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생명의 은인
한편, 지담의 집에 도착한 세윤은 수훈 어머니와 있었던 일과 절묘한 타이밍에 강현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경악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지담과 이 선생님이 만난다는 걸 수훈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세윤은 이제야 알았다.
“강 수훈 어떡하니...”
세윤은 수훈이가 정말로 걱정됐다.
“그러게...나중에 수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수훈이 어머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넌 그렇게 당했는데 그런 말이 나오니?”
“이제 수훈이도, 내가 이 강현씨 만난다는 거 아니까, 마음 정리하겠지... 그럼 수훈이 어머니도 더 이상 나 찾아오지 않을거고...”
지담은 ‘그래 이것으로 수훈과의 일은 끝난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너, 이 선생님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그 사람한테는 고맙게 생각해...”
“그래...너 이 선생님한테 진짜 잘해야겠다... 이제 생명의 은인이잖아”
“생명의 은인은 무슨....”
“얘가, 얘가...물에 빠진 거 건져 줬더니, 이제 살 만하다고 딴소리네”
“그런 게 아니고, 생명의 은인까지는...너무 거창하잖아...”
“얘가 또 모르는 소릴 하네... 과로로 죽는 사람도 있어!”
다소 높아진 언성에 지담은,
“알았어...근데 네가 왜 열을 내? 요즘 수상해...자꾸 그 남자랑 나랑 엮는 게...”
“수,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너네가 무슨 굴비냐? 엮게...”
“암튼, 내가 너 지켜 볼 거야 알았어? 그리고 나 아직 환자야~소리 내지마” 라고 말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아...맞다, 너 쉬어야되지? 얼른 누워...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세윤은 뜨끔해서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그냥 따뜻한 거 먹고 싶어”
“그럼 죽 먹자, 너 아직 몸 상태 별로니까...전복 죽 사올 테니까, 누워있어”
“응...고마워”
“고맙긴...그런 말 하지마, 섭섭하게”
세윤이 나가고 침대에 누운 지담은, 오늘 일을 생각했다.
반반한 얼굴이라고 듣는 순간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엄마가 평생 들었던 말....-
속으로 그 말을 삼킨 지담은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실컷 잤다고 생각했는데 또 눈이 감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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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일어나 보니 한밤중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윤은 없었다.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니 식탁 위에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너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간다. 죽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일어나면 데워서 먹어...전화도 하구...알았지?’
지담은 피식 웃었다.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내 친구...이 세윤...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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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지담은 거울을 본 순간, 거울 속에 있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며, 얼굴이며 어디 하나 예쁜 구석이 없었다.
급히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기분도 식욕도 되살아났다.
그러곤 어젯밤, 먹다 남은 죽을 다시 데워서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그때,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누구세요”
-세윤이 인가?- 지담은 세윤이라고 생각했다.
똑똑똑...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세윤이니?”
하고 문을 열었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세윤이밖에 없으니까...
문을 연 순간, 지담은 후회했다.
그녀 앞에 서있는 사람은 세윤이 아닌 이 강현...그 남자였으니까....
“여긴 어떻게?...아니 내가 201호 사는 건 어떻게 알았어?”
“여기 사는 건 알지만 몇 호인 건 몰라서 세윤씨에게 물어봤어”
-이,이익~~이세윤 고맙다는 거 취소, 미안하다는 거 취소-
마음속으로 괴성을 지르는 지담이었다.
증인이 된 이후로 세윤은 이 남자를 계속 도와주고 있었다.
도대체 왜...언제 한번 시간 내서 세윤이랑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휴~나 피곤하니까 그만 돌아가”
“당신 주려고 순대국밥 사 왔는데...그냥 갈까?”
“지금 이모 가게 문 닫혀 있을 텐데...”
“그럴 줄 알고 어제 이모님께 부탁 좀 했지...아무래도 따뜻한 국물이 나을 것 같아서”
“...........”
“이렇게 계속 밖에 세워 둘 거야? 국밥 식으면 맛없는데...”
“그럼 그것만 주고 가”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차 한잔도 안 주고 가라는 거야? 그것도 생명의 은인에게?”
“하~진짜....좋아 그럼 차 한잔 얼른 마시고 가!”
지담은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에 하는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들였다.
집안으로 들어 온 강현은, 그녀가 가리키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집은 한 번 쭈~욱 둘러보니 집 구경이 끝났다.
“집이 되게 아담하네”
“혼자 살기엔 적당해...이거 마시고 얼른 가”
지담은 빨리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믹스 커피를 대뜸 들이밀고는 딱딱하게 말했다.
“여기 들어온 지 1분도 안 지났어...뭐가 그리 급해?”
들어오자마자 가라는 말에 강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담은 아랑곳 하지않고 식탁에 있는 죽을 치웠다.
그리고 그가 사온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따뜻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았고,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먹다 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빈 그릇을 본 강현은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묻은 밥풀을 떼어 주려다 말고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의 입으로 날름 먹어버렸다.
깜짝 놀란 지담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강현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버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