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이었다.
오직 어둠만이 내려앉은 이곳은 죽음과도 같았다. 이곳에 ‘나’라는 존재가 정녕 존재하는 것은 맞는지 현실감마저 잃을 것 같은 지독한 고독감에 심장이 죄어왔다. 그래, 아직 난 살아 있구나. 고통만이 존재의 근거요, 벗이었다.
달빛이 반짝이는 잔물결에
순결한 천녀날개 나리어라
그린네 그리며 기도하라
나는 여기에 있노라. 누군가에게 알리기라도 하듯 노래를 불렀다. 몹시도 구슬픈 가락이었다. 가락은 누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지 가만히 떨리며 퍼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온 세상 하얀 바람 불어오면
새벽에 물든 하늘 오시겠네
그린네 그리며 기도하라
습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비가 내릴 것이었다. 이왕이면 많이 내리거라. 이 내 마음 다 씻겨 내려가도록. 자꾸만 일그러지는 미간을 애써 진정시키며 가락을 이었다.
자꾸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도 보고 싶으나 볼 수 없는 그 얼굴. 꿈에서나 겨우 그의 얼굴을 만질 수 있었다. 허나 아무런 체온을 느낄 수 없었다. 꿈에서 겨우 만난 그는 아무런 체온을 남기지 못한 채 현실이란 어둠 속으로 흩어져 버리곤 했다.
이 생명이 끊어지면 그네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이유는, 쉬이 놓지 못한 헛된 희망 때문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구름이 토해내는 소리도 무척 구슬펐다.
그래, 구름아. 나 대신 눈물을 모두 흘려 다오. 매정할 정도로 매마르게 해다오.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구름아, 구름아. 대신 내 님의 머리 위에는 눈물을 흘리지 마오. 슬프지 않게. 아프지 않게.
끊어질 듯한 구슬픈 가락은 새벽내 내린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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