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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숨비소리
작가 : 김까용
작품등록일 : 2017.7.9

조선 시대에는 여군이 있었다?!
군역을 져야 했던 제주도의 여성들을 일컫는 말, 여정(女丁)
역사가 기록치 못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옛 제주의 나라 탐라국의 옹주였지만 낮에는 해녀로 밤에는 여정으로 매일매일이 고달픈 선화와 그녀의 상관이자 탐라국의 옛 성터를 차지한 제주목사로서 갓 부임한 꽃 같은 사내 김호의 티격태격 연애기!
<무술 고수 여주/ 능글 여주/ 예술가 남주/ 순결한 남주/ 연애하다 얼떨결에 나라를 구했네?>

이렇게 겁 없는 계집은 처음이었다. 쉬도 때도 없이 온 몸을 지분거리며 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쏟아내는데, 김호는 그 말들이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칼은 이렇게 쥐는 거라고."

"이, 이렇게 말이냐?"

"말은 왜 더듬고 그런데?"

"무,무엄하구나! 어찌 상관한테!"

"싫음 말고."

"...어디 계속해 보거라."



* 본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독자분들의 편안한 독서를 위해 옛 제주 방언은 사용치 않았습니다.

 
잊혀진 왕국, 탐라
작성일 : 17-07-09 21:56     조회 : 507     추천 : 0     분량 : 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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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화는 물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태풍이라도 오려는지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바다 근처까지 죽 늘어선 돌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위태로웠다. 이런 날일수록 배를 곪더라도 집에 붙어있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선화도 알았다. 평소라면 오라비 눈을 피해 물옷을 숨기느라 바빴을 터였다. 안 그래도 물옷에 덧대어 입으라며 곧잘 무명천을 구해오곤 하던 오라비였다. 맨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물옷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오라비가 물옷을 잃어버린 누이에게 발게 벗고서라도 물질을 하라고 허락할 리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선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양에서 제주목사가 부임해 오는 날이었으니까.

 

 잊혀진 왕국, 탐라. 지금은 제주읍성이라 불리는 그곳이 탐라의 옛 성터였다. 선화는 간혹 그곳에서 금자수가 새겨진 비단 옷을 입고 뛰어놀던 유년 시절을 곱씹어보고는 했다. 비록 조선의 종속국에 불과했으나 어진 정치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아비와 총명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오라비 밑에서 선화는 행복했다. 부녀자의 도리니 뭐니 하며 재미없는 소리만 해대는 선생들을 피해 도망나오곤 했던 바다. 그때는 이 드넓은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다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곤 했다.

 

 "옹주님! 이번엔 어딜 가셨나 했더니 또 이리 바다에 나오셨어요. 고뿔이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그 시절, 계집 종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었다. 하루 종일 선화를 부르며 섬 전체를 뛰어다니느라 무리한 탓이었다. 소금기에 절어 축 늘어진 선화의 머리칼을 정돈해주는 계집 종의 거친 손이 신기하게만 보였던 시절이었다. 사람 손이 모시천보다도 거칠어질 수가 있구나. 그게 못내 가슴 아파 야참으로 꿀떡이 나오는 밤에는 배탈이 난 척 꾀병을 부리곤 했다. 그러면 계집 종은 의원을 불러오겠다며 부산을 떨다가 뒤늦게 선화의 의중을 깨닫고는 어물쩍 꿀떡을 집어먹고는 했다.

 

 그러나 몇 해 전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로부터 내려온 한 장의 교지로 인해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말았다.

 

 "탐라는 이제 조선의 영토로 귀속되며 이곳 왕족의 모든 권한을 불허한다. 이제 왕족의 일원들은 조선의 백성으로서 본분을 다할 것을 명하며 탐라의 성터는 차후 짐이 임명한 제주 목사의 관리 하에 들 것이니라."

 

 아비와 오라비가 거칠게 항의했으나 조선 임금의 교지를 들고온 관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양에서 데리고 온 병사들을 제 수족으로 부리며 아비를 겁박하기 일쑤였다.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으신다면야 소인에게도 다 생각이 있습죠."

 

 관리가 히죽거리며 묘한 말을 지껄인 다음 날부터 도성 곳곳에서 혼란이 일었다. 한양에서 온 병사들에 의해 아녀자들이 겁탈당했고 우물에는 배탈을 일으키는 독이 퍼졌다. 탐라국의 존속을 지지하던 백성들 사이에서도 차츰 원성이 터져나왔다. 결국 아비는 오랜 고심 끝에 왕좌에서 내려오길 택했다.

 

 조선 왕실에서 마련해줬다는 초가집으로 걸어들어가는 망국의 왕족들을 보며 탐라의 백성, 아니 이제 조선의 백성이 된 자들 중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으며, 누군가는 조선에서 온 관리에게 아첨했다. 어린 선화에게는 그 모든 광경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계집 종이었던 막례와 이웃지간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물질하러 가시나봐?"

 

 등 뒤에서 누군가 뾰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화는 상념에서 깨어나 뒤를 돌아봤다. 막례였다. 붉은 홍삼과 비단 술이 달려있는 혜는 한 눈에 봐도 쌀 두 가마니 값은 족히 능가해보였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홍삼 밑으로 가슴 둔덕이 보일락 말락 했다. 선화는 은근슬쩍 제 차림새를 내려다보았다. 물옷 아래로 검게 그을린 다리가 상처투성이였다. 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함부로 연민했던 막례의 손보다 훨씬 거칠고 못난 손이었다.

