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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검명무명
작가 : 자우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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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강호에 발을 디뎠을 때, 세인들을 그를 검광이라 했다.
그가 무명검으로 독보천하 할 때, 세인들은 그를 검귀라 불렀다.
그가 홀연히 강호를 떠날 때, 세인들은 그를 검신, 진정한 천하제일인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흘렀다.

 
1 화
작성일 : 16-07-07 10:26     조회 : 743     추천 : 0     분량 : 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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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뜻 없이 깨어나다.

 

 

 

 

 “뭐지?”

 두 손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곱디고운 손이었다. 자신의 손이 아닌 것 같았다.

 “너는, 누구지?”

 고개를 돌리자 가까이 동경 속에서 자신을 마주 보는 사내가 있었다. 두툼하게 살이 오른 얼굴이 자신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얼굴.

 일생을 배불리 먹어본 적조차 없는 그에게는 적응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출렁거리는 뱃살이 무거웠다. 힘없는 팔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고개를 들어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겨우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화려하기 그지없는 방 안의 정경이 보였다.

 자신의 집은커녕 방을 가져보지도 못한 그로서는 낯설 따름이었다. 더구나 이런 화려한 모습은 자신의 성정에도 맞지 않았다. 입은 옷은 화려한 금의요, 덮고 있던 이불은 금침. 베개는 옥으로 만든 것이고 주변에 놓여있는 가구들은 하나하나가 고급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이해 못 할 광경이었다.

 “으음.”

 잠깐 몸을 비틀자, 등에서 우두둑하는 소리와 더불어서 섬뜩한 통증이 몰려왔다. 어지간히 오랫동안 누워있었던 모양이었다. 뼈마디가 모두 굳어 있었다. 숨을 달래고 침상에서 이불을 걷고 내려섰다. 무릎에 실리는 체중과 부하가 상당했다. 그럼에도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간신히 옮겨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탁자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새삼 주변을 둘러보며 기억을 헤아렸다.

 “도대체, 여기는?”

 정신이 혼미했다. 오랜 시간 잠을 자다가, 느닷없이 깨어난 것처럼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탁한 눈동자가 흔들릴 때, 그는 퍼뜩 눈을 감기 직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망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죽었다. 그때에 죽었어.”

 은거지에서 쓸쓸히 두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숨을 뱉은 것이 이토록 선명했다.

 “그렇구나, 그래. 그럼 여기는 저승인가? 어디인가?”

 그가 의아해하는데, 우당탕하고 요란한 소리가 문가에서 들렸다.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 계집아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있었다.

 들고 있는 그릇을 놓쳐 떨어뜨린 모양인지, 대야 하나가 바닥을 뒹굴었고, 한가득 담겨 있던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양 덜덜 떨다가, 누군가를 찾아 달려나갔다.

 “마님! 마님!”

 울면서 외치는 소리가 다급하게 멀어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는 어리둥절했다. 조금 전의 계집아이는 그저 평범한 아이인 듯 싶었다. 그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디인지는 물론이거니와 애당초 왜 이런 몸으로 눈을 뜬 것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답답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만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소란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방으로 달려왔다.

 가장 앞에 선 것은 커다란 덩치의 중년인이었다. 호랑이와 같은 기세를 지닌 그에게서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

 전장의 향기였다. 오래되었음에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혈향(血香)이다.

 그의 옆에는 현숙한 중년부인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은 한결같이 걱정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 그들 또한 걱정스러운 시선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여인은 그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아야. 이제 괜찮은 거냐.”

 “이 어미가 너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두 부부가 한탄하며 그를 다독였다. 그제야 시선을 돌린 그는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어, 어머니?”

 “그래. 그래. 어미다. 이 녀석아.”

 부인은 무엇을 따질 것도 없이 그를 덥석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뜨거운 눈물이 그의 어깨를 적셨다. 그 옆에서, 아버지라는 중년인도 안도의 한숨을 거듭 내뱉으며 그의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어, 어머니, 어머니.”

 낯설었다. 어머니란 단어가, 가족이란 이름이. 한 평생, 세상에 날 때부터 홀로 살아왔던 그에게 느닷없는 가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깃든 이 몸의 가족이려나.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 홀연 따뜻함이 일어서 서서히 퍼져 나갔다. 싫지 않은 감정이었다.

