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연이 사망 사건에 대해 알아볼수록 허점투성이인 수사보고서에 혀를 찼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사망 사건마다 포에버뷰티가 연관되어 있었는데,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을뿐더러 경찰 조사도 엉망이었다.
‘삼일 대학교 피아노과 문은영 추락사, 연예인 박태욱 사망, 심장 마비로 사망한 기화영은 모두 포에버뷰티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은영과 태욱은 포에버뷰티 VIP였고, 기화영은 직원이었다. 사망의 원인은 모두 달랐지만 포에버뷰티는 그들 사이의 중요한 단서였는데, 경찰은 의도적으로 그 단서를 배제하고 형식적인 수사만 하는 것이 확실했다. 이런 것들을 기사로 올리려고 할 때마다 선배가 커트했고, 윗선에서는 대놓고 취재를 막았다.
‘너 목숨이 두 개야?’
자신을 윽박지르던 기원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도대체 포뷰에서 뭘 숨기고 있길래.”
승연은 인터넷을 검색해 루시 P의 자산 규모를 살펴봤다. 그녀의 생각보단 적은 액수였다. 화장품 매출만 생각한다면 얼추 맞는 정도였지만, 이 정도로는 이렇게까지 언론 통제나 수사 방향을 흐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 정도로는 말이 안 돼. 뭔가 더 있을 거야. 어둠의 경로가 있는 것이 분명해. 이건 공식적인 재산일 것이고, 밝혀지지 않은 액수는 천문학적이겠지.’
화장품 사업 외에 다른 자금 공급원이 있는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승연은 인터넷과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루시 P가 기자와 인터뷰한 동영상을 본 승연이 말했다.
“기부? 냄새가 나는데.”
*
은영은 피아노 전공으로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노력파지만 실력은 평범했다. 그러나 혜수는 외모도 나쁘지 않고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 딱히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진 않아도 연습을 개미처럼 열심히 하는 은영보다 늘 앞섰다. 그리고 혜수는 은근히 그런 은영을 무시했다.
“혜수야. 오늘은 이 부분 좀 봐줄 수 있어?”
“내일 봐줄게. 오늘은 남친 만나야 해서 시간이 안 돼.”
“너 지난주에도 계속 미루다가 오늘 봐준다고.”
“오늘 나 바쁘다고 한 말 못 들었어?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언제든 봐주면 감지덕지하지.”
“나 계속 기다렸어.”
“그러니까 좀 잘하지 그랬어. 그걸 못 쳐서 맨날 교수님한테 혼나냐?”
대놓고 은영을 무시하는 혜수를 보며 친구들도 은영을 무시한 채 혜수에게 말했다.
“와. 오늘도 혜수 남친이 데리러 왔네. 차 좀 봐. 눈이 부시다. 얼굴도 개 잘생김.”
여학생들이 혜수를 부러워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어디가?”
“오늘 만난 지 백일이라 호텔에서 저녁 먹고 해피타임 갖기로 했지.”
은영은 알바를 하며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다. 혜수의 그 말이 점심값을 아끼려고 빵으로 때우는 은영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럼 나 가볼게.”
혜수의 멋진 남친이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배우보다 더 잘생긴 남친의 외모에 친구들은 그저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혜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무슨 복이냐. 부럽다.”
“연주도 잘하니까 교수님들도 이뻐하잖아. 난 맨날 혼나는데.”
“이번에 콩쿨도 혜수는 입상하겠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야. 너 아직도 안 갔어? 가서 연습이나 해.”
은영은 울적한 기분으로 연습실로 걸어왔다. 연습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위에 놓인 거울을 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하기만 해도 좋을 텐데 은영의 피부는 엉망이었다. 모공, 요철, 기름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실력이 없으면 얼굴이라도 좀 예쁘던가. 도대체 난 이게 뭐야.”
인터넷 쇼핑에서 산 저렴한 셔츠와 청바지 윤기 없는 머릿결, 엉망인 피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기 힘든 자신의 삶인 것 같아 은영은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와 세수하고 토너를 바르려던 은영은 양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은영은 이참에 아무래도 화장품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웹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에 뜬 문구가 은영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
화장품 광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카피였지만 검정 배경에 붉은 글씨의 강렬함 때문인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포에버뷰티? 처음 들어보는데?’
플래시 광고가 끝나고 은영은 후기를 찾아보았다. 후기는 칭찬 일색이었다. 돈을 받고 하는 광고인가 확인했지만 아니었다. 사용 전과 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오프라인 구매만 가능했고 가격대는 상당히 고가였다. 잠시 낙담했던 은영은 조금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샘플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찾았다.
“무슨 샘플도 이렇게 비싸?”
하지만 은영은 이런 피부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통장에 남아있는 금액을 인터넷 뱅킹으로 확인한 다음 샘플을 구매했다.
‘잘한 건가? 피부만 좋아진다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겠어.’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은영은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가보니 작고 예쁜 박스에 샘플이 담겨 있었다. 은영은 그날 밤 세수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사용 전후가 얼마나 다른지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었다. 사진을 찍은 다음 샘플을 꺼내어 얼굴에 듬뿍 바르고 잠을 청했다.
