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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단편소설] 북두오성(北斗五星)
작가 : hisei
작품등록일 : 2022.9.23

인생은 미완성?

 
[단편소설] 북두오성
작성일 : 22-09-23 18:42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1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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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출퇴근 버스에서 내린 선은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주머니 안에는 회사에서 제공한 핫팩이 있었지만 서늘한 기운은 도저히 막지 못했다. 리콜 대상이었던 패딩을 환불금 7만원에 현혹되어 리콜하지 않고 환불금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한 후폭풍이 지금에서야 오는 듯 했다.

 그녀의 어미가 불쌍하다며 시장통에서 사다 준 털이 복슬복슬한 외투가 있었으나,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이 패딩을 보고 있으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져 추위는 잊고 미완성 패딩을 매번 몸에 걸쳤다.

 6시가 다가오는 시간이었지만 날은 아직 어두웠다. 선은 늘 그렇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의 모양을 확인했다. 안개가 없는 날인 건지, 미세먼지가 적은 날인 건지 알 수 없었으나 하늘의 뜬 달이 유달리 밝고 동그랗다. 선은 퇴근 시간에 바라보는 하늘을 좋아했다.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태양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빛을 내는 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못함. 어쩌면 그게 그녀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지도 몰랐다.

 여느 때처럼 하늘을 바라보던 선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뚫어지게 봤다. 달의 곁을 늘 지키고 있던 북극성 말고도 다른 별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와서였다. 어린 시절 배운 과학 수업시간의 내용을 끄집어내려 했지만 너무 오래돼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

 편의점에서 야간파트타임 중인 진이 그녀를 발견하고 가게 밖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선은 “응”이라고 답하며 여전히 하늘을 봤다. 진은 담배를 꺼내 물며 선이 바라보는 하늘을 함께 바라봤다.

 “달이 밝네.”

 “응. 근데 저거 북두칠성 같은 데 왜 5개밖에 별이 안 보이지?”

 “북두칠성?”

 선이 손을 뻗어 국자의 머리모양과 손잡이로 향하는 별 하나를 이었지만, 여전히 진은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담배연기를 하늘에 내뿜었다.

 “난 안 보이는데?”

 “북두칠성 말고 비슷한 다른 별자리가 있나?”

 “카시오페아?”

 “그게 북두칠성이랑 닮았어?”

 “몰라. 별자리 이름 아는 게 그거뿐인데?”

 “북두칠성도 미완성이네.”

 “북두오성이네. 별도 주 5일제인가? 수금화목토?”

 진은 말장난을 하고는 재밌다며 혼자 낄낄거렸다. 선은 그런 진이 익숙한 듯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꺼내 하늘을 찍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선의 눈에 보이는 하늘의 선명한 별들을 기계는 완전히 담지 못했다. 현실은 거리감까지 담아낸 카메라 안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선은 눈앞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선명한 눈앞의 환상이 더 좋았다. 그녀는 찍은 사진을 곧바로 지웠다.

 “지울 거 뭘 사진을 찍냐?”

 “혹시나 해서. 전문가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담을 수 없나 봐.”

 “코로나 터지기 전에 사진전 갔다 온 적이 왔는데, 거기에 사진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었다. 걔들도 찍을 때 연출과 각도 뭐 이런 거 많이 하는 데 후반작업으로 컴퓨터로 보정하고 안 찍힌 건 그리고, 필요한 건 다른 사진에서 뜯어와서 붙이고, 그렇게 사진 하나를 완성하더라고.”

 “처음부터 완성되는 건 없다는 건가?”

 “세상 자체가 미완성이라는 거지.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

 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하지만 가사는 전혀 모르는 노래였다. 진도 그런지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부분만 가사로 부를 뿐 나머지는 허밍만 할 뿐이었다.

 “가사 몰라?”

 “옛날 노래인데 내가 어떻게 아냐? 엄마가 부르는 걸 몇 번 봐서 그래도 이 정도는 아는 거야. 인생은 미완성~”

 “하필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부분만 아냐?”

 “공감하는 거지.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변해도 인생은 늘 미완성~”

 “아멘!”