 모친의 손에서 비롯한 온기가 가득한데, 한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어머니, 이제 정아를 쉬게 해주지요.”

 “그래 큰아이 말대로 합시다. 부인.”

 뒤에 서 있는 젊은 사내 중 가장 기골이 장대했다. 그는 아버지라는 중년인과 가장 많이 닮아있었다. 얼굴이나, 덩치까지도.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이 몸의 큰 형인 듯싶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인은 그의 부인일터였다. 그녀 역시 한 시름을 놓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숙한 기품을 지니고 있어, 그와 잘 어울렸다.

 그들은 부모님의 사이 못지않게 금실이 좋은 듯, 화기애애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남자는 차가운 인상을 지녔지만, 그 또한 안도한 얼굴이었다. 그가 이 몸의 둘째 형이다. 그 역시 성혼하여서 한 여인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두 눈에 걱정을 가득 담았고 안도의 한숨을 거듭 내뱉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표정을 한 사람이 있었다.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멀뚱히 서 있었다. 처음부터 내내 무표정하게 있었다. 미색은 출중하였는데, 특히 맑은 듯 청아한 두 눈이 눈을 끌었다. 아울러 복색 또한 다른 여인들과 달랐다. 특이하게 무복을 걸치고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상당한 보검이 분명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고, 힘겨운 듯 한숨을 내뱉자, 그제야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피했다. 따뜻한 말을 한마디씩 남기고 방을 나가는 데, 진심이 가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표정한 여인에게도 무슨 말을 건네며, 그녀를 다독이고 자리를 피했다. 활짝 열린 방문 앞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여인은 두 어른에게는 참으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역시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초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나마도 곧 고개를 돌려서 가족들이 사라진 것과 반대방향으로 모습을 감췄다.

 의아한 일이었지만 오래 마음 두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곳이 저승은 아니지 않은가. 우르르 몰려와서 한 번에 물러나니, 주변의 정적이 한층 고요했다. 활짝 열린 방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가슴 깊은 곳에 고인 탁한 기운마저 씻어줄 듯이 청량한 바람이었다.

 “후우.”

 그는 바람을 맞받으면서, 복잡한 심사를 날려버릴 듯이 거세게 호흡을 다잡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렵게 자리를 잡아 막연한 심정으로 운공에 들어갔다.

 무엇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차분하게 조식을 취하자 의외의 발견에 흠칫 놀랐다.

 몸은 실로 형편없건만, 뜻밖에도 내가공력의 기초가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연공을 한 모양인지 튼실했다. 물론 기초뿐이었지만 비대한 몸뚱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새삼 집중하자 눈 감은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흐음.”

 한숨이 나직이 새어 나왔다. 비록 내가공력의 바탕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단전에 머무른 내력을 운기하고자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호흡을 통해서 착실하게 축기를 이루었으나, 공력을 운용해본 적은 추호도 없는 몸이었다. 어떻게 부릴 줄도 모른 채, 단전에만 무턱대고 공력을 쌓기만 한 것이다.

 “이런 경우가 있다니. 희한한 몸뚱이로군.”

 그는 고개를 잠시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차분히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의식을 몸속으로 이끌었다. 몸속의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의 의식이 다시 돌아왔다.

 “후우우우!”

 처음보다 더욱 깊은숨이 길고, 또 길게 흘렀다. 그는 곧 쓴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 엉망진창이군.”

 어이가 없었다. 공력을 지녔으되, 혈도, 혈맥은 탁기와 사기로 단단히 굳어 있거나 막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루어낸 공력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일단 몸을 단련하고 탁기를 씻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몸이 누군지도 알아야 했다.

 

 그것을 찾은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몸뚱이만큼이나 큰 침상의 한쪽 구석에서 비밀통로를 찾아낸 것이다. 몸이 습관대로 손을 뻗어 허우적거리다가 찾아낸 장소였다.

 벽이 열리고 드러난 그곳은 옴짝달싹 못 할 정도로 비좁았다. 그처럼 뚱뚱한 몸이라면 더더욱 들어가기 어려웠다. 애써 들어간다고 해도, 사람이 감히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발견한 세 권의 책자.

 셋 모두 어떠한 제목도 달리지 않았다.

