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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검은 바다의 광시곡 (Dark Ocean’s Rhapsody)
작가 : 김솽
작품등록일 : 2016.9.1

일체의 공기도 허락치 않는 진공의 바다, 불과 수백년 전만 하더라도 일체 사람의 손길을 허락치 않던 이 칠흑의 원시 바다는 어느 샌가 사람들의 손에 더럽혀진 채 각종 마기(魔器)의 잔해들로 이루어진 데브리들이 강을 이루어 씁쓸한 냉소를 흘리고 있었다.

세상을 뒤덮듯 혼재한 프로파간다 속에 이제는 그 누구도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것인지 단언해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저 자신이 믿는 정의가 옳은 것이라 스스로 자위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걸어온 길을 계속해서 나아갈 뿐이다.

 
Chapter 1. 트라우마 (Trauma) - (6)
작성일 : 16-09-09 17:31     조회 : 482     추천 : 0     분량 : 1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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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어림 잡아도 수 시간은 되는 듯 했다. 시우는 가온누리와 그 주변을 타고 흐르는 마소의 흐름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한 채 어둠 속에 가온누리의 그 검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오직 몇 시간 째 대치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DAVID와 I.U.G 양 진영의 마기들 만이 요란한 빛을 뿜으며 그 마기를 사방에 뿌려댔다.

  공기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따라서 그 소리 역시 전해질 리 없었다. 오로지 콕핏 내부를 끊임 없이 돌고 있는 마소의 흐름 만이 시원한 바람소리처럼 시우의 귓가에 전해져 올 뿐이었다. 그런 고요함에 뒤덮인 칠흑의 우주는 그 위로 수놓아진 수많은 별들을 빛내며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양쪽에서 대치하며 점멸하고 있는 마기의 빛마저도 그 장대한 아름다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수십 수백 세대의 일생을 모두 걸고 횡단해도 다 건널 수 없을 만큼 광활한 우주의 한 가운데에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부유하던 시우는 그 자신이 보잘것없는 한 점의 티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세상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광경에 어쩌면 정말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해도 크게 상관없을 지 모르겠단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거대한 시간의 일부가 된 것처럼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기다림을 이어가던 한 순간, 불현듯 I.U.G 측의 마기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DAVID 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돌발행동에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중, DAVID 진영의 한 마기로부터 한줄기 빛이 길게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DAVID를 향해 돌진하던 마기는 새하얀 마소 입자를 칠흑의 우주 공간에 퍼트리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곧이어 이어진 양측의 충돌의 시발점이 되었다.

 

  "…시작되었군."

 

  시우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 외부와 단절시켰던 마소의 흐름을 연결시켜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이 공역에서 충돌하는 모든 마기들의 흐름이 모두 손에 잡힐 듯이 느껴져 왔다. 눈 앞에 펼쳐진 전투의 현장에선, 지면 곳곳에 떨어져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빗방울들처럼 곳곳에서 새하얀 마소 덩어리들이 번쩍이며 충돌하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 가볼까."

 

  시우는 그대로 마소의 흐름을 움직여 가온누리의 자세를 바로 잡고는, 마침내 억눌러 놓았던 가온누리 내부의 마소 입자들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잠식해 태워버릴 것만 같은 격렬한 불꽃이 가온누리 주변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검은 갑주 위로 신화에 나올 것만 같은 지옥의 불꽃을 두른 '스펙터'는, 그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빠른 속도로 양 진영이 충돌한 공역을 향해 돌진해나갔다.

 

  "마소 탐지 레이더로부터 미확인 비행체의 접근을 확인! 스펙터(Specter)입니다!"

 

  DAVID와 I.U.G 양측의 오퍼레이터들이 이제는 익숙해진 불청객의 난입을 확인하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이는 스펙터의 존재는 매 순간 그들의 업무를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가중시켜왔고, 이제 그들은 스펙터 전담 분석관을 둘 정도로 그의 존재에 대해 크게 신경 쓰고 있었다.

  복잡한 전황 속에서 그 중 일부가 스펙터의 접근에 대비해 전역을 정돈하는 사이, 마소 입자를 응축해 만들어낸 거대한 불꽃의 낫이 스펙터의 양손에 쥐어졌다.