 편의점 2층 교회에서 내려오는 목사를 발견하고 진은 화들짝 놀라 담배를 발로 밟아 끄고 마스크를 올려 쓴 그녀는 아직 눈앞에 있는 하얀 담배 연기를 손으로 흩트리고 나서야, 특유의 깍듯함으로 90도로 허리를 굽혀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그녀의 인사습관은 학부 때부터 빛이 났었다. 연극영화과나 체육학과 학생들이 하는 인사를 그녀는 인문학부에서 하고 있어 다들 부담스러워했지만, 학번이 높을수록 그녀의 그런 인사습관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목사는 그들과 다르게 그녀의 인사에 늘 받아치는 동일한 권면을 오늘도 그녀에게 했다.

 “예배시간에 아멘을 그렇게 큰소리로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지.”

 “아멘!”

 진은 그런 반복되는 권면에 전혀 기죽지 않고 습관처럼 큰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선이 목례와 함께 목사에게 인사를 하자 목사는 진에게 와는 다르게 정중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인생은 미완성이에요. 사람의 힘으로는 인생을 완성 지을 수 없어요. 그래서 반드시 주님께 삶을 맡기고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야 해요.”

 “아멘, 아멘.”

 목사의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맞장구쳤다. 순한 양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진이었지만 이상하게 목사 앞에서는 순한 양으로 변모했다. 가면을 쓴다거나 그런 척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집 안에서는 말괄량이인 아이가 교사 앞에선 세상 착해지는 어린아이같다고 할까.

 “아멘만 하지 말고 예배랑 성경공부 빠지지 말아야지.”

 “임마누엘 하나님을 실천하기 위해 교회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교사의 교육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어린아이를 보고 있자면 선은 매번 웃음이 났다.

 “야, 웃지마.”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는 선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진이 다 들리는 귓속말을 하자, 선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는 못했다.

 “선 청년도 한 번은 꼭 주님 안에서 만났으면 해요.”

 거의 1년 가까이 듣는 목사의 익숙한 인사였다. 나쁜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네 꼭 뵈요.”라는 인사치레로 받아칠 수도 없는 인사라 늘 그렇듯 선은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만 건넸다. 목사도 진도, 선의 답이 긍정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내일도 모레도 목사가 동일한 인사를 할 거라는 걸 선도 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이 만남의 마지막 퍼즐을 먼저 맞추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 퍼즐을 완성하려는 순간 그들의 새벽의 만남이 완전히 부서진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승리해요,”

 목사가 작별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선은 진의 혼잣말에 그녀를 돌아봤다. 그 또한 매일 있는 스스로에 대한 다그침이었다.

 “이놈의 코로나 때문이야. 아주 좋은 구실이 생겼다고! 아니야, 아니야. 진아, 거듭나야지.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이 행동한다. 회사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 안 그러겠지? 영은? 죽은 영은 누가 살리는데? 반성해, 반성해. 회개하고 거듭나야 해, 김진.”

 “회개가 뭔지는 알지?”

 “당연하지! 그래서 매일 이렇게 다그치잖아,”

 “다그치기만 하는 거 같아서.”

 “다그쳐야 반성도 하고 노력이라는 것도 하고, 뭐 그러는 거지. 시끄러워 따라 들어오기나 해. 인생은~ 미완성~”

 진은 연신 <인생은 미완성>을 흥얼거리며, 미리 계산대에 빼놓았던 폐기제품을 포스에 찍으며 폐기처리를 진행했다. 이번엔 이전과 다르게 꽤 양이 많았다.

 “양이 많다?”

 “원래 이 정도는 나오는데, 가져가는 사람이 줄어서 그래.”

 “줄어? 나 말고 가져가는 사람이 또 있었어?”

 “너희 집 건너편에 사는 술에 맨날 취해 다니는 아저씨 있잖아. 그 아저씨 줬지. 맨날 밥은 안 먹고 술만 먹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챙겨줬지.”

 진은 학부 때도 술에 취한 동기들을 끝까지 챙겼던 녀석이었다. 본인은 술을 먹지도 않으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녀석이 선은 늘 신기했었다. 그 당시에는 나이 많은 동기라 어린 동생인 동기들을 챙긴다 생각했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보살핌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진은 누군가에게 뻗는 손길로 자신을 완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데 그 아저씨 안 보인지 일주일이나 되어 가. 이사간다는 얘기는 없었는 데 말이야.”

 “이야기도 나누었어?”

 “난 모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선은 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저씨 이사나간 거 봤냐?”

 “아랫집에 사시는 분들 나가는 것도 몰랐는데 옆집을 알겠냐? 아!”

