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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안다미로
작가 : 봄길
작품등록일 : 2017.11.1

한국에도 마법사가 있다!
안다미로. 마법사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어느 날, 마법세계에서 벌어진 살인, 도난, 테러.
모든 사건은 18년 전 일과 통하는데...
살인 누명을 벗기고 마법세계를 구하기 위한 소녀의 모험!
그러다가 마주한 충격적 진실과 반전.
과연 소녀는 마법세계를 구하고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1. 의문의 소년
작성일 : 17-11-01 02:13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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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늴리리야 리리리리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몽고린주가 마을에 범람했네

 늴리리야 늴리리야 대금피리 우리 마을 지켜줬네… …

 

  까무잡잡하고 주름이 깊게 팬 얼굴에 밤새 수염이 희끗희끗 올라온 노인이 눈을 떴다. 방문 너머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반가운 노랫소리에 잠에서 깬 것이다. 노인은 온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알코올 향에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원래 움푹 파인 그의 볼은 오늘따라 유독 더 들어가 보였다.

 

 

  전날 이곳 친구들과 생일이랍시고 놀면서 저쪽세계에서 자주했던 화투를 알려준 게 원흉이었다. 피박이니, 광박이니, 비풍초똥팔삼은 뭐니 설명하며 옛 추억을 안주 삼아 놀다보니 어느새 테이블 가득 몽고린주 빈 병이 가득 쌓인 것도 몰랐다.

 

 

  ‘어제 얼마를 잃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내 피 같은 돈. 벌써 18년이나 됐지만 몽고린주는 여전히 숙취가 심하단 말이지.’

 

 

  노인은 부인이 직접 자수를 놓아 만든 벽시계가 10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를 내자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대충 다듬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 한 쪽에는 부드러운 갈색 섀미소파 옆에서 토끼를 꼭 닮은 꼬마 숙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녀는 ‘생동감 넘치는 블록’을 가지고 이따금씩 동물을 만들었다. 소녀가 용을 만들자 블록은 불을 뿜었다. 노인은 까르르 웃는 소녀가 귀여웠다. 주방 쪽에서는 분주하게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숙녀가 노인을 발견하고는 한 걸음에 달려와 안겼다.

 

 

  “할아버지.”

 

  “우리 노아 왔구나. 머리띠가 아주 예쁘네.”

 

 

  노인의 목소리를 들은 부인 안리와 아들 내외가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로 거실에 나왔다. 며느리 도레의 뺨에는 밀가루 자국이 선명했다.

 

 

  “지철씨, 일어났어요?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시고 들어왔어요.”

 

 

  언제나 그렇듯 따뜻한 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리는 이 세계에서 아주 고전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낡은 베이지색 드레스였지만 그녀의 103세답지 않은 날씬하고 꼿꼿한 몸매는 그 조차도 우아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아버님, 일흔 번째 생신 축하드려요.”

 

 

  파티를 위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온 지철의 아들 려민과 도레가 지철의 생일을 축하했다.

 

 

  “다들 고맙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따 파티 때 내놓을 음식 맛있게 만들고 있어요. 그렇지, 도레?”

 

 

  려민이 도레의 코를 장난스럽게 톡 치자 도레의 코가 피에로 분장처럼 밀가루로 하얗게 물들었다. 분명 도레의 뺨에 묻은 밀가루도 려민이 장난친 것일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된 려민의 장난으로 인디언 분장을 한 것 같은 도레의 얼굴은 우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레의 순진한 눈빛은 보는 이의 웃음보를 더욱 자극했다. 지철과 려민은 눈을 마주치자마자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안리가 처음 일흔 잔치를 제안했을 때 지철은 다른 사람들 입으로 들어갈 음식을 억척같이 모은 자신의 돈으로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사코 거절했더랬다. 그러자 나흘간 삐져서 말도 안하는 사랑하는 부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후로 내리 배알이 꼴렸었다. 지금도 엄청 내키는 건 아니지만 행복해 하는 가족들은 보니 꽤나 즐겁긴 하다.

 

 

  “거기 두 남자. 이제 장난 그만해요. 파티가 몇 시간 안 남았어요. 어제 나 혼자 최대한 만든다고 만들었지만 아직 음식이 한참 부족하답니다. 꽃이랑 장식이랑 신경 쓸게 어찌나 많은지. 도레, 너는 욕실 가서 얼굴이나 먼저 닦고 와라. 려민이도 장난 그만해라. 지철씨는 주방으로 와요. 모임 가기 전에 뭐 좀 먹어야죠.”

