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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드레이크 방정식
작가 : 카시니
작품등록일 : 2017.7.8

6천 년 전 외계로 끌려갔던 지구인의 후손이 평범한 지구인과 사랑에 빠진다.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용하여 혹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내 사랑을 찾을 확률을 계산해 보자!

 
01 외계인의 일기
작성일 : 17-07-08 07:52     조회 : 424     추천 : 0     분량 : 8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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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지구.

 

 “이것 좀 봐주세요. 교수님. 분명 이건 규칙이 있어요. 아무렇게나 새긴 무늬가 아니고 문자라고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지수는 출력해 온 사진을 30도가량 방향을 틀어 교수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환갑을 몇 년 전에 넘긴 강 교수는 쓰고 있는 안경을 들어 한껏 눈을 찌푸려도 잘 보이지 않는지 지수가 내민 종이를 당겨봤다가, 밀어봤다가 애썼지만 이내 포기한다.

 

 “이게 얼마 전에 출토됐다던 신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네, 교수님. 돌도끼, 토기 같은 것들과 함께 출토된 건데요, 이것만 이렇게 크고 넓적한 모양이래요. 이번에 중국 황하 강 유역에서 출토 됐고요.”

 “신석기면 부호문자? 아닌데. 발해 쪽 도화문자도 아니고. 그런데 이게 무슨 무늬지? 어쨌든 문자로 보이진 않는데…….”

 

 지수는 실망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히 자신의 눈에는 문자로서의 패턴과 규칙이 보여 학과 교수님 중 가장 저명하다는 강민태 교수님께 달려온 건데.

 

 “아…… 제가 잘못 봤나 봐요. 그럼 좀 이따가 강의 시간에 뵐게요.”

 

 지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교수실에서 나왔다. 강의실로 향하던 중 복도에서 대학원생인 현준 선배를 만나 보여줬지만, 선배도 그냥 특이한 무늬 같다며 언제 이런 게 출토 됐었냐 되묻는다.

 

 “게임 그만하시고 신문 기사도 좀 보세요.”

 “어쭈, 이게 선배를 놀려? 너 응용기호학 기말 족보 안 준다?”

 “앗, 죄송! 제가 선배 좋아하시는 족발 쏠게요.”

 “봐준다. 어서 가봐, 나중에 문자 할게.”

 

 지수가 2학년이 되었을 때 군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한 훈남 선배 김현준. 눈독 들이는 친구들이며 후배들이 많아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가끔 만나면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해왔다. 이렇게라도 또 한 번 만날 구실을 만들어낸 자신이 뿌듯하다.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던 지수는 해외 저명한 교수들이나 유명한 암호 해독가들에게 이메일로 문의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읽어나 봐줄까? 도무지 답변을 받아 낼 자신이 없었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말해봐야 취업 걱정해야지 무슨 짓이냐는 반응일 게 뻔하고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언어학자인 강 교수마저 시큰둥하니 어쩔 수 없다.

 

 4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코앞이라 여기에 매달리기도 애매한 상황이지만 조금씩이라도 직접 해독해보기로 결심했다.

 

 “이거 복사하고 싶은데 확대 복사도 되죠?”

 “네, 얼마나요?”

 “2배, 4배 이렇게 해주세요.”

 

 복사된 결과물을 받아 들었지만 확대되면서 해상도가 떨어졌다. 일단 복사한 것과 인터넷 신문기사에 올라온 사진을 다운 받아서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자세히 보는 수밖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건 분명히 상당히 발달된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것이 분명한 문자로 보였다. 지수가 언어학을 전공하며 접해본 다양한 외국 언어와 문자들 중엔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문화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신석기 시대에 그 정도로 문자를 사용할 만큼 발달했던 문명이 있었다고? 갑자기 지수도 그냥 우연한 무늬일 뿐, 문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기말고사를 치르며 해독에 매달렸더니 마지막 시험을 마쳤을 때 지수는 좀비 꼴을 면할 수 없었다. 평생 이렇게 뭔가에 매달려 본 적이 없었다. 막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은 느낌에 몰골이 어떻든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시험도 끝나고 이제 방학인데 한 잔 안 땡기냐?”

