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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사라전종횡기
작가 : 수담.옥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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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성의 촌놈 장소열, 마침내 그가 강호와 맞장을 뜨러 왔다!
예측할 수 없는 투로, 걸걸한 입담, 뒷골목 건달식 박투술로
칼밥 인생을 살아가는, 강호의 어두운 중심을 통과해 가는 소열.
그가 신 난투 시대의 강호를 무와 협이 살아 숨쉬던 지난날의 황금빛 시절로 되돌릴 수 있을지….

 
1 화
작성일 : 16-07-21 14:08     조회 : 1,207     추천 : 0     분량 : 9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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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序章

 

 소열과 장취산인의 논검일지

 

 

 첫 번째 : 천하제일이란?

 

 

 “천하제일의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없다. 그러한 것은 없다. 장삼봉이 빨랫방망이를 들었다고 해서 그 방망이가 시정잡배의 몽둥이와 같겠느냐. 시정잡배가 달마신공을 얻었다고 해서 어디 소림 사미승의 내공만 하겠느냐. 저급이든 고급이든 무공이란 그와 같다. 무인 그 자신이 가진 무공에 대해 얼마만큼의 이해와 반성, 부단한 수련을 했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고로, 노력하는 천하제일인은 있을지언정, 완성되어 있는 천하제일의 무공이란 없다.”

  “그럼 현재의 강호에서 천하제일인은 누구입니까?”

  “없다. 그러한 인물도 없고, 그러한 인물을 논하는 사람도 없다. 팔십 년 전 오 척 장검으로 무상의 자리에 올랐던 대독검(大獨劍) 독고휴(獨孤携)를 끝으로 무림에선 더 이상 천하제일인을 논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강호는 무인의 무위를 논하기보다는, 적을 죽이기 위한 암계(暗計)와 세력 간의 집단 전투를 위한 치졸한 전술만을 논할 뿐이다. 고로, 현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천하제일의 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면, 현 강호에서 천하제일의 세력은 존재합니까?”

  “그렇다. 그런 세력이 있다. 바로 오늘날의 패권 무림을 만든 무불련(武弗聯)이다. 그들에게 무림이란 승자만 살아남는 살육의 전장(戰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무림인의 가슴에 무(武)의 열정과 일검(一劍)의 열망이 담겨 있는 한, 지금의 이 질식할 것 같은 무력 단체의 압박도 언제인가는 거두어지리라는 것을.”

  “열정? 열망?”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만약 노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혹시 아직까지 저잣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내 주위의 친우들이 그렇듯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행인들의 등을 치며 살지는 않았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었을 공산이 크다. 비정한 세상에 홀로 떨어진 일곱 살 코흘리개 소년이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노야는 내게 있어 은인에, 은인에, 은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노야가 싫다. 노야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버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다.

 노야는 내가 꼭 이다음에 큰사람이 될 것처럼 기대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없다. 난 머리도 나쁘고, 육체도 튼튼하지 못하고, 노야가 그토록 강조하는 정신도 굳세지 못하다.

 요즘 같으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노야에게서 도망가고 싶다. 노야가 원하는 세상에 내가 서 있을 자리도 없지만, 내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그런 세상을 만들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노야는 틈만 나면 몽환에 젖는다. 아마 당신께서 젊은 날을 보냈던 그 시절을 꿈꾸는 모양이다. 나는 그때마다 괜히 노야 앞에서 서성거린다. 그리고 노야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을 열심히 수련한다. 아니, 수련하는 척한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노야는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다. 듬성듬성 빠진 치아가 보기에 좀 흉하긴 해도 그 모습이야말로 내가 진정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다.

 

 

 <무불 삼십육 년, 삼월 장소열>

 

 

 소열과 장취산인의 논검일지.

 두 번째 : 강호 이류와 절정고수의 싸움.

