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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광야에서
작가 : th쓰
작품등록일 : 2017.11.8

홀로 평원에 살아가던 사람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낯선 일행을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

 
1-1. 마녀의 평원
작성일 : 17-11-08 15:07     조회 : 467     추천 : 1     분량 : 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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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원 저 너머에 한 점 불빛이 일렁인다. 눈앞에서 어른거리지만 언덕 하나 없는 거대한 허허벌판에서는 눈을 믿을 수 없다. 불빛과의 거리는 한없이 멀어지는 아지랑이와도 같다. 낯섦과 신기함이 뒤섞인 기분으로 한참을 선 채 불빛을 응시했다. 밤이 깊어지자 불빛은 작아졌다. 그러나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흔들려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달이 머리 위로 떠올랐을 때, 나는 말을 타고 불빛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평원의 밤은 길다. 마녀의 평원에서 맨 정신으로 긴 밤을 버텨내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길기만 한 밤이라면 아무도 마녀의 평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지간히 강한 정신력을 가졌다는 사람도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의 어둠 속에서는 스스로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겪게 된다. 마녀의 평원은 살아있다. 평원은 주인 없는 영토에 발을 들이는 가짜를 증오한다. 평원은 진짜를 가려낸다. 강한 척 스스로를 위장하던 가짜들은 이 평원에서버티지 못해 미쳐버린다. 평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마법사나 마녀 일족, 혹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진짜 뿐이다.

 

 먼 곳에 보이는 불빛은 며칠째 평원을 지나고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길잡이도 없이 이렇게 오랫동안 평원을 누비는 소규모의 무리를 본 적이 없었다. 마녀의 평원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길잡이도 없이 평원에 들어오지 않는다. 열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무리라면 길잡이가 있어도 들어오지 않는다. 평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마물을 사냥하는 사람들이다. 마물의 단단한 가죽이나 몇몇 마물에게서만 발견되는 핵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 흔하게는 무구나 건축, 고가의 장식품의 재료로 사용되고 드물게는 마법사들의 마법 용품과 실험에 사용되는 덕이다. 혹은 명성과 돈을 위해 정기적인 마물 토벌에 참가하거나 고용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녀의 평원을 버텨내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가장 중요한 길잡이를 고용하고 정신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 마녀의 주술이 담긴 부적, 제 한 몸을 지킬 수 있는 비싼 마도구까지 챙겨 몸과 마음을 보호하고 평원에 발을 딛는다. 정해진 길을 따라 평원을 누비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일정을 지킨 뒤, 전리품을 챙겨 도시로 돌아간다.

 

 두 번째는 평원을 경유하는 사람들이다. 평원은 대륙 한가운데를 가로막듯 자리해있다. 대륙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기 위해서는 평원을 빙 돌아 산맥과 인접한 길을 이용하거나 공간 이동이 가능한 마법사를 고용해야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산맥의 길은 멀고 험준하고 마법사는 이동만을 위해 고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싸다. 돈과 시간, 두 가지가 모두 없는 사람들은 평원의 외곽을 따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보통 그들은 마물 토벌대가 다니는 경유지를 이용하지만 그들이 갖춘 약한 마도구와 부적으로는 마물이 적은 길을 골라도 평원을 견뎌내기 힘들다. 그저 동쪽과 서쪽을 잇는 경로로 평원을 지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세 번째 무리 중에는 진짜가 많다. 평원을 견딜 수 있는 강한 사람들이다. 육체도 정신도 강한 사람들은 평원에서도 힘겹게 목숨 줄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자라해도 아무 이유도 없이 평원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세 번째 무리는 대개 도망자들이다. 국가의 법을 지키지 않아서, 사람의 원한을 사서, 혹은 그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사람들. 그들은 한 번쯤 도피처로 평원을 생각한다. 자신의 강함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평원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죽거나 살아남는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마녀의 평원에 들어오는 도망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범죄자가 평원으로 도망치는 경우, 대다수의 국가는 범죄자를 포기한다. 마녀의 평원으로 도피하는 행위와 국가에 수감되는 행위는 사실상 별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평원에서 죽어버린다면 더 좋고.

