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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계획된 스캔들
작가 : 이제아
작품등록일 : 2022.2.10

극히 짧은 만남이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만남이 짙게 각인되고는 한다. 단아의 기억 속에는 이미 사라져 없어진 그 짧은 만남이, 버겁도록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단아의 앞에 갑자기 등장한 연예계 최고의 톱스타 최지한. 그가 파도처럼 몰아쳐 그녀의 세상을 온통 뒤흔들기 시작했다.

 
프롤로그. 이상하고 거북한
작성일 : 22-02-10 15:48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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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이상하고 거북한

 

 

 

 드라마 ‘보스의 여인’ 촬영이 막바지에 들어섰다. 오늘은 두 조직의 대규모 전쟁을 카메라에 담을 예정으로, 세트장이 이전보다 소란스럽고 분주했다.

 

 스태프, 배우 할 것 없이 다들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안전에 주의하지 못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제일 마지막에 촬영하게 될 신에서 터져야 할 폭탄이 수많은 배우 사이에서 예고도 없이 터져버렸다.

 

 많은 엑스트라가 다쳤지만, 다행히 목숨을 위협할 만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속하게 피해 상황을 파악한 감독이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곁에 있던 메가폰을 잡았다.

 

 “미안한데, 오늘 여기서 촬영 끝내야 해. 치료가 시급한 배우들은 바로 구급차에 실려 보내고, 촬영해도 괜찮다 싶은 사람들은 남아줘. 수창아, 애들이랑 나가서 구급 약품을 최대한 빨리 구해올 수 있는 만큼 다 구해와. 상처 치료가 끝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간다. 다친 사람들은 내가 나중에 다 보상할게. 미안하다.”

 

 이번 촬영은 장소 섭외에서부터 녹록지 않았다. 오늘까지 이곳에서 촬영을 모두 마쳐야 하는데 아직 반도 촬영하지 못했고,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터져 아주 난감했다.

 

 감독의 고개 숙인 사과에 단역 배우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총 158명의 엑스트라 중에서 거의 백 명 가까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았다. 치료는 다치지 않은 스태프들의 몫이었다.

 

 “모두 서둘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다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 지한은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쉬고 있었다. 강북파 조직원 21번의 단역을 맡은 그는 다리에 꽂힌 작은 나무 파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무감한 표정이었다.

 

 널 어쩔까. 빼면 피가 흐를 테고, 그럼 치료해야 하는데……, 귀찮아.

 

 “저기……, 괜찮아요?”

 

 지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 그는 고개를 들어 말을 거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유단아. 그녀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촬영하면서 그는 그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단아의 촬영은 후반부로 잡혀있었다. 그녀는 좀 전에야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고는 많이 놀란 모습이었다.

 

 “아프지 않아요?”

 

 지한은 이름처럼 단아한 그녀의 모습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담한 얼굴에 말끔하게 다듬어진 눈썹 밑으로 수수한 눈동자가 보였다. 피부는 아기 피부처럼 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오뚝하게 솟은 콧대와 붉은 입술이 모두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 외에 그녀의 실물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저 목소리만이 귀에 익을 뿐이었다.

 

 단아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샵에 들러 촬영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원래의 긴 머리가 아닌, 커트 머리를 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위에는 얇은 남색 티 하나만을 입고 있었다. 가녀린 몸매지만 볼륨감이 있어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걱정스레 그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은 곧 나무 파편이 꽂혀있는 그의 다리로 향했다. 눈에 띄지 않으려 일부러 구석진 곳을 택해, 덩그러니 홀로 앉아있었는데 그녀가 그를 발견한 것이다.

 

 “괜찮습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요. 치료를 받아야겠어요. 잠깐만요, 제가 사람을 불러올게요.”

 

 지한은 급히 팔을 뻗어 멀어지는 단아의 손을 잡아챘다. 뒤돌아본 그녀의 시선이 그의 손에 갇힌 자신의 손을 향하고 있었다. 살며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얼떨결에 잡은 손을 잽싸게 놓았다. 결코,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됐습니다.”

 

 “그래도 상처가 꽤 커 보여요. 치료를 해야…….”

 

 “귀찮아지는 걸 싫어합니다. 그리고 다들 바빠 보이니 저는 됐습니다.”

 

 “아……, 그래요. 알겠어요.”