 

 

  안리가 그녀 특유의 따뜻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모두를 휘어잡았다. 가족들은 모두 안리를 이 집의 현명한 명령권자라고 생각했다. 지철은 안나의 명령이라 주방으로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또 전처럼 숙취에 좋다는 ‘딸기맛 염소 뇌탕’을 주진 않을까 겁이 났다.

 

 

  “고담 어르신도 만나고 오신다고 하셨죠?”

 

  “응, 그럴 거야. 가게 근처에서 보기로 했으니 파티에 늦진 않을 거야. 늦어도 한 시간 전에는 갈게.”

 

  “안부 전해주시고 정말 늦으면 안돼요. 거기 앉으세요. 가져올게요.”

 

 

  안리는 식품저장고로 향했다. 주방은 어제 낮부터 안리가 파티 준비로 고생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마치 전쟁터 같았다. 다만 전쟁터와의 차이점이라면 이곳은 폭약이나 피비린내가 아닌 세상의 온갖 맛있는 향기의 집합소라는 것이었다.

 

 

  ‘크으, 원래 술 마신 다음날엔 꿀물에 우리 가게 콩나물국이 최곤데. 이 세계로 온 이후로 꿀물을 보지도 못했네. 이번엔 브로커한테 꿀을 신청해야겠어.’

 

 

  지철은 속까지 달달해지는 꿀물과 맑고 얼큰한 콩나물국 생각에 잠시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 기대하세요. 어머니가 아버지 위해서 특별한 걸 준비하셨거든요.”

 

  “딸기맛 염소 뇌탕만 아니길 바란다.”

 

 

  려민이 지철의 말에 공감하며 낄낄대며 웃는 사이 얼굴을 씻고 나온 도레가 씩씩거리며 주방을 들어왔다.

 

 

  “여보, 자꾸 장난칠 거야?”

 

  “아이고, 부부싸움은 집에 가서 해라.”

 

 

  식품저장고에서 묵직한 유리병을 들고 나온 안리가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식탁 위에 병을 올려두고 그릇을 찾았다.

 

 

  “이게 뭐요?”

 

 

  지철은 병에 담긴 점성 있는 황갈색 액체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정체모를 동물의 콧물만 아니길 바랐다.

 

 

  “꿀이에요. 지철씨 예전부터 술 마시고 들어오면 아침에 꿀물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경미아줌마한테서 물어봐서 구했어요. 인간들은 진짜 이걸 먹으면 속이 달래진대요?”

 

  “꿀물!”

 

 

  지철은 잠시나마 안리를 불신했던 자신을 속으로 꾸짖었다. 무려 18년 만에 만나는 꿀물을 목전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안리는 넓적한 대접에 물을 부어 꿀 세 스푼을 넣고 휘휘 저었다. 려민과 도레와 함께 어느새 곁으로 온 노아까지 꿀물을 구경했다.

 

 

  “자, 여기요.”

 

 

  안리가 그릇을 건네자마자 지철은 그대로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꿀물을 모두 삼켰다. 18년 만에 맛보는 꿀물은 그 동안 몸 안에 묵어있던 몽고린주를 싹 씻어주는 것 같았다. 지철에게 있어서 이 주방 안 어느 음식 향기도 이 꿀물처럼 달콤한 건 없었다.

 

 

  “아버지. 컵에 드시지….”

 

  “모르는 소리 마라. 경민 아줌마 얘기로는 이런 넓적한 대접에 마셔야하는 거라더라.”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모두 마신 지철은 그릇에서 얼굴을 떼며 입과 수염에 묻는 꿀물을 한 번 쓱 닦았다.

 

 

  “이 맛이지.”

 

  “노아도 마셔볼래요.”

 

  지철이 손수 손녀를 위해 꿀물을 타주었다. 노아는 지철의 흉내를 내며 대접째로 들고 벌컥벌컥 꿀물을 들이켰다. 얼굴을 꿀물에 묻을 기세였다. 마시다가 숨이 찼는지 노아가 잠시 대접을 내려놓았다.

 

 

  “노아 생일에도 꿀물 해주세요.”

