의 밤공기를 기분 좋게 마셔보기는 처음이다.

 밤의 하늘을 쳐다보며 감상에 젖어 옆의 여인도 잠시 잊고 걸었다. 미향의 뜻밖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게 정말이요? 진작부터 나의 정체를 알았다? 나쁘지는 않은데. 그대와 걸으니 오랜 친구와 만난 듯 마음이 즐겁소.”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함이다.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보상을 받는 것 같은 여유로움이다. 5월의 밤은 더없이 풍요롭다. 미향은 오래도록 그립던 임을 만난 것처럼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미향과 최치원은 그렇게 만났다.

 

 바위 위를 흔드는 샘

 

 거문고 곡조 제 아무리 잘 탄다 해도

 저, 구름 아래 들려오는 소리만 못해요.

 맑고 티없이 거울보다 났고요

 때로 가벼운 바람이 옥소반을 스치듯 해요.

 흐느끼는 건 장량 이석공의 말 좇지 않아서고

 졸졸 흐르니 손초(孫楚)의 베개가 차갑지요.

 

 이 시는 최치원이 미향과의 사랑을 시로 옮긴 것 같다. 최치원의 아버지 견일은 아들의 재주가 뛰어난 것을 고민하다가 당으로 유학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랐다. 소학의 두문자 교육학을 통달했고 학문적 조화로운 인간성과 융통성, 통합성, 체육정신과 인문교육, 사회구조 비판을 두루 통달하고 자기 개발을 지향했다. 12살이지만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태몽으로 황금돼지에게 납치되었다가 구출된 꿈을 꾸고 최치원을 낳았다. 아들의 태몽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버지 견일은 그 때부터 모든 행동을 조심하고 살았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당에 유학가기로 한 어린 최치원은 밤잠을 설쳤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없었다. 낯선 땅에서 어찌 공부를 하고 살아남을 것인지를 깊이 사고하고 다 배운 교육을 다시 점검하느라 날짜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는 동안 그의 아버지 견인은 당에 가 있는 인척을 연결하여 아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최씨 집안은 진골 바로 아래인 6두품의 책사로 왕의 곁에서 글과 문장으로 시중드는 것을 가업으로 삼게 되었다. 태어나면서의 골품은 평생의 모든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던 신라에서 왕족인 성골이나 진골 아래 6두품은 6품인 아찬(阿飡)까지로 제한되었고,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최고위직은 왕족 진골만이 도맡게 되어 있었다.

 신라에서 골품 외에 자신의 경륜을 정치로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는 당시 세계 제국이라고까지 불린 당(唐)의 과거에 급제하여 경력을 쌓는 것에 있었다. 능력 있는 외국인에게도 후하게 기회를 주었던 당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학문적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귀국 후 왕의 근신(近臣)으로서 출사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12살밖에 안된 어린 최치원을 머나먼 당으로 유학길에 떠나보내며 견일은 아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당에서 10년 안에 급제하지 못하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작가의 말
 

  시인으로 살면서 소설 쓰기에 꿈을 버리지못했다. 어느날 전생을 체험하면서 글로 써진 것이 동희 소설이다. 나의 전생의 알음아리는 너무 놀라워 믿음으로 인정하게에 의문과 의문을 통해 확인하고 글로 인정 되었다. 지난 삶이야 그러했지만 전생의 삶에 너무 놀라웠다. 신라말 최치원의 인물이 전생 내 부모라는 울림을 인정하기에 대가성을 논하여야 했다. 언어가 줄줄이 받아쓰기에 바빴다. 있음직한 일들이 까만 글씨로 채워질 때 아, 늦었지만 소설 심을 외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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