 

 “상승의 무공에 있어 근본은 동일하다. 초식은 익숙함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며 내공은 깊이를 뜻함이고 오랜 수련은 무공의 완성도를 말함이다. 그것은 곧 무인의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무인의 능력을 파악함에 그런 것만이 전부일까?”

  “…….”

  “소열아, 묻겠다. 너는 장제(掌帝) 황엽충(黃葉充)을 아느냐?”

  “노야께서 묻는 이가 지난날 광동의 패주이자, 한 번 손을 흔들면 하늘도 운다는 일장진천(一掌振天) 황엽충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바로 그다. 오십조 일기당(一驥堂) 즉, 무불련 서열 오십 위 안에 드는 절정고수로서 천하에서 내공을 말할 때는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다. 특히 그는 스스로를 삼백 년 전, 두 육장만으로 천하를 독보했던 장왕(掌王) 비산월(飛散月)과 비교할 정도로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소 오만하기는 해도 아무튼 그만한 자격을 갖춘 무인임엔 틀림없다.”

  “한데 노야, 갑자기 황엽충은 왜?”

  “클, 이제 다시 묻겠다. 너는 혹시 운종(雲從) 막여춘이라고 들어보았느냐? 다른 말로는 신투라고도 하고 일보천행(一步千行)이라고도 한다.”

  “운종? 신투?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모른다? 하긴 부초처럼 사라져간 옛 무인들을 네가 어찌 다 알까. 그는 지난날 산서성 일대에서 제법 명성을 날렸는데, 무공의 수준을 떠나 별호에서 보듯 경신법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지역 강호인들이 그를 두고 일보천행이라 했을까. 하나, 그럼에도 그는 강호의 이류를 벗어나지 못했다. 너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의 출신이 정파와 사파 모두가 기피한 하오문이었기 때문이다. 일신의 재능을 떠나 무림의 관습과 전통은 언제나 그런 자들을 무시하고 냉대하기만 하니 참으로 애석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음, 아무래도 이건 핵심에서 벗어나니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하여간 그 신투가 이십삼 년 전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 장소는 산서의 황보세가. 황보가주의 회갑연 겸 금분세수가 시작되던 날이다.

 “실수라면 어떤……?”

 “그가 그날 모인 많은 강호인들 앞에서 외쳤다. ‘나의 신법은 지난날 관우의 적토마보다도 빠르며 곤륜의 운룡식(雲龍式)보다도 변화무쌍하다. 십 일을 지켜보라. 내가 대륙의 끝 광동에 다녀왔음을 증명하겠다.’ 아마도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물론 그 역시도 자신의 무공을 뽐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겠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광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십 일 후, 그는 보무당당히 황보세가로 돌아왔다. 그때 그가 광동에 다녀왔음을 보여준 증거가 뭐였을 것 같으냐?”

  “글쎄요?”

  “클, 그것은 어이없게도 여인의 분홍빛 속내의였다. 그 옷에는 이런 글이 수놓아져 있었다. ‘희(嬉)에게 엽충.’ 바로 황엽충이 자신의 애첩에게 애모를 표하며 선물한 속옷이었다.”

  “맙소사!”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신투의 신법에 놀라서라기보다는 감히 장제를 건드렸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그랬다. 신투는 한순간의 호승심으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신투가 뒤늦게 잘못을 알고 황엽충에게 공개적으로 사죄를 했지만 이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황엽충이 받아줄 리 만무했다. 오히려 황엽충은 신투를 잡아들이라는 명을 천하에 내렸고 신투는 살기 위해 도망가고 또 도망가야 했다. 그러길 열 달. 마침내 두 사람은 운명의 조우를 하게 되었다.”

  “어디에서요?”

  “장소는 소림사. 황엽충은 소림의 신임 장문인 무초(無超)의 축하객으로. 신투는 자신과 황엽충의 일을 중재해 달라고 소림사에 부탁하기 위해. 물론 황엽충은 장소가 소림이라고 하여 신투를 보고 참을 사람이 아니다. 신투 역시 그때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런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도망이란 무림인에게 죽는 것보다 못한 수치다. 자, 이제 두 사람이 승부를 한다. 한 사람은 강호의 절정고수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류라 불리며 냉대와 멸시만 받아온 사람이다. 소열아, 너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냐?”