 선이 당연히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하다 무언가 기억이 났는지 탄식을 질렀다. 진은 궁금한 듯 폐기처리를 완료한 음식을 봉투에 옮겨담지도 않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일주일 전인가 점심쯤에 옥상에서 빨래널다가 아저씨를 봤어. 왼팔을 잡고 종이를 들고 올라가는 게 백신 접종하신 거 같던데?”

 “백신? 백신~”

 선의 이야기를 듣고 옆집 남자가 왜 편의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는 지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내일 오시겠네. 좀 빼놓을까?”

 “몇시쯤 오시는데?”

 “나 퇴근할 즘. 혹시 모르니 한 개만 빼놓자. 안 오면 말지.”

 폐기제품 중 반찬이 제일 많은 도시락을 빼 포스 구석에 챙겨놓으며, 나머지를 봉투에 쓸어담아 진에게 건네주었다.

 진이 챙겨준 폐기음식을 챙겨 집으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며 선은 이미 어느 정도 밝아진 하늘을 바라봤다. 북두오성은 햇빛에 가려 모습을 감추었고, 달은 아직 모습을 하얗게 드러내고 있었다. 날이 밝았지만 마을에선 한기가 느껴졌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주민이 모두 빠져나간 텅빈 마을이라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패딩을 뚫고 들어오는 서늘함에 선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주머니 안의 아직 열기가 남은 핫팩이 있었지만 미완성된 패딩은 그 온기마저 잡아주지 못하고 그녀의 가슴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오늘따라 패딩이 야속하게만 느껴져 선은 최대한 몸을 흔들며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언덕 위의 여러 다가구 주택 중 가장 오래된 다가구주택 옥상 옥탑이 그녀의 집이었다. 본래 집주인이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건물 창고라 집도 집으로써 재기능을 못하는 리콜대상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리콜한 집을 그녀는 임대했다. 당시 선의 형편으로는 따질 여유가 없었다.

 “대한민국 땅에 무보증 30짜리 집은 이게 유일할 겁니다. 게다가 안전은 얼마나 보장이 되는지 문이 무려 3개입니다. 건물에 들어오는 대문 하나, 옥상 입구에 설치된 철창문 하나, 이 옥탑 문 하나, 총 3개. 아까 보셨죠? 고시텔, 원룸텔도 고작 2개뿐인데 이 집은 자그마치 3개. 문이 3개란 말입니다. 여자분이 사시기에 매우 안전하죠. 게다가 고시텔이랑 원룸템은 위로 옆으로 측간소음, 층간소음이 넘치는 데 여긴 그것도 없죠. 개인 화장실도 널찍하고 개인 냉장고도 있고, 개인마당도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마당 값 받아야 하는 데 1년만 딱 사실 수 있어서 진짜 헐값에 내놓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시 부동산업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었다. 문이 3개였지만 대문은 늘 열려있는 상태였고, 옥상 출입문은 철창 사이가 넓어 안쪽에서 잠궈도 밖에서 충분히 열 수 있었고, 옥탑의 문은 절반은 불투명한 유리가 붙어 있는 열쇠로 여는 샷시문이라 안전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층간소음과 측간소음은 없었지만, 동네의 모든 소음이 그녀의 집을 매일 울렸고, 마당이라고 칭한 옥상은 같은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물론, 양심 없는 옆집 할매의 텃밭으로도 이용되어 그녀가 마음 놓고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 옥상에 드나드는 사람이 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게 그들의 주거 이전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잊고 있던 계약만료일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형편은 이사 오기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기에 날짜가 다가올수록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이 문제였던 이 집에서 선은 1년을 아등바등 버티었다. 코로나로 일할 곳이 줄어들었고, 늘어난 인건비만큼 근무가능한 시간은 줄어 생존을 위한 기본소득이 보장되지 않았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도 생존비용을 충분히 보장해준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택배상하차 업무를 한 첫날 그녀는 일금 15만원을 받고 집에 들어와 냉골인 방 안에서 서럽게 울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었지만 당장 생존을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서럽게 만들었다. 일곱냥에 매품을 파는 흥부를 무능한 인간이라 여겼지만 살기 위해서 매품이라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그를 그녀는 이제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창녀의 길보다 낫다며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상하차업무에서 배송업무로 전환하기 위해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 연수를 열심히 받았고, 3개월만에 숨도 쉬기 어렵고 밥은커녕 물도 마실 수 없었던 고된 노역현장에서 벗어나 조금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배송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분명 배송료는 올랐음에도 이상하게 건당 택배단가는 줄어 이전에는 10개만 배송해도 받을 수 있던 인건비를 15개는 날라야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또다시 노역화 되어갔다. 매품 팔아 번 돈으로 소작농이 되었더니 지주의 횡포로 건지는 거 하나 없는 악순환의 상황이었다. 생존을 위한 일이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방안에 서서 오래 전에 굳게 닫힌 노트북과 그 옆에 언제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이력서와 자소서 더미를 바라봤다. 이젠 그녀 스스로도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좋은 곳에 취직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사는 게 꿈이었지만 이미 그 시작부터가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맛본 좌절은 한 번 맛보는 순간 끝없이 그녀에게 밀려 들어왔다.

