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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래를 보는 소년
작가 : 율룰루루
작품등록일 : 2017.10.30

어느날 미래래를 보는 능력을 얻게된 루크, 의문의 사람들에게 쫒기게 된다.

 
은시계
작성일 : 17-10-30 20:33     조회 : 436     추천 : 1     분량 : 1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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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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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낯선 일의 연속이었다. 평소에는 꾸지도 않던 악몽에 시달렸고,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나 그날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할 뿐이었다.

 

 ----

 

  "안 돼-!"

 

  눈이 번쩍 뜨였다. 루크는 눈짓으로 사방을 살폈다. 어딜 봐도 익숙한 이곳은 루크 자신의 방이었다.

 

  송글송글 맻힌 이마위의 땀방울들, 자면서 몸부림친 흔적이 있는 이불.....

 

  루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 밤 중에 찾아온 꿈은 그저 악몽일 뿐이라고 루크는 생각했다. 책상 위로 손을 뻗어 폰을 잡았다.

 

  "젠장! 지각이닷!"

 

  시간은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짓말이여야 한다. 벌써 오분 지각은 말도 안 되잖아.

 

  속으로 이건 꿈이라고 되네어도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5분 안에 나갈 준비를 마친 루크는 거실로 뛰쳐나왔다.

 

  "엄마, 나 학교......"

 

  소파에 앉아있던 지연은 루크를 보자마자 황급히 상자속 내용물을 감췄다. 소년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연이 감출만한 건 그것 밖에 없다고 짐작했다. 7년 전 불구덩이 속에서 재가 되어버린 남자의 유물이었다.

 

  "하, 왜 그 사람껄 여태 가지고 있어? 버려. 그런식으로 떠난 사람 뭣하러 기억해!"

 

  루크는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르고 학교로 가버렸다.

 

  "그딴거 버려! -하고 나왔냐?"

 

  우윤이 루크에게 물었다. 왼손으로 턱을 괸채 입술을 실룩거렸다. 눈은 장난끼가 가득했다.

 

  "어떻게 알았냐?"

 

  "묘사의 달인하면 성우윤 아니겠니. 자고로 묘사란 관찰력인데, 네가 도착하자마자 딱! 비 맞고 빡친 생쥐처럼 두 손을 부들부들 딱! 네 성격에, 네가 그렇게 화를 낼 만한 게 뭐가 있냐?"

 

  루크는 정곡이 찔렸다.

 

  "야.....나도 꽤 다양하게 화 내거든?"

 

  "꽤 다양하게 착하겠죠. 옛날옛적에 남자아이 한 명이 살고 있었어요. 아이는 바보 같이 착하며 둥글둥글하고, 거절도 잘 못했답니다. 그러나 아이 주변엔 나쁜 어른들이 많았어요. 호기심에 나쁜 어른들에게 다가간 아이는 간이고 쓸개고 다 줬습니다. 그래도 넌, 네 아빠 유품 하나에만 화내는 놈이야."

 

  이때 민경과 강우가 우윤의 옆에 착석했다.

 

  둘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인기 높은 모델 만큼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키가 안 된다는 게 흠이지만.

 

  "타림이는 아파서 오늘 결석."

 

  민경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남자 같은 모습이 많아 '강민경'이라는 이름 대신 '강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왕타림. 그는 중국에서 전학온 소년이다. 춤은 지지리도 못추면서 댄스가수가 꿈이란다.

 

  "어쩌피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나올 텐데 하루쯤 그 저질스러운 춤 안 보면 어때."

 

  우윤이 말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소나기에 애들은 우산 없다며 걱정했다.

 

  7년 전 그날은 이렇게 비가 오지 않았다.

  남자의 손에 은시계가 들려 있었다.

  뚜껑에 사자 그림이 새겨진 은시계가.

 

  가족보다 은시계가 소중하면 그냥 가출하지.

  그것 때문에 죽을 정도였으면.

 

  우중충한 날씨에 음식도 영향 받았나 보다. 오늘의 반찬은 풀이었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10대들에게 사형선고 같은 점심시간이었다.

 

  후식은 당연히 학교 매점에 있었다. 굳이 후식이라 할 것도 없이 쉬는 시간 언제나 매점은 항상 열려있었다.

 

  주인은 웃는 듯 마는 듯 미묘한 표정으로 과자를 팔았다.

 

  한 손엔 포도 주스, 다른 손엔 초코맛 과자를 들고 루크는 반으로 돌아왔다. 소년의 친구들도 저마다 좋아하는 과자랑 음료를 하나씩 가지고 왔다. 책상 위에서 작은 과자 파티를 연 아이들은 떠들었다.

