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는 6호 사이즈 그림 두 개를 잘 포장하여 손님에게 건넸다.
“후회 안하실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가격 잘 해서 드린 거니까 홍보 많이 부탁드립니다.”
“예, 주변에 그림 좋아하는 언니들 많은데 제가 꼭 홍보해 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이 갤러리를 나간 후에 재희는 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님!”
“예, 사장님!”
“방금 6호 두 점 판매했어요.”
“정말요?”
“예! 점당 700만원!”
“헉! 너무 비싸게 받으신 것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너무 많이 깎아줘서 속상해 죽겠는데. 하하하!”
“와! 정말 대단하세요.”
“저만 믿으시면 된다고 했잖아요.”
“아무튼 너무 고맙습니다.”
“작가님! 힘드시겠지만 작품 수를 조금 더 늘렸으면 하는데, 안 될 까요? 사이즈는 상관 마시고요. 오후에도 한 분 더 오시기로 했거든요. 분위기를 타는 것 같은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죠.”
“예, 그럼요. 걱정 마세요. 밤을 새서라도 작업할게요.”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건강 잘 챙기시면서 하셔야죠.”
“밥 잘 챙겨먹으면서 작업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
명품 백을 겨드랑이에 낀 여성이 최후의 만찬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최후의 만찬 아니에요?”
“예 맞습니다. 사모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어머! 우리 레스토랑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작가가 누구시죠?”
“그게, 아직 본인을 밝히지 않고 작업을 하시는 분이라서.”
“아! 얼굴 없는 작가?”
“아, 예! 뭐 그런 셈이죠.”
“어머! 이것 봐. 정말 좋은 작품이 많네요. 어? 이건 좀 다른데?”
“예, 그건 우명환 화백님 작품인데.”
“아! 우 화백?”
“예. 맞습니다.”
“저희 회장님이 말씀하신 분이네요. 그런데 어째 좀 올드하다.”
“좀 그렇죠? 유명하신 분이긴 한데 아무래도 레스토랑에 걸어 두기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어쩌지? 우 화백님 그림이 좋다고 해서 왔는데.”
“그림이 원래 처음 느낌이 중요하거든요. 이게 사람하고 똑같아서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볼 때마다 불편합니다.”
“그렇겠네. 매일 봐야 되는데.”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저 작품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모님 성향에도 맞고, 레스토랑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첫 인상도 좋으셨잖아요.”
“그렇죠? 저게 참 마음에 드네.”
재희는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 오픈할 레스토랑에 반드시 최후의 만찬을 걸고 싶었다. 아빠의 소개를 받은 지인의 사모여서 우 화백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 께름칙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사모가 우 화백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 작가님 작품이 요즘에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옥션에서도 출품 될 때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거든요. 인테리어로도 좋지만 투자가치도 충분히 있어요. 이건 어제 들어온 건데 이 정도 사이즈는 요즘 없어서 못 팔정도로 대기자가 줄을 서 있습니다. 저희 아빠 소개로 오신 분이라서 제가 따로 빼 놓은 거예요.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쩔 수 없는데…….”
“아니에요. 저 이 그림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걸로 할게요. 회장님이 볼 것도 아니고 내가 볼 건데 뭐. 얼마죠?”
“음, 7,000만 원이고요. 진품인증서도 같이 드립니다. 요즘은 호당 170만 원 이상도 받는데 140만 원으로 계산했어요. 구입하시는 즉시 1,500만원 수익 나시는 겁니다.”
“어머! 너무 고마워요.”
재희가 갤러리를 운영하는 동안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거래 금액이 클수록 고객의 지갑이 더 쉽게 열린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신뢰만 심어주면 작품이 명성에 비해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은 돈도 기꺼이 지불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형성된 가격이 무너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희는 로봇의 기원을 만난 이후로 자신이 상상해오던 모든 일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뒤흔들 작가를 발굴하고,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재희는 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는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이제 세계로 무대를 넓혀 진검 승부를 펼칠 날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 자식! 용건 있으면 문자하면 되지!’
지겨울 만큼 한 참 동안 전화벨이 울리자 예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 전화벨이 멈추자 예준은 붓을 팔레트 위에 잠시 내려놓고 SNS를 보냈다.
‘미안, 너무 바빠서 전화 온 줄도 몰랐네. 내가 나중에 시간 내서 연락 한 번 할게.’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예준은 다시 붓을 들었다. 낚시를 할 시간도, 라면 국물에 소주잔을 기울일 시간도 없을 만큼 마음이 바빴다. 병수에게서 답장이 온 듯 짧은 알람 소리가 들렸지만 예준은 확인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