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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당신의 밤을 가질 때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22.1.18

구미호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 혼혈인 해나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납치당한 실험실 안에서
불완전한 구미호로 강제 각성을 겪으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마녀를 사랑한 죄로 루만으로부터 추방당한 왕자,
유진을 유일하게 받아 준 한국에서의 첫날 밤.

유진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해나를 제압하지만 폭주로 인한
페로몬에 노출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게 되는데.

 
01 왕자 추방당하다.
작성일 : 22-01-18 10:40     조회 : 331     추천 : 0     분량 : 5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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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스토르 622년.

 

 

 

 

 

 "곧 그들이 몰려올 거야. 안드레아 달아나야해."

 

 "내가 달아나면 유진은?"

 

 

 

 벌겋게 부어 오른 채로 감겨있는 안드레아의 두 눈에 유진의 모습이 보일 리 없었다.

 

 오직 두 귀에 의지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있던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기 시작한다. 이윽고 맺혀든 눈물은 줄기가 되어 뺨을 적셔 흐르고 그녀는 고개를 저어 보인다.

 

 

 

 "내가 달아나면 유진은 살아남지 못해."

 

 "달아나지 않으면 네가 살지 못해. 제발 나를 위해 살아줄 순 없어?"

 

 

 

 고개를 떨군 안드레아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더듬어대다 유진의 손을 겨우 찾아내 꼭 잡아 들었다.

 

 처음 유진과 수줍게 손을 마주잡던 순간이 떠오른다. 너무도 설렜고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에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던 그 순간이 지금에와선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음에 원망의 순간이 되어버린다.

 

 평생 잊지말았어야할 어머니의 유언을 어긴 때부터 틀어져 버린 것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이 시기에 유진을 사랑하게 된 것이 잘못인걸까,

 

 그도 아니면…….

 

 

 

 "다시 그들에게 잡혀오고 싶지 않아. 지금의 내 모습... 네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손톱이 짓이겨지고 도망칠 수 없도록 두 다리와 발목의 관절들이 뒤틀리고 꺾였다.

 

 살을 태우던 인두는 죄를 짓는 자신들을 볼 수 없도록 두 눈을 지져대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과 함께 오물을 끼얹었다.

 

 매일 밤 살점이 불길에 타들어가는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으며 고문을 참지 못하고 이미 죽어버렸거나 마찬가지로 고문을 참지 못해 스스로 마녀라며 거짓시인을 하는 처녀들이 산채로 불태워지던 그 냄새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두려움이 되어버렸다.

 

 

 

 

 점점 이성은 포기하고 시인 하라며 스스로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내가 마녀라고, 내가 마녀가 맞다고 찢어진 입술사이로 쇳소리 같은 목소리를 토해내려던 참이었다.

 

 

 

 

 두 눈과 시야를 잃은채 온통 깜깜하기만 하던 세상에 저주와 폭언을 뱉어내던 그들의 잔인한 목소리가 아닌 찢어질 듯한 비명과함께 둔탁하게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익숙한 체취가 땀 냄새와 섞인 채 코맡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그의 숨결까지도.

 

 

 

 

 말하지 않아도, 유진이 구하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유진의 품에 안겨 화형 대기장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다보니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마녀라고 불려버린 이상 이미 사람들에게 안드레아 자신은 마녀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는 것을.

 

 발버둥 쳐도 이젠 살아남을 수가 없겠지만 유진은 다르다.

 

 

 

 

 "하지만 내가 살자고 널 죽게 할 순 없어."

 

 "하... 안드레아... 난 죽지 않아. 사실 난..."

 

 

 

 유진이 말끝을 흐렸다. 쉽사리 다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안드레아는 유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가슴 속에만 담고 있던 그 말을 꺼낸다.

 

 

 

 "유진은 사람이 아니지."

 

 

 

 퍽 놀랐던지 한동안 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뺨을 쓰다듬던 손을 잡아 내리는 그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아직 그가 놀랄 수밖에 없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이미 패닉에 빠져버린 듯 한 유진이 휘청거렸다.

 

 

 

 "유진... 내가 마녀였단 사실을 몰랐다고 널 속인 날 태워죽이라고 말하면 인간들은 널 살려줄지 몰라. 하지만 너의 그들은 다르잖아. 너의 그들은..."

 

 

 

 휘청 이던 그와 함께 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안드레아는 다시 또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보려 입술을 깨물었다.

 

 

 

 "안...드레아... 하... 아니. 차라리 잘 됐어. 알고 있었다니 적어도 널 까무러치게 만들진 않을테니까... 날 두려워하지 않는 네가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설득할거야. 선대에도 인간을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지키신 분이 계시니까. 날 믿고 이 위기만 벗어나면..."