 

 

  노아의 한 마디에 모두가 떠날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철의 집 주방은 세상 그 어느 주방보다 행복한 것 같았다.

 

 

  지철은 행복함은 잠시 뒤로 하고 파티에 가기 전 마법세계에 사는 인간들의 모임, ‘마.인.모’에 들르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 그의 옷장에는 걸려있는 옷이 채 열 벌도 되지 않았다. 지철은 배도 부르지 않는 그깟 옷을 사는 게 돈이 아까웠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특별한 옷을 입어야 했다. 지철의 눈이 가장자리의 커버로 덮인 옷으로 향했다. 오늘이야말로 너무 아껴서 고이 옷장에 모셔두기만 한 풀색 정장을 옷장 밖으로 꺼내야할 때였다.

 

 

 사실 정장이라고는 하지만 마법세계의 정장은 인간세계의 서양식 정장과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고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복과 닮았다. 다만 그 종류는 훨씬 다양했다. 저고리만 해도 기장이 짧고 긴 것, 긴팔, 반팔, 하늘하늘한 모시 소재부터 실크, 레이온, 니트 소재까지 셀 수 없었다. 여자들이 입는 치마도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부터 발목까지 오는 길이까지 종류가 다양했고 남자들도 무릎 위로 오는 반바지부터 발목에 대님이 있는 긴 바지, 없는 긴 바지까지 인간세계의 한복과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런 복장이었다. 만약 인간들이 이런 복장을 본다면 도전정신 강한 한복 패션쇼 의상이라고 착각할 것이었다.

 

 

 대님을 다 묶은 지철은 금색실로 수놓아진 수려한 정장의 문양과 꼭 어울리는 뾰족한 검은 모자를 썼다. 이 모자를 쓰니 지철도 제법 안다미로의 분위기가 풍겼다. 그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발장에서 검은 구두를 꺼내 신었다. 구름무늬가 그려진 이 신발 역시 특별한 날에만 신는 신발이었다.

 

 

  “지철씨, 주인공이 파티에 늦으시면 안돼요. 어르신께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지철은 볼에 안리의 키스를 받고 집을 나섰다. 그는 보라색 꽃이 핀 키 작은 나무들이 들쑥날쑥 노래하는 이 길을 언제나 좋아했다. 가끔 벤치에 앉아있는 이웃들에게 인간 세계 얘기를 하곤 했다. 절반은 그의 얘기를 지겨워했지만 그것은 그의 고약한 취미 중 하나였다. 오늘도 길가에서 여유를 부리고 싶었으나 노아의 재롱을 보느라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마.인.모 모임에 늦을 예정이었기에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철은 마.인.모를 안리만큼 사랑했다. 마.인.모가 없었다면 지철은 이 완벽히 낯선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인간 세계로 도망치듯 달아났을 것이다. 그리고는 전처럼 길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는 노숙자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잘나가는 식당을 운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안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비록 친자식은 아니나 그가 사랑하는 가족인 아들 려민과 도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노아까지 모두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철은 그들이 없는 인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래서 그는 마.인.모로부터 받은 것을 과거의 마법세계에 처음 와서 적응 못했던 자신과 같은 인간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마법 세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 지철의 하나의 신념이었다. 특히 오늘은 마.인.모의 신입회원이 들어오는 날이기에 아무리 생일이고 이따 파티가 있어도 더더욱 빠질 수 없는 날이었다.

 

 

  어느새 지철은 ‘활기의 거리’ 입구에 들어섰다. ‘활기의 거리’는 그 이름답게 365일 내내 활기를 띄는 곳이었다. 오늘도 역시 상인들과 사람들로 붐비었다.

 

 

  “오늘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입니다. 구경들 하세요.”

 

  “무조건 옷 두벌만 사면 나수옥 디자이너의 사인회 입장권을 드려요.”

 

 

  거리의 바닥은 형형색색의 보도블록이 물고기나 별 같은 제각기 모양을 이루고 있었고 거리 양 옆으로 즐비한 건물들도 그 형태가 다 달랐다. 책 모양을 한 서점 ‘하멜의 책가게’, 건물이 온통 풀로 뒤덮인 꽃집 ‘마리로즈’, 차양 가득히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식료품 가게 ‘활기 청과’, 레몬맛 케이크처럼 생긴 제과점 ‘브니 베이커리’, 알록달록 블록을 쌓아놓은 것 같은 장난감 가게 ‘토이 팩토리’, 집이 거꾸로 뒤집어진 모양의 잡화점 ‘골라골라’, 목이 긴 도자기 모양의 그릇가게 ‘콤포치’, 나무를 통째로 속을 파내서 지은 ‘세 남매 가구점’…. 이 길의 가장 끝에서 모퉁이를 돌면 바로 지철이 운영하는 기와집의 한식당 ‘수라상’도 있었다.

