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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친 마녀의 촌극
작가 : 난인
작품등록일 : 2016.8.8

속칭 미치광이로 몰락한 연극인 '멜'과 그녀에게서 연민을 느끼는 정신병원 의사 '시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멜'의 남자 '제미'에 관한, 미쳐있는, 미쳐가는, 미칠 것 같은 미친 이야기.

 
0. 만남
작성일 : 16-08-08 21:12     조회 : 602     추천 : 2     분량 : 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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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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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차."

 

 한껏 들떠있는 여자의 손아귀에 원만히 밀려난 석벽 틈으로 선홍빛 볕이 밀려든다. 정면에 위치한 유리창의 굴절이 없었더라면 꽤나 황홀했을 법한 석양이다.

 

 "제미!"

 

 저물어가는 태양을 배웅하던 희멀건 남자의 시선이 갓 마루를 디딘 여자에게 박혔다.

 

 "일찍 왔구나, 멜."

 

 여자가 특유의 가벼운 걸음걸이로 총총 튀며 가까워오자, 남자는 반가운 기색으로 손짓한다. 쉬이 깨져버릴 것 같이 투명한 그의 홍채에 은연한 호박빛깔이 출렁인다.

 

 "응, 제미. 오늘은 어떤 경치를 그리겠어?"

 

 탁상에 폴짝 걸터앉아 즐거운 고갯짓을 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대답 대신 창문을 두어 차례 쓸었다. 그와 동시에 해수면 아래로 마지막 햇살이 거두어지고, 껌껌해진 밤하늘은 달빛조차 허용치 않을 낌새다.

 

  완전무결의 암흑이 되어서야 드러난 반딧불은 곧장 남자의 손끝으로 삼켜지고, 남자는 빛을 머금은 뼈마디를 푯대삼아 밤바다보다 어둔 그림자들이 들끓는 블랙보드 위를 춤추듯 헤집는다. 곧이어, 그 자취를 따라 커다랗고 푸른 반구체가 떠오른다.

 

 상상하던 그대로의 3차원 물체를 바라보던 남자가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뗀다. 이어지는 그의 수세에 하나 둘씩 창조되는 모양새가 마치 한 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하다.

 

 "언덕을 그려. 잡초는 꽤 무성해도 여기 저기 피어있는 색색갈의 들꽃들과 적절하게 어우러져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루지. 하지만 그 속에 간간히 숨어 있는 날카로운 돌부리들을 조심해야 할 거야. 이들의 목을 적셔 줄 가느다란 물줄기도 잊어선 안 되겠지? 이쯤에서 언덕의 끝자락에 거울과 같은 반사면을 덧대서 비추어 데칼코마니처럼 완전히 대칭시켜 볼까. 마주보는 두 개의 반구체는 마치 곤충이나 작은 동물이 살 법한 하나의 동그란 행성처럼 보일거야……."

 

 남자는 말끝을 흐리며 마무리했다. 곧바로 시각이 전환되면서 2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두 언덕이 이어진 경계에 자리 잡아. 그 상태로 무시무시한 해적선의 포탄이 되어 구름 사이로 쏘아지는 거지. 템스 강을 옆구리에 낀 채 높게 솟은 다리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돌리던 느낌으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올라가, 어느덧 대지에 뿌리를 둔 모든 것들이 우리의 발꿈치 아래에 있게 돼. 아래로는 불규칙하게 넘실거리던 도심의 불빛들이 한 데 모여 각각의 별이 되어 빛을 뿜고, 위로는 뿌연 먼지에 가려져 종적을 감췄던 사이 더욱 찬란해진, 오랜 세월 인간들에게 별빛이라 일컬어지던 신비스러운 광채들이 눈부신 자태를 뽐내."