 “이선! 문 열어!”

 그녀에게 처음 절망을 알려 준 여자가 그녀의 집안을 들여다보며 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였다. 대학이 결정되고 싸이월드에서 처음 그녀에게 말을 걸어준 그녀는 오프라인상에서도 매우 친절한 아이였고, 둘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드는 동기와 선배들의 불만이 그녀에게로 향했고, 오해라고 하기에는 그녀가 행하지 않은 일까지 그녀가 행한 일이 되어 그녀는 더 이상 학업을 이어나갈 수조차 없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간 그리 친하지 않았던 동기의 전화 한 통으로 그녀는 감춰진 진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마리랑 아직도 연락해?”

 “아니. 학교 친구들이랑 다 연락 안해. 근데 내 바뀐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실은 학과사무실에 가서 집 전화 물어보고 어머니께 다시 네 번호 물어봤어. 너한테 사과도하고 네가 알아야 할 사실도 있을 거 같아서.”

 “뭔데?”

 “마리가 모든 동기랑 선배들한테 이간질을 하고 다녔어. 난 걔 처음부터 별로라 걔 말을 안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너 나가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도 마리 말을 조금은 믿고 있었던 거 같아.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억울한 일 당할 동안 돕지 않았겠지. 미안해.”

 그때 경험한 충격과 분노, 억울함은 눈물로 그녀의 얼굴을 적셨고, 그렇게 20살의 지옥 같던 사건이 정리가 됐다 생각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나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리를 마주치는 순간, 20살 때 느꼈던 그 모든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그녀를 한순간에 지배했고 스스로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뻔뻔하게 다시 달라붙는 마리를 그녀는 미처 밀어내지 못했다.

 선은 오늘은 반드시 그녀에게 말하리라 결심하고 문을 열었다. 역시나 오늘도 그녀는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네 친구는 대체 왜 그러니?”

 진의 이야기였다.

 “아니, 네 친구면 내 친구기도 하니까 샐러드가 상했으니까 폐기처리 좀 해달라니까 융통성 없이 안 된다고만 말하고, 아 짜증나.”

 “많이 상했어?”

 “네 눈으로 봐봐.”

 마리가 건넨 샐러드팩은 이미 가격이 정해져 있는 편의점용 샐러드로, 유통기한이 3일 정도 남아 있었다. 이 정도 기간이면 진이 매일 배송물품을 받는다는 새벽 4-5시에 도착한 상품인 게 틀림없었다. 샐러드도 포장이 되어 있긴 했지만 색이 변질되어 보이지도 않았고, 초록잎 하나가 포장시 눌렸는지 무른 것처럼 짙은 초록빛을 뗬지만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리에게만큼은 트집을 잡힐 수도 있는 문제이긴 했다.

 “다른 거 골라오지 그랬어.”

 “이게 먹고 싶은 데 어떻게 다른 걸 골라오니?”

 “그럼 내가 할인카드 있으니까 할인받아 올게.”

 “누군 할인카드 없어서 안 한 줄 알아? 몇 푼이나 깎아준다고 그걸 들이밀어 쪽팔리게. 너랑 동급 취급하지 마. 기분 나쁘니까.”

 선은 마리의 일방적인 공격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선의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선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공과금이 나갔다는 알림음이었다. 선은 습관적으로 알림버튼을 눌러 출금내역을 확인했다. 지난달보다 3천원이나 절약했다는 사실에 선의 입가에 미소가 띄었다. 하지만 마리는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듯 일부러 켜지 않는 전등을 켜고, 일부러 꺼놓은 보일러를 켜 온도를 높였다.

 “진짜 지지리 궁상이다. 이거 아낀다고 부자 되냐? 부자 되고 싶으면 주식을 해. 주식을.”

