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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그것 또한 슬픔
작가 : 리에토라비타
작품등록일 : 2018.12.11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슬픈 것 이라는 생각을 가진 한 여자가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

 
외할머니의 침대
작성일 : 18-12-11 11:14     조회 : 515     추천 : 0     분량 : 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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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평소 이웃들과 교류가 있었던 분이 아니었던지라,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자식들의 거주지도 전부 서울, 경기도 지역이었기에, 무안까지 인사치레 겸 오는 손님들도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오전부터 오후 내내까지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먼 타지에서 달려온 할머니의 손주 손녀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밤9시가 되니 제법 오고 간 사람들이 많아졌다. A는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육개장과 반찬들이 큰 쟁반 가득 담겨 있는 음식들을 날랐다. 사람들이 떠나고 빈 테이블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 상을 치웠다. 양 손 곳곳에 갖가지 음식 양념이 손에 묻는 것 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누군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A를 칭찬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지만, 그럴때도 조금의 동요없이 제 할일을 했다.

 

 11시가 조금 넘자 썰물처럼 빠져 나간 손님들은 아예 발길이 뚝 끊겼다.

 가족들 중 몇몇은 벌써 피곤함을 이유로 상을 치르는 가족들을 위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고, 그 중 한 둘은 도란도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A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는 곳,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진을 한번 보다가 그 앞에 널려져 있는 음식들에 시선을 훑고 나서 거의 다 타들어가는 향에 시선을 멈췄다.

 A의 시선이 아니었더라면 이번에도 외로운 연기만 솔솔 흘러나오는 향을 꺼뜨릴 뻔 했다.

 조용히 다가가 손을 뻗어 새로운 향 몇개를 집어들고 불을 붙여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할머니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표정없는 얼굴. 그 흔한 고운 한복 한 벌도 없어, 저고리는 사진관에서 제공해주는 흔하디 흔한 남의 손을 많이 탄 저고리로 대신 하였다.

 

 "어차피 나 죽으면 다 꼬실러 버릴텐데 돈 버리게 뭣하러 사!"

 

 그게 벌써 20년도 훌쩍 지난 일.

 할머니는 당신이 그 긴 세월을 더 살아 낼 줄 알았더라면, 영정사진때 입고 찍을 옷 한 벌쯤은 마련해 두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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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저건 뭐야?

 

 어느날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고 누워 있으려는 심산으로 장롱문을 열어 베계를 꺼내다 A의 눈에 넓직한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잉, 그거 할매 옷이여."

 

 "옷? 옷을 왜 저기에 넣어놨어?"

 

 "아니 그거 그냥 냅둬. 그거 저승갈때 입을라고 할매가 사논거여."

 

 할머니는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걸레를 잡고 방바닥을 훔쳐내다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다시 방을 닦는가 싶더니 다시 장롱안에 있는 상자를 쳐다보다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상자를 빼내었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 놓은 상자위를 마른 손바닥으로 가볍게 쓸어내고 열었다.

 

 "이거 윗집 할매 살때 할매도 같이 사논거여. 그때 할아버지꺼랑 같이. 이거가 그랑께 기계로 안허고 사람이 다 손으로 짠거여 틀로다가. 틀에 이라고 실을 끼어 놓고 하나씩 하나씩 사람손으로 다 맹그른거. 그렇게 해야 죽어서도 좋은길로 간다 하더라."

 

 수의를 처음 본 A는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렇게 정정하신데, 뭘 수의를 이렇게 빨리 준비했어... 슬퍼지게.."

 

 "하이구, 내가 나이가 벌써 몇인디 그럼 진작 이런거 해놔야지 안 해노믄 쓰것냐. 무섭기는 뭐... 늙으면 언능 다 죽어야지, 오래 살아서 뭐하겄냐?"

 

 "에이, 그래도 그러지말고, 오래오래 사셔서 나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 놓는것도 보고 그래야지~"

 

 A의 애교에 그래도 기분은 좋으신지 A의 손을 한번 꼭 잡아주신다.

 

 "우리A는 꼭 좋은 사람이랑 결혼해라잉. 할매처럼 없는 집에 시집와서 평생 고생만하고 그라고 살믄 안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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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에서의 할머니의 마지막 밤은 냉정하게 짧았다.

 요양원 직원도 다니지 않는 그 새까만 시간에 홀로 저승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익숙해진 기저귀에 한 가득 소변을 보고 변을 내놓고, 초점없는 눈빛으로 익숙한 어둠속을 한번 둘러보고,

 온 힘을 다해 텁텁한 병실 안 공기를 양껏 마시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나지막히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십 수년전 먼저 떠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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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누워 계신 장례식장 영안실에는 문 밖은 벌써부터 곡소리로 가득했다.