  “그야 황엽충이죠. 신투가 비록 일보천행이라 불릴 만큼 빠르다고 해도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하늘도 운다는 황엽충의 무서운 장공을 신투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래, 그날 그곳에 모인 많은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신투의 승리로 끝났다!”

  “세, 세상에!”

  “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승부에 임한 마음가짐이다. 황엽충은 신투보다 무공이 훨씬 강하다. 그것은 황엽충 자신도 알며 신투도 안다. 황엽충은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저놈을 어떻게 죽일까, 어떤 무공을 사용해야 중인들의 뇌리에 내 모습이 확실히 각인될까. 이런 생각만 했다. 그러나 신투는 달랐다. 그는 그 승부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오문 출신으로 냉대 받은 무림 인생과 목숨까지……. 자, 소열아 느껴라! 배가 불러 나태해진 호랑이와 독기만 남은 늑대의 싸움을.”

  “흐음.”

  “둘째는 무공의 상대성과 거기에 맞춘 응용, 그리고 준비다. 신투의 주된 무공이 빠름을 위주로 한 보법이었다면 황엽충의 무공은 강력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권과 장력이다. 조금만 깊게 생각한다면 황엽충 같은 인물에게 신투는 그야말로 상극임을 알 수 있다. 그날 황엽충은 권장을 무려 삼천여 초 이상을 날렸다. 하지만 신투는 무인으로서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집중력을 보여주며 그 모두를 무산시켰다. 황엽충이 무시무시한 권을 내지를 때면 신투는 거리를 두었고, 황엽충이 강력한 장력을 날릴 때면 철저하게 접근전을 펼쳤다. 삼천여 초가 지났을 무렵 신투는 단 한 번 황엽충에게 역습했다. 그리고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비록 한 번이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황엽충에게 신투의 공격은 지옥의 불방망이와 다름없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겨났겠느냐? 그것은 바로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차이로 인해서다. 두 사람에게 똑같은 십 개월이 흘렀지만 신투의 십 개월은 황엽충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비참하게 도망 다니면서도 언제나 자신과 황엽충의 싸움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는 측간에 있을 때도…… 자, 소열아 느껴라! 배고픈 늑대가 호랑이의 살점을 물어뜯고 있는 것을.”

  “아!”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장소다. 소림사의 그 넓은 대웅전 앞. 신투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곳이다. 아마도 대결 장소가 공간의 제약이 있는 곳이었다면, 신투가 아무리 독기를 품었대도 황엽충을 이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명심해라! 목숨을 건 싸움에서는 무공의 수준이 곧 승패로 직결되지 않는다. 소열아, 알겠느냐?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소열, 이미 마음속에 감추어두고 있습니다.”

  “호오, 감춘다? 좋구나, 좋아! 클클, 실전 무공의 허와 실은 참으로 그와 같도다.”

 

 

 <무불 사십일 년, 칠월 장소열>

 

 

 소열과 장취산인의 논검일지

 마지막 일지 : 분쇄도와 출태도

 

  “세월은 노부를 앙상한 가지처럼 메마르게 하지만 여기 있는 나무는 진정 위대하고 또 위대하구나.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느니, 그 수많은 세월을 어이 견디어냈을꼬. 소열아 흐르는 시간이 참으로 덧없지 않으냐?”

  “…….”

  “너는 이 나무를 검으로 벨 수 있겠느냐?”

  “네.”

  “그럼, 눈앞에 있는 바위도 자를 수 있겠느냐?”

  “지금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른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면, 이제 고개를 들어 하늘의 태양을 보아라. 어떠냐? 저것도 자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세상 누가 있어 감히 저 태양을 벨 수 있단 말입니까.”