 “난 주식은 불안해서..”

 선은 늘 그렇듯 마리의 주식 얘기에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해 싱크대 상단 장부에서 그릇을 꺼내 마리가 건넨 샐러드를 그릇에 예쁘게 옮겨 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배포가 없다느니, 가난하면 용기도 없다느니 하며 마리의 선을 향한 비난은 계속되었다. 그 소음과 같은 소리를 들으며 선은 자신의 영혼이 갉혀 나가는 것 같았다. 선은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이 마리를 처음 보고 한 말을 떠올렸다.

 편의점에서 마주친 마리를 보고 진은 그녀가 편의점을 빠져나가자마자 무언가를 적어 선에게 건넸다. 글자는 <惡口の言>라는 일본어였다.

 “악마의 말?”

 “일본성경에 보면 비방하다를 저렇게 써. 왜 그럴까?”

 “악한 말이라 그러겠지.”

 “왜 악하냐 이 말이지.”

 “당사자는 상처받고,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진 않잖아. 분위기도 흐리고.”

 “맞아. 듣기만 해도 영을 갉아 먹으니까 악한 입으로 하는 말이라는 거지. 세상에 영을 갉아 먹는 악한 입을 가진 건 악마밖에 없어. 그래서 쟤는 악마야. 가까이 하지마.”

 그때 진의 말보다 진의 이상한 표정이 생각나서 선은 키득거렸다. 그러자 신나게 혼자 이야기를 하던 마리가 기분 나쁘다는 듯 그녀를 노려봤다.

 “너 지금 내 말을 비웃은 거야?”

 “아, 미안. 잠깐 딴 생각이 나서.”

 “뭐? 내 얘기를 안 들었다는 소리야?”

 “미안. 어서 먹고 출근해야지.”

 선이 샐러드를 가져다주며 말을 돌리려하지만, 마리는 전혀 말의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는지 샐러드를 강하게 포크로 쿡쿡 찍으며 선을 노려봤다.

 “너가 그렇게 남의 말을 집중해서 안 들으니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거야.”

 마리의 말은 틀렸다. 말을 번번이 듣지 않는 건 면접관들이었지, 그녀가 아니었다. 서류는 보지도 않고 질문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던지는 면접관들은 시선은 그녀가 아닌 바닥에 꽂은 채 그녀의 말끝마다 한숨을 쉬며 어떻게든 딴지를 걸기 위해 애를 썼다. 말의 의미를 찾기보다 말끝의 실수만을 찾으려 애를 쓰는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영과 혼을 다해 발버둥 쳤던 1분 30초는 지옥이 아닌 순간이 없었다. 지금도 마리와 함께 있는 순간도 그랬다. 선은 그녀의 안식처에서만큼은 이런 지옥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악마를 몰아내야 했다.

 “우리 회사에 너 같이 말 못 알아듣는 여자애가 있는데, 걔는 사람들이 지를 우습게 보는지도 모르나 봐. 눈치가 없어도 어쩜 그렇게 없는지. 난 자존심 상해서 하루도 회사에 못 다닐 거 같은데. 아! 눈치가 없어서 일을 다닐 수 있는 건가? 아니다 자존심이 없는 걸지도.”

 마리는 자리에 없는 사람도 샐러드와 함께 줄기차게 씹어대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던 선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는 너는?”

 나지막한 선의 목소리에 마리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고 먹으려던 샐러드를 내려놓고 선에게 다시 물었다.

 “너 뭐라고 했어?”

 선은 잘 들리지 않는 고개를 힘겹게 들어올리며 그녀를 봤다. 눈에 힘을 줘서인지 두려움에 터져 나오려는 눈물이 장전상태가 되어 그런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눈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목소리도 떨렸으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는 너는 눈치없다는 그 여자랑 뭐가 다른 데?”

 “질문이니, 아님 비꼬는 거니?”

 선은 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보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너도 네 회사 사람들이 그리 너를 좋게 볼 거 같지 않은데?”

 “뭐?”

 “대학 때도 그렇게 남을 비난하고 괴롭혀야 사는 애처럼 살더니 나이가 먹어서도 그 버릇은 못 고치나보구나. 아니, 정말로 남을 비방해야지만 살 수 있는 사람이건가? 너희 회사는 알고 있니? 너가 이런 애라는 거? 뽑았을 때는 몰랐겠지. 인적성검사 답지도 있으니 그게 너였겠어?”

