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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의 사랑 악마님
작가 : 정블루
작품등록일 : 2016.8.12

본격 로맨틱 서스펜스. 칙칙한 어둠이 가라앉던 하얀 밤, 소녀에게 다가온 아찔한 남자. "나 여기 있어도 돼?", "안돼.", "왜?" 반듯한 곱슬, 짙은 눈동자. 그리고 악마 같던 소년. "나랑 있으면 위험하니까." "위험하다고?" 저주스런 숙명에 맞서 복수하려던 재열, 어느 날 유진이 위험에 처하다? 유진을 사수하기 위한 한 남자의 전쟁이 시작되는데......"지금 데리러 갈게."

 
악마에 걸려들다.
작성일 : 16-08-22 09:41     조회 : 1,153     추천 : 16     분량 : 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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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슥.

 

 앙증맞은 손에서 나오는 펜의 활자가 노트 위에서 거침없었다.

 

 이리저리 생각에 잠기며 때로는 심각해졌다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펜대를 고쳐 잡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졌다.

 

 잠시 후, 유진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다 썼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활짝 웃었다.

 

 반듯한 종이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상전처럼 모셔갈 듯이 조심스럽게 들고 방문을 열었다.

 

 진갈색의 너른 방문을 열자 정면으로 거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하얀 스카프를 올린 식탁에 자신의 엄마인 희옥이 앉아 있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맥주를 홀짝이곤 마른 안주를 집어 드는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저 이거, 제가 쓴 건데 한번 봐주실래요?”

 

 기대감이 잔뜩 유진의 머리를 적셨다.

 

 이걸 보고 뭐라고 해주실까.

 

 그녀는 유진이 심혈을 다해 쓴 듯한 빳빳한 종이 안에 내용들을 무미건조하게 내려다 보았다.

 

 “......”

 

 몇 초가 흘렀을까, 웃는 내색조차도 없던 그녀는 이내 감정 없이 유진에게로 그것을 넘겨주었다.

 

 “잘 썼구나 유진아.”

 

 그럼 그렇지.

 

 엄마의 웃는 모습을 거의 봤던 적이 없던 유진은,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그녀를 한번 더 쳐다보았지만 역시나 표정은 그대로였다.

 

 상실감이 무력감이 되어 유진의 전신을 감쌌다.

 

 그래도 이런 실망감을 도리어 보여주기 싫어, 라는 오기가 멍든 심장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감사해요. 잘 썼죠?”

 

 그 말을 끝으로 끝내 소통은 단절되었다.

 

 깊숙이 감추어 드러내 보이지 않으리라. 이런 일이 한 두 번도 아니었으니까.

 

 아픈 비수가 되어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콕콕 쑤셔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건 자신이었다.

 

 앙증맞은 유진의 발은 자신의 발자취라도 알아달라는 듯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자신 없게 발길을 돌렸다.

 

 남들처럼 화목한 웃음으로만 비추어 줄줄 알았던, 그리고 원해왔던 사이는 이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무엇이 잘못되어 버린 걸까.

 

 [삑삑. 문이 열렸습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희옥이 앉았던 의자의 마찰음이 다급하게 들려오고, 그녀의 인상이 흠이라도 난 것처럼 대번에 찡그려졌다.

 

 부정적 여정의 시작.

 

 힘 없이 돌아서던 유진의 고개가 희옥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굳은 안색으로 얼른 들어가라고 눈짓하였다.

 

 방안으로 황급히 들어온 유진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불을 끄고 베개를 껴들고 누웠다.

 

 하얀 빛깔의 방음용 이어폰을 귀에 단단히 끼고 눈을 감아야만 했다.

 

 [당신 이리와서 얘기 좀 해.]

 

 [무슨 얘기?]

 

 [이번달 카드비 고지서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 이거 또 당신이 말한 그 잘난 거래처 접대비냐?]

 

 [내가 번 돈 내가 쓰겠다는데 왜, 내가 여자랑 놀았니? 생활비를 안 줘, 뭘 안 줘?]

 

 [이럴거면 갈라서자고, 못 살겠으니까!]

 

 어느샌가 퍼지는 고성 소리들.

 

 그 소리에 유진의 어깨가 공기가 새어나가는 봉지처럼 쪼그라들었다.

 

 이불로 전신을 꽁꽁 숨기고, 두려운 듯 베개로 귀를 가렸다.

 

 걸리면 안돼.

 

 어떤 욕망이 밀려들어왔다.

 

 이 소란이 지나가고 얼른 평화가 찾아오기를 원했다.