 “나, 할 일이 있어서 어서 집에 가봐야 돼.”

 “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어?”

 “애인 숨겨놓은 여자 꼴이 이렇겠냐? 적당히 마시고들 방학 잘 지내!”

 

 지수는 친구들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달려 나갔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여태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을 흘렸지만 어렵게 찾은 단서를 적용해 볼 생각에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이때만 해도 지수는 몰랐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그녀 인생은 물론,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행성들을 통째로 뒤흔들어 세상을 바꾸게 될 줄을.

 

 

 *****

 

 

 “뭐 이런 병X같은……?”

 

 시험이 끝난 날로부터 최소한의 잠만 자고, 먹는 시간과 씻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매달려 겨우 풀어낸 게 이거라고? 지수는 허탈한 마음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비록 제공된 문장이 길지 않아 80% 조금 못 되게 해석해 내는 게 최선이었지만 설마…….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자신이 풀어낸 문장은 분명히 이런 뜻이다.

 

 [아이 씨. 이렇게 멀리까지 날아왔는데 씨, 엄청 재미없네. 이 동물들 데리고 뭐 하려고 내 시간, 내 노력 바쳐 이렇게 멀리까지 왔나. 씨. 돌아가면 엄청 재미없다고 다 말해야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겠지만 이따위 연구나 하는 학교 이제 날아 보낼 거다. 이 미개한 동물들도 날아 보내고 싶을 텐데 억지로 끌려가서 어쩌냐. 어쩌긴? 끌려가면 끌려간 데서 살아야지. 아이 씨.]

 

 [끌려가는 동물들은 뭐가 뭔지 알기나 할까. 뭘 알겠어. 이제 도구를 연구하는 동물들인데. 끌려가서 재미없으면 /+=%&@#*^<-&#@$......]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동물들도 끌려가면 돌아오고 싶겠지. &#$&%@!>?*%......]

 

 뜻이 명확하지 않고 이렇게 풀어놓으면 말이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지만, 대충 뜻은 ‘동물들을 연구하러 왔는데 재미가 없고, 동물들은 어디론가 끌려가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뜻 같았다. 보아하니 그 ‘동물들’은 그 시대를 살던 우리 인류의 조상을 말하는 것 같아 미간이 찌푸려졌다.

 

 해석이 불가하지만 문맥상 유추한 단어도 있고, 다행히 반복되어 비교적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단어도 있었다.

 

 ‘도구’라고 추정되는 단어 옆에는 돌도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었다. ‘연구’로 추정되는 단어 옆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연필과 비슷한 물체가 그려져 있었다. ‘날다’라는 뜻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단어 옆에는 UFO 와 같은 비행선을 닮은 그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아 보낼 거다’와 같은 건 제대로 해석된 게 맞나 싶다. 뜻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도 같고…….

 

 힘들게 해독해낸 보람은 없었다. 하지만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일기 비슷한 글을 지구에 남기고 간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경의를 표하고픈 맘이다.

 

 그래서 지수는 뜻이 정확하든 말든, 단어들을 대충 나열해서 답장이라도 하듯 문장을 만들었다.

 

 [날아왔는데 재미없었냐. 멀리까지 끌려간 동물들은 어쩌냐. 아이 씨.]

 

 어차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테니 저렇게 끄적거린 종이를 스캔해서 미니홈피에 올렸다. 나중에 보면 내 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여름 방학에 이런 짓을 했었구나, 하고 추억에나 빠져보지, 뭐.

 

 

 *****

 

 

 “이것 좀 보십시오.”

 

 지구에서 약 150광년 떨어진 행성 피라스트1-d. 그곳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만 모여 있다는 일레이 천문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이상한 걸 발견했다며 직속상관인 데라토에게 입체 스크린을 띄워 보여준다.

 

 “이게 뭔데? 우리 글 같긴 하지만 글씨가 엉망인데.”

 “지구 행성의 인류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올라온 것입니다. 지구인이 이걸 썼다는 건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연히 쓴 것이라고 보이나? 난 아닌 것 같은데.”

