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화
작성일 : 22-01-02 22:57     조회 : 329     추천 : 0     분량 : 544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화>

 

  열아홉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아무 생각없이 살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그 열아홉의 삼월. 새까만 감정들 대신 기대와 설렘으로 내 심장을 가득 채워준, 나는 그녀를 만났다.

  인삼, 산삼보다도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다는 대한민국의 고삼. 허나 그러기에 난 지극히 평범한,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존재였다. 성적은 반에서 13등. 다행히 중간 이상이었지만, 선생들 눈에 띄기엔 터무니없는 등수였다. 그렇다고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 대항 축구 시합을 할 때 11명 중 열 번째로 호명되는 정도의 운동 신경을 지녔으며 미술, 음악 수행에서도 100점 만점에 70점대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었다.

  외모? 당연히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키는 정확히 174.2센티미터. 우리나라 남성 키의 평균 언저리에 머문 이후 더는 자라지 않았다. ‘평범하다’라는 말을 사람으로 만들라는 어떤 과제물이 있다면 그냥 날 우두커니 세워두면 될 것이라고, 난 생각했었다.

 

  “야 백성! 오늘 끝나고 피방 고?”

  “고삼이 무슨 피방이냐. 독서실 갈 거야.”

  “미친. 우리가 공부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거든. 그냥 가자. 한 시간만, 콜?”

 

  나보다 외모가 살짝 더 떨어지고 키도 조금 더 작지만, 특유의 까불거림으로 그 평범함을 극복해낸 나의 절친 박정우. 내 이름을 불러주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그러고보니 난 이름도 지극히 평범했다. 백성현. 학교에선 다들 날 이름의 앞 두 글자만 따서 ‘백성’이라고 불렀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이름을 끝까지 다 부르지 않는 것은 유행 아닌 유행이었으니까. 그런데 난 그게 나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난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벼슬은커녕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 할 무지한 백성이었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시대이니까 고삼이라는 벼슬이라도 하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고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않았다. 적당히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하지만 고삼이라는 관직이 부여되자마자 나의 친권자이자 법정 보호자이신 두 분께선 상당한 요구를 해오셨다. 난 그 요구를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매우 합당하고 합리적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까.

 

  “꿈을 가져라.”

 

  미화해서 표현하자면 이렇다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스무 살이 되고도 용돈을 타서 쓸 것인가’와 같은 내용이었지만. 난 그들이 보기에 괜찮다고 여겨질 만한, 그들이 친척들이나 동네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의 신상을 자신있게 제공해줄 수 있을 만한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물론 이는 대한민국 고삼들의 숙명이었다. 다른 집안의 벼슬아치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주어진 날짜는 놀랍게도 단 일주일이었다. 개학과 동시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든 뭘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 대학을 설정해야만 한 달 용돈, 아니 녹봉 삼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개학 첫날 만난 담임은 절대 내 미래를 환한 길로 인도해주리라 생각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아예 대놓고 ‘상담 따윈 없다’라는 공표를 해버릴 정도로 날라리 교사였다. 자신은 어차피 몇 년 안에 정년이라 담임은 맡고 싶지 않았는데, 학교 교장이 억지로 시켰다며 욕만 잔뜩 늘어놨다.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라 죄다 ‘고인물’ 교사들만 가득했고, 그 대표격인 사람에게 내 고삼 시절을 맡길 수는 없었다.

  좌절의 일주일이 끝나갈 무렵, 금요일 5교시였다. 고삼이래 봤자 별수 없다. 의욕은 있으되, 체력이 없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밀려오는 식곤증과 싸워 이겨내는 위대한 승리자는 오직 나뿐이었다. 난 잠을 청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니까. 방과 후에 집에 가면 부모님과 최후의 담판을 벌여야했는데, 난 그때까지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잠이나 퍼질러 잘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났고 자연스레 나의 시선은 소리의 발원지로 향했다. 그리고 난 갑자기 내 시력이 사라진 줄 알았다. 명절 연휴에 아버지 차를 타고 시골에 갈 때, 강원도 양양인가 하는 곳 즈음에서 긴 터널을 지나자마자 햇빛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순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억은 당연히 나지 않지만, 어쩌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산부인과 수술실 천장의 형광등을 보았던 때와 비슷할 수도 있다. 그녀는 후광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광,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넌 왜 안 자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깨어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녀는 내게 답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모두를 깨우기 시작했다. 뻔한 방법이었다. 그녀는 출석부로 교탁을 두들겼다.

  아이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잠에서 깨어났다. 일주일 내내 고인물에 잔뜩 오염된 녀석들이었기에, 해양 심층수처럼 맑고 깨끗한 그녀와의 만남은 잠에서 깨어날 가치가 충분했다.

 

  “고삼들이 이래서 쓰나. 정신 좀 차리지.”

 

  의외의 까칠함이 내겐 톡 쏘는 사이다처럼 느껴졌다. 청량했달까. 그녀는 얼떨떨해하는 녀석들 덕분에 술술 다음 과정을 진행해나갔다.

 

  “내 이름은 ‘최단비’야. 가뭄에 단비라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 되라고 쌤 아버지가 지었대. 너희한테도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거야.”

 

  난 갑자기 메말랐던 심장이 축축히 젖어 들었음을 느꼈다. 이상하게 자꾸만 온 신경이 그녀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후로 그녀는 자신에 대한 몇몇 정보를 늘어놓았는데, 이제 막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된 스물다섯 살의 신규 교사라는 것,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전 문학 수업을 들어온다는 것, 그리고 밖에서 만나면 절대 아는 척 하지 말라는 것 따위의 말들이었다. 물론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매우 교과서적인, ‘첫사랑’이나 ‘남자친구’ 같은 단어들을 투척하기 시작했지만, 갓 부임한 사회 초년생치곤 매우 능수능란했던 그녀는 그 단어들은 모조리 무시한 채 진짜 교과서를 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달된 정보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아니,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던 경로의 종착지를 제대로 설정해주었달까.

