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오전 내내 객실부터 부대시설까지 직접 돌아다니며 운영상황을 체크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 정 팀장님 봤어? 어쩐 일이야? 스타일을 다 바꾸시고!”
“그지? 매번 깔끔하게 머리 넘기고 다니실 때도 멋있었는데 오늘 내리고 오시니까 완전 박보검 분위기 나지 않니?”
눈인사하고 지나가는 직원들의 얘기 소리에 초아의 귀가 쫑긋 솟았다.
스타일을 바꿨다고? 머리를 내려?
/은주/ “어이 강주임~ 어디 다녀와?”
/초아/ “응. 운영보고서 작성하느라 좀 둘러보고 오는 길. 넌 어디가?”
/은주/ “너희 팀장님 뵈러~ 같이 들어가자.”
자리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일에 몰두한 승혁을 흘긋 바라보고는 초아는 제자리로 가서 앉았다.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네.
어떡하지? 어색해 미칠 것 같아.
초아가 삼면이 막힌 파티션 안에 숨어 눈알을 굴리는 동안 은주는 승혁에게 다가갔다.
/은주/ “안녕하세요, 팀장님? 오우! 머리 내리셨네요? 무슨 심경에 변화라도??”
승혁은 화들짝 놀라며 컴퓨터 모니터를 꺼버렸다.
/승혁/ “네? 아 머리요? 전에 누가 멋있다고 하기에…. 하하. 이상합니까??”
/은주/ “누군지 아주, 보는 눈이 정확한데요? 멋있으세요! 왠지 가을 분위기도 물씬 나는 것이. 아 참, 여기 가을 프로모션 홍보자료 확정 시안입니다. 협조 결재 부탁드려용!”
/승혁/ “네, 수고 많았습니다.”
승혁은 결재하면서 어느새 자기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는 초아를 슬쩍 살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는 뒤통수만 보여 표정을 알 수 없음이 답답했다.
뭐라 해야 할지 어색해서 따로 연락도 못 해보고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출근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출근해도 얼굴을 볼 수가 없네.
좋아요. 오늘부터 1일♡
지난밤에 초아에게서 받은 문자 답장을 떠올린 승혁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와 씰룩대는 광대를 감출 수 없었다.
/은주/ “팀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왜 갑자기 실실 웃으시고…?”
/승혁/ “하하! 가을 프로모션 시안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게 되는 마음이 기대된다고나할까…. 그럼 오늘부터 가을 시즌 1일 차인가요? 하하하!”
결재를 마친 승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승혁/ “자자, 오늘부터 가을 시즌 1일입니다. 우리에겐 오늘이 아주 중요합니다! 1일이 없으면 2일도 3일도 100일도 없으니까요! 모두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을 프로모션 잘 해봅시다!”
사무실 안 직원들은 승혁의 이상한 화이팅에 눈이 동그래졌고, 홍당무가 된 초아의 동공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은주/ [야! 비상, 비상! 당장 휴게실로 와라!]
콧노래는 승혁이 부르고 있는데 왜 부끄러움은 그녀의 몫인지,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던 초아는 은주의 호출 메시지에 휴게실로 향했다.
/초아/ “왜? 무슨 일이야?”
/은주/ “너 빨리 말해! 정 팀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지?”
/초아/ “응?? 일은 무슨 일이야? 얘는, 참.”
/은주/ “바른대로 말 못 해? 아무 일도 없는데 팀장님이 막, 어? 이렇게 얼굴 벌게서 컴퓨터로 ‘오늘부터 1일, 연애 고수 되는 법, 첫 데이트 성공하는 법’ 이런 걸 잔뜩 검색한다고???
/초아/ “잉? 진짜? 그런 걸 검색하셨다는 말이야?”
/은주/ “내가 아까 매의 눈으로 다 캡쳐 해 뒀지! 그래도 아니야?”
/초아/ “아니, 아니 그게….”
/은주/ “맞지? 오늘부터 1일의 주인공 바로 너! 내 촉이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그나저나 뭘 보신 거야, 대체?”
은주는 황급히 스마트폰의 초록 창 검색을 통해 승혁이 보고 있던 싸이트를 찾아냈다.
/은주/ “찾았다! 여기 이거였어, 연애고수의 첫 데이트 성공전략! 보자, 보자…. 캭! 너 곧 호텔가겠는데?”
/초아/ “응? 뭐라고??? 호텔? 나도 같이 좀 보자!”
<연애 고수의 첫 데이트 성공 전략>
하나, 첫 데이트는 분위기 좋은 호텔 라운지 고급 커피숍이 적당.
둘, 차를 마시면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며 호감을 잔뜩 흘린 후 자연스럽게 레스토랑으로 이동! 고급스럽고 맛있는 식사로 혼을 쏙 뺀다!
셋, 첫 데이트가 첫 만남의 자리라면 오늘은 두 번째 단계에서 만족하자.
하지만 오래알던 썸녀가 연인이 된 경우라면 관계변화를 위한 3단계는 필수!
스위트룸으로 이동해서 기억에 남을 달콤한 밤을 보낸다!
/은주/ “썸녀가 연인이 된 경우..? 넌 3단계바로당첨인데? 스위트루움???”
헉 !
/초아/ “말도 안 돼! 무슨!”
그때 승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깜짝 놀라 핸드폰을 바라보고만 있자 은주가 초아의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은주/ “팀장님 전화잖아! 얼른 받아봐.”
/초아/ “흠흠. 네, 팀장님.”
/승혁/ “어딥니까? 급히 나랑 부산에 다녀와야겠는데.”
/초아/ “네? 부산이요? 부산이라면 혹시?”
/승혁/ “라엘호텔 입니다. 오전에 업무마무리하고 두 시쯤 출발합시다. 지장 있습니까?”
/초아/ “아,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승혁/ “그럼 이따 주차장에서 보는 걸로.”
뚝.
/은주/ “대박! 정 팀장님 완전 직진남이네! 역시 추진력하나는 알아줘야 된다니까!! 근데 원래 팀장님이 연애하실 때도 이렇게 .. 음... 한결같이, 업무 지시하듯 말씀하시니?”
/초아/ “아니야! 설마... 사실 나도 잘 모르지. 이제 겨우 3일째인데다가 사귀기로하고 오늘 처음 보는 건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초아는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초아/ “진짜 호텔이라고??? 말도 안 돼...”
/은주/ “너 근데 오늘 속옷 뭐 입었어? 유치뽕짝짝짝이 입은 건 아니겠지, 설마?”
/초아/ “응??? 속옷? 설마, 설마, 설마, 진짜 그까지 생각하시는 걸까?? 오늘 겨우3일인데??”
/은주/ “이 언니가 널 어떻게 가르쳤니? 일단 남녀 간에 썸이 시작되면 속옷부터 경건한마음으로 갖춰 입고 다니는 게 연애의 기본이라니까! 그래야 항상 더 긴장하고 더 설레는 법이라고! 게다가 상대가 업무추진력이라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승혁인데 말 다한 거지!
이제나저제나 ‘언제 한번 안아주나..’ 하고 목 빼고 기다리게 하던 이정훈이랑 비교가 되겠니? 쯧쯧, 넌 아직 멀었어. 그래서야 어떻게 정 팀장님을 감당할래? 당장 점심시간에 나가서 속옷부터 갈아입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