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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사 이디스
작가 : 앵스티
작품등록일 : 2017.10.30

[마왕딸(?)여주/황제아들(?)여주/남장여주/용사여주/기사여주/걸크러쉬/예쁘고 잘생기고 조신하고 참한(?) 남주들 다수 대기중(??)]

마왕의 손에 키워졌었지만 아르딘 제국의 삼황자이자 제국 제일가는 기사이자 마족에게서 세상을 구할 용사인 이디스의 꿈은 세계평화가 아닌 운명적 사랑!

그녀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표지는 @HSCOMMI ‏님께서 커미션으로 그려 주셨습니다! *^//^*

 
이야기의 시작
작성일 : 17-10-30 22:17     조회 : 432     추천 : 0     분량 : 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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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잠에서 덜 깨 가라앉은 소리와 함께 큼지막한 손이 푹신한 침대 위를 더듬었다. 이쯤에 작고 따끈하고 몰랑몰랑한 게 꼬물대고 있어야 하는데 왜 없지? 하는 움직임이었다. 상처투성이의 위협적인 근육이 점점 사납게 꿈틀거렸다. 길고 검은 곱슬머리가 신경질적으로 치워졌다.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눈이 텅 빈 침대를,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방 이곳저곳을 날카롭게 훑었다.

 

 “딜루이네!”

 “네. 블라이디에 님.”

 

 마왕의 부름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들어온 마족이 머리를 조아렸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쏟아지는데도 일말의 주저 없는 그 모습에 순간 치밀었던 노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렇게 빈 가슴 가득 걱정이 차올랐다. 아주 소중한 것이 사라져 버렸다. 마력을 거둬들여 검게 변한 눈동자가 불안으로 흔들렸다.

 

 “아이가 사라졌다.”

 

 마왕은 잠시 말을 멈췄다. 딜루이네는 여전히 순종적인 자세로 마왕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은 인간친화적이다 못해 아예 인간 아이를 마왕성에서 기르고 있는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마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행히 딜루이네가 뭔가 일을 벌인 것 같지는 않았다.

 

 “길게 말할 것도 없겠지. 신속히 찾아내서 내 앞으로 데려오도록.”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사라진 그녀, 세 번째 눈의 딜루이네는 마왕의 오른팔이자 마계의 이인자였다. 그녀는 검은 두 눈 외에도 이마에 세 번째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눈은 단 한 번도 제 색을 보인 적 없었다. 그것을 두고 많은 억측들이 있었다. 인간의 피와 눈물과 공포를 사랑하는 반(反)마왕파의 마족들은 마왕 블라이디에의 몰락을 바라며 외쳤다.

 

 「딜루이네 님의 세 번째 눈이 뜨이면 겁쟁이 마왕은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퍽이나 온건한 성향의 블라이디에를 겁쟁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마왕좌를 딜루이네에게 넘기고 싶었던 블라이디에가 가볍게 물었다.

 

 「그렇다는군. 어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의 주인이 돼 보겠나?」

 

 마왕의 자리엔 가장 강한 마족이 올라야 했다. 마계는 순전히 마왕의 힘으로 유지되는 세계였다. 마왕이 약하면 마계의 마력량도 적어지고 자연히 마족들의 힘도 약해졌다.

 

 마왕이 아닌 마족 중에 마왕보다 강한 마족이 생기면 마계가 혼란스러워졌다. 마계가, 마왕의 ‘그릇’이 그 마족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해 서서히 붕괴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그때가 마왕의 세대교체 시기였다.

 

 유례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블라이디에 바르디아흐 이테 이테가 마왕의 자리에 오른 덕분에 지금의 마계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리고 강력했다. 새로 태어나는 마족들 중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강하고 다양한 능력을 가진 마족들의 수는 크게 늘었다. 그건 그만큼 블라이디에의 힘이 대단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마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지금의 마계는 한 달을 채 못 버틸 게 분명했다. 아예 그를 다른 차원에 처박아 둘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멍청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습니다, 블라이디에 님.」

 

 현명하고 겸손한 딜루이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눈앞의 마족의 목을 잡아 뽑았다. 방금 마왕을 겁쟁이라 모욕한 마족이었다. 그 마족과 뜻을 같이하던 다른 마족들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압도적인 힘이 딜루이네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오래지 않아 딜루이네의 손에 산채로 목이 뽑혔다.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마다 마족 한 명이 명을 달리했다. 그녀의 검은 옷과 장갑이 원래 검었던 것인지 아니면 피에 절여져 그렇게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도 잔인하고 일방적인 살육은 멈추지 않았다.

 

 마왕에 대한 적대감으로 미쳐버린 건지 아니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질려 버린 건지는 몰라도 그들 중 한 명은 딜루이네의 바짓단을 붙들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딜루이네 님!”하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 장갑을 낀 손은 일말의 주저 없이 놈의 목을 잡아 뽑았다.

 

 “젠장.”

