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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삶과 삶 사이
작가 : 진늘솜
작품등록일 : 2018.7.10

죽음은 예정된 것이면서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월적 존재들은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한을 풀 수 있는 '화신(化身)' 이라는 한 번의 기회를 선사한다. 단, 스스로 삶을 끝맺은 인간은 화신의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누비는 사자의 보필을 받으며 생각을 되돌릴 시간이 주어진다. 삶과 삶 사이에서 넋을 찾는 소녀와 넋을 잃은 소년의 이야기.

 
다시 시작
작성일 : 18-07-10 17:36     조회 : 373     추천 : 2     분량 : 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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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지독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말갛던 하늘을 가득 매운 먹구름은 낮인지 밤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른 오전의 교실이었다. 쉬는 시간의 아이들은 늘 그렇듯 오늘도 소란스러웠다. 어쩌면 전학생의 소식이 더욱 그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저마다 각자 이상적인 전학생의 모습을 그리며 수다를 이어갔다. 시끌벅적한 교실과 운동장을 때리는 장대비는 다시없을 불협화음을 만들어 나갔다. 눅눅한 공기의 흐름마저 불쾌한 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침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등장했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아이들은 재빨리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꽁무니 끝에 낯선 남학생이 따라 들어왔다. 쉰 개 가량의 눈동자가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대충 흘려 쓴 이름 석 자가 칠판을 가득 매웠다. 이한결. 민하는 둥글게 감기는 발음이 반듯한 인상과 꽤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저에게 박히는 시선이 부끄러운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동자가 작은 웃음을 유발했다. 모르는 얼굴 투성이인 교실이라면 그럴 법 했다. 그렇게 홀수였던 머릿수는 그의 등장으로 짝수가 되었다. 냉기를 뿜던 빈 옆자리도 그의 체온으로 채워졌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민하는 내심 반가웠다.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민하와 한결은 며칠 전, 달빛마저 물기를 머금은 밤의 옥상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다. 올곧은 용모의 한결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민하를 주시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남의 허리를 낚아채더니 격앙된 표정으로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던 그였다. 물론 오밤중에 빌라 옥상에서 우뚝 서있던 민하도 일반적이진 않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그 또한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민하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쾌감을 줄까 무섭기만 할까. 유독 샛노랗던 달이 비추는 옥상으로 홀린 듯 올라갔다.

 

 ‘사라지고 싶다.’

 

  오래전부터 삶의 마침표는 스스로 찍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품어 온 민하였다. 날이 갈수록 존재의 깊이를 키워가던 생각은 그녀를 친절하게 벼랑 끝까지 안내해주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침묵 그 자체였다. 행인 하나 없는 썰렁한 골목, 수풀을 헤치는 길고양이, 가로등 불빛에 뛰어드는 날벌레들. 벼랑의 문턱에 걸터앉아 음산한 세상을 잠시 구경했다. 그 세상에 빨려 들어갈 찰나, 소년이 등장했다. 앞으로 기울어져가는 민하를 낚아채 단단히 감싸 안고는 화단가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화부터 내야 하는 건지, 민하의 생각에 과부하가 결렸다. 그렇다고 이 낯선이를 붙들고 구구절절 눈물 짜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애매한 상황에서 한결은 아무 말없이 그녀의 구겨진 옷 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뒤집어진 옷깃까지 잘 접어준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엄마도 이런 걸 바라지 않으신다는 거 알잖아. 도와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떻게 우리 엄마를 알고 있는 걸까. 별의 별 생각이 민하의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엄마의 친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리고 먼 친척이라고 하기에는 장례식장에서 본 얼굴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를 섣불리 경계할 수 없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짙은 그리움의 냄새가 오히려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빗줄기 같은 눈물이 그치지 않고 내렸다. 둥근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길마저 엄마를 닮아 아린 속을 더욱 헤집어 놓았다. 엄마, 그 한 마디가 각오를 무너뜨렸다. 굳건했던 장벽들이 무너져 내리던 한 여름의 자정이었다.

