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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아지랑이 행복
작가 : 위니초이
작품등록일 : 2019.10.17

행복으로만 가득 채워도 부족한 아홉살의 어린 소녀가 일순간에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공동체 안에서 다시금 희망과 소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 버튼 한번 눌렀을 뿐인데...
작성일 : 19-10-17 17:35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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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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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은 적당히 따뜻하고 화창했다, 나는 늘 그렇듯이 정원 의자에서 아빠가 해외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선물로 사온 바비 인형과 대화를 나누며 인형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바비와 나는 오직 서로만 의지하는 아주 사랑스럽고 좋은 친구였다. 나는 그의 이름을 그냥 바비도 아니고 내사랑 바비라고 지었다. 내사랑 바비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판사인 아빠와 심장외과 의사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외동딸로 항상 바쁜 부모님 덕분에 집안 일을 도와 주는 이모와 함께 있는게 다반사였다. 아빠 엄마와는 일주일에 두세번 저녁 한끼 먹는게 다 였고 더 운이 좋을 때는 아침에도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침은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아빠와 엄마가 볼에 뽀뽀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출근하는게 보통이었기에, 아빠 엄마와의 식사 시간은 내가 아주 많이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보다는 아빠 엄마와 대화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내게 소중했냐면 내사랑 바비와의 놀이도 양보해 줄 수 있을 만큼 이었다.

 

  그날 나는 정원 의자가 아닌 정원에 있는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아 한참을 내사랑 바비와의 대화에 심취해 있었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호출이 반가워 쪼르르 한걸음에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식탁의 지정된 내 자리에 앉아 막 밥을 먹으려고 하던 찰나에 정원 의자에 두고 온 내사랑 바비가 생각이 났다. 잠시라도 나의 바비가 외롭게 있는건 싫었다. 제빠르게 가서 내사랑 바비만가져 와서 식탁에 함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잠시 내사랑 바비를 가지러 가는 일이, 그게 그렇게 긴 시간이 되고 영원한 끝이 될 줄은 몰랐다.

 

  내사랑 바비를 가지러 식탁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나오는 길에 대문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이제 9살 언니니까 그정도 응답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인터폰 버튼을 누르고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택배입니다‘ 라는 대답에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잽싸게 정원에 있는 내사랑 바비에게 달려갔다. 나무에 걸쳐 기대어 있는 바비를 주우려고 엎드리는데 모자를 쓰고 검은 마스크를 한 남자가 현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얼핏 보았다.

 

  바비를 주워서 손에 꼭 쥐고 다시 고개를 든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우리집은 현관 왼쪽은 거실과 서재 그리고 몇개의 방들, 오른쪽은 주방, 2층은 가족들 침실, 지하는 다용도 공간과 아주머니 방이 있었다. 그런데 마땅히 식탁에 있어야 할 아빠, 엄마가 거실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고,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한 남자의 손에는 거실등에 비추어 날이 반짝이는 칼이 들려 있었고 그 칼끝은 아빠 엄마를 겨누고 있었다.

 

  얼떨결에 그 장면을 본 나는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렸고, 다행이 화단이 나를 가려 주고 있었다. 중간 중간 고개를 조금 들고 보면 그들은 뭔가 격렬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것 같았고, 검은 마스크의 남자는 여전히 칼을 겨누고 심한 몸짓에 격하게 흥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것은 내 인생 9년을 통털어 가장 큰 공포의 순간이었다. 그저 땅바닥에 머리를 밖고 있는 것 밖에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얼마를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날은 이미 깜깜해졌고 스산한 바람까지 불어 온몸이 꽁꽁 얼어 붙은거 같았다. 아마 그때 내사랑 바비가 나와 같이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버티고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도저히 더이상 여기서 견딜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봤다. 마침 창가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 있던 아빠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빠는 어떠한 입술의 움직임도 얼굴표정의 변화도 없었지만, 애절한 눈빛으로 내게 숨어 있으라고 간절하게 말하는거 같았다. 나는 계속 차디 찬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아니 공포에 질리고 추위에 지친 나는 땅바닥과 하나가 된 듯 내사랑 바비를 품에 꼭 끌어안고 아예 누워 있었다.