 

 물론 도망자들이 죄 범죄자이기만 하지는 않다. 범죄자가 아닌 도망자들은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들은 범죄를 저질러 절박한 처지가 되지도 않았으면서 제 발로 평원에 들어올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들이 평원에 발을 들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마음, 생각, 사정에는 관심도 없다. 그들은 평원을 어지럽힌다.

 

 마녀의 평원에는 마녀의 평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서로를 잡아먹고 살아가는 마물들, 그들만의 생존법을 익힌 마녀 일족, 계절에도 구애받지 않는 바람과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갈증, 샘과 늪, 풀과 땅의 생리. 사람들은 평원에도 평화가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평원의 질서를 무시하고 짓밟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평원에서 내쫓는다.

 

 불빛은 한층 가까워졌다. 나는 말에서 내리고 주머니에서 각설탕 하나를 꺼냈다. 얼마 전 시장에서 산, 모양도 삐뚤빼뚤한 싸구려 설탕이다. 말은 각설탕 하나를 받아먹고 신이 나 투레질한다. 말의 머리를 쓰다듬고 내 얼굴 가까이 끌어내려 천천히 속삭인다. 말은 알아들었다는 듯 발을 가볍게 구르더니 뒤돌아 달린다. 정말로 알아들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평원에서 살아왔다. 평원을 드나드는 마물 사냥꾼들은 나를 알고 있다. 종종 그들이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맬 때, 나를 만나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들은 탓이다. 그들은 나를 거스르지 않으려하고 친근감을 표한다. 나는 되도록 마녀의 평원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평원이 내 땅도 아니니 누구에게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길을 잃은 사냥꾼이나 도망자들을 내쫓는다 생각하고 평원에서 내보내면 그들은 내가 길안내를 해주었다 착각하고 내게 한 푼 두 푼 돈을 건네기도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거절했지만 요즘은 사양 않고 받는다. 거칠게 살아온 자들은 대가 없는 친절을 경계하기 마련이고 평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나도 도시에서 쓸 돈이 필요하니까.

 

 평원을 안내해달라는 요청은 어지간하면 거절한다. 아무리 나라도 평원 안에서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는 법이고,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을 돌볼수록 내가 놓쳐 죽는 사람은 많아진다. 나는 평원에서 사람들이 나가기를 바라지, 죽어나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래 뵈어도 사회화가 된 사람이라 자부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옷차림을 훑어본다. 사실 아무리 꼼꼼하게 살핀다 해도 번듯한 사람들이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모르니 소용은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경계심을 낮추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마녀의 평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혼자 다니는 나를 보고 사람을 흉내 내는 마물이거나 살아있는 자들의 혼을 빼먹으려 접근한 사령이 아닐까 의심하니까. 불빛이 보이는 천막에 가까워졌다. 부러 발소리를 내며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에는 그들 일행 모두가 잠에서 깨어 무기를 갖추고 내가 걸어온 방향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반응이 빠른 일행이라 다행이다.

 

 “누구냐!”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여자가 날카롭게 외쳤다.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숨어있던 마물들이 잠에서 깰 텐데. 평원에는 땅 위에 사는 마물이나 호수 안에 숨어 사는 마물을 우선적으로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땅 아래 잠든 마물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땅 아래의 마물들은 대개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자고 한 번씩 깨어나 사냥을 할 뿐이라 평소에는 위험하지 않지만 약하게나마 야행성을 가지고 있어 밤에 큰 소리를 내면 사냥시기가 아니라도 잠에서 깨어나 사냥을 할 수 있다. 그런 간단한 상식도 모르는 것을 보니.

 

 “평원에는 처음인가보군.”

 “무슨, 누구냐고 물었다!”

 

 여자는 잔뜩 긴장해 가지고 있던 검을 치켜들었다. 마물의 피로 인해 이음매가 녹슬고 힐트에 매단 천이 삭아 찢어졌지만, 날이 살아있는데다가 그립 위쪽에는 주술이 담긴 부적으로 추정되는 종이가 붙어있다. 다른 사람들의 무기도 낡았을지언정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고 품질이 좋은 무기로 보였다. 부자로군. 나는 보란 듯이 비어있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비무장 상태인 사람에게 무기를 겨누는 건가?