 

  "지금 스펙터 전담 특무대가 오고 있다! 전 군은 스펙터의 존재에 대응하지 말고 적군에 대한 작전 행동을 계속해라!"

  "지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그냥 가만히 앉아서 저 낫에 썰리길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 병력의 스펙터에 대한 대응을 막은 것은 I.U.G 측이었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그건 그저 말 그대로 미친 소리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작전의 효용성에 있어 그게 옳은 선택일 지는 모르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 다가오는 망령의 위압감과 거기서 오는 공포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분노와 공포에 질린 통신들이 오갈 동안, 어느덧 망령은 그들 진영 한 구석의 마기 등 뒤를 잡은 채 그 불꽃의 낫을 하늘 높이 쳐들고 있었다.

 

  "우선 한 녀석."

 

  시우는 무심하게 하늘로 쳐든 낫을 가로 휘두르며 절묘하게 콕핏과 동력부를 피해 마기의 허리를 배어버렸고, 다음 순간 두 동강이 난 마기의 파일럿은 역류하는 마소의 흐름에 휘말려 정말로 자신의 허리를 배인 듯한 고통에 울부짖어야 했다.

 

  "크윽…!"

 

  곧바로 역류하는 마소의 흐름에 괴로워하는 파일럿의 고통이 시우에게도 전해져 왔다. 하지만 아직 시우의 동조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이 정도는 견딜만했다. 시우는 좀 더 기어를 올려 보다 신속하게 사방의 마기들을 하나 둘씩 무력화 시켜나갔다.

 

  "으아아악…!"

  "이런…! 개 자식…!!"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급격하게, 스펙터는 S자의 곡선을 그리며 사방을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그가 지나간 뒤로 길게 남은 불꽃의 흔적이 그 복잡하고 빠른 움직임을 그나마 눈으로 쫓을 수 있게 했다. 사방에서 새하얀 마기가 터져 나가며 그 흐름이 파일럿에게 역류했다. 공포에 질린 파일럿의 고통의 정도에 비례하듯 스펙터의 광기 어린 불꽃도 보다 격렬하게 타오르는 듯 했다.

 

  "젠장…! 그 특무대인지 뭔지는 아직입니까?!"

  "도… 도와줘! 누가 나 좀 살려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파일럿들의 감정이 폭풍우처럼 시우의 감정 속에 휘몰아쳐 왔다. 구토가 날 것만 같은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시우는 묵묵히 그 행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가던 중, 시우는 뭔가 강한 마소의 흐름이 빠르게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망령 자식, 거기까지다!!"

 

  그것은 우주의 '아테나'였다. 황금 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걸친 이 전쟁의 여신은 양손으로 든 창을 정확히 스펙터에게 겨둔 채 빠른 속도로 그에게 접근해갔다.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는 것은 스펙터의 반응 속도로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처음 만났네, 스펙터! 잘 부탁해!"

 

  아테나의 창을 우측으로 빗겨 피한 스펙터의 위로 이번엔 푸른 빛의 사파이어와 같은 광택의 갑주를 걸친 민아의 '미리내'가 양손에 얼음의 검을 든 채 덮쳐왔다.

 

  "…이건 피할 수 없겠는데."

 

  스펙터는 그대로 양 손에 든 낫을 고쳐 잡곤 접근해 오는 속도를 더해 강하게 덮쳐오는 미리내의 쌍검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강하게 충돌한 두 마기의 콕핏으로 정신을 날려버릴 듯한 강한 충격과 함께 그 충돌의 굉음이 울려왔다. 스펙터의 불꽃과 미리내의 얼음이 마주치자 일순 새까만 연기가 피어 오르며 불꽃을 잠식해가는 듯 했으나, 미리내의 얼음은 흉포하게 타오르는 스펙터의 불꽃을 끄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펙터가 힘의 대치 상태를 유지하다 그 공격을 한쪽으로 흘려 내고선 다시 반격하려던 순간, 이번엔 멀리서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한 가늘고 날카로운 회오리 바람이 덮쳐왔다. 스펙터는 자세를 거두며 그대로 빠르게 이동해 그 공격을 피하곤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황금빛 안광을 흘겼다.

 

  "크…! 재빠른 놈일세.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망령이구만? 듣던 것보다 훨씬 무섭게 생겼는데?"

  "뭐예요, 아저씨! 설마 겁먹은 거예요?"

