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거동이 불편한 듯 했다. 보이지 않는 실에 조정당하고 있는 인형의 움직임같아 보이기도 했다. 부들거리는 손을 뻗어 일기장을 열고 펜을 억지로 손에 쥔다. 그리고 무언가를 힘들여 적어내려가고 있다.
한참을 적어내려가던 노인은 책상 위에 놓인 구식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최근통화버튼을 눌렀다. 경쾌한 노래가 울리더니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지내냐? 밥은 먹었고?”
남자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노인이 질문하고 남자가 건성으로 대화하는 간단한 통화가 끝나자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한 듯 했다. 노인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무언가에게 조정 당하고 있다.
시골의 밤은 도시의 그것보다 빠르게 온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다가와 갑자기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삼켜버린다. 노인의 집도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덜덜 떨리는 두 다리를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거실에 위치한 창문을 닫고 짙은 커튼을 쳤다. 아직 안방의 창문을 닫아야 했다. 마음이 급해진 노인의 지팡이가 문지방에 부딛혀 자빠지고 만다.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노인은 일어서려고 했다. 밖에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까지 창문을 닫는 것에 집착하는 걸까? 노인은 이를 악물고 기어갔다.
힘들게 창문이 있는 아래까지 기어간 노인이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노인의 허리에서 들려온다. 창문을 가까스로 닫고 허리의 통증을 견디지 못한 노인이 잠시 멈칫한 순간 창문에 시커먼 것이 어른거린다.
그것은 그림자보다 검고 어둠보다 짙은, 현대의 문명인이 명명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곧 광기가 가득한 얼굴이 되어 창문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탁탁탁탁!!
노인은 그 소름끼치는 형상을 보고서도 약간 인상을 찡그릴 뿐 놀라는 기색이 없다. 이미 익숙한 듯 하다. 노인이 커튼을 치자 창문을 두들기던 소리가 사라졌다.
노인은 다시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안방의 침대에 몸을 기댔다. 이제는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누구도 노인을 도와줄 이는 없다. 노인은 소리없이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