 

 벌어져 있던 입이 덜덜 떨리고 닫힐 동안 유진은 어느 샌가 암흑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이 악마의 아가리같다고 생각했다.

 

 칙칙한 시야 속에 희미하게 하얀 벽지가 보였다. 손가락을 대어 벽지 위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활자를 그려낸다.

 

 -남들처럼 살고 싶어.

 

 유진의 눈망울이 염수에 번졌다.

 

 불규칙한 숨소리는 어느 샌가 나른한 음색이 되어 소녀의 단잠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 순간 유진은 어둠이 되었다.

 

 

 

 

 ***

 

 

 

 

 잠시 후.

 

 “......”

 

 갑자기 유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푸석푸석한 눈가를 비비적 거리며 뒤편에 있는 창문을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환한 월광이 새벽의 침묵을 밝혀주고 있었다.

 

 휴대폰의 액정을 보던 유진이 나지막이 혼잣말했다.

 

 “한시 반?”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차.

 

 이어폰을 빼자마자 즉각적으로 들려온 것은 드르렁, 코 고는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소리가 날까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들고 굳건하게 숨을 닫고 있던 문을 슬쩍 열었다.

 

 아버지인 기환은 무엇이 이리도 그를 고단하게 만들었는지 코까지 심하게 드르렁거렸다.

 

 유진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모두가 밉지만, 동시에 그들을 원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버린 데에는 구성원 한 명의 일방적인 잘못만이 있는 게 아닐 터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여전히 깊이 사랑했다.

 

 흰색 트레이닝복을 대충 착용하고 아무도 모르게 슬쩍 현관문을 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들은 나에게 아무도 신경을 안 쓸 테니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암흑이 비추는 새벽.

 

 꺾여진 길로 환한 가로등이 제 존재감을 밝히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숨도 못 쉴 것처럼 힘들더니, 이제는 상쾌한 새벽 공기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간혹 이런 일이 일어날 때에도 이렇게 야심한 길을 나섰던 적은 없었기에 무서움과는 반대로 흥분이 마주하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길목을 돌아 걷는 크림색 단화가 가볍게 땅을 착지한다.

 

 딱히 갈 곳도 없었고, 이 늦은 시간에 친구들은 모두 자고 있을게 뻔했다.

 

 그래도 무작정 혼자 이렇게 걷는 것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발걸음이 이끄는 데로 걷다 보니 넓은 공원이 나왔다.

 

 입구를 지나고 나자 아무도 없는 정자위에 나뒹구는 술병을 힐끔 보고는 공원 안의 길을 느릿한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는 예전부터 가끔 친구들과 익숙하게 앉아 쉬어 가던 깡통 벤치 의자로 대뜸 들어서던 유진이 무엇을 보고는 흠칫하였다.

 

 그 곳에는 이미 한 소년이 길다란 다리를 늘어뜨린 채로 앉아 있었다.

 

 살짝 꼬인 곱슬 머리칼이 반듯하게 자리 잡아 있었고 적당하게 뻗은 진한 눈매, 서구적인 매끈한 코, 그리고 도톰한 입술은 소년다운 오라를 뽐내고 있었으나 살짝 고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였다.

 

 분명 길을 가는 사람 대부분이 한 번쯤 돌아볼 정도의 무척 훈훈한 외모였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유진의 머릿속이 알맞은 표현법이 생각나지 않아 헤맬 정도였다.

 

 이 밤이 만들어낸 아찔한 악마 같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무심히 앉아 있었고, 유진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옆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소년은 유진의 존재를 느끼고도 무심한 눈길로 앞을 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도 되지?”

 

 용기 내어 물음을 던져봤을 유진에게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은 조금 전보다 굳은 듯 했다.

 

 뭐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하얀 심장이 억울한 듯, 소년의 반듯한 어깨위로 다시 한번 툭 떨어뜨렸다.

 

 “옆에 앉아도 되냐고.”

 

 “......”

 

 이번에도 아무 말이 없자 눈매가 오기로 금세 물들었다.

 

 “나 그럼 앉는다!”

 

 “여기 자리 있어.”

 

 그제서야 그가 딱딱한 음성으로 유진을 보며 건조하게 내 뱉었다.

 

 “아무도 없는데?”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

 

 “너도 내가 귀찮은 거야?”

 

 억울한 듯 그를 보며 쏘아붙였다.

 

 그는 당황한 눈으로 유진의 축 쳐진 모습을 목격하고는 굳어 있던 표정을 이내 풀었다.

 

 “잠시만이야.”