 

  갑자기 집안에서 엄청난 몸싸움이 일어난 듯한 소리와 소름돋는 비명이 들이 들리더니, 조금 후에 현관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나는 땅바닥에서 한손은 내 입을 막고 한손에는 내사랑 바비를 꼭 쥐고 눈까지 질끈 감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대문 소리가 났다. 검은 마스크의 남자가 대문밖으로 나간 것 같았지만 공포와 두려움에 고개들어 확인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은 공포의 절정이었다.

 

  꼼짝을 할 수 없었던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그냥 계속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차가운 줄도 못 느낄 만큼 소변을 지렸는데도 모를 만큼 극한의 긴장과 공포가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묶어 놓은 듯 손가락 하나 조차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누가 부르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이모였다. 집안일도 봐주고 또 나를 돌봐주는 이모, 옛날말로 하면 유모같은 분이었다. 이모는 땅바닥에 거의 기절상태로 누워 있는 나를 벌떡 들어 안고 집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데 경찰에 신고하는 것 같았다.

 

  지하에서 세탁물을 정리하던 이모는 윗층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난 것을 인지하고 지하실 뒷문으로 나가 창고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이모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은 마치 암흑속에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이모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입에서 손을 뗄 수 있었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내사랑 바비를 여전히 손에 꼭 쥐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스르르 눈이 감아지고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이것이 내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이었고, 내 인생을 통째로 뒤집어 놓을 사건이 되었다. 겨우 아홉살의 나이에 죽음이란게 무엇인지도 잘 모를 나이에, 아빠 엄마가 나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잘난척 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면 아직도 아빠 엄마는 살아 있었을 것이고, 나의 멍청한 행동의 결과로 나는 고아가 된 것이었다. 동시에 이제 내 곁에는 이모밖에 없는데, 이모마저 나를 저주받은 아이로 생각하여 떠나버리면 하는 생각에 이모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이모는 내사랑 바비를 병원까지 가지고 와서 나를 최대한 안정시키려 노력했고 또 나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실 이모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키워 줬고, 나를 많이 사랑하고 예뻐해 줬다. 내가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해도 단 한번도 내게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낸 적이 없이, 그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다시 그러지 않으면 되는거야, 약속할꺼지”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이모의 훈계에는 도저히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는 큰 힘이 있었기에 나는 약속을 꼭 지키는 좋은 습관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속으로 계속 말했다. ‘이모가 나를 떠날리 없어. 이모는 나를 사랑하니까 떠나지 않을꺼야’ 되뇌이고 되뇌이다가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는지 내가 눈을 떴을 때는 팔에는 링거가 달려 있었고, 경찰 아저씨들이 주위에 있었다. 물론 이모도 내사랑 바비도 있었다. 경찰들은 내게 계속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었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사실을 말하는 순간 아빠 엄마는 나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알리게 되는 것이고, 마치 내가 감옥에 갈 것 같아서였다. 계속해서 내게 추궁하듯 질문을 해대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이모는 이제 그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나를 꼭 끌어 안으며 지금 충격에 빠져 정신도 못차리는 아이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 아니냐고 화를 내며 소리까지 쳤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본 이모의 화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모를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적어도 세상에 나 혼자는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순간 아빠 엄마의 죽음을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빨리 받아들이는 나 자신에 실망했다. 나 때문에 죽었는데, 검은 마스크의 아저씨가 아니라 내가 아빠 엄마를 죽인 범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모라는 존재에 안도하고 안심하는 내 자신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아홉살 꼬마 아이에게는 정말 낯설고 어려운 고민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홉살 꼬마 때 일어난 엄청난 사건, 내 아빠 엄마의 죽음의 원인을 스물 두살이 된 지금도 나는 모르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사건은 TV에도 신문에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고 친척들도 지인들도 아무도 나에게는 말해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는 이모까지도 함구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그 사건은 아예 나오지를 않았다.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한건 사실이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아홉살 꼬마때 처럼 아빠 엄마가 나 때문에 죽었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겨우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인 내가 상주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 상주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홉살 꼬마는 이제 다시는 아빠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피가 섞인 친척들 보다도 내게 익숙한 이모 손만 꼭 잡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 순간에도 다른 한 손에는 내사랑 바비가 들려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모두가 한결같았다. 이제 세상에 혼자 남은 불쌍한 고아가 된 어린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쌍히 여기는 말들이 전부였다. “아빠 엄마가 하늘에서 늘 지켜 보고 있으니까 씩씩하게 살아야 해. 혼자라고 기죽지 말고 어려운 일 있으면 내게 연락해 꼭. 이 어린 것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라는 식의 말들을 마치 정해진 대본을 읽듯이 모두가 내게 한번씩은 말해줬다.

