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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여행의 목적
작가 : 랑글렛
작품등록일 : 2019.9.2

임도훈. 33세. 직장을 잃고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어느날 명품 브랜드 지사장의 불륜여행을 대신해 3박 4일 하와이 위장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여자, 지성을 보고 반하게 된다.

유지성. 31세. G랜드 그룹의 임원이자 백화점 사장. 세한그룹의 임원과 약혼 뒤 쇼윈도 부부로 지내던 중,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면서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 남자. 도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3박 4일 하와이 여행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의 시작. 그 이후의 이야기.

 
1화. 정체모를 고수익 아르바이트의 정체?!
작성일 : 19-09-02 03:02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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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8시까지 G랜드 VIP라운지로 오십시오.]

 

 “vip라운지라니…… 갑부는 역시 다르구나.”

 

 도훈은 한숨을 내쉬며 메시지의 지시사항을 따라 공항으로 들어갔다. 밤이 어둑해진 저녁의 공항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도훈은 곧장 안내데스크로 가서 직원에게 라운지의 위치를 물었다. 직원이 손바닥을 펴 오른편 에스컬레이터를 가리켰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되겠습니다.”

 

 직원의 말대로 올라가자, 바로 건너편에 라고 쓰인 널따란 곳이 나타났다. 여행사에서 일하며 자주 공항에 들르면서도 한 번도 본적 없는 곳이었다. 실은 VIP고객 전용 라운지라는 게 있는 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입구로 걸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VIP 라운지답게 말끔한 외모와 말끔한 옷차림이었다. 헐렁한 티셔츠 한 장만 걸친 그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저희 백화점 VIP 고객이신가요?”

 

 “최태호……대표님이 부르셨는데……”

 

 “들어오십시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들어서자,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넓은 라운지는 흡사 고급 비즈니스호텔의 로비에 와있는 것 같았다. 벽 쪽 테이블에는 빵과 과일, 음료수 등이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통유리 창으로 된 바깥쪽은 블라인드가 쳐져 들어오는 햇빛을 막았다.

 

 “안쪽 게스트 룸으로 들어가십시오.”

 

 직원은 사람이 몇 명 없는 라운지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게스트 룸으로 안내했다. 돈이 많으면 VIP라운지 안에서도 룸을 이용하는 구나. 도훈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잔뜩 주눅이든 채 안내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는 곳이었다. 총 4개의 룸이 있었는데 3번 룸 앞에 검정색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쭈뼛거리며 서있던 도훈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임도훈씨?”

 

 “네, 맞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십시오.”

 

 덩치 큰 남자 때문에 더욱 주눅이든 도훈이 3번 룸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기척이 아니라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놀람과 동시에 덩치 큰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두꺼운 손을 펼쳐 그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나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그는 어리벙벙한 상태로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1분 정도가 지났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안에 최태호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한 여자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태호는 한쪽 팔을 여자의 어깨위에 올린 채 다리를 꼬고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자는 산만하게 엉킨 긴 생머리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해외 명품 브랜드 CRO의 한국 지사장 최태호. 그에 관해선 매스컴 기사와 첨부된 사진을 통해서 미리 숙지한 상태였다. 유명 기업 창업주의 아들로,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 곧바로 CRO의 지사장 자리에 앉게 된 전형적인 금수저 인물형이었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명품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은 여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앉아.”

 

 도훈은 태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태호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도훈을 살폈다. 그는 태호의 눈빛이 몹시 꺼림칙했다. 태호의 옆에 앉은 여자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안 되는 듯 몸을 옆으로 돌린 채 고개를 내리깔고 있었다. 도훈의 눈빛이 자연스럽게 여자를 흘깃거렸다. 얼굴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이 낯설었다. 그러나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태호가 탁자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들고서 도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태호의 눈빛만 봐도 피가 말리는 것 같이 힘들었다.

 

 “여행사 다녔다고?”

 

 “예, 맞습니다.”

 

 태호가 휴대폰으로 도훈의 이력서를 훑었다. 중소규모 허니문 여행사 경력 5년. 영어 회화 가능. 그밖에 내세울 것 없는 자잘한 업무 경험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하와이 가본 적 있나?”

 

 “예, 그렇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원하시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도훈이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최태호의 3박 4일 하와이 일정의 임시 비서직이었다. 여행사에 근무할 적 만난 친구의 소개로 맡은 일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목적으로 가는 여행인지, 어떤 장소에 들르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입도 무겁고, 착실하고, 말도 잘 듣는 놈이라던데?”

 

 태호가 계산적인 눈빛으로 도훈을 흘겼다. 그는 태호의 어감에서 일적으로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감수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꽤 높은 보수였고 그에겐 돈이 필요했다. 불편한 감정이 들더라도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제발 범죄와 관련된 일만 아니길 바랐다.

 

 “너 얼마 받기로 되어있냐?”

 

 “숙식 제공에……백만 원……입니다.”