 

 풀어진 소년의 말에 유진의 안색이 그제서야 풀리며 그의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문득.

 

 “여기서 뭐해?”

 

 “......”

 

 호기심이 발동했다.

 

 “난 부모님이 다투셔서 잠시 나왔어, 너무 답답했거든. 너는?”

 

 “......”

 

 “엄마는 오빠한테만 잘해줘. 내 친엄마는 아니지만 엄청 예쁘고 맛있는 간식도 사 주셔, 우리 아빠는 요즘 화를 많이 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봐. 내가 너무 못나서 그러시는거 같기도 해. 그래서......”

 

 소년의 표정이 '어쩌라고'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눈치 보던 유진이 힘 없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냥, 아무한테 말할 수 없어서 답답했었거든.”

 

 ‘그런데 왜 나야?’ 라는 의구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유진을 쳐다 보는 순간이었다.

 

 “어, 나 봐줬다.”

 

 “......”

 

 고작 자신을 봐주었다는 것이, 한 가닥의 관심이 이렇게 벅차 오르는 순간이 유진을 들뜨게 했다.

 

 “이름이 뭐야?”

 

 “......귀찮게.”

 

 “아, 귀찮게 해서 미안. 그리고 들어줘서 고마워.”

 

 유진은 그런 소년을 야속한 듯이 보다가 걸터앉았던 의자에서 슬쩍 다리를 뗐다.

 

 “잘 있어. 고마워 친구!”

 

 유진의 어떠한 말이 자신을 건드렸는지, 소년의 눈망울이 짧은 순간 흔들렸다.

 

 그리고는 한발 두발 벌어져 가던 유진의 축 쳐진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나는 황재열이야.”

 

 이름 세 글자.

 

 발걸음이 멎고, 놀란 눈으로 재열을 보던 소녀의 표정이 기쁨에 벅차 올랐다.

 

 “나는 하유진이야!”

 

 

 

 

 ***

 

 

 

 

 

 하굣길이 되고, 주말에도 유진은 종종 그 놀이터를 이른 시간대에 찾아도 봤지만 끝끝내 황재열은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귀신이나 악마가 분명해......”

 

 세차게 고개를 젓는 유진을 보며 친구인 민희가 염려스런 눈길로 쳐다보았다.

 

 “너 귀신 들렸어? 왜 자꾸 혼자 도리도리 흔들고 있어, 도라에몽처럼.”

 

 평소 쾌활하고 당찬 민희의 물음에 유진의 푸념이 이어졌다.

 

 “아, 글쎄.”

 

 유진의 설명에 민희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그래서?”

 

 “그 후로 못 봤지 뭐......”

 

 심각한 표정으로 깊게 패인 아스팔트를 보던 민희의 입이 벌어졌다.

 

 “너 설마, 아니겠지.”

 

 “왜, 귀신 맞는거지. 역시 그렇지?”

 

 두려운 눈으로 그녀의 팔뚝을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유진의 귓가로 민희의 음성이 툭 떨어졌다.

 

 “너, 내가 여기 꽉 잡고 있는 특급정보원인 거 알지?”

 

 민희가 유진의 어깨를 매섭게 붙잡고 눈을 빛냈다.

 

 “네가 말하는 황재열이 맞다면 걔 밖에 없어.”

 

 “응?”

 

 “너 정말 황재열 몰라?”

 

 “진짜 몰라.”

 

 “모르는 눈치인 걸 보니 정말 남자에게 관심이 없구나 하유진, 음......”

 

 우물쭈물 하던 민희가 이내 짧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아서라 아서, 네가 넘볼 수 있는 남자가 아니야.”

 

 “왜?”

 

 “자 언니가 하는 말 잘 들어. 걔 너랑 나랑 동갑이거든. 너 삼성동에 몇년 전에 새로 생긴 학교 알지?"

 

 "아. 거기."

 

 민희의 입이 거침 없었다.

 

 "어. 거기 황재열이라는 남자가 전학 온 거야. 물론 난리가 났지. 걔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남자들이 오징어로 보였으니까,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 심지어 위에 학교 언니들도 걔가 다니는 곳까지 찾아왔었어. 그런데......”

 

 “......그런데?”

 

 “너 윤하영 언니 알지? 왜, 요즘 걸그룹 연습생 언니 있잖아. 막 자기 예쁘다고 나대고.”

 

 “아. 그 예쁜 언니.”

 

 “응, 그 언니가 걔 보러 찾아갔었나 봐. 원래 그 언니 좀 놀았잖아, 그래서 걔한테 사귀자고 했나 보더라고.”