 

 그렇게나 유능하고 충실한 수하이니 이제 자신은 그저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인데, 도무지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블라이디에는 작은 아이가 방 안에 없는 걸 알면서도 손수 하나하나 낱낱이 꼼꼼히 뒤졌다. 장식장 뒤에서 아이가 보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헝겊인형이 나왔다. 커다란 침대 아래에서는 그의 칼과 비슷하게 생긴 장난감 칼이 나왔다. 아이의 생일날 선물로 주려고 숨겨둔 것이었다.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부드럽고 포근한 햇살의 냄새가 나는 작고 여린 몸을 품에 안고 싶었다. 안전하고 아늑한 침대 위에서 느긋하게 뒹굴고 싶었다. 블라이디에는 나중을 기약하며 작디작은 아이의 베개를 대신 안고 침대 위에서 뒹굴 굴렀다.

 

 아이가 마왕을 싫어하는 어느 마족의 손에 해코지당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인간이긴 하지만 아이의 몸을 가득 채운 마력은 마왕 자신이 직접 선물한 것이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한껏 담아, 아이의 ‘그릇’을 몇 번이고 키워 가며.

 

 태어날 때 한계가 정해지는 마족과는 달리 인간은 계기만 주어지면 그 한계를 몇 번이고 넘길 수 있었다. 흔히들 잠재력이라 하는 그 특성 덕에 아이는 마력이 가득한 마계에서 그 마계의 주인인 블라이디에의 마력을 숨 쉬듯 들이마시며 끝을 모르고 성장해 왔다. 순수한 마력량만 본다면 딜루이네보다도 아이 쪽이 더 대단했다. 그리고 그 강대한 마력은 단 하나의 마법, 일종의 축복이 되어 아이를 지켜주고 있을 터였다. 블라이디에는 아이가 홀로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까, 얼마나 고되고 슬픈 싸움일까, 혹 울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만이 걱정이었다.

 

 몇 세기에 달하는 시간을 잠으로 보내버릴 만큼 무료하고 외롭기만 한 삶을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런 삶이 아이를 만나 색채를 얻고 향기를 얻고 사랑을 얻었다. 그건, 기적이었다. 아이는 그에게 기적 그 자체였다.

 

 블라이디에는 지금도 생생히 그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원치 않는 마왕의 자리는 그가 긴 잠을 자고 돌아왔어도 여전했다. 자기파멸적인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을 애써 눌러 삼켰다. 당장 그 현실을 외면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술을 들이켰었다.

 

 「딜루이네.」

 

 조용히 옆에 자리한 딜루이네에게 마왕이 되고 싶지는 않느냐고 술주정인 척 물었다. 이젠 거의 술버릇이 된 질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냉막한 얼굴로 대답했다.

 

 「블라이디에 님께서 소멸하시기 전엔 싫습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블라이디에는 평화롭게 마왕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또 궁리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긴 세월 동안 수없이 해 온 일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간계로 향했다. 어긋난 시간축 덕에 그가 돌아왔을 때 하루가 지나 있을지 일 년이 지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얼마가 지나 있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첫 계약자인 마녀 베르웰라에게 찾아가 인사했다. 핏기 없는 입술이 살풋 웃어 보였다.

 

 「이번엔 얼마만이지?」

 「일주일 만이네요. 내 계약자께선 얼마만이신가요?」

 「몇 세기 정도.」

 「그 시간축이라는 건 어떻게 좀 할 수 없는 건가요? 이번엔 정말로 심하잖아요.」

 「글쎄.」

 「있긴 한데 까먹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진심 어린 위로와 충고를 받았다. 헤어질 때마다 베르웰라는 마족들에게도 신경을 좀 써 주라며 블라이디에의 등을 떠밀었지만 그는 이미 한계였다. 마왕으로서 그 자리를 지킨 채, 자신이 속한 세상인 마계와 자신이 지루한 삶에 짓눌려 죽어 버리지 않게 해 주는 인간계에 피바람이 불어닥치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베르웰라와 헤어진 블라이디에는 바로 마계로 돌아가기 싫어서 마력을 숨기고 인간계를 돌아다녔다. 그는 푸르고 검고 때로는 붉은 바다,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른 신비한 사막, 험준하고 아름다운 산맥과 계곡을 지났다. 인간계는 언제나 그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블라이디에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인간들이 번성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블라이디에가 어느 숲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별 생각 없이 그리로 다가갔다. 붉고 쭈굴쭈굴한 핏덩이가 부드러운 천에 둘둘 말려 있었다. 신기하고 괴이한 몰골이었다. 그가 그렇게 잠자코 관찰하는 사이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죽어 버렸나 싶어 고개를 들이밀었더니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것이 입술을 벙긋거리며 뭔갈 찾고 있었다.

