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위의 잡음이 잠시 멈추었다. 손목시계에서 달리는 초침소리가 울려 퍼지며 귓가에서 맴돈다. 잔뜩 낀 구름은 중천에 선 해를 가리고 품었던 수분을 환원한다.
조심스레 우산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잡고 버튼을 딸각였다.
"쓸데없이 요란하네"
[네가 잘못이지]
길게 숨을 내뱉어 절반 정도 타들어 간 담배를 잡아뗐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잿빛 연기가 피어오른다.
[담배 안 끊을래]
"알 바 아니잖아"
식물의 줄기처럼 엮어진 나무 의자에 앉아 턱을 괴었다. 좌우로 퍼진 희끄무레한 형체는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
"바깥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나 보지?"
[그러게 너무 밝아]
"저녁이 지나고 나서 나오면 될 것을"
[싫어]
고민 하나 없는 답으로 단호하게 자른다. 여간 보통 고집이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펼쳐져 있는 우산을 위로 던졌다. 검은색 가방에 있는 작은 피아노를 꺼내 조립을 맞추고서 건반을 닦았다. 하늘에 곧게 서 있는 푸른색의 우산 아래 어두컴컴한 구름이 비친다. 서서히 쏟아지는 부슬비들은 타닥타닥 주위를 메워 간다.
우산에 닿아 미끄러지듯이 떨어지는 빗물들은 먹물이 되어 근처에 모인다. 그것을 재료로 막힘없이 그려지는 검은 음표들이 오선지에 기록되어진다. 검은 머릿결을 시야에서 치우고 좌우로 펼쳐진 여든여덟 개의 건반에 투박한 손을 올렸다.
"너는 아쉽지 않은 느낌인가 봐"
[느낌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도돌이표를 끝으로 완성된 악보를 반주한다. 왼손을 기점으로 움직임의 폭이 서서히 커진다. 이윽고 피아노에서 모데라토로 향하는 건반의 선율을 조절하고 음을 만들어낸다.
적적한 먹구름은 검은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오고 공원의 상가와 사람들은 녹아서 사라진다. 그럼에도 화가는 고집스럽게 스스로만을 남겨 풍경을 한 폭에 담긴 수채화처럼 바꾼다.
검은 폭우가 쏟아질 때이다. 절정에 도달하여 후렴구에 이르기까지 과거는 흑색으로 칠해져 갈 것이다. 단조로운 화음을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멈추었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검은 공간에서 초록색의 글씨가 보인다.
[가도 되겠어?]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무 의자가 금이 생겨 무너졌다. 피아노를 정리하고서 정면에 있는 하얀 문과 우편함으로 걷는다. 잡초와도 같은 녹청색 블라우스의 끝을 잡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얼룩진 종이 우편함에 악보를 접어 넣고서 문고리를 잡는다.
[제목은 뭐라고 쓰여있었데?]
"노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