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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열아홉, 당신과 나는
작가 : 홍블리
작품등록일 : 2017.11.28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어리바리 국어교사 공수은과 그녀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노는 능구렁이 남고생 강신.
속을 알 수 없는 영어교사 현수민과 무작정 직진하고 보는 금사빠 여고생 강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약한 어른들의 매우 가벼운 이야기

 
prolog
작성일 : 17-11-28 23:45     조회 : 468     추천 : 0     분량 : 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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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

 

 

 2월 말, 땅 속의 새싹들이 아직은 단잠을 깨기 싫어 뒤척이고, 찬바람은 물러가기 싫다며 기승을 부려대었다.

 그리고 그 계절의 경계 속, 덩치 큰 캐리어를 끌고 오는 남녀가 있었다.

 

 “ 아, 드디어 취직이구나! ”

 “ 그러네. ”

 “ 야 진짜 설레지 않냐? 내가 이제 애들을 가르친다고, 현선생! ”

 “ 그러게. ”

 “ 현수민 취직한 거 현수막 붙일까? ”

 

 아무리 여자가 말을 걸어도 남자는 세상 더 없이 한심한 눈빛으로 여자를 보기만 할 뿐이었고, 답답해진 여자는 성을 내기 시작했다.

 

 “ 야 뭐가 문젠데! ”

 “ 뭐가 ”

 “ 넌 군대도 일찍 제대하고, 응? 어... 물론 네가 아팠던 게 네 탓은 아니지만, 음, 그래도, 원래는 내 후배였어야 하는데 이렇게 동기로 들어왔잖아! 그것도 같은 학교로! 심지어 네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선생님이 됐잖아.

 응? 근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

 “ 음... 네가 재수한 거? ”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욕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꾹 눌러참았다.

 하하하, 거참. 적당히 좀 우려먹으라니깐.

 앞으로 이 자식과 단 둘이 살게 될 걸 생각하니, 그 놈의 ‘ 공재수은 ’ 소리가 벌써부터 귀에 들리는 것 같다.

 

 

 -

 

 

 “ 야 우리 집 여기 맞아? ”

 “ 재수은. ”

 “ 어? ”

 “ 집 키도, 지도도, 약도도, 심지어 집 문서까지 네가 다 갖고 있으면서 그걸 나한테 묻는 이유가 뭐야? ”

 “ 그거야 당연히... 너 귀찮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

 

 대화만 보면 영락없는 신혼부부였다.

 하지만 사실 이 둘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도 아무 일이 없는 소꿉친구였다.

 이 동거도 수은의 엄마가 적극 추진하신 것이다.

 아예 따로 살 집을 마련하기 전에도 수민은 수은의 집, 방을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심지어 이번엔 초임지가 같은 학교가 되어 둘은 별 고민도 없이 ‘ 같이 살지, 뭐. ’ 해 버린 것이었다.

 

 “ 야 어디 가! ”

 “ 장 보러 간다. 짐 좀 풀어 놔, :”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수민의 입은 연신 곡선을 그리며 내려올 줄을 몰랐다.

 수민은 수은을 좋아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수민의 부모님은 무역업을 하시느라 수민을 홀로 놔두곤 하셨다.

 외롭지 않아 본 적이 없어서 외롭다는 감정조차 모르던 수민에게 수은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 너 외롭구나? ’

 

 그 때 수민은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외로운가?

 그 명랑한 여자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따라다니며 놀아주겠다고 떼를 썼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매일같이 넘어지고 다쳐서 툭하면 울곤 했다.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누가 누굴 챙기는 건지, 한심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그들은 중학생이 되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간간이나마 집에 들어오시던 수민의 부모님은 그 무렵 배를 타고 나가셨다가 바다의 원앙이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으셨다.

 완전히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옛날 기억을 떠올려 찾아간 그 놀이터에서 그는 눈물 흘리는 법도 몰라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어릴 적 보았던 손이 다시 나타났다.

 

 그 아이는 말했다. 얘기 들었다고, 괜찮으냐고.

 수민은 괜찮다 말했지만 이미 수은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얼굴을 구겼다. 그러다가 울어버렸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울어댔다.

 수민은 그 상황에서도 울지 못 했다. 하지만 마치 자기가 운 것처럼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 후로 수은의 부모님은 수민을 귀찮으리만치 챙기시며 집에도 자주 부르셨다.

 심지어 중학교 졸업식 때는 졸업식 날짜가 겹치자 수은을 버려두고 수민의 학교 졸업식으로 가버리기도 하셨다.

 그 동안 느끼지 못한 가족의 정을 처음 느낀 수민은 수은이 마치 제 여동생처럼 느껴졌다.

 늘 챙겨주고 싶고, 이상한 놈 만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그러나 여자를 만나본 적 없는 수민은 그 감정을 철석같이 연애감정이라고 믿고 있었다.

 몇 번의 동침에서도 아무런 본능도 일깨워지지 않았음에도 그는 의심조차 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동거는. 완벽히 안전했다.

 

 

 -

 

 

 그들의 집 윗층에는 한 가족이 살았다.

 아저씨, 아주머니, 남학생, 여학생.

 토요일에도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덕에 집은 완전히 남매의 것이었다.

 집안은 총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수많은 총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아이가 말했다.

 

 “ 야 물 떠와 ”

 

 그러자 예능프로를 틀어놓고 쉴 새 없이 박장대소하던 여학생이 대답했다.

 

 “ 네가 떠와~ ”

 

 쉼 없이 웃으며 말하는 여자아이에게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세계로 빠졌다.