 

 여상스럽게. 그러나 사람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일행은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여자는 한참이나 눈을 부릅뜨고 나를 살피더니 드러난 곳에 무기가 없음을 알고 천천히 검을 내렸으나 무기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비무장 상태로 마녀의 평원에 있으니 경계를 할 수밖에. 너는 마물이냐?”

 

 마물에게 마물이냐 물으면 퍽도 그렇다 대꾸하겠다. 비꼬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마물은 말을 할 수 없어.”

 “그럼 사령이냐?”

 “내가 사령이면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네 혼을 먹어치웠겠지. 사람이라니까.”

 

 마물은 사람의 말을 할 수 없다. 마물에게는 언어가 없다. 마물의 세계에는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본능만을 쫓아 먹고 부수고 번식한다. 지능이 높거나 강한 마물은 무리를 짓지 않고 단독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언어의 필요성조차 없다. 사령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을 테지만 사령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라도 안다.

 

 날이 선 대화였지만 여자의 일행은 하나 둘 무기에서 손을 뗐다. 일행은 네 명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여자, 신관임을 증명하는 목걸이를 찬 남자가 한 명, 어깨에 할버드를 걸친 날카롭고 우직한 인상의 남자 한 명, 검을 든 젊은 남자가 한 명. 책을 보고 짜 맞추기라도 한 듯한 반듯한 구성이었다. 그러나 고작 네 명이서 평원에 들어왔을 리가 없었다.

 

 “다른 일행은 없나?”

 “그건 왜 묻지?”

 “마녀의 평원에 고작 네 명이서 들어왔다니 멍청한 놈들인지 궁금해서.”

 “……두 명이 죽었다.”

 

 나는 웃었다. 고작 여섯 명이 들어와 네 명이나 살았다니 어느 정도 실력은 있는 일행인가보다. 갈 길도 모르고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기에 운만 좋은 어중이떠중이들인가 했는데. 그러나 내 미소를 비웃음으로 받아들였는지 여자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나갈 길은 알고?”

 

 여자는 아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성격이 급해보였다. 그러나 처음 나를 적대시했던 태도와는 달리 여자는 빠르게 내게 물었다. 그나마 똑똑한 태세전환이었다.

 

 “나가는 길을 아나?

 “평원에는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나갈 수 있지.”

 

 마법사를 데리고 있었다면 이 일행의 사정도 조금 나았겠지만, 일행에는 마법사가 없었다. 있었더라도 지금은 없다. 마법사가 없는 일행 치고는 며칠간 나름대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니 죽었다는 두 명 중 하나는 마법사였다고 보면 되겠지. 그러나 이틀 전부터 방향을 잃은 일행은 내 눈에 갈 곳 잃은 초식동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떠보듯 물었다.

 

 “범죄자들인가?”

 

 신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재빠르게 나서서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급한 일이 있어 부득이하게 평원을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급한 일? 말할 수 없는 일인가.”

 “처음 보는 수상한 놈에게 말할 것 같으냐!”

 

 여자가 화를 냈다.

 

 “물어보았을 뿐인데 화를 내는군.”

 “너야말로 범죄자 아닌가? 마녀의 평원에 혼자 들어왔다니 멍청한 놈!”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써먹으며 여자가 이죽거렸다. 아직 누가 위에 있는지 모르나? 여자의 일행들도 시종일관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신관은 초조한 얼굴로 나와 여자를 번갈아 보았고 덩치가 큰 남자는 어깨에 걸친 할버드를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했다. 검을 든 남자는 비교적 침착하게 가라앉은 태도였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말릴 기세도 아니었다.

 

 “내가 범죄자건 아니건 그런 식으로 말해서 좋을 일 없을 텐데.”

 

 내가 팔짱을 끼자 여자가 움찔하고 놀랐다. 현재의 상황을 깨달은 모양이다.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냉정한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내 옷차림과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 가벼운 짐과 팔다리를 살핀 여자가 물었다.

 

 “사냥꾼인가?”

 “사냥꾼들은 혼자 다니지 않아. 정말 평원은 처음인가 보군.”

 “처음이 아니야!”

 “만약 내가 사냥꾼이었다면 당신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대신 당신들이 나를 눈치 채기 전에 한 명씩 죽이고 무기와 돈을 빼앗아 달아났겠지.”