 

 그 장관을 넋 놓고 바라보던 여자가 숨을 크게 들이쉬자, 남자는 한 템포 늦추며 말을 잇는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광선들이 치열하게 맞물리는 와중에, 서로의 빛 입자가 부딪혀 소멸하는 마찰면을 찾아 이 거대한 대포알의 축으로 삼자. 그리고 손끝에서 퉁겨진 동전이 허공에서 산만하게 회전하는 모양처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작은 행성을 정신없이 뒤흔들어 볼게. 아무리 집중한다한들, 얼마 안 가 우리는 위아래를 분간하지 못하게 될 거야. 수차례의 뒤집기를 반복하다 손등 위로 떨어진 동전의 윗면을 모르는 상태로, 다시금 우리가 딛고 선 두 언덕의 경계면을 세상의 중심에 일치시키고는 우리 역시 그것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는 거야."

 

 그것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는 거야.

 

 

 

 “제미, 넌 그 곳에 있어?”

 

 미치광이인가 보군. 연못 앞에 쭈그려 앉아 손바닥을 수면 가까이로 뻗으며 중얼거리는 여자를 목격한 시몬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얀색 오건디 원피스를 입고 어깻죽지 아래로 흑발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옷 끝자락의 풍성한 레이스를 스치는 발목이 부러질 듯 가녀린 여성이었다. 자연의 생명력이 넘치는 드넓은 뜰과 유약무한 그녀의 존재감은 서로 기묘할 정도로 부조화를 이루었다. 홱. 바람소리보다 작았을 그의 독언에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턱 끝을 치켜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차, 했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산책길을 거닐던 시몬을 발견한 여자가 그에게 당돌한 시선을 추켜 박았다.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한 시몬은 예기치 않게 여자와 대견하는 상황에 놓여졌다. 여자는 초연한 얼굴로 원체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천천히 꿈뻑였고, 금방 거두어질 줄 알았던 그녀의 눈길은 한동안 그 방향을 유지했다.

 

 ‘뭐야. 무슨 생각이지?’ 

 

 그녀의 또렷한 눈초리는 평소 대범한 시몬에게조차 위압감을 선사했다.

 

 벌떡. 시몬이 패배를 인정하고 이제 막 눈길을 거두려는 때, 여자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여전히 현실성이라곤 일절 없는,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의 여자에게서 시몬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산짐승의 살기 비스름한 것을 느꼈다.

 

 결이 좋다고 생각했던 굵고 까만 머리칼은 괴상한 방향으로 너풀거렸고, 흰 천을 두른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시퍼럴 지경이었다. 충분히 병약해 보일법한 외관이었지만, 견고하고 야무진 그녀의 몸짓과 음특한 낯빛은 오히려 정반대의 인상을 심어주었다.

 

 공포는 그의 의식보다도 먼저 본능을 자극했다. 이내 두려움에 완전히 질려버린 시몬의 육체는 도리어 그 자리에 빳빳이 굳어 손 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맹수에게 등을 보이는 순간 잡아먹히는 법. 그 와중에도 내면의 마지막 안전장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말라고 명령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어흥!”

 “아악!”

 

 낌새를 알아차릴 틈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여자는 손톱을 갈고리처럼 치켜세우곤 먹이를 덮치는 맹렬한 암사자처럼 오른발을 훅 내딛어보였다. 그녀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잔뜩 긴장한 채였던 시몬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뒹굴어졌다.

 

 “깔깔. 추하다, 추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시몬의 엉거주춤한 자세에 여자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그것은 마치 확실한 우위의 강자가 객기를 부리는 약자를 조롱하는 모양새였다.

 

 온 힘이 풀려 축 늘어진 상태로 벙쪄 있던 시몬은 그제야 의식을 되찾았다. 울컥 밀려드는 짜증도 함께였다. 알 수 없는 기괴함을 풀풀 풍기는 그녀였지만, 그래봤자 유약한 여자에 불과할 터였다. 봇물 터지듯 쏟아진 이성은 그를 겁쟁이라 비웃으며 자괴감을 떠안겼다.

 

 “저.”

 

 이내 그녀에게 질겁했던 것에 퍽 자존심이 상한 시몬이 저기요! 하고 목청을 높이려는 순간, 여자는 등을 휙 돌려 반대편으로 깡충깡충 뛰어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 지 땅을 딛는 건가 허공을 딛는 건가 헷갈릴 정도로, 그렇게 여자는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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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흑나비 16-08-10 15:08
 
분위기가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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