 

  그것은 바람의 창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의 창을 던진 것은 갑주를 은백색으로 도색한 찰튼의 아테나였다. 찰튼은 잔뜩 과장된 어조로 민아의 놀림에 답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마기를 잡으러 가는 줄 알았지, 저런 악마를 사냥하러 간다곤 들은 적이 없거든?"

 

  과장된 어조로 여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사실 그 마음 속으로는 이미 스펙터의 강함에 압도되어 있었다. 실제 한 공역 안에서 마주한 스펙터의 위압감은 말로만 듣던, 그것도 잔뜩 부풀려진 거라 무시했던 소문 그 이상이었다.

 

  "…연금 받을 날이 앞당겨진 걸까."

 

  찰튼 자신도 모르게 꿀꺽하고 침이 넘어갔다.

  시우는 갑자기 난입한 3대의 마기를 번갈아 돌아보다 그 안에서 민아의 미리내를 발견하곤, 곧 그들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저게 바로 클레릭스인가."

 

 

 = Dark Ocean’s Rhapsody =

 

 

  두 대의 아테나와 미리내. 나머지 둘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리내에 타고 있는 것이 누군지 만은 이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팬텀 시절부터 저 푸른 사파이어 빛으로 도색 된 날렵한 갑주는 민아의 전용기 '미리내'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었다. 저 양 손에 들고 있는 얼음 칼날의 쌍검이 거기에 확신에 가까운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정보상의 예고대로 클레릭스가 등장한 것이다.

  정보상이 얘기한 것처럼 그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 스펙터 하나 뿐인 듯 했다. 조금 조잡하긴 했지만 방금 3대의 연계 공격은 분명 스펙터 한 대 만을 노리고 짜여진 전술 행동이었다. 일단 충분한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수준까지 훈련을 거치진 못한 듯 했다. 어쩌면 아직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명호가 저 뒤에서 상황을 관망하며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제부터의 상황이 지금까지처럼 순조로울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 정말 쉽지 않겠는데."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당하게 될 것이다. 시우는 무심결에 목에 걸려있는 헤드셋에 잠시 손을 가져갔다.

 

  "약속 했는데… 제대로 살아 돌아가려면 지킬 수가 없겠네."

 

  늘 그렇죠, 뭐.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게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한 유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시우는 피식 웃으며 크게 한번 숨을 고르고는 좀 더 정신을 집중해 마소와의 동조율을 높여갔다. 좀 전까지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느껴지던 적들의 의식이 보다 구체성을 띄며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미리내에 탄 민아의 익숙한 목소리 마저 직접 귀에 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늘 그렇듯 양날의 검이었다.

 

  "…우웁!"

 

  지금 이 공역에서 스펙터에게 당해 마소의 역류에 휩쓸린 채 공포와 분노에 젖어있는 파일럿들의 감정과 그 외침이 거부할 수 없는 거친 폭풍우와도 같은 기세로 시우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죽어!! 그냥 좀 사라지라고 이 개 자식아!!'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살려줘…! 살려줘!! 누가 제발 나 좀 살려줘!!'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고!!!'

 

  차츰 호흡이 가빠지며 이마에 식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시우는 한두 차례 다시금 숨을 깊게 몰아 쉬고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 괜찮다.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명호와 정보상에게 차례로 이야기를 들은 뒤 시우는 클레릭스와 실제로 대면한 상황을 몇 번이고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하지만 몇 번을 되풀이해도 도저히 민아와 명호를 밸 수가 없었다.

  클레릭스는 오로지 스펙터를 쫓기 위한 군으로부터 독립된 특무부대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실상 지금 이 전장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라 봐도 무방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전투 불능이 되더라도 이들은 지금 이 전황에 영향을 미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 뿐이었다.

  고민 끝에 시우가 낸 답은 하나였다. 배지 않으면 된다. 불합리한 행동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재빨리 공역 내의 교전 병력들을 모두 무력화시키고 이곳을 빠져나가자. 그렇게 판단한 시우는 다시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최적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 Dark Ocean’s Rhapsody =

 

 

  "이 녀석, 괜찮은 거야? 다가갈 틈이 보이질 않는데."

 

  찰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주, 너. 그런 식으로 달려들었다 뒤를 잡히면 위험해지는 건 너 뿐이 아니야. 좀 더 냉정하게 움직여."

