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갑자기 왜 온 거지... 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던 이곳으로 샵티들이 몰려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쾅쾅쾅!’
샵티들은 영훈의 옆집인 401호의 문을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괴성과 폭력적 소음으로 인해 영훈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다행히 굳게 닫힌 401호의 문을 5마리 샵티들의 힘만으로는 열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샵티들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동이 트고 나서야 약속이라도 한 듯 4층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영훈과 연우는 두려움에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갑자기 왜 몰려온 걸까요?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모르겠어. 근데 낮보다 밤에 뭔가 더 활발해진 느낌이었어.”
분주해진 발걸음과 더 날렵한 움직임. 영훈은 어제 창밖을 통해 봤던 샵티들의 행동들을 떠올렸다.
“저것들 때문에 한숨도 못 잤네. 일단 뭐 좀 먹고 눈 좀 붙이자.”
“네. 아저씨 제가 차릴게요. 좀 쉬고 계세요.”
연우는 어제 해놓은 밥과 된장찌개를 데워 상을 차렸다. 피곤함과 걱정 때문인지 어제처럼 밥이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대충 배를 채우고 눈을 붙이려 할 때쯤 연우가 내뱉은 말은 영훈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어? 아저씨 인터넷이 안 돼요!”
영훈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인터넷에 접속해 봤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바깥세계로 연결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차단되자 눈앞이 막막해졌다.
‘인터넷이 안 되잖아... 그럼 전화도 안 되는 건 시간문제인데...’
“연우야 부모님한테는 아직 연락 안 왔지?”
“네... 어제 메시지는 보내봤는데 답장이 없어요.”
“벌써 연락했구나. 잘했어. 네가 무사한 것처럼 부모님도 무사하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아저씨”
연우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구석에 앉아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자그마한 등에서 가족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느껴졌다.
영훈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부모님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영훈에게 가족 같은 여동생이 한 명 있긴 했다. 고아원에서 유난히 영훈을 잘 따랐던 아이는 10살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아무 일 없이 자랐다면 딱 연우와 같은 나이였다. 그 아이와 닮았기 때문일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지켜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쾅쾅쾅!”
그날 밤도 샵티들이 우르르 몰려와 401호의 문을 부서질 듯 두드렸다. 영훈과 연우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늘은 전기가 끊겼고 남은 식량마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돼. 움직여야 해.’
여전히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했다. 나가서 식량을 구해오든 피난처를 찾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연우야. 나 잠시 밖에 나갔다 올게.”
“네? 왜요?”
“밖에 상황도 좀 살펴보고, 먹을 것도 좀 구해와야겠어.”
“그럼 같이 가요 아저씨!”
연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넌 여기 있어. 움직이는 데 혼자가 편해.”
“그래도... 어디까지 가실 건데요?”
“골목길 끝에 있는 슈퍼 봤지? 거기까지만 금방 다녀올게. 오래 걸려도 30분이면 충분할 거야.”
영훈은 연우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연우는 자신이 짐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너 아니었으면 그날 나 화장실에서 죽을 뻔했어. 네 덕분에 지금 인생 덤으로 살고 있는 건데 그런 생각 마라. 정 신경 쓰이면 앞으로 요리는 네가 담당. 어때?”
“네 좋아요! 그럼 제가 앞으로 요리할게요!”
풀이 죽어있던 연우의 얼굴에 금세 웃음기가 돌았다.
영훈은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장롱에서 커다란 배낭을 하나 꺼내 등에 멨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전자시계를 손목에 차고 마지막으로 식칼을 하나 챙겼다. 햇빛에 비친 식칼 끝이 유독 날카로워 보였다.
“아저씨...”
연우가 문 앞에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괜찮아. 금방 돌아올게. 절대 큰 소리 내지 말고.”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도어락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설정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문은 조용하게 열렸다. 눈앞에 보이는 복도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 건물을 나가면 난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영훈의 마음은 갈등하고 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을 애써 무시하고 무겁게 손을 들어 올려 문을 닫았다.
‘후... 가보자. 딱 슈퍼까지만 가서 뭐라도 가져 오는 거야.’
건물 복도에서는 발걸음이 울리기 때문에 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걸었다. 한층 한층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긴장감에 목이 조여왔다.
3층... 2층...
운이 좋은 건지 건물 안에는 샵티 없었다. 천천히 움직인 탓에 건물 1층까지 내려오는 데 10분이나 걸렸지만, 무사히 내려온 것에 감사했다.
‘휴... 건물에는 없어. 돌아올 때는 조금 편하겠다.’
1층 현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골목길을 살폈다. 어젯밤 보다 숫자가 줄어 보이긴 했지만, 곳곳에 샵티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음... 큰 도로로 나가서 돌아가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오래 걸리는데...’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기에는 샵티들과의 간격이 너무 좁았다. 자칫하면 좁은 골목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고립될 수 도 있었다.