 “제가 봐도 뭔가 알고 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프로젝트 라-아툼 관련 자료 찾아봐. 우리 문자를 남기고 온 어떤 멍청한 녀석이 있었는지. 꼭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놈들이 있잖아. 그걸 발견해서 해독한 지구인이 있을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욕은 확실히 정확하게 썼다. 지구 시간으로 20년 전을 모니터 했을 때만 해도 저런 ‘인터넷’이라는 건 군사 목적 등 극히 소수만 이용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새 대중화됐나? 아니면 그 소수의 인간들 중 누군가가 우리 문자를 해독한 걸까?

 

 데라토는 지구인보다 2배는 큰 고개를 갸우뚱 했다. 돌멩이 가지고 도구랍시고 좋아하면서 쓰던 미개한 종족이 많이 발전했군. 그래 봐야 우리 문명 수준의 발꿈치 정도도 못 따라왔지만.

 

 지구 시간으로 200여 년 전, 프로젝트 라-아툼 중간점검 차 잠시 지구에 들렀을 때 발견해서 들여온 ‘커피’를 음미하며 입체 스크린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초연 장면을 띄웠다. 지구인들이 9번 교향곡의 초연이 녹화된 자료가 있다는 걸 알면 기절초풍할 일일 텐데.

 

 “미개하지만 이 음악이라는 건 참 잘 만들었단 말이야. 작곡가가 청각장애인이었지, 아마? 초연 때 곡이 다 끝나고 청중들이 박수치고 난리인데도 모르더니, 어떻게 이런 곡을 작곡했는지. 그때 녹화해오길 잘했지.”

 

 그러면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라보며 ‘풋’하고 웃었다.

 

 “커피도 말야, 미개 종족이 발견한 것 치고는 훌륭하지. 또 한 번 들르면 뭘 건질게 있으려나?”

 

 지구인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이 높고 문명이 발달된 피라스트 1-d의 행성인들이지만 예술 분야에는 아주 약했다. 그래서 지구의 음악과 미술, 식도락 문화는 그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 그럼 쉴 만큼 쉬었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슬슬 알아볼까?”

 

 데라토는 부하 직원이 보낸 자료들을 보기 좋게 입체 스크린으로 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를 찾은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음, 역시 그랬었군.”

 

 

 *****

 

 

 

 데라토는 내일 당장 부고를 듣게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자기 스승 헤미투를 찾아갔다. 지구인들 기준에는 수천 년에 달하는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피라스트인들이라 헤미투의 나이는 지구 시간측정법으로는 7천 살이 조금 못 된다.

 

 “아직도 살아계시네요.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온 제자놈이 왜 아직 안 죽었나 타박이냐?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이것 좀 보십쇼. 이거 스승님 짓 맞죠?”

 

 데라토는 퉁명스레 인사인지 악담인지 모를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빠르게 손을 놀려 지수가 미니홈피에 올린 낙서를 헤미투의 앞에 띄웠다. 무심코 바라보던 헤미투의 눈이 점점 커지며 몸을 떨기 시작한다.

 

 “지구인이 이걸 썼습니다. 그 때 지구에 뭔가 놓고 오셨다고 지나가듯 말씀하신 게 생각났어요. 6천년 전 라-아툼 프로젝트 때 지구에 가셨을 때죠?”

 “그래, 그 때 미개한 지구인들이 흙을 빚어 뭘 만들길래 나도 기념으로 흙으로 판자 같은걸 만들어서 일기처럼 끄적인 거야. 착한 지구의 노인 하나가 불에 구워 줬지. 돌아오면 방에 걸어두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놓고 왔지 뭔가.”

 “뭐라고 쓰셨는지 기억나세요?”

 “그 때 내가 천 살도 안 됐을 때라 철이 없었지. 연구한답시고 거기까지 갔는데 내가 막내라서 미개인들 잡아오는 게 임무였거든. 너무 재미가 없었어. 그래서 신세한탄 하듯 그냥 썼던 건데.”

 

 늙은 피라스트인은 회한에 잠긴 듯 미소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원으로 발탁되어 부푼 꿈을 안고 갔던 지구. 하지만 막내라는 이유로 젊은 인간들을 다치지 않게 잡아오느라 고생만 하고 지루해 죽는 줄 알았지.