 

 단아는 그곳에서 벗어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치료를 위해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지한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하고 거북한 여자였다. 요즘 제일 핫한 가수이면서 인기 만점의 여배우인 그녀가, 그에게는 괴상한 여자였다. 얼마 전에 우연히 말도 섞어본 적 있는 그녀는, 그의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여자였다.

 

 돌담의 코너를 돌아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녀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다시 잡혔다. 미간이 자동으로 구겨졌다.

 

 왜 또 이리로 오는 거야!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지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주하기 싫었다. 엉뚱하고 이상하고 괴상한 이 여자와 마주해 말을 섞기 싫었다. 그들의 우연한 첫 만남을 혹, 그녀가 알아챌까 두렵기도 했다.

 

 “귀찮아지는 거 싫다고 했죠. 소란스러운 것도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럼 솜씨는 없지만 제가 도와드릴게요. 정리되면 촬영 들어갈 텐데 이 상태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습니까?”

 

 “네? 이게 무슨 오지랖이에요? 아픈 사람 그냥 못 지나치는 건 다들 마찬가지예요. 내가 아니었어도 누구든 나처럼 했을 거예요.”

 

 “다들 이러지는 않죠.”

 

 “다는 아니라도 대부분이 이래요. 다리나 내놔 봐요. 아! 설마…… 아플까 봐 치료받기 싫은 거예요? 아, 그런 거구나.”

 

 “…….”

 

 지한의 굳어지는 표정에 그녀가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여자에게 관심을 가져본 역사가 없었다. 그럴 심적인 여유가 그에겐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여자의 웃음에 매료되어 본 일 또한 처음이었다.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은, 화사한 그녀의 미소에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것도 아주 잠시였지만….

 

 지한은 멋대로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에 놀라 고개를 저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요,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 덜 아플 거예요. 이제 뺄게요. 아프면 참지 말고 소리 질러요.”

 

 그를, 무슨 아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지한은 몇 마디 할까 하다가 속으로 삼켰다.

 

 짧게 들릴 듯 말 듯,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빼낸 부위가 깊게 박혀있던 것이 아니어서 출혈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원래 좀 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교육이라도 받고 왔는지 소독에서부터 치료까지 그녀의 손길은 매우 섬세하고 정성스러웠다. 그의 시선이 쉽사리 그녀에게서 떠나질 못하고 물끄러미 계속 바라보았다.

 

 “어디 더 다친 곳은 없어요?”

 

 붕대로 감아 반창고까지 붙여 치료를 마친 단아가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일자로 곧게 뻗은 눈썹 위에서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밑으로 순수하고 맑게 빛나는 영롱한 눈은 그를 담고 있었다.

 

 여성 듀오 Shine의 유단아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모두 눈을 뽑았다. 그 또한 그녀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든, 그게 무엇이든지 믿고 싶게 만드는 눈동자였다.

 

 마주한 그녀의 눈살이 조금씩 찌푸려져 갔다. 콧잔등에 주름이 이어졌다.

 

 “분장이 너무 섬세해서 진짜 상처로 보여요. 얼굴은 다친 곳 없어요? 이 피는 진짜처럼 보이는데…….”

 

 단아의 손길이 그의 귓가에 닿았다. 움찔 그의 얼굴 근육이 긴장했다. 싸움 신을 촬영하고 있어, 실제 얼굴을 가려내기 어려울 만큼 분장이 다소 진했다.

 

 싸움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상태였고, 엑스트라 대부분이 상처를 입은 분장 중이라, 이번 사고로 다친 것들도 굳이 가릴 필요가 없었다.

 

 지한의 손이 올라와 귓가에 살며시 닿아 간질이는 손을 낚아챘다. 귓가에 머물러있던 그녀의 시선이 단숨에 그의 눈빛과 마주했다. 손에서 가는 떨림이 느껴졌다.

 

 금세 붉어지는 볼이 귀여워 잠시 놀려줄까 싶기도 했다. 이전에는 결코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오해할까 싶어 바로 손을 놓아주었다.

 

 “분장입니다.”

 

 “그럼 이것은요?”

 

 그의 왼손 등에 날카로운 것이 스쳐 지나갔는지 피가 몽글몽글 맺혀있었다. 분장이 아님을 안 단아는 구급상자로 손을 뻗었다. 촬영에 들어가니 밴드는 붙일 수 없고, 연고라도 바르는 것이 좋을 듯했다.