 

 

  지철은 인간세계에서 자취인생만 30여년이라 음식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인간세계 음식을 파는 한식당을 운영한 것이 대박이 난 것이다. 활기의 거리 골목골목에는 주인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점들과 식당, 술집,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일흔 살의 노인인 지철이 썩 좋아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자리 값도 비싸고 으레 그러하듯 물가도 비쌌기 때문이다. 고담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서 장사하는 것은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하긴 그 날, 그 어른 아니면 마법세계에 올 일도 없었겠지.’

 

 

  토이 팩토리에는 365일 장난감을 사러 온 꼬마 손님부터 어른들로 북적였다. 그 앞에는 항상 아이들이 방금 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없었다.

 

 

  “이거 광고 봤어? 간단히 미래를 점쳐준다는 돌이야. 이 돌이 빨갛게 변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거고 파랗게 변하면 안 이뤄진다는 거래.”

 

  “와, 나는 이번 달 안에 그 아이와 사귈 수 있을지 너무 궁금해.”

 

  “당장 해보자.”

 

 

  파마머리의 남자아이가 손에 돌을 꼭 쥐고 소원을 생각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돌이 점점 파랗게 변했다. 옆에 있던 삐쩍 마른 안경 쓴 친구가 비웃었다. 이번엔 안경 쓴 친구가 소원을 빌었다.

 

 

  “제가 이번 학기 시험에서는 꼴찌를 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돌은 파랗게 변했다. 파마머리 소년은 일그러진 친구의 얼굴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대각선에 있는 ‘활기 청과’는 수완 좋은 주인 덕에 언제나 장을 보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골목골목 자리 잡은 카페에는 허브티에 각설탕을 넣어 차를 마시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는 재잘재잘 수다소리가 넘쳐났다.

 

 

  “그래서 그 돌무더기집 아들은 아직도 안 들어왔대?”

 

  “아직이 뭐야. 완전 행방불명이래. 벌써 2년이 좀 넘었을걸.”

 

 

  지철은 18년 동안 지나온 공기처럼 익숙한 이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어이, 지철!”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모농이 멀리서 지철을 불렀다. 그는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답게 언제나 딱 떨어지는 정장 차림에 번쩍이는 금테 안경을 쓴 멋쟁이 노신사였다.

 

 

  “생일 축하해. 속은 좀 괜찮은가? 나는 죽을 것 같네.”

 

  “아, 모농. 술독에 빠져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정신없구먼. 그나저나 나 어제 얼마나 잃었나? 많이 잃었나?”

 

  “이 사람아. 자기도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런.”

 

  “그런데 자네는 이리 차려입고선 파티 두고 그리 급하게 어딜 가는가?”

 

  “오늘 모임이 있는 날이야. 늦었네.”

 

  “아차, 그렇구먼. 자네를 너무 오래 봐서 가끔 인간인 걸 잊어버리곤 한다니까. 그럼 이따 파티에서 보세.”

 

  지철은 다시 발걸음을 서둘러 길모퉁이를 돌아 문 닫은 자신의 가게 ‘수라상’을 지나 옆, 옆의 하얀색 시멘트 건물로 들어갔다. 2층에 위치한 모임장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원형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었다. 뒷문 바로 앞에 마련된 다과상에서는 더벅머리를 한 소년이 프리지아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에서는 이미 신입회원의 자기소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지철은 비어있는 경미의 옆에 착석했다.

 

 

  “…철저히 인간의 피만 흐르는 인간들도 드물게 하루아침에 안다미로가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동생이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깨우친 거라고……. 무슨 소린지 잘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있긴 했어요. 어느 날은 동생이랑 싸웠는데 그 애가 아끼던 열쇠고리를 손에 쥐니 제 머리가 이렇게 파랗게 변한 거예요….”

  어딘가 침울하고 어두운 파란머리 소년이었다.