 

 그래도 그렇게 시작해서 참여한 연구 덕분에 지금은 피라스트 행성의 위대한 과학자 명단에 올라 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운이 좋았는지 헤미투가 잡아 리켄트-b로 이주시킨 지구인들만 살아남았는데 이제 와서 6천 년 전의 규정 위반 들키는 정도야, 뭐.

 

 “그럼 이 내용이 그에 대한 답변으로 보입니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맞는 것 같네. 그럼 지구인이 이걸 발견해서 해석을 해냈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티끌 하나라도 우리 것은 남겨두고 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규정을 어기셨으니 어쩌실 겁니까?”

 “이제 죽을 때 다 된 늙은이인데, 잡아가든 죽이든 맘대로 하게나. 껄껄. 그나저나 우리 문자를 해석해 내다니 지구인들 지능도 많이 높아졌구먼.”

 

 스승을 흘겨보고는 데라토는 대책회의를 해야 한다며 떠났다. ‘살아계신다면 또 뵙죠’ 라고 싸가지 없는 인사말을 남긴 채.

 

 

 *****

 

 

 8년 후, 지구.

 

 “아이고, 겨우 다 끝냈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다가 벽시계를 확인한 지수는 마감시간에 늦을까 서두르기 시작했다. 너무 낡아 곧 무릎과 엉덩이에 구멍이 날 것 같은 트레이닝 팬츠를 벗어 던지려다가 한 발이 빠지지 않아 그대로 밟고 미끄러져 뒤로 넘어져버렸다.

 

 “아이쿠, 허리야.”

 

 겨우 폭탄 맞은 듯 발 디딜 틈도 없는 방을 기어가 욕실에 다다라 허리를 부여잡고 샤워를 마쳤다. 작업 후 아픈 어깨에 붙이려고 사둔 파스를 허리에 붙이고 서둘러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렸다.

 

 “택시!”

 

 마감시간 30분 전. 출판사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니까 앞에 도착하면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은 되겠구나.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팩트로 대강 두드려 피부톤만 정리했다.

 

 프리랜서 교열자(글이 출판되기 전 오자와 탈자를 바로잡는 이)인 지수는 외국소설을 번역한 글에 대한 교열을 막 마치고 결과물을 출판사에 전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햇살이 이제 곧 여름이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출판사 옆 건물 1층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출판사 김사장이 그녀를 부른다.

 

 “지수야.”

 “어머, 선배. 아니 사장님! 헤헤.”

 “이번 건 마감 안 넘기고 가져왔나 보네. 잘했다, 송지수.”

 

 훈남 선배였던 현준 선배가 대학원 졸업 후 작은 출판사를 차렸다. 프리랜서 교열자인 지수는 옳거니 무릎을 탁 치며 남몰래 기뻐했다. 그 후로 현준 선배가 맡기는 교열은 모두 맡아 작업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 친구가 여기서 마시는 커피는 저희 출판사 앞으로 달아두세요.”

 

 현준은 역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서 카페 사장에게 앞으로 지수를 VIP 손님으로 대해 달라 당부한다.

 

 “선배~ 안 그러셔도 되는데, 엄청 고맙습니다!”

 “네가 여길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후배한테 커피 한 잔씩이야 사줄 수 있지.”

 

 그냥 후배로군요. 이렇게 졸업 후에도 졸졸 따라다니는데 선배는 눈치도 참 없다. 지수 나이 벌써 서른을 넘기고 선배도 서른넷이나 됐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 없이 굴 것인지. 이쯤에서 포기해야 할까 보다.

 

 “이번에 일본 추리소설 번역한 거 하나 더 할 거 있어. 네가 할거지?”

 “아, 그쪽 추리소설은 섬뜩해서 교열하면서도 소름이 끼치는데. 그래도 제가 할 거니까 다른 사람 주지 마요.”

 

 현준의 커피까지 받아서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나란히 걸었다. 출판사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아서 아쉬웠지만 꼭 데이트하는 기분이라 지수는 그 짧은 순간도 즐겼다.

 

 “선배, 이제 점ㅅ…….”

 “아, 그 추리소설 번역가 분 오기로 했는데 셋이 함께 점심 할까?”

 “네……. 그러죠, 뭐.”