 “그런 너는 정해진 답도 적지 못하는 등신이라 아직도 이러고 구질구질하게 사니?”

 “아끼고 사는 게 뭐가 어때서? 혼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사는 게 어때서? 너처럼 세상 적응 못 하는 사람처럼 불평불만도 모자라 남을 괴롭히고 비난하고, 이간질하고, 몸까지 파는 너보다는 나아.”

 “뭐라고? 몸을 팔아?”

 마리가 따지고 들기도 전에 선은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회사에 나가면서 가슴골이 훤히 다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는 거 보면 뻔하지. 네가 왜 여기에 찾아 오는 지도 알아. 대학 때처럼 이 집을 네 집 삼고, 남자들을 끌어들일 계획이겠지.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안 당해. 내 집이고, 내 안식처야. 네가 함부로 더럽히는 꼴 더이상 참고 보지만 않을 거야.”

 선은 반드시 마리가 그녀의 뺨을 때리고 소리 지르며 그녀를 더 강하게 억압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쥐었다. 손이 떨려서 꽉 쥔 건지, 꽉 쥐어서 손이 떨리는지 알 수 없었고, 그녀의 손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마리의 얼굴도 그랬다. 선의 생각과 다르게 창백하게 질린 마리는 들고 있던 포크를 집어던지고 그대로 짐을 챙겨 집 밖을 나갔다. 그녀의 구둣발 소리가 거친 소리들과 함께 멀어져 갔고, 그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있던 선은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어려운 면접시험을 끝내고 나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성공한 느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망친 듯한 기분이었다. 찝찝한 기분.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있었다. 남을 비방하는 짓이 얼마나 악한 일인 줄 알면서, 그렇게 쫓겨난 피해자였으면서 그녀는 가해자와 똑같은 행동으로 복수를 한 것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만, 이런 방법의 복수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떨어진 포크와 샐러드 그릇을 정리했다.

 창밖에서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보통은 스쳐 지나가는 소리였으나, 점점 싸이렌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선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선은 혹시나 마리가 나가다 사고라도 당했나 싶어 덜컥하는 마음에 급하게 옥상으로 나갔다. 옥상 난간에 서서 언덕에 오르고 있는 경찰차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던 선은 편의점 앞에 서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진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멈추고 선의 집 앞에 섰다. 선은 죄 지은 게 없음에도 두근거리는 심장에 뭔가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 당황했다. 이래서 진이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 했던가 하는 생각도 밀려들었다.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들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소리가 들렸고, 편의점에서 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전화를 받고 경찰에게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경찰에게 다가올수록 선은 집주인인 걸 알아봤다. 그녀는 선이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과 맞은편 다세대주택의 주인이지만 이곳에 살고 있지는 않아 누군가 이사를 나가지 않는 이상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동네에 찾아온 거로 봐서는 아무래도 철거일이 정해져서 안내를 해주려 온 듯 했다. 진이 언덕을 오르다 고개를 들어 옥상에 서 있는 선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맞은편 집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살짝 문이 열린 술주정뱅이 아저씨 집이었다.

 “설마....”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곧 도착한 진과 이야기를 나눈 경찰이 맞은편 건물 2층에 위치한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에도 경찰차 앞에 서서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목격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살겠다고 맞은 주사가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인가 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머릿속에 이런 저런 가설을 세우며 이랬으면 살았을까 저랬으면 살았을까 하고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경찰들이 나와 집주인과 진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는 그 이야기를 들은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어라 말하고는 인사를 하고 선의 집으로 향했고, 집주인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진의 뛰어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선은 출입문 쪽으로 갔다. 출입문이 열리고,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 진은 선의 얼굴을 보자마자 선이 예상한 말을 내뱉었다.

 “그 아저씨 백신 맞고 죽은 것 같데.”

 “내가 본 그날 돌아가신 거야?”

 “아줌마가 목격했을 때 식탁에 백신 관련 안내 종이가 있고, 아저씨가 가슴을 부여잡고 식탁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데. 이래서야 무서워서 3차 맞겠냐? 넌 3차 맞았냐?”

 진의 질문에 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1,2차 접종 후에는 팔이 아파 꼼짝을 못했다면, 3차는 심장이 약간 욱신거린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났다. 그녀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진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었다.

 “왜? 너도 심장이 아파?”

 “지금은 괜찮아. 근데 나도 3차 맞았을 때 심장이 욱신 거렸던 기억이 나서.”