 

 "옷 예쁘네."

 

 "그치? 옹주님이 어릴 적 입던 옷보다 훨씬 비쌀 거야, 아마."

 

 막례가 고개를 한껏 치들며 말했다. 선화는 옷의 출처에 대해 묻지 않았다. 보나마나 뻔했다. 몇 해 전 아비를 내쫓았던 조선의 관리, 한병희가 사준 것임이 분명했다. 뱀 같이 교활한 사내였다, 그 자는. 그저 조선의 한낱 관리에 불과했으나 탐라국의 멸망 이후 제주 민심을 빠르게 안정시켰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꽤나 큰 선물을 하사받았다고 했다. 그 선물은 백성들 사이에서는 신성시 되는 물장올과 그 인근 땅의 소유권이었다.

 

 물장올. 그곳을 선화도 잘 알고 있었다. 한라산에 위치한 그 못은 탐라국 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잠들어있는 곳이었다. 등치가 거인만 했다던 그 여신은 탐라 그 자체였다. 탐라백성들은 그녀의 부드러운 살 위에 밭을 갈았다. 또한 그녀의 털은 풀과 나무가 되었고, 그녀가 싸는 힘찬 오줌 줄기로부터 온갖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들이 나와 바다를 풍성하게 하였다.

 

 탐라 백성들 또한 거구인 그녀를 아름답다 여겼다. 설문대할망 또한 자신의 큰 키를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설문대할망은 문득 자신의 키가 얼마나 큰 지 알아보고 싶었다. 용연물이 깊다고 하기에 들어섰더니 발등에 겨우 닿았고, 홍리물은 무릎까지 올라왔다. 자신만만해진 여신은 누군가로부터 물장올 만한 못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신은 곧장 물장올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여신이 사라졌다.

 

 설문대할망은 정말 죽은 것일까? 탐라 백성들 사이에서는 물장올 깊은 곳에 설문대할망의 시신이 있을 거라 여겼다. 그 시신만 발견해낸다면 설문대할망과 함께 사라져버린 옛 탐라의 부귀영화를 독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병희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물장올은 기이한 땅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고 많은 비가 와도 불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못 가까이 가서 떠들면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자욱하며 비바람이 치기 일쑤였다. 또한 못가에는 조개껍데기가 쌓여 있었는데, 물질에 이골이 난 해녀들도 생전 보지 못한 종류의 조개들이었다.

 

 소문에 그 조개들을 가져다 만든 장신구들이 한양에서 인기라 했다. 한병희는 조정에 사표를 내고 제주에 아예 눌러앉아 물장울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일거리가 없어 배를 곪고 있는 장정들을 인부로 고용했다. 물장올을 파헤쳐 설문대할망의 시신을 발굴하는 일은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한병희는 끝을 알 수 없는 못 아래로 자맥질해 들어가는 인부들을 지켜보는 일이 시들해질 때면 인근 기방의 기생들을 불러 연회를 즐겼다.

 

 그 기생들 중 유독 한병희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바로 막례였다. 탐라국의 흔한 계집 종으로 일할 때보다 그녀는 훨씬 고와졌고 행복해보였다. 다행이었다. 선화는 진실로 그리 생각했다. 물론 막례는 그런 선화를 고깝게 여겼지만.

 

 "오늘도 물장올에 가니?"

 

 "오늘 같은 날 거기를 왜 가. 제주 목사가 온 대 잖아."

 

 "가서 춤이라도 춰 주게?"

 

 "어휴, 옹주님! 내가 가서 춤만 출 것 같아? 더 한 것도 해야지."

 

 막례가 눈 웃음을 쳤다. 그 모습이 오늘따라 밉살스러웠다. 제주 목사가 오면 탐라국은 영영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 게 분명했다. 선화는 오라비처럼 탐라국의 복원만이 제주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착잡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성터는 여전할까? 막례와 술레잡기를 하던 복도, 해질녁 오라비 몰래 훔쳐온 술을 홀짝이며 붉게 물드는 지평선을 구경하곤 했던 망루.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더 한 거? 이런 거 말하는 거니?"

 

 선화는 울적한 속내를 감추려 괜히 막례의 곁으로 다가가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퍽 소리와 함께 막례가 고꾸라졌다. 너무 심하게 때렸나 싶었지만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선화는 키득거리며 바닷가로 달아났다.

 

 "이게 얼마짜리 옷인데!!! 너 잡히면 죽어!!!!!"

 

 등 뒤에서 막례가 길길이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선화의 뒤통수에 칼을 꽂을 수 있을 만큼 분노가 극에 달한듯 했지만 선화는 염려치 않았다. 이 섬에서 그녀보다 칼을 잘 쓰는 이는 없었다. 흔하디 흔한 부엌칼마저 선화에게 들리는 날엔 무시무시한 무기로 돌변했다.

 

 모든 것은 탐라가 역사에서 사라진 몇 해 전, 그날 밤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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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혀진 왕국, 탐라 2017 / 7 / 9 508 0 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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