 

 하필 일본 추리소설을 번역했다는 번역가는 지수보다 두 살이나 더 어리고 아주 귀엽게 생긴 미녀였다. 지수는 밥맛이 뚝 떨어져 몇 술 들다가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가봐야겠다고 일어섰다. 번역본은 이메일로 보내주겠다며 둘 다 붙잡지도 않는다.

 

 쓰린 맘을 달래며 하릴없이 계속 걷던 지수는 이럴 바에야 빨리 가서 집 청소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방향을 집 쪽으로 틀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원룸이지만 그래서 땀 빼며 청소하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겠지.

 

 

 *****

 

 

 “준비가 이제 다 됐나? 기분은 어떤가?”

 “네, 그 사람과 만나게 되다니 떨립니다. 후우.”

 “그럼 이제 시작해 보자고. 자르트, 자네 어깨에 달렸네.”

 

 깊게 심호흡을 한 자르트는 캡슐 안에 들어가 누웠다. 뚜껑이 닫히면 지구로부터 편지를 보내온 당사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자르트는 지구로부터 약 4광년 떨어진 ‘리켄트’ 별의 주위를 공전하는 리켄트-b 행성의 사람으로, 6천 년 전 피라스트인들에 의해 강제로 이주 당한 지구인의 후손이다.

 

 리켄트-b 행성은 지구보다 약간 작은 암석 행성으로 중력은 지구의 0.9 정도, 대기의 조성이나 기온, 기압 등은 지구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래서 강제 이주한 지구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떠날 때의 지구보다 각종 과실과 채소, 육류를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더 살기 편했다. 그래서 그들은 게으르고 나태해져 갔다.

 

 당시 다른 네 곳의 행성들로도 인류를 강제 이주 시켰지만, 혹독한 기후, 지구와 판이하게 다른 물과 먹거리, 위험한 천적의 존재 등으로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신석기 인류는 리켄트-b에서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다른 행성의 인류가 모조리 다 죽자, 피라스트인들 사이에서도 실험 자체가 너무 부도덕적이며 지나쳤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리켄트-b의 인류라도 꼭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태해진 리켄트인들에게 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서 게으르게 늘어져있지 않도록 힘썼다. 덕분에 리켄트인들은 피라스트의 문자와 언어를 쓰며 6천년에 걸쳐 지구보다 더욱 발전한 문명을 갖게 되었다.

 

 지구인 앞에 피라스트인이나, 리켄트인 모두 존재를 드러내기엔 위험했으므로 일단 꿈을 통해 접촉하기로 했다. 이 접촉을 위해 비밀리에 자르트가 뽑혔고, 그 동안 데라토의 도움으로 지구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며 준비했다. 캡슐에서 웅웅 소리가 나며 자르트는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집 청소를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지수는 며칠 밤을 샌 여파로 금세 곯아떨어졌다. 이상하게도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방이 온통 새하얀 공간에서 어떤 훤칠한 미남 한 명이 자신을 바라보며 서있다. 처음 보는 독특한 스타일의 푸른색 슈트를 입고 있다. 얼굴은 한류 배우 xx도 울고 갈 정도로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미남이었다.

 

 “누구세요?”

 

 꿈에서라도 호강하라는 계시인가? 일단 이름이라도 알고 보자. 이런 미남을 놓칠 순 없지.

 

 “제 이름은 자르트, 다른 행성에서 왔지만 저도 지구인입니다. 당신은 송지수씨죠?”

 “네……. 근데 뭐라고요, 다른 행성? 외계인? 지구인? 당신, 정체가 뭔가요?”

 “설명은 차차 하죠. 당신이 이런 걸 썼나요?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수는 자르트가 내미는 그림인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완전히 잊고 살았던 외계언어. 하지만 그 사진을 보자 해석을 위해 폐인이 됐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아니, 이건…….”

 “네, 당신이 써서 인터넷에 올렸죠. 제가 쓰는 언어의 문자입니다. 이걸 해석한 지구인을 만나기 위해 제가 뽑혔고, 이렇게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럼 이게 정말 외계인의 문자였다고요? 오…… 맙소사. 내가 틀리지 않았어요. 내가 맞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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