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깜깜한 공간, 발가벗은 한 남자가 온몸을 바르르 떨며 눈을 떴다.
그의 육체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공중에 떠다니는 중이었다.
여긴 어디야? 무슨 일이지, 이게?...
맞아, 준성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혜리하고 나머지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같이 숲을 헤맸던 거 같은데...
그놈의 술, 술집 여자 때문에, 걘 도대체 뭐였...
으아아악!
찬찬히 기억을 더듬으려던 그는 갑자기 비명을 질러댔고, 순간 그의 눈에선 붉은빛이 번쩍였다.
방금 막 생각해내던 기억들이 온갖 신경을 건드려가며 그의 뇌리를 스쳐 빠져나갔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얘들아, 여보, 혜리야...
남자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그 붉은빛은 그에게서 모두 빠져나와 사라졌고, 탁한 눈만이 남았다.
이내 남자는 다시 정신을 잃었고, 그의 몸뚱이는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 신세였다.
띠링! 띵! 띵!
얼마가 지났을까?
공간 저 멀리에서 황금빛을 띄는 점 셋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점점 빛줄기를 그으며 그 몸뚱이 쪽으로 다가갔다.
-숲 속, 도망치는 삼형제-
한 여자가 어린 남자아이 셋이 보는 앞에서 한 남자의 다리를 힘껏 붙들었다.
“여보, 이제 그만요! 제발! 저 어린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래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네?”
다리에 붙은 여자의 애절한 호소는 남자의 안중엔 들어오지 못했다.
붉은 빛이 감도는 그의 눈은 한 아이에게로 향했다.
여자를 뿌리치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제일 나이어린 아이를 노려볼 뿐이었다.
참으로 몸집이 작고 다리와 팔 한쪽이 불편한 아이였다.
“준서야, 준상아, 어서 막내 데리고 도망가! 어서!”
여자는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남자를 붙든 채 소리쳤다.
“계속 뛰어! 멈추지 말고!”
여자는 계속해서 소리치며 흐느꼈다.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보면 울창한 숲이 펼쳐져있다.
그 숲 가까이엔 푸르른 바다가 인접해있기도 하다.
그 울창한 숲 한 가운데에는 집 한 채가 숲을 울타리삼아 숨어있다.
한번 보면 누구나,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버킷리스트에 추가시킬 만한 자연경관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밤, 보름달이 내려다보던 그 숲은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그 집 앞에 쓰러져 흐느끼는 여자의 절규소리가 온 숲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그 절규를 발판삼아 삼형제로 보이는 아이들은 온갖 넝쿨을 헤치며 무언가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쳤다.
제일 덩치가 큰 아이가 몸이 불편한 막내를 안고 뛰느라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을 감싸는 끈적끈적한 거미줄구석 길쭉하게 걸터앉은 거미라던가
슥, 스윽 다리를 훑거나 밟히는 능글능글한 뱀 따위들은 그들의 공포요소들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공포의 대상은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쫓아오는, 채찍을 든 남자였다.
그는 어느새 아이들 뒤를 바짝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