 

  그때 나는 눈물도 많이 흘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이모가 어디론가 떠나 버릴까봐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 부모에 대한 슬픔보다, 남이 있는 이모에 대한 미련이 더 컸다는 것은, 어쩌면 그때는 아직 죽음이란게 영원한 이별을 뜻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나는 불쌍하고 가련하지만 아주 괘씸한 아홉살 꼬마를 이해해 보려고 할 뿐이다.

 

  장례식을 마친 후 일가 친적들간에 공식적인 회의 아닌 회의가 며칠동안 이어졌다. 안건은 홀로 남은 아홉살 꼬마 여자아이를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이모와 내사랑 바비와 함께 이모방에 있거나 내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한번씩 고함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깊은 한숨 소리가 내가 있는 곳까지 스며들고는 했다. 사실 그건 회의가 아니라 난상토론 같은 느낌이어다. 그들이 나누어야 할 문제는 또 있었다. 누가 나의 법정 후견인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빠 엄마는 상당한 재산을 남겨 놓고 떠났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법정 후견인이 되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았지만, 나의 법정 후견인을 맡음과 동시에 나에 대한 양육도 같이 해야 된다는 사실에 모두들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스물두살이 된 지금의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홉살 꼬마 아이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가 밉고 싫기만 했을 뿐이어다.

 

  그럴수록 나는 이모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고,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내 스스로에게 마구 심어주는 노력을 정말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사랑 바비는 당연히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당시 나는 이모와 내사랑 바비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이모의 사랑 받기 위해 이모에게 잘 보일 생각과 행동만 하면서 한동안 살았던 것 같다.

 

  드디어 나에 대한 모든 문제가 결정된 것 같다. 모두들 엄숙한 분위기로 거실에 모여 앉아 이모와 나를 불렀다. 물론 그 순간에도 내사랑 바비는 나와 함께 있었다.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에 모인 이 사람들에 의해서 나의 운명이 결정될꺼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모와 헤어지고 다른 집으로 가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또 한번 정말로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먼저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에게 계속 나와 같이 이 집에서 생활해 줄 수 있겠냐는 질문을 했고, 이모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같이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눈에는 이모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이모의 대답을 들은 할아버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법정 후견인은 할아버지가 맡을 것이며, 앞으로 큰 아빠 작은 아빠가 나와 함께 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큰 아빠 가족과 작은 아빠 가족이 나와 함께 살것이라는 건지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이 집은 여러 사람이 살기에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큰집이고, 나도 계속 살던 집에서 사는게 익숙하고 편안할 것 같아서 큰 아빠와 작은 아빠가 나를 위해 희생하여 같이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들의 선심에 대한 굉장한 유세처럼 들렸다.

 

  우리집이 굉장히 큰집인건 사실이다. 그런데 큰 아빠 가족이 넷, 작은 아빠 가족이 넷, 그리고 이모와 나까지 하면, 이 집에서 무려 열명이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왠지 아빠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집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나의 소중한 기억들을 흐려 놓을 것 같은 기분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아홉살 꼬마였던 나에게는 어떤 선택의 권한 같은건 전혀 없었다. 그저 그들의 처분에 따라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결정이 내려진 후에 우리집은 한달 정도 대공사에 들어갔다. 아무리 크고 방이 많은 집이기는 해도, 열명이 살기에 적합한 집으로 개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도 싫었다. 그냥 그대로 두고 살고 싶었다. 아빠 엄마와의 모든 추억도 개조 되는 것처럼 집을 고치는 일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큰 아빠면 큰 아빠 작은 아빠면 작은 아빠 한 가족만 같이 살면 될 것이지 왜 두 가족이 모두 이 집에서 함께 살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않갔다.