 그러다가 띵동거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게임을 하느라 움직일 수 없었던 남자아이는 ‘ 야 네가 나가봐- ’ 하며 뒤를 돌았고, 그 곳에 여자 아이는 없었다.

 

 “ 또 나 시킬라 그랬지? 미안- 보시다시피 내가 급한 용무 중이라, 승급전인 거 아는데 네가 열어줘야겠다. ”

 “ 아씨... 강민!! ”

 

 저 새끼 저거 일부러 도망 간 거야, 승급전 망치려고.

 나 같으면 저 거리 갈 시간에 문을 열어주겠다.

 

 “ 네 머리 위에 인터폰 있잖아 손도 못 올리냐? ”

 

 맞다- 하며 올려다 본 인터폰 화면 속에는 웬 여자가 있었다.

 

 “ ...와씨....개 이뻐... ”

 

 대충 손만 뻗어 문을 열어주려던 남자아이는 벌떡 일어섰다.

 저런 미인은 몸소 맞이해야지.

 

 

 -

 

 

 수은은 마음이 급했다. 이 집만 돌리면 집 가서 짐 풀어야 하는데 왜 안 나오는 거야.

 분명히 안에 소리는 나는데, 아 못 들었나? 다시 눌러야 하나?

 

 수은이 초인종에 다시 손을 대자마자 갑자기 문을 쾅 열렸다.

 덕분에 수은은,

 

 “ 엄마 깜짝이야!!! ”

 

 하며,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수은만큼이나 놀란 남자아이가 한 쪽 무릎을 꿇고 계속 괜찮으냐고 물어왔다.

 괜찮긴 한데 쪽팔린 거라고요-.

 빨개진 수은의 얼굴의 의미를 알아챈 남자아이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물었다.

 

 “ 왜 왔어, 근데? ”

 “ 네? ”

 “ 우리 집 초인종 눌렀잖아. 왜 왔냐고. ”

 “ 아니, 밑에 집에 새로 이사 왔는데요... 과일... 이라도 드시라고. ”

 “ 응~ 그랬어? 근데 지금 그 과일은 어딨어? ”

 “ 네? 여기, ”

 

 근데 왜 반말이시지- 라고 생각하며 내려다 본 접시는 텅 비어있었다.

 뭐지 이게, 하고 당황하자 그 남자는 여기여기- 하곤 손짓했다.

 넘어지면서 옷에 과일이 쏟아졌나보다.

 아... 토마토 괜히 깎아 왔나봐.

 ‘ 괜히 깎아온 ’ 토마토는 내 옷 위에 붉은 지도를 그렸다.

 

 “ 어... 음... 전 옷을 좀... ”

 

 수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여전히 한 쪽 무릎을 꿇은 채로 남자는 한참을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 어... 접시는? ”

 

 그 때, 민이 문을 빼꼼 열고 나왔다.

 

 “ 너 주저앉아서 뭐하냐? ”

 “ 어? 아, 아랫집 이사 왔다고 과일 가져 왔더라고. ”

 “ 그래? 근데 과일은? ”

 

 방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린 남학생은 또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 자기가 다 가져갔어. 몇 개는 바닥에 버리고. ”

 “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접시 이리 줘 내가 가는 길에 가져다줄게. ”

 “ 아니, 내가 갔다 옴. ”

 “ 헐 웬 일? ”

 

 남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개 이쁘거든. ”

 “ 여자야? ”

 “ 어. 혼자 살까? ”

 “ 더러운 새끼. ”

 “ 까불지 마 금사빠야. 근데 어디 가냐? ”

 “ 부동산 아저씨가 뻥튀기 가지러 오래. ”

 “ 그걸 왜 매번 너를 주냐? ”

 “ 예쁘니까. 매번 물어보냐? 아 몰라 나 간다. ”

 “ 야 너 거기서 또 뻥튀기 랩하고 쪽팔리게 하면 뒤진다 진짜!! ”

 

 민은 듣지도 않고 사라졌고, 텅 빈 접시를 바라보다가 남자도 계단으로 향했다.

 

 

 -

 

 

 민과 남자 아이가 투닥거리는 동안 수은은 얼굴이 화끈거려 집안의 모든 문이란 문을 환기를 위해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곤 내가 왜 급하게 들어왔더라? 생각하다가 서둘러 니트를 벗었다.

 그녀는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캐리어를 열고 옷을 입고 있는데,

 

 “ 으아아아악!!!!! ”

 저, 저, 저, 저거, 윗집 남자? 문은 어떻게 연 거지? 아 내가 열었지.

 왜 온 거지? 아, 접시.

 언제 온 거지? 대체 언제?

 

 “ 언제 왔어요?! ”

 “ 캐리어 열 때부터. 문은 좀 닫고 옷을 벗지 그래? 내가 안 막고 있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봤을 거야. 1층이면서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

 “ 이... 이... 빨리 나가요!! ”

 “ 좋은 구경하고 간다! ”

 

 좋은 구경? 뭔데, 뭘 구경한 건데!!

 

 “ 야!! ”

 

 

 -

 

 

 계단으로 숨도 안 쉬고 뛰어온 남자아이는 자신을 향해 들리는 절규를 들으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혹시라도 어색해질까 뻔뻔하게 굴긴 했는데,

 돌아선 아이의 얼굴은 ‘ 괜히 깎아온 ’ 토마토만큼 빨갰다.

 

 “ 어... 으... 아... 미치겠다... ”

 

 

 

 prolog. fin_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프롤로그라 조금 지루하더라도 꼭 1화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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