 

  “아, 아직 반장선거 안 했지? 반장 뽑히면 수업하기 전에 미리 교무실 와서 이 스피커 좀 가져다 놔. 이게 생각보다 무겁거든. 난 생각보다 연약하고. 알겠지?”

 

  열아홉 인생에서 이토록 집중력이 강력하게 발휘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5교시 내내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만 재빨리 고개를 떨구었을 뿐,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애썼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가 교실을 떠난 이후에도 난 이 집중력을 유지하며 나름의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탄탄한 구성을 갖추었다.

 

  수업이 끝난 후 정우의 유혹을 뿌리친 채 곧장 집으로 향했다. 깨끗하게 몸을 씻고 단정한 상태로 앉아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다.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지극히 ‘꼰대’인 사람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커녕 21세기인 줄도 모르는 듯한 아버지의 정신세계를 접하고 나면 너무도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다, 가부장제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어서 어머니도 나도 절대 꼼짝하질 못했다. 이런 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 포부가 굉장히 성대한 것임을 구구절절 밝혀야 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강력한 의지가 발산되자마자 내 언어 및 사고 회로는 자신의 성능을 재빠르게 끌어올려 주었다. 난 내가 천재가 된 줄 알았다. 두어 시간 만에 모든 생각의 정리가 끝났고,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세워졌다. 꽤 흡족했다. 십구 년을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인데 말이다. 역시나 인간의 의지는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저녁 6시 13분. 역시나 칼 같으신 우리 아버지는 시간을 딱 맞춰 퇴근하셨다. 그리고 거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나를 보며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래, 고민은 해 봤냐? 뭘 하고 싶은데?”

  “아버지. 지난 일주일간 저는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도대체 제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지 스스로 고뇌하며 지내보았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와 어휘 사용에 아버지는 당황하셨다.

 

  “아, 아니 밥은 왜 안 먹고 그러냐. 그, 그래서?”

  “저는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방탕한 삶을 살았던 제가, 단 일주일 만에 제 인생을 좌우할 무언가를 정한다는 게 저는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뭐야, 그래서 아무것도 정한 게 없다는 말이야? 용돈 끊는다고 했지!”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목표를 우선 단기적으로 세워보고 이어서 중장기적인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단기적으로 세운 계획을 설명해 드릴까 하고요.”

  “뭐? 그래서, 뭐, 뭐가 되겠다는 건데?”

  “아버지. 저는 올해 저희 반 학급 반장이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버지는 얼른 감추고자 했으나, 난 분명 아버지의 옅은 미소를 보고야 말았다. 그 미소의 이름은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정신을 가다듬는 듯 하더니 아버지는 다시 말을 꺼내셨다.

 

  “그래서, 반장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 거냐? 그리고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 건데?”

  “반장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출발점 같은 겁니다. 일단 반장이 되기만 하면, 그 다음은 그때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반장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아버지, 저 삼십만 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버지의 주먹이 날아오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진짜 삼십만 원이 투척 되었다. 아버지도 한낱 인간이다 보니, 일단 눈앞에 있는 달달한 먹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어른들의 세계는 그랬다. 뭐니뭐니해도 자식 자랑이 최고다. 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땐 반장은 무조건 반 1등이 했을 테니까. 반장은 곧 일류대 합격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물론 나의 세계에서 반장이 갖는 의미는 조금 달랐다. 1등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게 분명했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삼심만 원이라는 필승 전략이 필요했던 것. 새로 출시된 버거 세트는 9000원. 30명에게 돌리면 이십칠만 원이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심지어 삼만 원이 남을 정도였으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반장만 되면, 그녀와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렘이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완벽한 계획을 위해 다시 한번 내 필승 전략을 점검하다가, 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경쟁자들에 대해 점검을 하지 못한 것! 아버지만 설득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한 내 착오였다. 급히 우리 반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되뇌었다. 학기 초라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기억에 없다는 건 반장감도 아닐 거란 의미였다. 축구만 잘하는 민기나 공부만 잘하는 지훈이는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너무도 강력한 상대의 얼굴이 뇌리에 꽂히고 말았고, 난 머리를 감싸 쥔 채 소리를 질러버렸다.

 

 “김준수!”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권 마지막화 2022 / 2 / 4 188 0 5115   
18 18화 2022 / 2 / 4 187 0 5767   
17 17화 2022 / 2 / 4 183 0 5917   
16 16화 2022 / 2 / 1 188 0 5842   
15 15화 2022 / 1 / 30 184 0 5220   
14 14화 2022 / 1 / 28 187 0 5452   
13 13화 2022 / 1 / 26 192 0 5744   
12 12화 2022 / 1 / 24 208 0 5550   
11 11화 2022 / 1 / 22 195 0 5769   
10 10화 2022 / 1 / 20 199 0 5405   
9 9화 2022 / 1 / 18 194 0 7198   
8 8화 2022 / 1 / 16 204 0 3737   
7 7화 2022 / 1 / 14 191 0 4544   
6 6화 2022 / 1 / 12 207 0 4719   
5 5화 2022 / 1 / 10 218 0 5045   
4 4화 2022 / 1 / 8 200 0 5431   
3 3화 2022 / 1 / 6 205 0 5518   
2 2화 2022 / 1 / 4 210 0 5740   
1 1화 2022 / 1 / 2 330 0 544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