  "…알겠습니다. 신경 쓰겠습니다."

 

  스펙터를 발견한 순간 우주는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박멸해 마땅한 적들의 진압을 방해하는 스펙터 역시 그들과 같은 증오스러운 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명령 체계를 무시할 순 없었다. 민아의 지적에 우주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첫 번째 연계 치고는 괜찮았어. 지금 한 것처럼 종으로 횡으로 스펙터의 움직임의 세 축을 차단하는 식으로 공격을 계속해보자."

 

  두억시니에 몸을 맡긴 채 저 멀리서 전황을 관찰하며 지시를 내리던 명호가 무전을 통해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자료를 통해 읽은 것 이상으로 스펙터의 움직임은 기민하고 변화무쌍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보다 세부적인 조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지? 우리의 목표는 스펙터의 제거가 아니야. 어떻게든 스펙터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서 생포해야 해."

  "말은 쉽지, 대장. 그런 거 신경 쓰다가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찰튼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호 역시 그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명호는 곤란한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힘들다는 건 알고 있어. 일단 무리한 기동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조금씩 움직임을 맞춰 나가보자. 우주도 민아의 얘기 새겨 듣고."

  "네, 알겠습니다."

  "응, 알았어. 오빠."

  "자, 그럼 다시 한번 가볼까?"

 

  그렇게 네 사람이 다시 한번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는 사이, 그들보다 먼저 스펙터가 움직였다.

 

  "응? 저 녀석 어딜 가는 거야?"

 

  움직임에 놀라 공격에 대비하던 민아는 스펙터가 자신들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스펙터는 예상과는 달리 조금 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금 사방에 불꽃을 흩뿌리며 공역 상에서 교전 중인 DAVID와 I.U.G의 마기들을 하나 둘씩 베어가고 있었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세 사람은 일단 스펙터를 뒤를 쫓았다.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냐?! 건방진 놈!!"

 

  들고 있던 낫을 내려 놓고 DAVID 측 마기의 양팔을 붙들어 뽑던 스펙터를 향해 다시 한번 우주의 아테나가 긴 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테나의 창 날이 스펙터에게 다가갈 즈음, 스펙터는 이미 뽑아낸 두 팔을 내던지며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대장!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찰튼의 질문에 명호는 입술을 잘근 물었다.

 

  "뒤를 쫓아서 공격하기보다는 놈이 공격한 뒤 다음 타겟으로 이동하는 길목을 노리자. 도피 예상 경로를 두 방향으로 추려내서 나머지 둘은 다음의 다음을 차단하도록."

  "알겠어, 오빠!"

  "너, 자꾸 오빠라고…! 아니다, 나중에 얘기하자."

  "하하, 유쾌하구만!"

 

  찰튼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머지 세 사람의 귀에 무전을 통해 전해져 왔다. 민아는 먼저 나아가 스펙터가 노리고 있는 적 너머까지 전진하곤 거기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스펙터는 어느 샌가 다시 든 불꽃의 낫으로 적 마기의 목을 쳐낸 뒤 신속하게 다음 위치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미리내가 있었다.

 

  "이렇게 공격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볼까?!"

 

  미리내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스펙터의 낫과 충돌했다. 스펙터는 뒤이어 휘둘러 오는 다른 한쪽의 검을 이미 한 차례 공격을 흘려내 반대로 솟아 오른 낫의 손잡이 부분으로 쳐내곤, 그대로 밀어내듯 미리내에게 머리를 들이 받았다.

 

  "아얏! 개싸움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민아가 잔뜩 불만 섞인 목소리로 따지려 들 찰나, 스펙터는 이미 다시금 가속해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우주의 아테나가 그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나 먹어라, 이 망령 자식!!"

 

  다시 한번 아테나의 창이 종으로 그어져 내려왔다. 미리내의 움직임에 정신이 팔려 그로부터의 회피 기동 후 다음 공격까지 대비할 시간은 아직 없었다. 그대로 횡이동하여 우측으로 피해보려 했으나 그러기엔 이미 조금 늦어있었다. 다음 순간 스펙터의 왼손은 아테나의 창에 그대로 배여 우주 공간을 홀로 떠돌고 있었다.

 

  "오, 이거 먹히는데?!"