  “클, 절대라니. 무림에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사람들이 더러 있는 법, 너는 어이 네가 가진 잣대로 무인의 능력을 단정하려 드느냐.”

  “그럼 정녕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 한 무인이 있다. 일신의 한이 너무나 깊어 자신 스스로 눈알을 파내었고,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불태워버렸으며 그도 모자라 천 근의 쇠사슬을 다리에 감아 앉은뱅이가 되어버린 사내. 유한자(踰限子) 왕조빈. 바로 그가 베었다.”

  “왕조빈?”

  “그는 오백 년을 이어온 위대한 피의 후손. 무너진 제국을 다시 일으키고자 만리타향에서 자신의 전 생애를 불살랐던 사내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제국의 씨앗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적도들에게 짓밟혔고, 그가 존경했던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비참히 암살당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그의 가슴에 비정하게 칼을 꽂았고, 그가 믿었던 친구는 그가 매순간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독살시켰다. 그리하여 그의 깊고도 깊은 한은 마침내 무공으로 승화되어 버렸다. 그것이 바로 그가 태양을 베었던 한의 칼춤, 분쇄도(分碎刀)다.”

  “분쇄도? 하면 현재 그는 살아 있습니까?”

  “물론, 그는 살아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만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 나옴을 그 자신도, 천하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기억해라. 분쇄도는 내가 너에게 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왕조빈, 그 사람만의 것이다. 가라. 그를 만나 그의 한을 배우고 그와 같이 슬퍼하라.”

  “명심하겠습니다.”

  “음…… 이제 이 늙은이가 너에게 줄 것은 하나만 남았구나. 바로 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니 그것은 무화(無和)의 출태도(出胎刀)라고 한다.”

  “무화? 출태도?”

  “소열아 묻겠다. 너는 너와 관계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겠느냐?”

  “무슨 뜻인지?”

  “이것은 쉬운 것 같지만 정녕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생이 세상살이와 전부 연관된 것이거늘 부처가 아니고선 어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으랴. 하지만 이십오 년 전 부처의 마음에 근접했던 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곧 살아 있는 부처로 불렸던 중원대선사 무화이다.”

  “무화?”

  “사실 그는 예정된 부처였다.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그는 일찍이 소림사에 출가하여 수많은 서적과 불경을 공부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훗날 부처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중원의 이름 있는 학자와 승인, 도인들은 그를 현세의 살아 있는 부처로 만들기 위해 지극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길 이십 년, 사람들은 오직 그의 말 한마디만을 듣길 기대했다. ‘나는 불국정토에서 온 부처이니 나를 보고 경배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게 엎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요. 생불이 탄생했습니까?”

  “클클, 장소는 역시 소림사. 그가 소림사의 장문인으로 취임하던 날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생불의 탄생을 기원하고 또 축원했다. 그때 실로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가 소림사의 장문법보 녹옥불령을 받자마자 땅바닥에 던져버린 것이다. 그때 그는 외쳤다. ‘어리석은 중생들아 나는 결코 그대들의 부처가 아니다.’ 그 후 그는 입었던 가사와 신발, 심지어는 속옷까지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소림사의 산문을 걸어 나갔다.”

  “맙소사.”

  “결국 그는 소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루짜리 장문인이란 수치를 남기고 소림에서 파문당했다. 아울러 그가 가졌던 모든 영광스러운 칭호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가 바로 모든 것을 버린 무숙자(無宿子) 무화다.”

  “그는 살아 있습니까?”

  “그렇다. 그는 분명 살아 있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란 너무나 어렵다. 그가 이미 세상 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소열아, 네게 만약 무화를 만나볼 천운이 생긴다면 그에게서 출태의 도를 얻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클, 이제 끝났다. 이 늙은이는 더 이상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구나. 미안하다 소열아. 노부가 네게 큰 짐만 준 것 같아서.”

  “그렇지 않습니다. 노야, 아니 사부! 사부님께서 해주신 그 수많은 이야기는 언제나 저의 가슴에 새겨져 있을 겁니다.”