 

 "나도 유진처럼 인간이 아니란 걸 왜 몰라..."

 

 

 

 기어코 쓰라린 두 눈에서 눈물이 터져 흘렀다.

 

 두 눈을 잃어 유진의 표정을 볼 수 없음을 감사히 여겨야 하는 것일까?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인간이었다면... 어쩌면 우리사이를 허락해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인간들이 옳아. 그들의 말이 맞다고... 난 어머니 말씀대로 영원히 숨어살아야만 하는 마녀의 딸이야. 인간들도, 너의 그들도, 그리고 너 역시도 증오할 그 마녀 말이야..."

 

 

 

 안드레아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을 털어놔야 그를 살릴 수 있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슬픈 두 눈까지도 증오로 가득 차올라 자신과의 기억과 추억들을 모두 부정해버린다면 그 상심을 버텨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맞잡고 있던 그의 손이 풀렸다. 안드레아는 가슴이 뻥 뚫려버린 것만 같은 허탈감에 더 이상 울 기운조차 잃고 말았다. 그저 자신을 뒤로하고 돌아서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가 빨리 자신을 두고 떠나버리기만을 바랬다..

 

 

 

 예상한대로 유진의 숨결이 가까이에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떠나버린 듯했다.

 

 안드레아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억지로 머릿속에 우겨넣으며 애써 웃음 지었다. 유진의 품에 안겨 달려온 탓에 어느 곳에 와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나운 바람결에 온몸으로 거칠게 부딪쳐오는 풀들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밤하늘이 끝없이 펼쳐졌을 어느 들녘인 듯 했다.

 

 도망칠 기운은 애초에 없었고 살고자하는 의지 역시 그와 함께 사라졌다.

 

 

 

 

 

 "안드레아........안 돼...."

 

 

 

 

 아직도 그가 간절했던 것일까?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유진의 목소리가 실려 왔다.

 

 

 

 

 "제발... 두고 갈 순 없습니다.....제발....."

 

 

 

 

 "유진?"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땐 바람의 희롱일지라도 목소리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조금씩 기어나간다.

 

 손톱들이 모두 짓이겨져 힘을 줄 수가 없는 손이지만 안드레아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사락, 사락거리는 소리가 가까운 풀숲에서 들려왔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빠른 움직임소리가 들려왔고, 익숙한 유진의 음성이 섞여있었다. 말소리가 아닌 계속되는 타격 음들을 잇는 유진의 소리는 신음이었다. 유진이 당해내지 못할 무리라면 자신을 쫒아온 인간무리가 아닌 그의 그들이 분명하다.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실망을 하고 미워하며 떠난 것이 아니라 그의 그들로부터 날 지키기 위해 기척을 숨겼던 것일까? 더 빨리 그에게 닿고 싶지만 몸은 마음과 반대로 더욱 느려져만 가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팔꿈치로 흙바닥을 치고 앞으로 나아가던 안드레아가 단단한 무언가에 머리를 박고 중심을 잃어 엎어지고 말았다.

 

 

 

 

 "안돼!!"

 

 

 

 

 유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안드레아가 부딪친 무언가를 피해 나아갈 심산으로 손으로 짚어보다 사색이 되어버린다.

 

 안드레아의 손에 닿은 장애물은 고급가죽으로 만들어진 부츠였다.

 

 부츠를 더듬던 안드레아의 팔 위로 바람에 날리는 부드러운 재질의 망토가 스쳤다.

 

 

 

 

 사내는 발로 안드레아의 손을 쳐냈다. 부츠에 묻은 그녀의 핏자국이 꽤나 불쾌한지 얼굴을 찌푸리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달빛이 스며드는 듯 밝게 빛나는 검 날 끝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안드레아의 목으로 내리쳐지는 순간에 달려든 유진이 그의 검 날을 손으로 잡아 막았다.

 

 

 

 

 검으로부터 반사된 달빛이 유진의 얼굴을 비추자 절박한 그의 표정이 사내의 시야로 들어왔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아르투르님."

 

 

 

 

 유진은 목소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순식간에 자신에게 향한 사내의 살기를 막아선 유진의 몸에서 강한 떨림이 안드레아에게 전해지고 피비린내가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것이 아닌 유진에게서 나는 피냄새였다.

 

 보이진 않지만 이 정도의 피냄새라면 그는 분명 큰 부상을 입은 상태임이 틀림 없었다.

 

 

 

 

 "너 또한 죽어 마땅하니 네 차례를 기다려라, 유진... 저딴 천박한 마녀계집 때문에 뱀파이어의 명예를 실추시키다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도다."

 

 "안드레아는 죄가 없습니다. 단지 마녀로 태어났을 뿐입니다."