 

  그렇게 뒤늦게 따라오던 찰튼이 가세하려던 찰나, 스펙터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듯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낫을 오른손으로 고쳐 쥐곤 우주의 아테나의 왼팔을 그대로 배어냈다.

 

  "큭! 이 자식…!"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기는 역류하지 않았다. 때문에 고통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목 뒤에 장착된 신형 장비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듯 했다.

 

  "우주,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다음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스펙터는 다시금 빠르게 좁혀져 오는 세 마기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불꽃을 뿜으며 빠르게 가속했다. 우주는 증오 섞인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노려보며 소리 질렀다.

 

  "스펙터!!!"

  "잠깐만, 우주! 기다려! 대열을 가다듬어야지!!"

 

  광기 어린 움직임으로 스펙터를 쫓는 우주의 뒤를 다른 두 사람이 서둘러 따랐다.

 

  "속도로는 놈을 당해낼 수가 없어! 방금 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놈을 몰아놓는다! 이번엔 나도 가세할게! 내가 여기서 먼저 놈의 진로를 차단하겠어!"

 

  어느 샌가 날아온 명호의 두억시니가 그 핏빛으로 번뜩이는 갑주를 뒤집어 쓴 채 거대한 대검을 들고 도망치는 스펙터에게 다가갔다. 스펙터는 이번 행동도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벽에 가로막힌 듯, 이번엔 두억시니의 대검과 스펙터의 낫이 충돌했다. 양쪽에서 날아온 가속력까지 더해진 강한 충돌에 순간 마소의 폭풍이 거칠게 휘몰아쳤다. 상대는 이미 한 손을 잃었다. 힘 대결에서는 명호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곧바로 스펙터가 낫을 기울여 대검을 흘려내고자 했지만, 명호는 그에 넘어가지 않고 같이 대검을 기울였다.

 

  "뜻대로 되게 두지는 않겠어…! 널 여기서 붙잡아둬야 내 동료들이 널 칠 수 있거든!"

 

 

 = Dark Ocean’s Rhapsody =

 

 

  시우는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 계산된 연계 공격으로 자신을 노리는 적은 만난 적이 없었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그만 클레릭스의 마기 중 하나의 팔을 배고 말았다.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상황은 그 뒤에 펼쳐졌다. 평소 같았으면 파일럿을 고통으로 몰아 넣어야 할 마소가 역류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적은 그 기세를 전혀 늦추지 않고 스펙터의 뒤를 쫓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여유를 부리기엔 변칙적인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사실 지금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 속의 내장이 뒤틀릴 것만 같았지만 이 이상을 해내지 못하면 지금 이 상황은 타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한계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절대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하며 시우는 숨을 길게 몰아 쉬었다.

 

  "후우… 우아아아아아악!!"

 

  콕핏 내부의 마소의 흐름이 보다 격렬하게 회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이어진 시우의 절규와도 같은 고함소리에 맞추어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 Dark Ocean’s Rhapsody =

 

 

  순간, 이글이글 타오르던 스펙터의 황금빛 안광이 번쩍이는 듯 하더니, 주변을 모두 집어삼킬 것만 같은 불꽃이 사방을 덮쳤다.

 

  "뭐… 뭐지, 이건?"

 

  명호는 잠시 불길에 현혹된 듯 멍한 표정으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봤다. 다급함이 잔뜩 묻어나는 민아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오빠!! 뭔가 이상해!! 일단 물러서!!"

  "…! 그래, 알았다!"

 

  두억시니는 들고 있던 대검에 보다 강하게 힘을 주어 스펙터의 대낫을 밀어내곤, 빠른 속도로 역기동해 스펙터로부터 물러섰다.

  순간, 스펙터를 중심으로 거대하게 피어 오르던 불꽃을 중심으로 마치 불꽃놀이의 그것과도 같이 불씨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돼."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스펙터에게서 튀어나간 불씨들은 그 하나하나가 마치 목표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불꽃처럼 공역 내에 있는 모든 마기들을 빠르게 덮쳐나갔다.

  그것은 이미 마기와 마기의 싸움이 아니었다. 대자연의 힘 앞에 선 한 사람의 인간이 그러하듯이,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앞에 이 공역의 모든 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었기에, 명호는 이 공간의 존재하는 마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공격 받고 있음에도 그 공격이 자신들을 피해가고 있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민아와 찰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런 녀석을 산 채로 생포하라고 한 거야? 나… 그냥 이 일 그만 둘래."

