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체구로 감당할 수 없는 힘에 떠밀린 아이는 의도하지 않은 빠른 걸음으로 차도를 벗어나 인도의 끄트머리에 넘어졌다. 아이의 무릎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인도에 있던 한 어른이 아이를 끌어안고 인도의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이는 동그란 눈에 눈물을 가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파서일지도 몰랐다. 엄마와 떨어지게 되어버려서 일지도 몰랐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 때문일지도 몰랐고, 걱정과 두려움으로 인해 그런 걸 지도 몰랐다. 아이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우는 아이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몇몇은 차도에 서 있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정우는 아이의 울음을 보며, 그 아이가 무사함에 사소하게 안도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위해 숨을 들이킬 때, 그의 귀에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다랗고 날카로운 소리에 묻혀 옅게 들려왔다.
그는 어렵지 않게 커다랗고 날카로운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자동자의 경적소리와 타이어의 마찰음이었다. 그는 내쉬려던 숨을 내쉬며 시선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리고자 했다. 시선이 다 돌아가지 않았지만, 차가 뿜어내는 소리와 빛이 한껏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에게 하나의 사실을 각인 시켰다.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뒤편에 있었다. 그 뒤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을 힘겹게 이끌며 걷고 있을 뿐이었다. 전동 휠체어에 탄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기 아빠다!”
여자가 앞을 보며 밝게 말했었다. 아이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차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마의 손을 놓고 차도를 향해 뛰어갔다.
‘그랬구나.’
정우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 순간에도 궁금한 게 생겼다.
‘아이는 도대체 뭘 보고 뛰어갔던 걸까?’
정우는 드디어 고개를 돌려냈다. 날카로운 소음과 밝은 빛을 뿜어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차와 마주하게 되었다.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향은 정우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겠지.’
당연했다. 마주 오는 차를 향해 뛰어들 수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인도로 향할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저 분도 피해자지. 느닷없는 상황의 피해자.’
운전자의 노력과 달리 차의 속력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이 부딪혔을 때 결코 무사할 수 없을만한 속도의 차가 정우의 몸에 닿았다.
감촉이라기보다 기운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감각이 정우의 온 몸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끝’이라는 단어를 강제하는 어떤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주마등이라 불리는 삶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만들어냈다.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행복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 씁쓸한 삶이었다. 보육원에서 18년, 홀로 독립해서 고작 1년을 살았던 삶이었다.
보육원에서 산다는 사실 하나로 학교에서는 따돌려지고, 고립되어버리기 일수였고, 보육원 내에서도 생존을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해야 했던 삶이었다.
독립해서 살았던 1년은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 생존이 절대적인 과제가 되어버렸다. 살기 위해서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다. 얼마되지 않는 월급을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며 살았던 삶. 혹시 모를 미래를 두려워하며 주말까지 돈을 구하기 위한 일로 헌납했던 삶이었다. 그저 가끔 즐기는 모바일 게임이 즐거움의 전부였던 그런 삶. 허무함과 허탈함이 그를 휘감았다.
‘나는 무얼 위해, 왜 이렇게 살아왔던 걸까? 난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걸까?’
그는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머리가 멈췄고, 하얀 빛이 그를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안녕?”
처음 듣는 목소리에 정우는 눈을 떴다. 천장과 벽면, 바닥까지 모두 하얀색인 공간. 얼마나 높은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하얀색 공간이었다. 그는 낯선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을 한참이나 두리번거렸다.
“안녕?”
낯선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정우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정우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15살 전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특이점이라면 매장의 직원처럼, 혹은 학생처럼 명찰을 달고 있다는 것과, 바닥과 떨어진 상태로 떠 있다는 것이었다.
정우는 이끌리듯 몸을 일으키고, 명찰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신10’.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름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거 좀 인사하면 좀 받아주지?”
신10은 얼굴에 짜증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 말에 정우는 움찔거리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좋아. 인사정도는 하고 살자고 우리. 내가 기껏 직접 여기까지 왔는데 푸대접 받는 건 좀 그렇잖아.”
정우는 속으로 물었다. ‘네가 뭔데?’ 라고.
“나? 봤잖아? 신. 무려 10등급 신이라고.”
정우는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머리에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나 죽었겠구나. 그럼...... 난 죽어서 지금 이 곳에서 신을 마주하고 있는 거야?’
“좋아. 그런 빠른 상황 판단. 아주 좋아. 칭찬해. 앞으로 내가 하는 이야기도 한 번에 알아먹어줘.”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전에 자신이 건방지게 인사를 받은 게 아닌가 하는 후회를 했다.
‘존댓말 할 걸.’
“괜찮아. 나 그 정도로 속 좁진 않아. 나 꽤 관대해. 암. 그렇지. 일단, 내가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까 질문은 있어도 일단, 꾹 참아. 내가 하라고 할 때 해. 알겠지?”
“네.”
정우는 짧고, 명확하게 답했다.
“좋아.”