 “너도 죽을 뻔했네.”

 “그 정도는 아니고.”

 선이 불을 켜며 집에 들어서자 뒤에 따르던 진이 불을 껐다. 선이 놀라 진을 보자 진은 오히려 밝아질텐데 왜 켜냐고 전기세 아끼자며 차가운 방 안에 총총거리며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신 출시 전에 임상을 3차 밖에 안 했다고 했었나?”

 “그래도 지금까지 맞은 사람이 많으니 임상을 3차만 했다고 보기에도 그렇지.”

 “마루타가 된 기분이라 진짜 맞기 싫었는데, 동네 아저씨까지 죽으니까 더 맞기 싫어지잖아.”

 진의 말에 선은 대답을 하지 않고 보일러 앞에 서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안 켜도 돼.”

 선이 보일러를 켤까 말까 고민한다 생각한 진은 먼저 선에게 보일러를 켜지 않아도 된다 말했지만, 선은 오히려 보일러를 켜고 온도를 높였다.

 “안 켜도 된다니까.”

 “마음이 불편해서.”

 “우리 엄마도 맨날 안 켜. 괜찮아.”

 “그게 아니라, 옆집 아저씨 고독사하신 게 마음이 계속 불편해서.”

 “미안해서?”

 “교류가 전혀 없어서 미안한 건 잘 모르겠어. 뭐랄까? 나도 저렇게 갑자기 죽으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선의 말을 듣고도 진은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다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선은 그녀가 그러든가 말든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진이 챙겨준 폐기음식이 담긴 봉투를 꺼내 밥상 위에 놓았다.

 “커피 줄까?”

 “새벽에 많이 마셨어.”

 진은 말을 하면서도 깔깔거렸다.

 “그만 웃어라. 놀리는 것도 아니고.”

 “고독사가 걱정되서 보일러를 켰는데 그게 안 웃기냐? 보일러 켜면 고독사 안 한데?”

 진은 눈물까지 흘리며 웃다가 봉투에 들어 있던 우유를 꺼내 마신다. 하지만 나오는 웃음에 결국 우유를 뿜어 선의 얼굴에 분사한다.

 “야!”

 “미안. 미안.”

 진은 잽싸게 싱크대 상당 장에 있던 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와 선의 얼굴을 닦아주고, 바닥에 흘린 우유도 열심히 닦았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낄낄거렸고, 선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진은 웃음장벽이 낮은 녀석이기도 하지만, 한 번 웃으면 지속적으로 웃는 아이이기도 했다. 선은 진을 말리않고 삼각김밥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아, 맞다. 너희 집주인 아줌마가 철거일 12월 31일이니까 30일까지 이사 나가면 된데. 너 계약 만료일 전이라 이사비용은 아주머니가 대주신다고도 했어. 나갈 날짜 정해지는 데로 연락 달래.”

 선은 응이라고 답하면서도 눈은 집안을 훑었다. 창고로 지어져 집이 집답지 않은 이 가건물은 마치 그녀의 리콜패딩 같았다. 보일러를 켜도 우풍이 심해 패딩에 핫팩을 넣어 입고 살아도 몸살이 나는 집, 여름엔 태양 열기에 달궈진 것도 모자라 에어컨도 없어 얼음주머니를 안고 살아 배탈이 사라지지 않는 집. 하지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고생했어도 마음만은 편안한 집이었다.

 “집은 알아봤어?”

 진이 싱크대에서 우유를 닦아낸 수건을 빨며 물었다.

 “아직. 이제 찾아봐야지. 날짜도 얼마 안 남았는데.”

 “15일만에 구할 수 있겠어?”

 “못 구하면 다시 엄마 집에 들어가든가 해야지 뭐.”

 “내가 석사 때려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지?”

 “들어가지 말까?”

 “들어가. 들어가는 게 남는 거야. 월세 대신 잔소리 듣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

 “난 엄마랑 사는 거 안 편해.”

 “가족이 편한 게 어디 있냐. 가족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러들인데. 그러니까 가족 같은 회사가 최악인 거지.”

 어느새 빨래를 마친 진이 수건을 건조대에 걸고, 선 앞에 앉아 남은 우유를 마셨다. 선은 삼각김밥 마지막 한 입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완벽하지 못해서 부끄러워 하셔.”

 “너희 엄마는 완벽하고?”