 

  [하교하고 있었다. 민경이가 뭐라 말하자 다들 야유했다. 정문을 통과하기 전 축구공이 날아와 루크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루크가 말하다 말고 멈추었다. 방금 뭔가가 보였다. 정확히는 영상 같은 것.

 

  "야-, 왜 말하다 말어? 어제 본 영화가 뭐?"

 

  민경이 고개를 내밀었다. 빨리 답하라는 표시다. 그녀의 입주변엔 방금 마신 우유 자국이 선명했다.

 

  그제서야 루크는 아직 과자파티 중이란 걸 깨달았다.

 

  뭐였을까 그건....단순히 상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한 느낌......

 

  저녁 때가 다 된 시각, 담임의 짧은 종례를 끝으로 아이들이 줄지어 나갔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렸고, 정문 앞은 아이들을 기다리는 승용차로 가득했다.

 

  "야."

 

  강우가 루크의 어깨를 쳤다.

 

  "아까 우리 엄마 왔다 간거 알지? 여분으로 우산 하나 더 주시더라."

 

  "오- 역시 강우? 센스 칭찬해요~."

 

  루크가 삼단 우산을 넘겨 받았다. 공짜 우산에 미소가 지어진다.

 

  "네가 받았냐? 내가 전화해서 내가 직접 받았지. 루크야 칭찬은 저딴 도둑놈한테 하면 안 돼."

 

  민경이 아저씨처럼 짝다리 짚었다. 그녀는 장우산의 단추를 클러 먼저 입구를 빠져 나와 친구들을 기다렸다.

 

  "이 외모면 여자 여럿 울리는 구미호라고 해도 믿는다?"

 

  강우가 벽에 몸을 기댔다. 실현당한 사람 같이 오른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손끝을 적셨다.

 

  강우가 치명적인 척 하는 사이 루크, 민경 그리고 우윤은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혼자서 쇼한 게 쪽팔린 티 안나게 그는 억지로 웃으며 무리로 갔다.

 

  "구미호씨 오늘 이거 아빠한테 알려도 되나?"

 

  진담반 농담반인 민경에게 모두가 야유를 했다.

 

  이란성 쌍둥이의 아빠는 모두가 인정하는 호랑이다. 특히 이상하게도 외모 부분에서 열낸다.

 

  "조심해요-!!!!"

 

  누군가가 소리쳤다.

 

  축구공이 루크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우산을 떨어뜨린 루크는 맞은 쪽을 손으로 감쌌다. 머리통이 울린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고개를 돌려 눈살을 찌푸렸다.

 

  초록색 명찰. 2학년 선배들이 찬 공이었다. 그들은 다가와서 사과하며 괜찮냐며 물었다.

 

  괜찮을리가 없다. 분명 머리를 맞았고, 속도 울린다. 그러나 순간 루크는 멍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까 봤던 그 영상....상황이 무엇하나 틀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서 강우와 민경이 내렸다. 또 그 다음은 우윤이다. 루크는 언제나 그렇듯 여섯 번째 정거장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머릿속은 그 영상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했다.

 

  정말 예지몽이란 게 존재하나?

 

  깨있는 상태에서도 꿈을 꾼다는 게 가능하나?

 

  걷는 내내 폰으로 연신 검색해봤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 죄다 하나 같이 예지몽에 대해 학술적인 뜻만 말하고 있는 걸까.

 

  굽이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낡은 아파트 한 채가 나왔다. 그 앞에는 작은 슈퍼가 하나 자리했다.

 

  루크는 슈퍼에 들렸다. 아침에 지연에게 화를 낸게 미안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과자라도 사야겠다 싶었다. 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달콤한 걸 좋아하는 지연의 과자 취향이야 눈 감고도 고를 수 있다.

 

  루크는 집어든 과자 한 봉지를 계산대에 턱 올렸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슈퍼 주인이 루크의 손을 더럭 잡았다. 주름진 손, 처진 볼살, 깊게 파인 눈 만큼이나 구부정한 등과 하얀 머리가 흡사 마녀 같았다.

 

  슈퍼 주인은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괴짜였다.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이상한 말을 했다. 허공에다가 혼잣말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는 주민도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더 이상한 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미친 사람처럼 굴긴하지만 기억력 하나는 좋다는 것이었다.

 

  놀라서 손을 내뺀 루크가 노인을 처다봤다.

 

  "그분이 오실 거야. 그곳으로 가면 모든 것이 해결돼."

 

  노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장난 거리를 발견한 아이 같은 눈으로 루크를 처다봤다. 아니, 기괴한 미소 같았다.