 “웃기지 마! 그런 짓을 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내버려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우리를 죽이려하면 먼저 죽인다! 그리고 아무리 평원이라 해도 살인은 중죄다. 법이 무섭지도 않으냐!”

 “몰랐나? 안 무서워.”

 “뭐야? 지금 제국 법을 무시하는 거냐!”

 “어떻게 처벌할건데? 평원에서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짓을 당하던 평원 밖에서는 아무도 몰라. 어떤 범죄도 처벌받지 않지. 당신들이 죽으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시체는 모두 마물들에게 뜯어 먹히고 당신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사령이 찾아와 삭히고 사람의 흔적을 집어삼킬 텐데. 누가 당신들이 죽었다고 알아주지? 증거도 없이 실종자가 될 뿐이야. 아무도 모르는 범죄를 누가 어떻게 왜 처벌하지?”

 

 여자는 말을 잃었다. 끼어들 틈을 노리며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던 신관은 열린 입을 닫을 생각도 잊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웃었다.

 

 “물론 나도 언제든지 당신들을 죽이고 달아날 수 있어.”

 

 여자는 대답 없이 검 손잡이를 손에 쥐었다. 할버드를 든 남자는 당장이라도 창끝으로 내 목을 겨눌 기세였다. 그러나 일행의 뒤에 있던, 검을 든 남자가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낮은 목소리였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와 닮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결 가벼운 기분이 되어 대답했다.

 

 “돈벌이지. 평원 바깥까지 안내해주마.”

 “얼마에?”

 “네 명이니까 금화 마흔 개. 그 정도는 있겠지?”

 

 그제야 남자가 웃었다. 그제야 내 눈에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재수 없게도 잘생겼군.

 

 “좋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 도시에 도착하면 은행에서 돈을 찾아주겠다.”

 

 남자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일행의 물주는 저 젊은 남자인 모양이다. 여자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납득했는지 물러났다. 할버드를 든 남자도 지치지 않고 나를 노려보았지만 할버드를 다시 어깨에 걸치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신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여자에게 물을 권했다. 여자는 신관이 준 물을 마시면서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냈다.

 

 “너, 뭐하는 놈이야?”

 “알 필요 없을 텐데.”

 “수상한 짓을 조금이라도 하면 가만 안 둬!”

 “좋을 대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일 해준대도 야단이다. 평원에서 나만큼 길을 잘 아는 안내자를 찾기도 힘들 텐데, 먼저 다가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고개를 숙이지는 못할망정 큰소리를 친다. 물론, 평원에서는 누구도 좋은 취급을 받기 힘들다.

 

 일행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주머니에서 피리를 꺼내 불었다. 피리에서는 사람의 귀로는 아주 희미하게만 들리는 높은 소리가 났다. 곧 멀리 숨어있던 말이 달려왔다. 말은 빠르게 달려와 발을 구르며 내 옆에 서더니 잠깐의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반갑다는 듯 코를 킁킁 댔다. 등 뒤에서 여자의 일행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 등에 매달려있던 내 짐에서 모포를 꺼내 깔았다. 여자가 소리쳤다.

 

 “뭘 한 거야? 방금 말을 부른 거야?!”

 “시끄러워. 조용히 해. 평원에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니 이 주변 마물은 다 불러 모으고 싶어서 그래?”

 “뭐야? 죽고 싶어?!”

 

 여자가 화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오려 하자, 신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조용한 편이 낫기는 하지요……. 그러니까, 저 분 말씀대로 마물 때문에요.”

 

 그 말에 여자는 씩씩대다가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여자는 모닥불 너머의 작은 천막으로 들어갔다. 검을 들고 있던 조용한 남자도 여자를 따라 천막으로 들어가자 신관이 내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그들을 따라간다. 할버드를 어깨에 걸친 남자는 불침번인지 딱딱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보다가 이따금씩 주변을 살핀다.

 

 나도 말 등에서 짐을 내려 쉴 수 있게 해준 뒤 모포를 덮고 누웠다.

 

 “아그나의 말대로, 수상한 짓을 할 생각은 버려라.”

 

 할버드를 든 남자가 문득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작가의 말
 

 

 

 일 1회 연재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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