 

  나중에 미루어 짐작해서 알게 된 것인데, 어느 한 사람만 희생하기 싫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조카이고 피가 섞인 혈육이라 할지라도 모두 각자의 가정이 있었기에 부모 잃은 상처 가득한 조카까지 데리고 살기는 싫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미 너무 연로하여 나를 키워주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아빠의 삼형제 중 남은 두 형제 모두 희생하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진 것이었다.

 

  큰 아빠와 작은 아빠도 어느 한쪽만 희생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편을 택하자고 합의를 봤고, 어차피 할아버지 명령은 어길 수가 없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살리고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큰 아빠와 작은 아빠 가족과의 어쩔 수 없는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 모든 결정에는 내 입장과 의견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나를 이해서 내가 살던 익숙한 집에서 살기로 했다는 궁색한 변명은, 사실은 큰 아빠도 작은 아빠도 나까지 들어가서 살 만한 여유가 없는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 자기들 가족만 사용하면 되는 구조의 집에 살고 있었으니까 객식구가 들어갈 공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 집을 구입하느니 그냥 이집에서 살기로 한 것이었다.

 

  일층에 거실 뒤쪽으로 있는 방은 작은 아빠가 사용하기로 했고, 거실 앞족에 있는 방은 큰 아빠가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는 방은 큰 아빠와 작은 아빠의 서재로 쓰기로 하였다. 2층에 있던 방 두개는 하나는 여자 형제들이 또 하나는 남자 형제들의 방으로 사용하였다.

 남자 형제가 둘이고 여자 형제가 둘이니 나까지 합하면, 여자들은 셋이서 방을 같이 써야 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 둘과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 다섯이 한집에 모여 사는 것을 보면서 나름 뿌듯해 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모두 같이 함께 살게 되면서 여러가지 규약들이 생겨났다. 그 첫번째가 매주 토요일 저녁은 별일이 없는 한 우리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같이 모여서 이야기도 하는 가족모임도 하였다. 둘째 아들 내외가 함께 없다는 점만 뺀다면, 겉보기에는 아주 화목한 가족들인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겨우 세식구 살림과 나를 돌봐주는 일만 했던 이모가 갑자기 열명의 식구가 되어 버린 살림을 하려면 힘에 부칠 것이라고, 큰 엄마와 작은 엄마에게 집안 살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매번 만날 때마다 녹음기 처럼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이모에게 매우 친절했고 고마워 했으며 때마다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 줬다는 말을 나중에야 듣기도 했다.

 

  집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조용할 날이 없었던건 부모를 잃은 나에게는 딴 생각을 안하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식구가 많아도 그들속에 진정한 가족으로 낄 수 없는 혼자임을 느끼는 일은 나를 더욱 외롭고 서글프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이 집에 사는 다섯명의 아이들 중에 부모가 없는 아이는 나뿐이었다. 전에는 가족끼리 외식도 많이 했었다고 언니가 말할 때는 이유없이 죄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어렸어도 나는 영리하고 충분히 약았었다. 겨우 아홉살 꼬마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언니에게 외식은 못할지 몰라도 내 덕분에 이렇게 크고 좋은 집에 사는건 행운인줄 알라고 큰소리를 치는 어이없는 일도 많이 있었다. 그런 일로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건 일종의 가치없는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열명의 대가족이 함꼐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마냥 나쁘지도 않았다. 장례식 직후에 나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겼을 때는 모두들 각자의 입장 때문에 이견도 많았지만,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큰 아빠도 큰 엄마도 작은 아빠도 작은 아빠도 정말 내게 최선을 다해 주었다. 자신들의 아이들보다 조카인 나를 먼저 챙기는 일도 많아서 가끔 다른 아이들이 불만을 터트리고는 하였다. 누가 친자식인줄 좀 알라고 큰소리치다가 크게 혼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밖에 나가서는 그냥 아빠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였는데, 아빠가 둘이고 엄마가 둘인건 좀 이상한 일인 것 같았고,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나에게는 진짜 아빠 엄마가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다.

 
작가의 말
 

 아홉살 어린 아이의 생존기, 갑자기 생성된 가족 공동체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내는 이야기, 이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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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버튼 한번 눌렀을 뿐인데... 2019 / 10 / 17 314 0 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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