 “이것은?”

 한 권은 일종의 무공비급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건강도인술 따위의 기공술이 적혀 있는 책자였는데.

 태반이 단편적인 지식에서 끝났다. 대충 훑어 본 그는 그제야 이 몸의 주인이 어떻게 착실히 내공의 기초를 쌓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 책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인 기공과 축기만큼은 분명 정종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잡다한 좌도방문의 술수들뿐이었는데, 일례로 금단, 금액 따위를 다루는 연단술이나, 귀신을 부리는 방술 따위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막상 파고들어 가보면 알맹이가 없는 그저 수박 겉핥기식의 두서없는 묘사나 상상 속의 이야기 대부분이었다.

 ‘다만 추측할 따름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신중하게 살핀 끝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어허?”

 채 몇 글자를 살피지도 않았는데, 많이 낯익은 글귀들이 보였다. 곰곰이 읽어보니, 이것은 꽤 상승의 내공심법이 아닌가.

 시간을 들여 글을 읽다 보니 거슬리는 부분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교묘하게 글귀를 변형하거나 삭제하여 그럴듯하게 포장되어있었다.

 이름 모를 심법을 곰곰이 따져 보니, 이것은 딱 사람 잡기에 알맞았다. 이 글을 적은 자는 교묘하기 그지없어 설사 내가 고수라 할지라도 속아 넘어가기에 십상일 정도로 교묘하게 구결을 감추고 삭제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이 몸의 주인은 이 심법을 운용하려다 만 듯싶었다. 비록 내공의 기초가 튼튼하다 할지라도, 이것은 애초에 주화입마를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내력만 착실했지, 틀어 막힌 것이나 다름없는 혈도로는 진기운용을 할 수 없었을 터인즉.

 주화입마에 이르는 내공서책도 한쪽으로 던져 놓고, 이제 마지막 책을 집어 들었다. 펼치는 순간 비대하여 단춧구멍만 한 눈동자 제법 크게 벌어졌다. 책은 천만뜻밖에도 이 몸의 일기였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일기는 작년부터 시작되었다.

 -모월 모일.

 오늘은 내 혼례식 날이다.

 서두는 그 한 줄이었다.

 

 가슴이 떨렸다. 어린 시절의 태중에 혼약이라, 솔직히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듣기에 강호에서도 촉망받는 후기지수 중 하나라 하는데. 그녀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하기야, 나 같은 놈을 좋아할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뚱뚱하고, 소심하고, 옹졸하고. 매일 색주가나 돌아다니는 나 같은 난봉꾼 따위를.

 새벽녘만 하여도 자포자기하여 기방이나 찾을 생각만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나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고 그녀의 얼굴만이 가득 들어찼다. 물론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다. 보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경멸하고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리를 피해 기방이나 생각 하던 나였으니. 나 자신도 경멸스러운데, 그녀라고 다를까.

 

 식을 마치고 신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녀는 나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낮게 속삭였다.

 몸에 손 끝 하나 대지 말라고.

 무슨 걱정인가. 그럴 깜냥이 나에게 있기나 한가. 그녀는 지금 침상에서 잠이 들어있다. 아름답다.

 그녀에게 비하면 나는. 나는.

 

 -모월 모일.

 답답하다.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데. 다들 신혼이라 좋겠다고 말하지만, 글쎄?

 싫을 것은 없다. 비록 그녀는 나를 보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으니까.

 그녀 몰래 무공을 익혀보고자 한다. 그럼 그녀도 나를 달리 보지 않을까?

 듣자하니 무공을 익히려면 내공이 중요하단다. 다행히 내공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차분히 익혀왔다. 비록 반쪽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평생을 튼튼하게 살 수 있다고 해서 배웠던 것인데, 열 살 때부터 시작해서 이제 열아홉.

 그래도 구 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했으니, 늦은 나이는 아니지 않겠는가?

 

 -모월 모일.

 책을 구했다. 한 권은 어린 시절 배운 내공심법이 들어있던 책이었다. 나를 가르쳤던 도사님께서 이외의 부분은 읽을 필요도 없다 하셨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펼쳐보았지만, 내가 원하던 무공에 관해서는 없었다. 그저 내가 배웠던 기초내공법 만이 전부였다.