 

 "그 마녀란 계집들이 알량한 주술 따위로 인간들을 꼭두각시 삼아 감히 우리 뱀파이어들에게 전쟁을 선포했었단 걸 벌써 잊은 게냐? 지난날 어리석은 동정으로 몰살시키지 않은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비켜라."

 

 

 

 아르투르와 유진, 둘 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조금도 물러섬 없이 서로를 견제했지만 부상을 입은 유진이 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힘에서 밀려 검 날이 점점 머리와 가까워지자 단념이라도 하는 모양새로 유진이 두 손의 힘을 풀어버렸고, 빠르게 유진의 이마로 내리꽂히던 검 날을 급히 틀은 아르투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유진을 힘껏 발로 차버린다.

 

 검을 회수한 아르투르가 못마땅한 얼굴로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을 풀어 던졌다.

 

 

 

 

 온전하지도 못한 몸으로 끝까지 안드레아를 품에 안은 채 보호하려드는 유진을 보며 아르투르는 이성을 놓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빠르게 유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강제로 그녀를 떼어낸 채 아르투르가 그의 몸에 주먹을 마구 내리꽂기 시작한다.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안드레아만! 윽 살릴 수 있다면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쿨럭이며 피를 토하면서도 겁에 질린 채 벌벌 떨고만 있는 안드레아의 곁으로 다가가 자신으로부터 막아서는 유진을 보며 아르투르는 더욱 분노만 커져갔다.

 

 저깟 마녀계집이 뭐라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려하는 것인지 결국 이성의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리려 아르투르는 이를 갈며 다시 검집을 향해 몸을 틀었다.

 

 

 

 -아르투르님.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아르투르를 느낀 다니엘이 급히 그를 막아섰다. 흥분한 아르투르에게 고개를 저어보이지만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니엘을 밀쳐내며 아르투르가 달려 나가자 그의 수하들이 경로를 막아 유진과 안드레아를 보호했다.

 

 

 

 "무슨 짓들이냐."

 

 "목표는 마녀를 제거하는 것이지. 왕자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폐하."

 

 "당장 비켜라. 유진은 더 이상 왕자가 아니다. 그에게서 그 칭호를 박탈하겠다. 그리고 직접 그를 죽여 우리 종족과 왕권의 명예를 되살릴 것이다."

 

 

 

 

 검으로 자신을 막고 있는 수하를 강하게 밀쳐내고 아르투르가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분노로 가득한 아르투르의 두 눈에 비친 유진의 얼굴에 나약하고 한심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경멸과 배신감으로 불타오르는 아르투르의 검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빠르게 내려쳐지는 순간 다니엘이 유진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예리한 검 날이 다니엘의 가슴을 사선으로 그어 내리고 그의 무릎이 꺾이는 순간 아르투르의 손에서 무기력하게 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 세상에."

 

 

 

 

 아르투르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춘 아르투르가 다니엘과 눈을 마주치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다니엘은 고통스러움에 인상을 쓰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르투르님..."

 

 "어찌하여 막아섰느냐!"

 

 "유진님......윽....을 잃을....순... 없지않습니까..."

 

 

 

 

 숨이 점점 옅어지다 결국 의식을 잃으며 아르투르의 가슴팍으로 다니엘이 고꾸라져버렸다. 전투에서조차 작은 상처하나 입은 적 없던 그였기에 사지가 축 늘어져 의식을 잃고 마는 다니엘의 모습에 아르투르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수하에게 다니엘을 맡기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에 넋이 나간 얼굴로 그는 안드레아를 바라봤다. 그 작은 몸 곳곳에 말라붙은 마녀의 검은 핏자국이 그녀를 안고있는 유진과 닿아있었다.

 

 

 

 "지금 당장 저 둘을 떼어내라."

 

 

 

 

 여전히 안드레아를 지키려 애쓰는 유진을 내려다보며 아르투르는 무거운 숨을 뱉었다.

 

 

 

 "이 둘을 왕성으로 데려가 가두어라."

 

 

 

 모두가 왕성으로 떠난 뒤 아르투르는 자신의 부츠에 묻은 안드레아의 핏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제법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던지 부츠와 이 일대의 풀밭에 그녀의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마녀의 피는 늘 인간의 것과는 달리 고약하며 자극적이고 불길했다. 그들과의 전쟁에서 이겨 승리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피를 뿌려 얻은 승리는 인간들에게 저주를 내려 전염병과 가뭄이 들게 하였고. 무엇보다 냉정하며 이성적인 뱀파이어를 미치게 만들었었다.

 

 

 

 

 "또다시 마녀의 피로구나."

 

 

 

 

 아르투르의 시선이 멀어져가는 안드레아와 유진에게 닿아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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