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혁이 취조실문을 열어주었다. 밤을 고박 샌 취조에 성현이 힘들어했
다. 수혁이 미안한 듯 경찰서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다.
"진술 감사합니다. 수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네... 하지만 전 미령이가 잘못되길 바라진 않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지만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야죠... 힘들어보이시는데
댁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아뇨.. 그럴 거 없습니다. 택시 타고 가면 금방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수혁이 꾸벅 인사하고 들어갔다.
경찰서를 나온 성현이 버스정류장쪽으로 걸어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첫
차는 탈 수 있거라 생각했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꼴똘히 생각했다.
잘한 걸까... 잘했겠지...
그런데 저멀리 지그재그로 휘청거리며 달려오는 자동차가 보였다.
저런... 경찰서 앞에서...
성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자동차는 라이트 깜빡거리다 클락션을 크게 울렸다. 마치 성현한테 분노
한 듯 보였다. 성현이 이상하다 싶어 벤치에서 일어나 도로 앞으로 한 걸
음 걸어나갔다. 빵빵- 성현이 라이트 불빛에 눈을 찌푸렸다. 운전석에 앉
은 사람은 낯이 익었다. 분개하는 미령이었다. 성현은 달아나지 않고 오
히려 더 앞으로 걸어갔다.
콰아앙!
자동차는 그대로 성현을 박고 달아났다. 성현은 몇 미터 붕 떠서 떨어졌
다. 달리는 자동차 뒷모습을 본 성현이 눈물로 뿌옇게 가려졌다.
내가 널 막지 못한 거야...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어...
미령아... 넌 발가벗은 창녀였을때도
어느 나라 왕비처럼 아름다웠어...
네 모습을 다른 사람이 봤다해도 한눈에 반해버렸을 거야...
그러니 니 아름다운 빛을 시들게 하지 마...
이걸로 끝내렴...
미령아... 태어나 너를 사랑했던 것이 자랑스럽다... 안녕...
성현은 끝내 눈을 감았다.
달리던 차들이 멈춰 쓰러진 성현을 보고 몰려들었다.
"네? 뭐라구요?"
전화를 받은 수혁이 깜짝 놀랬다.
기막히고 어이없었다. 단 몇 분전에 자기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았던
가... 그런데 그가... 그것도 경찰서 앞에서... 충격 받은 수혁을 말문
을 열지 못했다. 보다못한 반장이 형사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다.
"은미령 출국 금지 시켜!"
성현이 엠뷸란스에 실려 급히 수술실로 이동했다. 의료진들은 진땀을 빼
는 수술을 시작했다.
세 시간이 넘긴 수술이 끝났다. 푸른색 수술실 복을 입은 의사의 표정은
어두웠다. 비에 흠뻑 젖은 생쥐처럼 의사는 등과 겨드랑이 아래를 땀으
로 다 적혔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혁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
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집도의는 그 한마디로 끝냈다.
"수술이 잘못 됐습니까?"
수혁이 간절히 바라봤다.
"경과를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두부 손상이 컸습니다. 제 방으로 가셔서
얘기하시죠..."
집도의는 진료실로 안내했다. 수혁이 못 참겠다는 듯 앞서 걸어갔다. 진
료실에 앉은 수혁이 놀라 되물었다.
"의식이 없다뇨?"
"불행히도 두부 손상이 컸습니다. 두개골 파손으로 왼쪽 뇌 2/3 이상을
도려냈습니다. 아시다시피 왼쪽 뇌의 기능은 사고력, 기억력, 언어능력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야 소생 가능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긴 이릅니다. 다양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식물인간이 되나요?"
"한 달 이상 경과를 두고 봐야합니다..."
수혁은 넋을 놓고 의사를 봤다.
//가망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