반대로 도로를 크게 우회해서 가기에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확률도 높았다.
‘어차피 위험한 건 똑같은데 가까운 데로 가자!’
걸어서 2분 거리의 슈퍼는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거리에 있었다. 여기서 슈퍼까지 보이는 샵티는 총 3마리. 옥수역에서 했던 방법으로 소리로 유인한다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훈은 건물 바로 옆에 있는 분리수거장으로 이동해 유리병 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곤 건너편 건물 유리창을 향해 힘껏 던졌다. 유리병이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갔다.
‘쨍그랑’
조용한 골목에 날카로운 파열음이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곧이어 골목길을 질주하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깨진 유리창 앞으로 샵티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이다!’
이 틈을 타 재빨리 슈퍼 쪽 골목길로 접어든 영훈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슈퍼로 움직였다.
2분도 안 걸려 순식간에 슈퍼 앞에 도착했다. 샵티들은 아직 깨진 유리창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휴... 심장 떨리네...’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레 슈퍼 문을 열었다.
‘좋았어!’
문이 닫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문은 열려있었다. 슈퍼 안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꺼져 있어서 그런지 꽤 어두웠다.
‘흡... 무슨 냄새가...’
문을 열자 코를 찌르는 듯한 썪은 냄새가 풍겨왔다. 본능적으로 코를 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헉...’
카운터 아래에는 중년의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샵티가 나타난 첫날에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빨리 챙겨서 나가자.’
죽은 시체와 한 공간에 있다는 찝찝함 때문에 영훈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선반에는 제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것이고 슈퍼의 물건들은 곧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최대한 많이 담아가야 했다.
‘유통기한이 긴 거로.’
참치, 통조림, 초콜릿 등 부피가 작고 열량이 높은 음식 위주로 담았다. 배낭에 음식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때 한 쌍의 붉은 눈빛과 마주쳤다.
‘헉...’
고개를 모로 눕힌 샵티 한 마리가 3m 앞에서 영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샵티가 영훈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뭔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지만 그 뭔가가 사람인지 물건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금방 눈치챌 거야. 어쩌지?’
고민하는 사이 샵티는 어느새 2m 앞까지 다가왔다.
‘그래! 차라리 먼저 공격하자.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결심을 하자 오른손에 쥔 식칼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감 때문인지 손바닥이 축축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샵티와의 거리를 쟀다. 영훈이 움직이는 순간 샵티는 영훈의 존재를 알아챌 것이다.
‘기회는 딱 한 번. 목을 노린다.’
붉은 눈동자는 어느새 1m 앞까지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저 목에 칼을 꽂고 싶었지만 조금 더. 조금만 더 기다려야 했다.
‘아니야 아직... 조금만 더 가까이...’
샵티의 입에서 역겨운 냄새가 훅하고 풍겨왔다. 붉게 물든 이빨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늘어진 눈 사이로 콩알만 한 붉은 눈동자가 뭔가를 알아챈 듯 확장됐다.
‘지금이다!’
영훈은 그대로 식칼을 든 팔에 힘을 줘 샵티의 목을 향해 찔러갔다. 붉은 눈동자가 시퍼런 칼날을 따라가다 멈췄다.
‘푸욱!’
목을 뚫고 들어가는 칼날이 뭔가에 걸리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샵티의 눈동자가 칼날을 벗어나 영훈에게로 향했다. 고통이 뭔지 알기라도 하는 듯 안 그래도 흉측한 얼굴이 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르륵!’
샵티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귀까지 찢어진 입을 벌리며 영훈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덕분에 식칼은 샵티의 목을 관통했지만, 영훈의 목숨도 안전하지 않게 되었다.
‘왜... 왜 안 죽는 거야...!’
영훈은 칼을 모로 비틀어 샵티의 목을 헤집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공격이 먹혀들어 갔는지 영훈 어깨를 움켜쥐었던 샵티의 팔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영훈은 칼을 쥔 손에 힘을 줘 더 움직였다.
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더니 흉측한 샵티가 바닥에 쓰러졌다.
영훈은 쓰러져 있는 샵티의 목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끈적한 액체가 튀어 올라 영훈의 얼굴을 검게 물들였다. 바닥에는 샵티의 시커먼 피가 번져가고 있었다.
‘헉... 헉..’
정신을 차린 영훈은 칼질을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팔이 후들거렸다.
‘해냈어... 해냈다고!!’
바닥에는 움직임을 멈춘 샵티 한 마리가 널 브러져 있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상대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괴물을 해치웠다는 승리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어디선가 싸움으로 달아오른 후끈한 공기를 밀어내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다. 바람? 어디서 불어오는 거지?’
바람이 불어온 곳으로 영훈은 눈길을 돌렸다. 닫혀있었던 슈퍼문이 열려있었다.
‘문이... 왜?’
의문은 금세 해결됐다. 문 옆에서 2마리의 샵티가 붉은 눈을 빛내며 영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