 

 

  “저는 맞은편에 있던 거울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가 기절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눈을 떠보니 저는 방에 누워있었고 이상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와있었어요. 이제 우리 가족은 마법세계에 가서 살아야한다고 했어요……. 감사합니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박수소리가 조그맣게 터졌다. 파란머리의 소년은 조용히 지철의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지철은 그의 어두운 기운 때문인지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의 소심한 시선은 어딘가 지철을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 더벅머리 소년이 사람들에게 차를 나누어주며 인사를 했다.

 

 

  “여기 차 드세요.”

 

  “처음 보는구나. 오늘이 처음이니?”

 

 

  지철은 소년의 차를 건네받으며 인사했다.

 

 

  “고맙다, 가한아. 아까 소개 다 끝났어요. 일찍 좀 다니셔요.”

 

 

  경미가 차를 홀짝이며 호호 웃었다.

 

 

  “이런, 미안하구나. 가한이?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여기서 다 터놓고 얘기하여라. 금전적인 거 빼고는 흔쾌히 도와주마.”

 

 

  가한은 가볍게 웃으며 목례를 하고 옆 테이블에도 차를 나눠주었다. 지철도 경미를 따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생일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프리지아 향이 더 향긋한 기분이었다.

 

 

  ‘툭-, 툭-’

 

 

  앞에서 사회자 영선이 마이크를 쳤다. 안다미로들이야 전지전능한 안다미룸으로 마이크도 대용하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마이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브로커를 통해 저 마이크를 공수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이로써 신입 회원들의 인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회원분들은 이제 테이블에서 편하게 다과를 드시면서 신입 회원들과 서로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참,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영선에 주목했다.

 

 

  “오늘은 저기 가운데 테이블에 멋진 정장을 입고 온 우리 마.인.모의 큰 어른이신 공지철님의 일흔 번째 생신이십니다. 다 같이 축하의 박수 한 번 주세요.”

 

 

  박수소리가 터졌다. 지철은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서 이런 대접 한 번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따가 7시에 공지철 어르신의 일흔 잔치가 옆에 한식당 수라상에서 있을 예정이니 시간 되시는 분들은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선의 공지 전달이 끝나고 테이블마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철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경미였다.

 

 

  “오늘 아침에 꿀물 드셨수?”

 

  “아, 그래. 그거 어떻게 구한거요? 내 평생의 한을 이룬 기분이오.”

 

  “안리가 몇 달 전부터 말하더라구유. 네 달 전에야 주문한 걸 일주일 전에 받았지 뭐에유.”

 

  “내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이었어.”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지철은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파란머리 소년이 18년 전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계속 신경 쓰였다.

 

 

  “흠, 흠.”

 

 

  지철은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파란머리 소년이 지철과 눈이 마주쳤다.

 

 

  “이름이 뭐니?”

 

  “현…수호에요.”

 

 

  그는 목소리조차 침울했다.

 

 

  “그럼 공부는 어떻게 계속 하는 거니?”

 

  “잘 모르겠어요. 홈스쿨링도 고려해보고 있어요.”

 

  “홈스쿨링도 좋지. 요새 인간세계에서도 홈스쿨링이 점점 늘어나고 있대요.”

 

 

  수호의 옆에 앉아있던 수다쟁이 아줌마 윤주가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테이블의 대화가 홈스쿨링 찬반토론으로 넘어갔다. 지철은 토론 내내 열을 올리며 차를 한 잔 다 마셨다. 차만으로는 그의 열변을 가라앉히기 역부족이었던지 혈압이 오른 것처럼 머리가 아파 잠시 일어섰다.

 

  지철이 일어서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심히 토론했다. 수호는 일어나는 지철을 잠시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지철은 뒷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 크게 난 창문에 햇빛이 들어와서인지 몸이 따뜻하고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눈도 점차 감기는 것 같았다. 괜히 심장이 두근대는 듯 했다. 지철은 몸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 호흡을 정리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요만큼 걸었다고 숨이 이렇게나 차오르네.’

 

 

  지철은 점점 눈앞이 뿌예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확히 3초 뒤, 지철은 고요하고 아득히 검은 물질로 가득한 우주 한가운데 떠있는 기분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은밀히 문이 열렸다.

 

 

  “기대 이상으로 더 간단하군.”

 

 

  한 남자의 목소리가 차갑게 복도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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