 

 “여기는 연고만 바를게요.”

 

 그때, 근처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이 좀 전보다 시끄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연고를 꺼내 자신의 손에 짜려던 단아의 손이 그의 오른손을 향해 움직였다. 손가락을 내밀지 않는 그를 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건 직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기자들 소리가 들려요.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하잖아요.”

 

 그와 그녀의 시선이 부딪쳤다. 가만히 단아를 바라보던 지한의 입술이 열렸다.

 

 “……누가 곤란합니까? 나는 아닐 테고, 아, 유단아 씨가 곤란해지겠군요. 나 같은 일개 엑스트라와 한 컷에 실리면 많이 곤란하겠죠.”

 

 “왜 곤란해지는 사람이 그쪽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빈정거리는 말투에 곤두선 그녀의 신경이 느껴졌다.

 

 “내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죠. 인기스타와 함께 찍힌 사진이 돌면 내 인기도 같이 치솟을 테니까. 일도 많이 들어올 테고.”

 

 지한은 빈정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그녀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쪽 이름이 뭐예요?”

 

 “…….”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고, 지한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조현우, 강한솔.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 나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난리가 났었죠. 그쪽 말처럼 두 사람 모두 잘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크게 다쳤어요. 다신 그러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었는데, 내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네요.”

 

 “…….”

 

 단아는 굽혔던 다리를 일으켰다. 무릎이 맨땅에 닿아있어 흙이 묻어나 있었다. 싸늘하게 빈정대던 그의 모습에 많이 화가 나 있는 모습이었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네고는 돌아서서 스태프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갑자기 멈춰 섰다.

 

 뒤 한번 돌아보나 하고 기다리며, 낯익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는 뒤돌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다리 상처는 촬영이 끝나면, 꼭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요.”

 

 천성이 악할 수 없는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지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에게는 매우 진귀한 웃음이 오늘 그녀를 만나 이렇게 흘러나왔다.

 

 ***

 

 연말 시상식, 최우수 여자 연기상 후보에 유단아의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최우수 여자 연기상은 그녀에게 돌아갔다.

 

 “저도 드라마 ‘보스의 여인’의 열렬한 애청자였는데요. 유단아 씨, 최우수 연기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아든 단아를 향해 사회자가 말을 건넸다. 그녀의 눈가는 이미 눈물로 촉촉이 젖은 모습이었다. 애써 눈물을 가다듬으며 그녀가 마이크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보스의 여인’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단아는 어머니, 드라마 감독과 작가 그 외 제작진들, 그리고 소속사 식구들 이름을 나열하며 모두에게 감사 인사부터 전했다.

 

 “‘보스의 여인’ 촬영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하셨거든요. 액션 신이 많다 보니까 이전의 다른 드라마보다도 더 힘들게 촬영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제일 편하게 촬영했는데, 이런 큰상을 제가 받게 돼서 죄송해요. 저는 이 상을 ‘보스의 여인’에 참여한 모든 배우분들과 제작진분들께 주어진 상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노력하는 배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상소감이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을 때, 단아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연아, 고마워. 사랑해.”

 

 한정연, 그녀는 여성 듀오 Shine의 멤버였다. 연습생 시절부터 몇 년을 동고동락한, 단아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는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단아는 가수로 데뷔했지만,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주연까지 꿰찼다. 데뷔 첫해 신인 연기상을 받고, 그다음 해에 우수 연기상, 올해는 최우수 연기상까지 그야말로 유단아의 인기는 최절정이었다.

 

 그녀는 가파른 상승세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그 인기가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세상이 시끄러웠다.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포털사이트 실검의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유단아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단아가 Shine의 멤버인 정연의 뺨을 때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

 

 사진 한 장이 일으킨 파문은 거대했다. 이제껏 없던 불화설이 일파만파 퍼졌고, 특정 사진들이 증거자료라며 함께 올라왔다. 하지만 증거라고 보기에는 ‘불화설’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일진 설까지.

 

 선한 이미지로 안티 팬은 물론 악플까지도 비교적 적었던 단아에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악플이 쏟아지고, 그녀의 팬들은 거의 안티로 돌아섰다.

 

 최고의 절정을 누리고 있던 연예인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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