 문이 열리고 코끝을 자극하는 화학 약품 냄새가 풍겨오는 방으로 들어가면, 노란색 삼베 천이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덮여있는 할머니의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가족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침대 언저리에서 그 침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곡소리는 더욱 커졌다. 어느 죽은자와 마찬가지로 할머니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양 발, 양 손 가지런히 붙이고 까슬까슬한 노란 천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여기 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곡소리는 끝을 모르고 커져갔고, 할머니의 딸들은 커지는 울음이 몸부림으로 이어져, 조금은 더 울음을 삼킬 수 있는 가족들이 부축해주어, 온 몸 구석구석 축적된 슬픔을 내뱉을 수 있게 지탱해 주었다.

 A도 할머니의 큰딸인 엄마를 안아 주었다.

 

  "엄마!...................엄마!.......가지마!........"

 

  "아아악!.... 엄마라고...흐윽...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진다... 엄마... 엄마...!"

 

 딸들의 울부짖음이 끝을 모르고 허공에 흩어지고, 어느새 눈시울이 빨갛게 젖어든 장의사가 작은 헛기침으로 가족들의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 OOO할머님은 1928년 3월 19일에 태어나 2017년 7월 29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02시 17분 OOO님이 OO요양원에서 사망하셨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기위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묵념이 지나고 장의사가 말을 이어갔다.

 

 "가족분들 모두 OOO할머님 곁으로 와주십시요. 지금부터 OOO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보내드리기 전에 잠시 얼굴보고 인사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장의사의 안내에 가족들은 두 세 걸음 조금 더 침대 옆으로 다가갔지만,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침대 근처 어느 선이상으로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가족들이 가까이 온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천이 내려갔다.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다시 커졌다.

 

 A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이 세상이 아닌 할머니의 얼굴을 가엾게 바라보았다.

 

 곱게 화장을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게 적당히 그려져있는 회갈색 눈썹, 왼쪽 뺨에 크게 나 있던 저승꽃은 어느새 도려내져 말끔해졌고 입술색은 옅은 분홍 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 낯설게 보였던건 얼굴덜룩한 기미 하나 보이지 않게 매끄럽고 환하기까지한 피부가 아니었을까?

 평생 본 적 없던 고운 화장을 한 할머니의 얼굴이 죽어버린 육신에 덧붙여져 있었다.

 

 심장이 뛰고, 코로 입으로 숨을 쉬고, 세월의 녹을 먹어 마디마디 굵어진 손가락으로 쉴새없이 바뀌어 가던 세월에도 이리 저리 힘들새 없이 바쁘기만 했던 할머니는 이 생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뱉고서야 비로소 여자로 누워 있었다.

 

  취향이랄것도 없었지만 할머니에게 늘 익숙했던 몸빼바지와 재래시장에서 산 꽃무늬 잠바 대신,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은 온 통 슬픈게 노란 삼베천이었다. 마치 아기처럼, 손싸개, 발싸개로 꽁꽁 싸매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할머니의 몸집에 몇배나 훌쩍 큰 봉투같은 노란 바지와 저고리가 입혀져있었다.

 살아생전 일찍이 저승갈 길을 걱정하셨던 할머니가 준비해놓은 유일하게 비싼 의상.

 죽어야만 입을 수 있는 그 옷을 드디어 입게 되는 그 날.

 

 

 

 "이제 할아버지 곁에서 편히 쉬세요."

 

 A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생전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죽어야지...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고 내뱉던 말들이 이루어진 순간.

 지금 이 순간, 정확하게는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혹은 마지막 숨을 내뱉기 직전에 할머니는 기쁘셨을까?

 

 더는 한겨울 꽁꽁 언 남의 집 밭 한 구석에 앉아 장갑하나 끼지 않은 맨손으로 시금치를 뜯어내고 다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아니면 자린고비 남편 먼저 보내고 남은 십 여년의 세월을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챙기고 돌봐주지 않는 자식들에게 희미한 죄책감마저 지어주고 싶지 않아서.

 

 

 

 할머니는 시뻘건 불길 속 연기가 되어 떠나고, 한 줌도 안되는 재를 남겼다.

 

 

 

 A는 믿고 싶었다.

 평생 단 한번 당신이 직접 당신을 위해서 지어놓은 옷을 입고 좋을길로 가셨을거라고.

 할머니는 지금쯤 벌써 할아버지 곁에서 환하게 웃고 계실거라고.

 그러니 더이상 울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눈물은 남아있는 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이나 후회 같은 거라고.

 저마다 흘리는 눈물은 각자 자기만의 해석으로 그저 흘러 내려지는 거라고.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의 시간을 잊고 산다.

 이따금씩 오늘의 사건만을 띄엄띄엄 기억할 뿐.

 할머니도 자식들의 마음속에서 오늘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의 시간 속으로 한 발치씩 멀어지는.

 희미한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떠한 사건에 불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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