 

  묘하게 소름돋는 이 느낌, 늦은 밤 아무것도 없는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루크는 급한 마음에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많이 파세요'란 말만 남기고 나와버렸다.

 

  단숨에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지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음식점 직원이라 평소 밤 11시가 되야 퇴근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신경쓰지 않았다.

 

  집은 따스한 온기를 안고 있었다. 모자에게 힘든 시련이 닥쳐 왔을 때도 집은 늘 말 없이 고통을 품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어졌다.

 

  "엄마한테 연락해야 겠다. 아침에 그렇게 나가버린거 미안하다고."

 

  거실 불을 켜는 순간 루크의 낯빛이 변했다. 소파 위에 남자의 유품이 놓여있었다. 루크는 가방과 과자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소파로 향했다.

 

  유품인 은시계는 론이 평소에 아끼던 물품이었다. 론은 죽을 때도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루크의 얼굴에 결심이 섰다.

 

  남자는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그의 유품 또한 사라져야 한다.

 

  밤 8시, 여름 저녁이기는 하지만 루크에게는 겨울 바람 만큼이나 차가웠다. 비는 여전히 새차게 왔지만 무작정 나온 소년의 양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지 않았다. 소년은 쏟아지는 빗방울 사이를 뚫고 쓰레기 분리수거함으로 뛰어갔다.

 

  루크는 은시계를 든 오른손을 꽉 쥐었다.

 

  항상 웃어 주었던 사람.

 

  그러나 일말의 예고도 없이 화염 속으로 사라진 사람.

 

  은시계를 망설임 없이 들었다. 확 내던지려는 순간 또 다시 영상이 보였다.

 

  [울다 지친 기색의 여자가 있다. 인파 속에서 회색빛 도로 위를 걷고 있다. 후드가 달린 검정색 코트 사이로 연분홍색 드레스가 보인다. 모자를 뒤집어 쓴 채 풀린 눈으로 어딘지 모르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트럭 한 대가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너무 놀라 은시계를 분리수거함 속으로 떨어뜨렸다. 소년은 가쁨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영상에 가슴이 탁 막혔던 것이 뭐랄까, 못이 살 속을 파고드는 고통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루크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은시계를 떨어 뜨리기 전, 시계 오른 쪽 테두리에 있는 버튼을 눌렀단 사실을 말이다.

 

  8시를 가리키던 은시계의 시침, 분침,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통이 잦아들어 가니 정신이 차차 돌아왔다. 루크는 바로 앞의 종이 분리수거함을 들여다 보았다. 은시계의 목걸이 체인이 수십 장의 종이들 사이 위로 조금 나와 있었다. 아마도 떨어뜨렸을 때 은시계가 종이들 사이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쩌피 버리는 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으면 했다.

 

  루크는 미련 두지 않고 뒤돌아섰다. 뒷배경에는 새차게 내리는 빗방울과, 낡은 아파트 그리고 작은 슈퍼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소년의 눈 앞에 보이는 건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물체들, 손목에 귀와 연결된 줄을 꼽고 통화하는 사람들, 애완로봇을 산책 시키는 사람들 등으로 가득했다.

 

  "이...이게 뭐야...도대체?"

 

  영화 같은 장면에 입이 벌어졌다. 꿈인가? 볼을 꼬집고 때려봐도 아프기만 할 뿐 오히려 감각은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 혹시 아픔도 그대로 느껴지는 꿈인가? 그렇지만 이건 너무 생생했다. 루크는 다시 분리수거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도 플라스틱, 종이, 캔들이 분리되어 버려져 있던 곳은 휘황찬란한 건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이 제아무리 감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루크의 이성은 여기가 꿈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비현실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려 했다. 교복 주머니 속에서 폰을 꺼내려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닿는 건 집 열쇠뿐이었다. 가방, 과자 봉지와 함께 폰과 지갑도 놓고 나왔다는 게 생각났다.

 

  "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뺨을 또 때리고 꼬집는다.

 

  두 번째, 눈을 진하게 감았다가 뜬다.

 

  꿈이라고 생각한 이곳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까지 루크는 이 두 가지를 반복했다.

 

  휘황찬란한 건물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나왔다. 몸에 명품을 두른 채 자신의 패션 자부심을 뽐내거나, 가족끼리 영화나 쇼핑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여자친구에게 고백하려했지만 용기도 못 내보고 헤어진 사람 등 다양했다. 그들 대부분이 날개달린 자동차를 이용했다. 주차를 원하는 이용객의 편의를 위하여 주차 안내 요원도 있는 걸 보면 그 건물이 백화점이란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루크가 나타났던 곳은 백화점 후문 쪽에 위치한 기둥 사이였다. 대로변 주변에 갑자기 나타난 건데 그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있어도 없는 척 모두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정말 이 상황이 현실인건가, 꿈인 건가, 루크는 제발 꿈이길 빌었다. 집에선 지연(엄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눈을 뜨면 늘 그렇듯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그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도 지금은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꿈일 거라는 생각이 흩어졌다.