 

 “뭐야, 그것 밖에 안 돼?”

 

 태호가 도훈을 향해 검지와 중지를 펼쳐 브이를 만들었다. 두 손가락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그는 어리둥절했다.

 

 “두 배 줄게.”

 

 도훈이 흠칫 놀랐다.

 

 “해외 잠깐 나가는데 비서는 무슨 비서야? 웃기지도 않지, 내가 외딴 곳에서 앞가림도 못할 사람으로 보여?”

 

 태호가 주머니에서 카드를 한 장 꺼내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였다. 일명 부의 상징이라 불리는 카드. 도훈은 실물로 본 적 없던 블랙카드를 목격하고는 자연스레 입이 벌어졌다.

 

 “3박 4일 동안 이거 갖고 다니면서 놀아. 내 체면이 있으니까 이상한 곳, 어디 유흥업소나 길거리 후진데 가면 넌 뒤지는 거야. 호텔이든 어디든 이 카드 들고 발 도장 찍고 다니면 돼. 내 행세한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고급지게. 날 아는 사람이 혹시 물어보면 대충 대리인이라고 둘러대고. 정신 못 차리고 카드 갖다가 집 한 채 장만하면 알지?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적당한 선에서 사도 돼. 네 목숨 부지할 만큼만. 그리고 귀국해서 보고서 제출.”

 

 태호가 탁,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도훈은 태호가 던진 미션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쩐지 의문점이 많았던 임시비서 일은 다름 아닌 위장여행이었던 것이다. 범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왜? 그는 벙찐 표정으로 최태호와 옆에 앉은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순간 눈길이 여자에게서 멈췄다. 설마…… 불륜인가? 그런데 태호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매스컴에 나와 있지 않았다.

 

 “혹시 이분이랑……”

 

 도훈이 동그랗게 커진 두 눈으로 태호를 쳐다봤다. 태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참나, 이거 안 될 놈이네.”

 

 태호가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대뜸 도훈에게 세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내가 얘랑 만나는 거 입 닫는 조건으로 세 배. 됐냐? 만약 알려지면 팔 하나 내놓는 거야.”

 

 “예?”

 

 도훈의 시선이 정체모를 여자에게 고정됐다. 대체 누구기에 그러는 걸까? 그는 의도치 않게 불어난 보수에 얼떨떨했다. 부자들의 불륜 행각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건데……. 도훈은 그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액수에 더 감탄했다.

 

 “아, 맞다, 맞다. 깜빡할 뻔 했네.”

 

 태호가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물건들 사이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냈다. CRO의 로고가 그려진 결재 서류였다.

 

 “하필 또 이런 귀찮은 게 있어 가지고. 첫날 호텔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별건 아니고. 가서 대리인이라고 하고 사인 좀 받아와. 높으신 분이니까 딴소리 말고 얌전히 사인만 받아. 협의는 다 끝난 일이니까 다른 얘기할거 없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아니니까 그냥 찍소리도 하지 마. 그러면 자, 마무리해서 네 배…… 됐고, 깔끔하게 다섯 배 줄게.”

 

 도훈의 입이 딱 벌어졌다. 3박 4일 일정에 오백만원이라니, 심지어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놀고먹으면서 돈을 받는다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 혼자 여행을 가면 대표님께서는 뭘…….”

 

 “야 인마, 넌 눈치가 없냐?”

 

 태호가 손바닥으로 소파 옆에 있는 캐리어를 툭툭 쳤다. 도훈은 그제야 작은 캐리어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하와이에 가는 척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날 속셈인 건가. 그 유명한 위장여행이었다.

 

 “토 달지 말고 시킨 거만 잘해. 이놈 이거 보니까 사고 치겠는데? 손가락 하나 자르고 시작할까?”

 

 태호가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깔깔 웃으며 말했다. 도훈은 태호가 웃는 표정을 보고선 소름이 끼쳤다. 살인마 광대 조커를 보는 것 같았다. 장난으로라도 손가락을 자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

 

 “아, 아닙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세상에 이만한 일자리 없다. 복 받은 거야 인마. 나가봐.”

 

 태호가 킥킥거리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도훈은 벌떡 일어나 태호를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재밌는 놈이네.”

 

 태호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도훈은 서류와 자신의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그는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그 순간, 문틈 사이로 태호의 옆에 앉은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어제끼는 모습이 잠깐 동안 비쳤다.

 

 “분명히 어디서 본적…… 아, 맞다!”

 

 도훈은 전기충격을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왜 몰랐을까. 여자는 바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미녀 연예인 H였다. 톱스타 배우인 그녀는 최근에 결혼을 해서 부부동반 예능에 출연 중이었다. 불륜의 주체는 태호가 아닌 연예인H였다. 이제야 의문투성이였던 정체모를 여행에 대한 진실이 드러났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방송계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최태호가 정말로 자신의 팔을 자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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