 

 “......그래서?”

 

 “그래서긴 뭐, 보기 좋게 까였지.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후였어.”

 

 민희의 침이 꼴딱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언니 좋아하던 동광고 신우진 오빠라고, 권투 했던 엄청 무서운 오빠 있나 봐. 그 오빠가 복수한답시고 걔한테 찾아간 거지.”

 

 “그 후에 어떻게 됐는데?”

 

 유진의 표정이 호기심과 걱정으로 뒤섞였다.

 

 “......그 오빠 후배들이 모여갖고 재미로 타이머 쟀었는데, 11초만에 그 오빠 아작났대.”

 

 유진의 눈가가 빛났다.

 

 “그럼 귀신 아닌 거지, 그렇지?”

 

 “그런 귀신이라면 천 번, 만 번도 홀리겠다.”

 

 “아......다행이다.”

 

 “아무튼 걔 같이 다니는 친구도 내가 알기로는 없고, 싸이코라는 소문도 있어. 고독한 포스가 좔좔 흐르잖아. 가까이 하지마, 가까이 갈수도 없겠지만.”

 

 “......”

 

 “야, 하유진. 내 말 듣고 있어?”

 

 “민희야 나 오늘 먼저 가 볼게, 내일 봐!”

 

 유진을 불렀지만 그녀는 이미 재빨리 달려간 후였다.

 

 "아 나, 무슨 일인데......"

 

 민희가 입맛을 다셨다.

 

 *

 

 그리고 며칠 후.

 

 유진은 또 한번 그런 일을 당하고 탈출해 버렸다.

 

 두번째는 조금 더 쉬웠다. 익숙해서 두려움이 더 없었던 걸까 싶었다.

 

 혹시나 모를 마음에 찾아간 그 공원은 역시나, 폐허처럼 비어있었다.

 

 물론 아픈데도 내심 기대하던 황재열은 없었다.

 

 그 날의 새벽처럼 익숙한 깡통 벤치에 앉았다. 속을 앓는 열병 환자처럼 숨을 고르기를 몇 번이었을까.

 

 -휘이

 

 땅만 보던 유진에게로 한 무더기의 음성이 조용한 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날 선 휘파람을 불며 유진에게로 걸어오는 세 명의 남자가, 건들거리며 욕짓걸이를 하는 그들의 비릿한 속내가.

 

 “너 여기서 뭐해?”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유진의 머릿속을 쿵쿵 밟았다.

 

 어떻게 하지, 도망을 가야 하나, 그래도 쉽게 잡히고 말 거야.

 

 유진의 난처한 표정을 보고도 거침 없이 그들이 다가왔다.

 

 목표를 찾은 맹수의 표정이었다.

 

 “야. 얘 깜찍하다.”

 

 쾌쾌한 모양새. 콧구멍을 찌르는 담배냄새가 유진의 안면을 잔뜩 찡그리게 했다.

 

 “저 이제 곧 갈 거라서요.”

 

 “에이, 아닌데. 같이 놀래?”

 

 “그래, 오빠들 나쁜 사람 아니야.”

 

 “......”

 

 “담배 펴봤어?”

 

 북 치고 장구 치고, 어느 장단이든 빨리 벗어나고픈 유진의 머릿속 사고는 벌써 정지되어 있었다.

 

 ‘그냥 나오지 말걸.’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왜 뛰쳐 나왔는지,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 벗어나지?

 

 상쾌했던 공기는 어느 샌가 소름끼치는 짐승의 아가리가 되어 유진에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갈게요.”

 

 “놀다 가자니까.”

 

 “놀기 싫어요.”

 

 “그럼 하나만 피고 가. 하나 피면 놔줄게. 겨우 뚫었단 말이야.”

 

 다문 유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

 

 “하. 내가 잡아먹어 너?”

 

 “아뇨......”

 

 시야가 한 없이 일그러져 있을 때였다.

 

 “그런데 왜 우릴 나쁜 놈으로 만드......”

 

 “여기서 뭐해.”

 

 저들의 말을 자르며 다가오는 딱딱한 음색.

 

 ......!

 

 그들의 동요가 보였다.

 

 “뭐야, 너.”

 

 “......”

 

 “뭐냐고 너.”

 

 “......나?”

 

 “하, 어린 연놈들이 우릴 갖고 노네, 그래 너.”

 

 그 녀석이, 내가 봤었던 악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재열의 존재감이 확인되자 유진의 눈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걔 친구.”