 

 -

 

  마냥 지옥일 것이라 여겼던 날들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흘렀다. 민하는 새벽 같이 일어나서 교복을 꾀어 입고 허술하게나마 아침을 챙기며 이른 등교를 했다. 멍하니 칠판을 응시하면서 그날 밤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그러다 울컥하는 마음을 여러 번이고 삼켜내던 나날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늘 주기만 하느라 덜 먹고, 덜 입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덜 누린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 편이 엄마 다웠다. 엄마에게 ‘엄마 답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동양인 치고 조금 밝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머리카락은 가늘면서 부스스 했고 얇은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꼭 엄마처럼. 민하는 그리움으로 며칠을, 호기심으로 또 며칠을 보냈다. 그러자 마법처럼 한결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에게 집중된 이목은 쉽사리 분산되지 않았다. 말을 붙여볼 새도 없이 책상 주변을 둘러 싸 질문 공세를 펼치는 학생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기대에 찬 눈빛을 마구 뿜어내는 학생들 틈새로 오직 한결만이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쏜살같이 교실을 떠났다. 그제야 조용해진 주변에 민하는 한숨을 절로 쉬었다. 어찌나 시끄럽던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식욕조차 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상에 엎어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한결이었다.

 

 “저기···, 점심 같이 먹을래?”

 

  이미 급식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지금 급식실로 향한다고 해도 입구부터 계단까지 늘어진 줄만이 둘을 반길 것이었다. 민하는 낡은 지폐 몇 장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말없이 교실 문을 나섰다.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던 한결은 눈치껏 뒤를 쫓아왔다. 민하와 한결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세상에서 딱 둘에게만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한결을 잠시 세워 두고 민하는 크림빵과 우유를 두 개씩 집어 들어 계산을 했다. 매점 아주머니는 멀뚱멀뚱 서있는 그에게 흥미를 보였다. 단정한 생김새가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오늘 처음 온 친구라 학교를 구경시켜주고 있노라고 민하가 너스레를 떨자 아주머니는 금세 반색을 하며 수다스럽게 말을 붙여 왔다. 곤란한 상황에 진땀을 빼는 한결의 얼굴은 꽤 볼만 했다.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 하며 눈을 초 단위로 깜빡거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민하는 적당히 상황을 끊으며 그를 잡아 끌었다.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란히 앉아 포장지를 뜯자 크림의 단내가 풍겨왔다.

 

 “첫 날인데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서 어떡해.”

 

 그가 점심을 놓친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민하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던 차였다.

 

 “괜찮아. 너랑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한결이 운을 뗐다.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민하 또한 이상하리만치 이 침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멋대로 한결을 귀신쯤 될 것이라고 정의한 민하는 그가 주술을 부려 자신의 마음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치닫았다. 보통 엉뚱한 발상이 아니었다.

 

 “사람 치고 수상해도 귀신은 아니야.”

 

  민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한결이 대답했다. 실제로 한결은 귀신이 아니었다. 귀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넋에 가까웠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운명을 기다리는 반쪽짜리 넋. 한결의 존재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같이 기다려줄 수는 있어. 너희 엄마의 화신.”

 

  초월적 존재가 인간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출현한다는 화신(化身). 비록 초월적인 존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은 이는 화신을 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일정한 덕을 필요로 하며 그것을 인내하지 못 할 경우 악귀(惡鬼)가 되는 경우도 더러 생기고는 한다. 한결에게 주어진 임무는 민하가 예정에 없던 자신의 죽음을 만들지 않고 엄마의 화신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날 밤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게.

 

  인간의 수명은 모두 예정되어 있지만 그 끝을 예상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예상하지 못한 죽음에 대하여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화신이다. 이때 생전에 큰 죄를 짓거나 죽음의 예정을 인간 스스로 정한 경우 대상에서 제외된다. 특히 후자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결과 같은 심부름꾼의 일이었다.

 

 “내가 만약에 큰 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 거야?”

 “화신도 못하고 덤으로 생지옥에 떨어지지.”

 

  역시 죄는 짓지 말아야겠다. 민하의 옅은 혼잣말이 유독 쓸쓸하게 들렸다. 한결은 조용히 민하의 손을 잡았다. 수많은 감정들이 한결에게 들어왔다. 슬픔, 고독, 좌절과 설움. 그리고 실낱 같은 기대. 한꺼번에 몰아친 감정에 손바닥이 욱신거렸다. 한결은 마주 잡고 있던 손바닥을 뒤집어 민하에게 보여주었다. 어느새 붉은 물방울 모양의 반점이 똑같이 번져 있었다. 서로를 감지할 수 있는 증표라고 했다. 꼭 피에로의 눈물 같다고 민하는 생각했다.

 

 “하필 눈물, 예쁜 문양도 많은데. 그치?”

 “가만 보면 사람 속을 다 읽고 말하는 것 같다니까.”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한결이 퍽이나 얄미웠는지 입술을 부리 마냥 내밀고 중얼거리는 민하였다. 마침 다시 수업이 시작될 것이라 알리는 종이 물렸다. 다시 시작을 알리는 둘의 걸음에 햇살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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