 

  "어떡해야 하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할만 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루크가 막 주저앉으려는 찰나, 누군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루크가 뒤를 돌아보자 선글라스를 쓴 중년의 여인이랑 눈이 마주쳤다.

 

  "여기 사람 아닌가 봐요."

 

  "네?......아, 네.......저......"

 

  루크가 입을 마저 때려고 했을 때,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혹시 돈 없어요? 있으면 뭐라도 사 먹으면 좋을 텐데. 이거 받아요. 얼마 안 되지만 빵 하나 사먹을 돈은 될 거예요."

 

  여인이 가방에서 지폐를 건넸다.

 

  천원이나 만원인 그런 흔하디 흔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달러도, 엔화(일본 돈)도, 위엔화(중국 돈)도 아니었다. 들어보지도 못하고, 디자인 자체를 보지도 못한 그런 종잇조각 이었다. 그럼에도 루크가 이 돈을 그대로 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신세를 지는 것이 무엇보다 싫고, 설사 신세를 졌다고 해도 꼭 갚아야 하는 소년 이었다.

 

  "괜찮아요, 이거 안 받아도."

 

  여인이 오른 손 검지를 치켜들더니 가볍게 흔들었다.

 

  "내 성격상 그냥 못 지나쳐요. 옷도 그렇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기 처음인 거 맞죠?"

 

  여인의 물음에 루크의 눈이 반짝였다.

 

  아무리 봐도 현실에 가까운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깨어날 수 있나 고민이었는데, 마침 나타난 여인은 한 줄기 빛이라도 된 것 같았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여인은 선글라스를 내리고 루크를 위아래로 훑었다.

 

  "과거에서 온 거였어요?"

 

  과거? 지금 이 수수께끼의 여인이 과거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루크는 다시 한 번 주변을 휘 둘러봤다. 손목에다가 귀로 이어진 줄을 꽂고 흥얼거리며 가는 사람들, 하늘을 날아다니는 각양각색의 비행물체들,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것 같은 안드로이드 등이 눈에 들어왔다. 낮에 보였던 거랑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꿈이라고 여겼다. 아닌거면 사람과 끊이지 않는 대화를 하는 안드로이드니, 하늘을 나는 비행물체니 하는 것들이 말이 안 되잖아. 그러나 은시계를 버린 후 집으로 돌아온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쯤되니 이곳이 현실인 것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래, 그것도 머나 먼 미래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맞네. 과거에서 온 거. 옷 스타일부터 백화점 벽에 이러고 기대고 있는 게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시대에는 교복이란 게 존재하지 않거든요."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입고 있는 게 교복이라는 걸?"

 

  "명찰 위에 학교명이 있잖아요...... 여기에 아는 사람 있어요?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겠네요?

 

  "그렇죠....설명 해 줄 수 있나요, 여기서 나가는 방법까지 다?"

 

  루크의 뱃속에서 또 알람이 울렸다. 여인은 싱긋 웃었다.

 

  "우리 집으로 가요. 거기서 밥 먹고, 설명도 들어요. 여기 있으면 그들이 올 거예요. 그들에게 잡히는 것보다 우리 집이 더 안전해요."

 

  루크가 제안을 거절하려 할 때 다시 뱃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번에야 말로 밥을 안 넣어주면 밤새 괴롭히겠단 소리로 들렸다.

 

 ---

 

  한편 루크가 미래로 가기 전, 안은 아침부터 예민해져 있었다. 그녀는 양 옆으로 난 빈약한 가로수 사이로 빨간 스포츠 카를 잠깐 세웠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인도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잘린 흔적이 남겨진 나무의 팔이 아파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비까지 오니까 더 처량했다.

 

  "불볕더위라더니 비 오는 건 뭔데?"

 

  "언니, 힘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아무리 비가 원수 같이 싫어도 할 건 해야 되니까?"

 

  애교 둘째가라면 서러운 세리가 조수석에서 웃었다.

 

  "도망자 하나 못 잡아서 여태 과거에서 이러고 있잖아? 우리가 살 던 곳은 허공을 누비는 차를 탈 수 있지만 여기선 이 네발 달린 이 고물이 전부이니."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사는 위치는 이미 알고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무작정 잡다간 우리만 욕먹어. 그 도망자 녀석이 그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게 보인다면 좋겠지만 워낙 신중한 녀석이라서 말이지."