 

 낮은 음성으로 자신을 따스하게 덥혀오는 말에 유진은 스스로가 안심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비웃음을 던졌다. 그리고는 유진에게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얘 내 여자친군데. 그렇지 아영아?”

 

 걸걸한 말로 희번뜩하게 웃으며 유진을 보고는 눈을 부라린다.

 

 이 순간 너는 아영이어야만 한다고 위협하는 거였다.

 

 유진의 머리가 먹구름이 낀 듯 답답해져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진득한 공포에 가려져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재열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천천히 유진에게로 다가와 그들이 보지 못하도록 앞을 차단했다.

 

 “아, 어이가 없네.”

 

 아무런 방어도 없이 마치 ‘칠 테면 쳐봐.’ 라는 듯이 그들에게로 보란 듯이 등을 내보이며 넓은 품으로 유진을 가린 재열의 모습에 이를 갈고 있는 모습이었다.

 

 구름을 밀어낸 노란 달빛이 그들의 공간을 감싸고 있을 때였다.

 

 뒤돌아서 고개를 숙이고 풀린 눈으로 공포에 떨고 있던 유진의 볼을 손가락으로 슬쩍 훔쳤다.

 

 따스한 체온이 마치 유진에게 전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체온과는 반대로 그의 딱딱한 표정에서 나오는 눈매가 쏟아내는 무심한 인사, 그리고 안부.

 

 또래에 비해 꽤 훤칠한 키로 그들을 차단하고 앞에 선 재열이 유진에게 물었다.

 

 “쟤가 네 남자친구야?”

 

 "아, 어린 놈이 어이가 없네."

 

 그들이 비웃는 것이 느껴졌다. 황재열만이 자신에게로 진지하게 물어볼 뿐이었다.

 

 그때 그 모습처럼, 감정 없이 말문을 열었던 그 순간처럼 여전히 건조하게 물어올 뿐이었다.

 

 그럴 뿐이었는데.

 

 너의 그 말, 그 모습에 기어코 나의 입가가 뒤틀리면서 간신히 새어 나오는.

 

 “......아니.”

 

 짤막한 문장.

 

 괴로워하던 유진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재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분위기에 유진을 꼬셔서 놀려고 했던 일행들이 주춤거렸다.

 

 재열의 시선에 겨우 나온 쉰 소리를 내뱉는 유진의 앙증맞은 손이 들어왔다.

 

 잠시였을까.

 

 그제서야 느릿하게 유진의 손을 잡아 양쪽 귀에 올려주기 직전.

 

 “눈 감고, 귀 막아.”

 

 그 말에 제 자신도 모르게 순순히 눈을 질끔 감기 전, 유진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재열의 웃는 표정이었다.

 

 “금방 올게 유진아.”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그제서야 내게 웃음을 보여주는 너였다.

 

 악마처럼 황홀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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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js 16-08-26 22:14
 
어!! 북팔에서도 봤던 작가님이다ㅋㅋㅋ늘 글 정말 잘 읽고있습니다!!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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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09-03 01:03
 
이렇게 마주치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항상 꾸준하게 담금질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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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717 16-08-31 23:43
 
와 재미있게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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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09-03 01:04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영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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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잉 16-09-01 01:31
 
어 정말 북팔에서 봤는데 여기에도 계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늘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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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09-03 01:04
 
반갑습니다 줄잉님,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빌게요.
근성있게 써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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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구리 16-09-03 01:48
 
필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상황 묘사와 인물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정말 훌륭하세요. 많이 보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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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09-04 03:34
 
많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정말 과찬이세요.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살면서 들어본 칭찬 중에 단연 압권입니다.ㅎㅎ
찡구리님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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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성 16-09-03 10:24
 
여러 비유와 묘사의 다양성에서 작가님이 얼마나 많이 책을 접하고 썼는지가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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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09-04 03:38
 
부족한 저를 위한 칭찬에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격려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황금연성님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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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링 16-10-24 19:18
 
작가님 잘 봤습니다 ^^ 제 작품 여주랑 이름이 같아서 신기방기하면서도 친근감이 가네요 ㅎㅎ 즐겁게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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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10-25 13:37
 
감사드립니다.
후츠르링님과 저의 유진이, 서로 아껴주자구요.ㅎㅎ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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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사랑 16-10-27 23:34
 
잘 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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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 16-10-28 02:28
 
감사드립니다.
솔사랑님의 작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까플 16-10-28 04:04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시는 군요~
재밌게 보고 다음편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임형준 16-10-30 06:27
 
일을 쉴 때만 짬이 나서요.ㅎㅎ
늦은 시간에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까플님의 작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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