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선과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여러 갈래의 교차로 위를 지나는, 복잡한 다리 위에서. 도통 시원하게 지나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전쟁이 멈추었을 텐데.
노란 가로등이 수놓은 밤의 도로를 꽉 메운 채, 빵빵거리며 제 주장을 하는 자동차들의 모습은 전쟁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방금 막 평화에 대한 공익 광고를 마친 라디오의 다음 이야기는 어디 사는지도 모를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라니, 요즘 세상은 확실히 무언가 이상합니다. 그 옛날 전란 속에서 죽어간 사람조차 스스로 죽기를 택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총알도 무기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요즘은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자살까지 몰고 가는 것일까요. 차가운 유리빌딩들도, 복잡한 차선과 그곳을 가득 메운 차량들도, 타인을 무참하게 죽일 정도로 성나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그걸 알 수 없기에 다들 방황하는 것이라지만, 정말 무엇일까요.
교과서를 펴고 펜을 놀릴 무렵까지는 적어도 답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답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호등도, 차선도, 규칙들도 범람할 정도로 많지만, 실상은 뒤죽박죽 엉켜 경적만 빵빵. 어딘지 겉도는 그런 기준들을 따라 헛바퀴만 쎄빠지게 돌다보니 이제는 힘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여차저차 얻어낸 ‘감정’이라는 결론 하나가 옆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게 딱히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렇기에 제가 이 책을 통해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결론이나 가르침이 아닙니다. 애초에 저부터가 아스팔트 위에서 신나게 허우적대는 중이니 굳이 말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만, 바로 그 과정에서 얻은 까만 얼룩과 수두룩한 상처들이야말로 현재 제가 가진 전부이자,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고통과 체념, 그리고 방황.
어때요, 꽤나 기분 나쁜 녀석들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만, 이게 또 남의 것이라면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물론 독자분의 것과 겹칠 수도 있겠지요. 저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은 단연코 아닐 테니까요. 그 때에는 커피를 홀짝이며 그저 공감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인상을 찌푸려도 상관없어요. 손에 쥐고 있는 커피며 술잔부터가 그렇듯이, 쓰기만 한 걸 저희 저희는 생각보다 즐겨 찾습니다. 어째서인지는 역시나 모르겠지만 말이죠.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말하고 싶은 바는, 저는 그런 멋없고 추한 감정들을 글과 연출로서 담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답답한 속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공간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결과가 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뒤에 산더미처럼 싸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글들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으므로 이만 각설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Guernica for the city』, 도시를 위한 전란.
어서 가서 맞이해 주세요.
발 동동 구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