“헐. 이게 무슨 일이야?”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본 은영은 놀라고 말았다. 얼굴 표면이 매끈해져 있었다. 얼룩덜룩했던 톤은 뽀얗게 톤업 되어 있고, 피부 요철과 모공 역시도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은영은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피부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보정 어플 없이 셀카를 찍었는데도 거의 완벽한 피부였다. 남은 샘플을 다 쓰기도 전에 은영은 완벽한 피부를 갖게 되었다.
*
학과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달라진 은영을 보고 놀라워했다. 시간이 갈수록 은영의 모습은 아름다워졌다.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비슷했지만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항상 은영을 무시하던 혜수도 갑자기 달라진 은영의 외모와 피아노 연주 실력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요즘 문은영 실력 많이 늘었더라.”
“교수님들도 레슨하고 나와서 놀라시더라고.”
“얼굴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 딱히 성형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너무 예뻐짐.”
“알바비 다 때려 부어서 피부 관리 좀 받았나 보지.”
뾰족한 혜수의 말에 친구가 답했다.
“쟤 형편 어려워서 안 될 텐데. 그러니까 더 궁금하네.”
“물어보려니까 존심 상하고.”
“그러니까.”
친구들은 웃고 떠들었지만, 혜수는 웃을 수 없었다. 최근 혜수는 여기저기 다치거나 몸이 아팠다. 점점 체력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하는 것도 힘이 들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고혜수. 너 요즘 연습 안 하니? 왜 이래?”
“교수님.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너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기고만장한가 본데 정신 차려. 다른 애들은 눈에 불을 켜고 연습하고 있어. 네 재능만 믿다간 큰코다쳐. 나가봐.”
몸이 안 좋다고 말하는 것도 핑계라고 생각한 교수가 냉정하게 혜수에게 말했다.
‘진짜 아파서 그런 건데 너무하시네.’
하지만 병원에 가도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냥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살도 찌고 피부도 푸석하고 머릿결도 윤기가 사라졌다. 남자 친구와도 요즘 뜸해서 혜수는 불안했지만 그래도 잘 먹고 쉬면 괜찮아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지냈다. 하지만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곳에서 실수한 혜수는 콩쿨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혜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도 칠 수 있을 만큼 연습했던 곡이었다. 냉랭했던 교수는 은영이 나오자 반색을 하며 말했다.
“어머. 은영아. 너 왜 이렇게 예뻐졌니? 피아노는 또 언제 그렇게 연습한 거야?”
“교수님. 은영이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요.”
은영은 속으로 같잖다고 생각하며 갑자기 자신에게 친한 척하는 혜수의 친구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비굴하게 서 있는 혜수를 보며 우월감을 느꼈다.
‘고혜수 꼴 좋다. 교수들이고 이것들이고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진짜 어이없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외모와 실력이 곧 권력이 된다는 것을 은영은 실감하는 중이었다. 혜수는 교수와 친구들의 태도에 적잖이 충격을 받고 비참함에 눈물을 삼켰지만 아무도 자신을 위로해주지 않았다.
*
혜수가 아파서 학교에 못 나가고 콩쿨 결과를 보기 위해 휴대폰으로 학교 사이트에 들어갔다.
“말도 안 돼.”
혜수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나야 혜수. 물어볼 게 있어서.”
- 문은영 콩쿨 동상 받은 거?
“문은영이 콩쿨 동상 받았다는게 말이 돼? 한 번도 예선 통과해 본 적도 없는 애가?”
- 근데 문은영 진짜 쇼팽에 빙의된 것처럼 잘 치더라고. 그 곡 네가 참 잘 쳤었는데.
친구가 혜수의 염장을 질렀다.
“심지어 쇼팽의 추격을 쳤다고?”
은영의 입상 소식에 혜수는 아픈 것도 힘든데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아주 잘 쳤어. 교수님들도 동상 아쉽다고 할 만큼. 할 말 끝났지? 바빠서 끊을게.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능력을 빼앗아 온 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요란하게 문자 도착을 알리는 멜로디가 들렸다. 남친인 현호였다.
[헤어지자]
혜수가 기가 막혀 바로 전화했지만, 현호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메신저로 연락했지만 1이 없어지지 않았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학교에 온 혜수는 은영부터 찾아갔다.
“문은영. 나 좀 봐.”
“나 지금 바쁜데?”
“뭐? 니 까짓 게 뭐가 바빠?”
“다음 주에나 시간 날까 모르겠다?”
은영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은영아. 뭐해? 축하주 마시러 가야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혜수 옆에 있던 친구들이었다.
“어? 혜수 왔네. 너도 갈래?”
약 올리듯 묻는 친구의 말에 혜수는 모멸감을 느끼며 과거에 자신이 은영에게 했던 행동들이 스쳐 갔다.
“얘기는 나중에 하자.”
갑자기 차가 그들 앞에 섰다. 차에서는 익숙한 남자가 내렸다. 현호였다. 현호는 혜수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은영에게 가서 가볍게 포옹하며 말했다.
“오늘 어디 가고 싶어?”
혜수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현호 너 뭐야?”
“뭐긴 내 남자 친구지. 너 무례하게 뭐 하는 짓이야?”
혜수는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배현호. 아니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며 혜수가 간절하게 물었다.
“맞는데 은영이 남자 친구. 인제 그만 가도 될까?”
은영과 현호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차에 타고 혜수 앞을 가로질러 교문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