 

 블라이디에의 커다란 손이 잠시 멈칫거리다가 쭈뼛쭈뼛 그리로 다가갔다. 주변에 작고 붉은 과실들이 몇 있긴 했지만 하나같이 독을 품고 있는 것들이라 아기에게 물려줄 수 없었다. 문득, 여기에 아기를 버린 누군가는 아기가 저 독을 먹고 죽길 바란 걸까 아니면 저 독이 다른 짐승들로부터 아기를 지켜주길 바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생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라 새하얀 크림 같은…… 터무니없이 부드럽고 연한 것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떨어졌다. 커다란 손이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애애애앵! 잦아들었던 울음소리가 전보다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블라이디에는 조심스레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좋은 맛도 향도 감촉도 없을 텐데, 아기는 그 손에 몇 번이고 입술을 가져다 대며 방긋방긋 웃었다.

 

 어린 생명을 품에 안아들었다. 아기는 온몸이 그 입술처럼 터무니없이 부드럽고 연했다. 품에서 뭉개질까 두려울 정도였다. 블라이디에의 폼이 절로 엉거주춤해졌다. 그건 왠지 간질간질하고, 부끄러운, 아주 생소한 감각이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지루한 삶이 조금쯤 덜 지루해지리라 기대하며 짧게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 아니, 운명이었다. 그 한 명의 인간이 블라이디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아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랐다. 고개를 들고, 방긋 웃고, 기고, 일어서고, 뛰어다녔다. 아이가 방긋 웃으며 내민 손을 그는 단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었다.

 

 분명 마계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 텐데도, 그 태생 때문인지 아이에게선 마계가 아닌 인간계의 향기가 났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휘날릴 때마다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불어 왔다.

 

 언제나 곱게 휘어져 있는 갈색 눈엔 사랑과 신뢰가 가득했다. 오른쪽 눈 아래 콕 찍혀 있는 점에 장난스럽게 입술을 가져다 대면 까르르 굴러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랑스러웠다. 사랑했다.

 

 「블랑!」

 

 블라이디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짧은 혀마저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사랑스러운만큼이나 인간의 삶은 짧았다. 마족… 특히 블라이디에의 수명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찰나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을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리라 이미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맹세한 바가 있었다.

 

 그런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블라이디에는 이미 딜루이네가 살폈을 걸 알면서도 성 구석구석을 뒤집어 놨다. 침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추억이 담긴 장난감만 나올 뿐 아이의 행방을 유추해낼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바싹 마른 모래알인 양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끔찍하고 불길한 상상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하루가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마왕 블라이디에는 그야말로 마왕답게 마계 전체를 들쑤시고 다녔다. 꽃밭에서 놀다 지쳐 잠들었나 싶어 온갖 것들이 심어진 정원을 다 헤집었다. 어느 늪에 빠지기라도 했나 싶어 내용물을 죄 파냈다. 이름 모를 마족의 둥지를 망가뜨리고, 종종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늙은 마룡의 배를 갈랐다.

 

 흰 검신이 불안과 공포로 파르르 떨렸다.

 

 붉은 내장 안쪽에선 아이는 물론이고 여느 인간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블라이디에는 한편으론 안도하고 한편으론 절망하며 이미 폐허가 된 마계를 내려다봤다.

 

 딜루이네가 붉은 눈을 한 블라이디에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블라이디에 님.”

 “찾았나?”

 “죄송합니다.”

 

 딜루이네는 지나친 강행군으로 벌벌 떨리고 있는 손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마력이 회복될 새 없이 마법을 난사했더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침을 삼키면 철 맛이 나고 눈물을 흘리면 피눈물이 흘렀다.

 

 그런 딜루이네의 바로 앞에 그녀보다 수십 배는 더 큰 힘을 써 온 블라이디에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서 있었다.

 

 “마계를 들쑤시는 것보다 중한 일이 생겼습니다. 블라이디에 님.”

 “내 아이가, 내 성에서, 내 곁에서 사라졌는데 그보다 중한 일이라고? 별 거 아닌 일이면 이번에야말로 소멸시켜 버릴 테니 말해 보아라.”

 “마왕을 물리치기 위한 예언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용사로 어느 인간이 지목됐다는군요.”

 

 아름다운 검이 딜루이네의 가는 목에 가 닿았다. 그게 끝이냐? 하고 묻듯 천천히 눌러 오는 검신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가 마저 말했다.

 

 “갈색 눈에 갈색 머리카락, 오른쪽 눈가에 눈물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누군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바로 검이 치워졌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나 혼자 가겠다. 딜루이네, 너는 이곳에 있도록.”

 “명을 받듭니다.”

 

 딜루이네가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지만 블라이디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언제나 표정 없던 얼굴에 쩌적 금이 가 있었다. 쑥대밭이 된 마계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던 때보다도 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작은 몸이 이내 마계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우뚝 섰다. 살벌하고도 아름다운 미소가 딜루이네의 무표정하던 얼굴을 가득 덮었다.

 

 “아무렴요.”

 

 그녀의 세 번째 눈이 개안했다.

 

 

 금색 빛무리 안쪽에서, 오래도록 정제된 욕망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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