  “사부라? 그래, 우린 비록 사제의 예는 없었으나 내 너를 생각함에 항시 내 몸과도 같았다. 부디 사명조(四銘趙)를 완성하여 가짜 무인이 판치는 오늘의 패권 강호를 무(武)와 협(俠)이 살아 숨 쉬던 지난날의 황금빛 시절로 되돌려다오.”

 

 

 오늘 처음으로 노야를 사부라 불렀다. 나를 제자라고 당신께서 직접 표현해주진 않았지만 문득문득 나를 보며 미소 짓던 그 모습을 보면 당신 또한 그때 무척이나 흡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사부를 잘 모른다. 사부가 강호상에 있어 왔던 수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긴 했지만 정작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지는 황혼녘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사부를 볼 때나, 깊은 밤 산정 높이 올라가 회한에 몸부림치던 사부의 음성을 들을 때면 당신께서도 말 못할 사연이 참 많았다는 것을.

  아! 나는 또 안다!

  사부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비록 내게 수련을 시킬 때는 매정하고 혹독했지만, 내가 지쳐 쓰러지면 당신께선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내 볼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셨다. 나는 그 따스한 손길에 담긴 당신의 마음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오늘 밤 사부는 내 손을 잡고 산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함께 목욕하자고 했다. 아마 보름달은 유유했을 것이고 계곡 물은 달빛이 스며들어 신령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보단 사부의 말라비틀어진 몸이 내 시선을 줄곧 고정시켰다.

 나는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기 싫어 사부에게 등을 밀어준다고 자청했다. 그때 사부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의외로 강호상의 무용담이 아닌 당신 자신의 지난 세월 이야기였다.

 나는 사부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흘러내린 눈물을 감추고자 몇 번이나 차가운 계곡물 속에 머리를 담가야 했다.

  산정의 바위. 우리는 나란히 그곳에 앉아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사부는 언제부터인가 말이 없었고, 대신 밤하늘을 돌아보며 가녀린 오열을 했다. 그것은 거친 파도가 썰물에 빠져나가 버린 후의 공백. 나는 왠지 모를 공허함에 휩싸여 서럽게 울먹였다. 사부는 그런 나의 손을 꼭 잡고 미안하단 말을 되풀이했다.

  찬란했던 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동쪽 하늘이 부옇게 일어날 때 사부가 나의 어깨에 살그머니 기대어왔다. 사부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몸을 비튼다거나 오열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혹여 잠든 사부를 깨울까봐.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부를 들꽃이 자란 한쪽 길가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가신 님 앞에 무릎 꿇어 못난 제자를 이해해 달라고 눈물을 쏟았다. 아니, 낭만 강호를 꿈꾸었던 사부의 기대를 저버리는 못된 제자를 용서해 달라고 울고 또 울었다.

  사실 사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사부가 말한 그 낭만적인 강호를 알지 못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지금의 무림이요, 내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지금의 무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부는 나에게 무불련이라는 단체를 내내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곳과 나를 연관시킬 그 무엇도 찾지 못한다. 나는 칼보다는 쟁기를 좋아하고 광활한 세상보다는 지금의 촌구석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또 더 강해져서 혹 강호에 나갈 어떤 사명을 느낀다면 그땐 사부의 유지를 받들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게 살아갈 인생이던 변방의 한 촌부에게 멀리 보고 넓게 보는 사고의 전환을 해준 은인의 평생 소망이므로.

 

 자명(自鳴)의 침묵은 끝이 없고

 동불(東弗)과 서불(西弗)이 일어나니

 천하는 다시 춘추(春秋)라.

 산인(散人)은 구름 속에 머물고

 유한(踰限)의 한은 깊이를 더해가니

 아, 세상에 숨은 무화(無和)여

 그대는 진정 무엇을 꿈꾸는가.

 

 <무불 사십삼 년, 오월 장소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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