 다른 한 권의 책은 너무 어려웠다. 내가 그래도 기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머리가 영민하다고 소문났었던 사람인데,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답답하다.

 오늘도 몇 번이나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한참을 읽어가며 몸의 주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세상이 충의의 가문이라 하는 충렬 양가장(忠烈 楊家場)이다. 당금 천하의 대장군부이기도 한 가문이었다.

 아버지인 대장군 양호상(楊虎相)은 삼남 일녀를 두었다. 두 형으로 양한정(楊閑征)과 양무정(楊武霆). 그리고 삼남인 자신, 양운정(楊雲霆). 마지막으로 지금은 집에 없는 막내 여동생인 양혜령(楊慧鈴)이다.

 이제 스물다섯인 양한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군부의 천호위에 올라 있는 앞길이 창창한 무관이었고, 작은 형인 양무정은 스물 셋으로 양가제일창으로 불릴 정도로 출중한 무예를 자랑하지만, 오히려 문사의 길을 걸어 한림원 학사로 있었다.

 막내인 양혜령은 이제 열여섯의 어린 나이였으나, 생각이 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지닌 착한 아이였다. 지금은 저 멀리 사천의 아미산에서 무공을 배운다고 했다.

 글을 읽을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고, 다른 삶이었다. 이러한 기억조차 그에게는 낯설고 또 거북했다. 그러나 가족이란 존재가 생겼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다.

 자신의 부인인 여인. 저 남궁세가란 곳의 금지옥엽이란다. 나이는 동갑인 스물.

 남궁아현.

 이 몸의 원래 주인은 그녀를 끔찍이도 사랑한 모양이었다.

 한 장, 한 장에, 그녀에 대한 찬사와 원망이 가득 적혀 있었다. 일기는 상당히 두꺼워 내용이 많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르렀다.

 

 

 -모월 모일.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두려웠다. 아버지는 언제나 호통만 치신다. 대장군가에 나와 같은 모자란 아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죄송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날은 왠지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저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실 뿐이었다.

 큰형이 옆에서 말해주었다. 징병 되었다고 했다. 무슨 정신으로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방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불과 반 시진 전의 일이다.

 무섭다. 석 달 후면 이 집을 떠나야 한다. 왜 대장군부의 아들이 변방 따위를 가야 하는 건가.

 무섭다. 두렵다. 그녀를 두고 그런 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모월 모일.

 결심했다.

 두렵다. 하지만 그녀를 두고 떠나가기는 싫다. 비록 그녀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그녀를 두고 그런 지옥 같은 곳으로 간다니, 내가 버틸 자신이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5년이다. 오 년이란 시간 동안 변방의 척박한 환경을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모월 모일.

 마지막이다.

 눈앞에 파란 환약이 있다. 이것이 나에게 안식을, 그리고 그녀에게는 자유를 줄 것이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끝이었다. 눈물 자국으로 보이는 자국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자살이라. 사치스런 인생이군.”

 한 사내의 절절한 사연이라지만, 그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온 그였다.

 이 몸의 주인, 이제는 자신의 몸이 되었지만, 양운정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한편으로는 열등감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너무나 뛰어난 두 형 때문에 항상 아버지께 혼나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에 대한 반항으로 매사 쾌락을 쫓아서 삶을 허비했다. 부족함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사내의 죽음이었다. 다른 감흥이 일기보다는 잠시나마 불쾌감이 들었다. 마치 오물이라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었다.

 온 몸에 출렁거리는 살들이 더더욱 그런 기분을 부추겼다. 그는 일기를 그러쥐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한 가지를 빼고는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녀석이군.”

 그 하나란, 물론 가족이었다. 피로 이어지고, 세월로 맺어지는 일가였다. 한 때에 천하를 오시(傲視)함에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족의 두 글자가 가슴 속에서 홀연 피어오르니, 그는 곧 흐린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들었다. 활짝 열어놓은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흐르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는 새삼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하늘의 뜻을 어찌 헤아릴까만, 다시 받은 이생의 삶. 감사하게 영위하겠나이다.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그는 하늘에 경건한 태도로 감사의 마음을 올렸다. 그리고 힘겨운 걸음이라도 방문을 애써 나섰다. 새로운 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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