 

  찰튼의 바보 같은 농담에도 반응하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이나 명호와 민아는 지금 이 상황에 압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오직 한 사람, 우주 만은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우리는 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냐? 응…?"

 

  우주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조종간을 잡고 자세를 고쳤다.

 

  "대답해봐, 스펙터!!"

 

  우주의 아테나가 창을 고쳐 쥐어 다시 한번 스펙터의 심장부를 노리며 돌진했다.

 

  "이 바보 녀석, 기다려! 젠장! 꼭 있다니까, 이렇게 첫 전투에서 흥분해 앞뒤 못 가리는 것들이!"

 

  눈이 뒤집힌 채 스펙터에게 접근하는 우주의 뒤를 찰튼이 서둘러 따랐다. 앞뒤 가릴 여유 따위 없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돌진하면 우주는 100% 죽게 될 것이다.

 

  "스펙터!!"

 

  아테나의 창 끝이 스펙터를 찌르려는 찰나, 스펙터가 들고 있던 낫이 검의 형태로 변했다. 스펙터는 무심하게 자세 하나 바꾸지 않고 그저 그 검의 끝을 자신에게 돌진하고 있는 아테나에게 향했다.

 

  "잠깐만!! 우주!! 안돼, 피해!!"

 

  아테나를 겨두고 있던 검에 서린 불꽃이 그대로 길게 늘어나 아테나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창 끝을 겨두고 일직선으로 기동하고 있는 우주의 마기는 자체적으로 저 공격을 피할 길이 없었다. 찰튼은 별 수 없이 방향을 선회해 우주의 아테나를 측면으로 들이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큭…!"

 

  스펙터의 검 끝에서 쏘아져 나간 불꽃은 그대로 찰튼의 아테나 동력부를 관통해버렸다.

 

 

 = Dark Ocean’s Rhapsody =

 

 

  곧이어 크고 작은 폭발음이 그 진동과 함께 콕핏을 향해 전해져 왔다.

 

  "이런 염병할, 내 용병 일 관두면서 말도 좀 예쁘게 써보려고 했는데. 이래서 새파랗게 어린 것들은 안 된다니까."

  "찰튼!"

 

  우주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전해져 왔다.

 

  "난 괜찮아. 우주, 넌 나중에 살아서 돌아가게 되면 각오하고 있어. 용병 출신의 매서운 주먹 맛이 뭔지 한번 보여줄 테니까."

 

  찰튼은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그런 우주에게 농담을 쏘아 붙였다. 명호는 그런 찰튼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찰튼!! 뭐하고 있어!! 지금 당장 탈출해!!"

  "이런, 망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구!!"

 

  찰튼은 서둘러 조종간 아래에 부착된 전자식 키보드를 꺼내곤 긴급 탈출 명령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 ERROR - DENIED 」

  "응? 이게 왜 이러지?"

  "찰튼!! 어서!!"

 

  찰튼은 다시 한번 서둘러 명령어를 입력했다.

 

  「 ERROR - DENIED 」

  "이게 왜 이래? 뭐가 잘못된 거지?"

 

  다시 한번 어딘가 오타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 자 한 자 확인해가며 명령어를 입력해본다.

 

  「 ERROR - DENIED 」

  "…이런 빌어 쳐먹을."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수 차례 같은 명령어를 입력한다.

 

  「 ERROR - DENIED 」

 

  「 ERROR - WRONG COMMAND 」

 

  「 ERROR - DENIED 」

 

  「 ERROR - DENIED 」

 

  「 ERROR - DENIED 」

 

  「 ERROR - WRONG COMMAND 」

 

  「 ERROR - WRONG COMMAND 」

 

  「 ERROR - WRONG COMMAND 」

 

  「 ERROR - WRONG COMMAND 」

 

  어느덧 폭발은 콕핏 내부까지 전해져 주변의 기기들이 하나 둘씩 스파크를 일으키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찰튼은 그만 단념한 듯 키보드를 신경질 적으로 내려 치곤, 허망한 듯이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연금은 두둑히 나오겠구만."

 

  다음 순간, 찰튼을 태우고 있던 마기는 새하얀 마소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강한 폭발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Dark Ocean’s Rhaps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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