신10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너에겐 세 가지의 선택권이 있어. 첫 번째. 니가 쌓아온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서 환생하는 것. 근데...... 선행 포인트는 죽는 그 순간에 아이를 구한 게 전부고...... 그나마 봐줄만한 게 극복 포인트인데...... 이건 그래도 꽤 쳐줄 수 있겠네.”
“극복 포인트요?”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 들어오는 날카로운 눈빛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왕 죽은 마당에 뭐가 무서울 까 싶다가도, 흔히 말하는 지옥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굳이 덤벼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이 그의 입과 행동을 제어했다.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을 잘 극복하고, 긍정적인 삶을 살 때 주어지는 포인트. 그건 좀 괜찮군.”
‘다음 생엔 재벌 3세로?’
“네가 그렇게 잘 살았던 것 같아?”
신10은 그렇게 말하고 피식 웃었다. 정우도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 정도 포인트면...... 중산층 가정에서 무난하게 살 순 있겠네. 가정불화도 별로 없고, 본인이 노력한다면 어지간한 목표는 이루고 살 수 있을 만큼 능력도, 재능도 있는 삶. 이쪽을 선택한다면 지금 나와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잊혀지고, 전생의 삶도 잊혀지게 될 거야.”
정우는 그것도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 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고,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만을,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쫓을 뿐인 의미 없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반응이 없네? 의외로 신중한데? 다른 선택지도 들어보겠다는 거지?”
“네.”
“두 번째 선택지는 환생을 위한 포인트를 더 쌓을 수 있게 ‘선한 사람’으로 사는 것. 이 경우에는 이번 삶에서 쌓아둔 포인트가 유지 돼. 전생에서의 기억도, 나와 나눈 대화도 기억하게 되고, ‘선한 사람’으로 살기 위한 특별한 능력도 가지게 되지. 물어볼까봐 미리 답하는데, 그 능력은 너라는 인물이 가진 특성에 따라 랜덤하게 결정돼. 그래서 해보기 전엔 몰라.”
‘뭔가 도박 같은데...... 능력이 애매하거나 이상하면...... 뭘 해볼 수도 없잖아.’
“그렇게 하찮은 능력이 생기진 않아. 다만, 꽤 좋은 능력인데 사용자가 ‘단순하거나 멍청해서’ 그 능력을 못 살리는 경우는 꽤 있지. 아무튼. 네가 이 선택지를 선택할 경우에는 넌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될 거야. 다른 차원이라는 건, 네가 있던 세상에서 말하는 ‘멀티 유니버스’를 생각하면 편할 거야. 같은 시간이지만 A라는 인물이 있는 세상도 있고, A라는 인물이 없는 세상도 있고, B라는 사건이 일어나는 세상도 있고, 일어나지 않는 세상도 있는. 뭔지 알지?”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에서도, TV에서 해줘서 멍하니 봤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본적이 있었다.
“그 차원들은 조금씩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어. 모든 차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1초라는 시간의 체감은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 그래서 같은 시간으로 시작했더라도 그 차이에 따라 어떤 차원은 여기보다 5분 빠르고, 어떤 곳은 10분, 50분, 하루, 혹은 그 이상 차이나는 경우도 있지.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차이는 조금씩 더 벌어질 테고. 차원은 수십억 개가 넘으니까. 그 차원들은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분화하고, 누군가의 결과에 따라 통폐합되기도 해. 통폐합 되는 곳의 영혼들은 신께 가니 걱정 말고.”
“제일 높은 신은 신1이에요?”
“그 분은 그냥 신. 그 아래 있는 신들에게 번호가 붙지. 2부터 60까지. 신 아래에는 천사가 있고. 그러니 신 중에서도 꽤 높은 나를 만난 너는 꽤 잘 살았다는 거겠지?”
“근데 왜 다른 차원으로 가는 거죠?”
“따라 올 다양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지. 네가 구해줬던 그 아이나 그 아이의 가족, 혹은 너를 알던 사람이 다시 너를 만나게 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주민등록상은 분명 다른 사람이지만 너와 너무나도 닮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면? 거기에 너도 그 사람들을 다시 보면 어떨 것 같은데? 뭐, 너는 인간관계가 넓지 않아서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같은 차원으로 간다는 건 분명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곤란하거든. 그래서 애초에 그 인물이 존재하지 않은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거지. 모두를 위해서.”
‘하긴...... 그게 당연하겠지. 마음이 더 쓰이는 사람들도 존재 할 테니. 그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려고 하겠지.’
“이 선택지에는 또 다른 제약도 있어. 나와 나눈 대화 내용을 발설해서는 안 돼. 물론, 세상에 이미 통용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건 괜찮아. 신이 존재한다.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에 복을 받는다. 뭐 그런 흔하고 흔한 이야기는 괜찮아. 하지만 그 외에 환생 포인트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걸 잘 쌓으면 다음 생이 편해진다던지, 환생 포인트를 쌓기 위해 ‘선한 사람’이 되기로 결정하면 뭔가의 능력이 생긴다던가 하는 그런 건 안 돼.”
“그렇군요.”
“세 번째 선택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