 “우리 엄마 생각에는 본인이 완벽한 엄마라고 생각할 거야.”

 “엄마 생각인 거지 네 생각은 아니잖아. 엄마를 평가하는 건 자식인 거지, 엄마 스스로 하는 건 아니지.”

 “너희 엄마는 완벽해?”

 “무슨! 우리 엄마 같이 남이랑 비교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어디 있다고. 절대 네버!”

 진은 마지막 남은 우유 한방울까지 원샷을 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 날 도와주는 건 욕을 하건 손가락질을 하건 잔소리를 하건 참견을 하건 엄마밖에 없으니까 참는 거야. 나 석사 때려치고 방황할 때 욕하면서도 용돈 식탁에 두고 나간 거 엄마였고, 면접 다 떨어져서 방 안에 처박혀 있을 때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서 방 안에 넣어준 것도 엄마였고, 편의점 차릴 때도 대신 대출받아서 갚아주고 있는 것도 엄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엄마고 자식이라고 도와주니까 100은 아니라도 100이라 생각하고 사는 거지.”

 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은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엄마와 크게 싸운 일을 떠올렸다. 박사과정을 중도 포기하게 됐다고 이야기하러 집에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왜 그만뒀는지보다 그만둔 사실 그 자체에 분노했다. 쪽팔려서 어떻게 사냐고, 버린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어떻게 하냐며 선은 몰아치는데, 선은 미안함보다 화가 났다. 엄마는 자식보다 자기 자존심이 중요하냐며, 언제나 늘 남의 시선이 중한 사람이라며 쏘아붙였고, 그녀의 어머니가 공부시켜놨더니 위아래도 모른다며 여자는 공부시켜봤자 소용없다며 결혼이나 해서 사라져 버리라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 지금 사라져 준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당시에는 실패한 자식을 보듬기보다 쓰레기 취급하는 거에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화가 나는 건 동일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상하게 가장 먼저 엄마가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리콜패딩 속 핫팩 같은 존재가 그녀의 엄마일지도 몰랐다.

 “너는 인생의 완성을 어떻게 짓는다고 생각해?”

 선의 이상한 질문에 핫바를 씹어 먹던 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그러니까 결혼을 하면 완성이 된다든지, 좋은 엄마가 되면 완성이 된다든지 하는.”

 “인생은 미완성~ 이라니까. 아까 내 노래를 어떻게 들은 거야.”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 아~ 저 사람은 인생을 잘 완성했네 하는 거는 있을 거 아니야~”

 “엄마 때문에 그래?”

 선의 집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진의 질문에 선은 조금은 이라고 답했지만, 실은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 더 남들 보기에 완성되어 보이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진은 그런 선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핫바를 씹으며 평소답지 않게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나갔다. 핫바 하나를 다 먹고 나서야 말이 정리 됐는지 진이 입을 열었다.

 “7개의 드래곤볼.”

 “7개의 드래곤볼?”

 “7개를 다 모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잖아.”

 “그건 알아. 그래서 7개의 볼이 뭔데?”

 “학업, 꿈, 돈, 결혼, 출산, 자식의 성공.”

 진의 말을 듣고 뭔가 이상한지 선은 고개를 갸웃하며 학업, 꿈, 돈, 결혼, 출산, 자식의 성공을 손으로 계수했다. 아무리 세어보아도 6개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이 혼자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백날 세어봐라. 여섯 개지.”

 “뭐야.”

 “죽는 날까지 우린 7성구를 영원히 모으지 못한다는 이 석사과정 중퇴자의 노련한 명언이시다. 인생은 미완성인 맛에 사는 거야. 완성은 무슨. 난 오랜만에 선이가 보일러 틀어줬으니 자고 가야겠다~”

 그러고는 이불을 끌어다 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은 진은 <인생은 미완성>을 콧노래로 부르다 스르륵 잠이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상을 치우던 선은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창을 확인하고 그 앞으로 걸어간다. 이미 태양 빛에 가려진 창밖의 북두오성을 찾아보던 선은 진이 한 마지막 말을 다시 떠올렸다. 영원히 모으지 못할 7개의 별. 진의 말대로 그녀는 영원히 두 개의 별을 찾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대로 선은 북두오성이 좋았다. 어쩌면 북두오성이라 더 좋을지도 몰랐다. 선은 희미한 미소를 띄며 차창 커튼을 내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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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편소설] 북두오성 2022 / 9 / 23 272 0 1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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