 

  안은 턱을 괴었다. 이건 그녀가 고민이 있을 때 흔히하는 행동이었다.

 

  "유인하면 되잖아요? 그 물건을 들고 나오게."

 

  안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안이 처음 '시간 관리자'가 되었을 때 상사에게 도망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도망자가 꼭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 안 해. 왜 살인마들은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살인마는 아니잖아? 그들도 무슨 사연이 이었을 거야. 감당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싶었을 만큼.'

 

  "언니, 괜찮으세요?"

 

  세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잠시 옛 생각 좀 했을 뿐이야."

 

  "저는 언니가 순간 미친 건 줄 알았어요. 말도 없이 멍하니 있어서 저 언니가 드디어 일하다가 맛이 간 건가, 하고."

 

  "야. 내가 네 상사거든?"

 

  세리가 무슨 목적이 있어서 막 말한 게 아니라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의도를 품을 줄 아는 애는 아니었기에. 팀장이 아닌 언니라고 부르는 것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순수해도 그렇지 저런 말은 상사에게 꺼내는 건 아니지 않나?

 

  "아, 시간 다 됐겠네. 도망자 새끼의 자식이 학교 갈 시간."

 

  안은 멈췄던 차에 다시 시동 걸었다.

 

  하루 종일 소년의 뒤를 쫒았다. 등교할 때부터 하교 때까지 한 번도 눈 밖에 두지 않았다. 빨간 스포츠카가 워낙 눈에 띄기 십상이라 소년의 뒤를 밟을 때는 직접 발로 뛰었다. 그러던 소년이 집 앞에서 돌연 발길을 돌리더니 슈퍼로 들어갔다. 안과 세리가 제 빨리 몸을 숨겼다.

 

  "무슨 생각인 거야, 도대체?"

 

  안이 중얼거렸다.

 

  오늘 소년의 행동이 좀 이상했다. 어려운 부탁도 거절 못하고 들어주는데다가, 간이고 쓸개고 다 줄 바보 같이 착하다는 건 지난 수년간의 미행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처럼 걷다가 딴 생각에 빠지고 멍하니 있다거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진 않았는데. 확실히 소년에게 뭔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일이 생겼다는 안의 직감은 소년이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나온 시점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분명 소년의 손에 은시계가 들려 있었다.

 

  "어? 저 애는 저거 사용 할 줄 모를 텐데?"

 

  세리가 당황했다.

 

  은시계는 위험하다면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물건이다. 가지고 있는 직업이 시간 관리자라고 해도 안전한 건 아니었다. 시간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어떡해요, 잘못 이용했다가 저 애가 죽으면......."

 

  소년이 전쟁의 현장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 확실한 건 저 소년은 쓰레기 분리수거함 쪽으로 빗방울을 뚫고 간다는 점이었다. 보나마나 은시계를 버리려 할 거라는 예감이 안을 강타했다. 그녀는 소년을 뒤따랐고, 그녀의 뒤는 세리가 따랐다.

 

  소년이 쓰레기통 앞에서 꽉 쥔 오른 손을 들더니 이내 은시계를 통 안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과 세리가 도착할 때 즈음 사라졌다.

 

  안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소년의 흔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젠장.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안이 소리쳤다.

 

  둘은 차 안으로 돌아왔다. 안은 여전히 운전석에, 세리는 조수석에 앉았다.

 

  "보안부에 연락 넣어. 지금 당장."

 

  "네, 언니......."

 

  세리가 오른 손을 손목시계 보는 것처럼 들었다. 손목의 정 가운데가 눌려지더니 공중에 화면이 들어났다. 손을 허공에 있는 전화 그림에 가져갔다. 화면이 재조정되더니 번호입력 칸이 나타났다.

 

  "여보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안은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나야. 지금 내가 추적 중이던 도망자의 자식이 시간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해 버렸어. 혹시 거기로 갔으면 추적 좀 부탁해."

 

  "아직도 그 일이구나.......근데 그거 알아? 귀찮아."

 

  "죽여 버려 진짜? 좋게 말로 할 때 해라. 안 그러면 너 찾아가서 아주 죽으로 만든다?"

 

  "귀찮은걸?"

 

  "이게 진짜......! 야, 기다려."

 

  말로해선 안 될 놈이다, 저 새끼는. 안은 터져나오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경고를 보냈다.

 

  남자의 이름은 레논. 그는 안과 같이 보안과 팀장으로 불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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