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차장은 오싹 한지 연신 손을 비볐다.
여전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었다.
"자. 그래. 오케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게 보인다는 거네.
뭐 나도 어릴 때 동네에서 무당들이 굿하는 것도 많이 봤어.
공동묘지에서 도깨비불 본 적도 있고 가위도 엄청 눌리고 말이야……
뭐 나도 그런 거 좋아해. 관심 있고. 미스터리한 일들 말이야."
윤차장은 호기심 보다는 귀남이 걱정스러웠다.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거야?
뭐 형태나 색깔만 보인다거나
네가 신 후보 머리에 있었던 왕관처럼
완벽하게 보이는 거야?""
" 뭔가 형태만 보일 때가 있고
냄새나 촉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완전한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고요."
" 야 그거 신기하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인다는 거.
그거 뭐 딱히 나쁘지 않은 거잖아.
능력이다 능력. 초능력 같은 거잖아.
노스트라다무스처럼 막 예언하고."
" 어릴 땐 너무 감당이 안돼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컨트롤 하는 방법이 생기긴 했어요.
" 야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야?
근데 그땐 왜 갑자기 뛰쳐나가서 그런 거야?
컨트롤이 안 될 때가 있는 거구나?"
" 계속 제가 거부를 하니까
귀신들이 장난을 치는 거예요."
윤차장은 귀남의 진지함에 그런 마음들이
조금씩 해제되고 있었다.
" 너 혹시 그러면 그런 것도 가능하니?"
" 에이 복권 번호 같은 건저도 알 수 없어요.
제가 그거 알았으면 벌서 부자 됐죠."
" 뭐 꼭 복권이라기보다……."
윤차장은 멋쩍게 웃었다.
그때 벌컥 열고 허겁지겁 들어오는 태현.
" 차……차장님…… 티 …… 티비 켜 보세요. "
" 티비?"
리모컨으로 티비를 켜니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 속보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6일 남은 오늘 유력한 당선 후보였던
오현태씨가 사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의문을 낳고 있습니다.
오 후보자는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짧은 메모를 남긴 체 돌연 사라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사퇴에 여야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속보 나오는 대로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뉴스에 놀라 리모컨을 꼭 붙들고 귀남을 쳐다보며 멍해진 윤차장.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두 손을 포개고 눈을 감고 있는 귀남.
" 차장님. 이거 무슨 일일까요?"
태현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완전 넋이 나간 윤차장.
놀란 눈을 뜨고 귀남을 쳐다봤다.
" 차장님. 차장님!! 윤선배! "
" 어……그래…… 미스터리 하네……참……."
" 끝이에요?
이거 뭔 일 난거 아니에요?
지금 저희가 뭘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또 해명하라고 난리에요. "
" 알긴 우리가 뭘 알고 있어.
해명할 것도 없어.
기다려 보자고."
당황한 채 귀남만 쳐다보는 두 사람.
귀남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 야 너 뭐냐?"
" 네?"
" 오 후보자 어디서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데 너 표정 뭐냐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멋쩍어 하는 귀남.
윤차장이 태현을 꾸짖는다.
"야 그만해라 좀. 왜 계속 화를 내냐 너!
안 그래도 시말서 쓰고 처벌 기다리고 있어서
넋 빠진 애한테 왜 계속 그러냐?"
" 아니 사고 쳐놓고 표정 관리도 안 하잖아요."
귀남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됐어.
우리끼리 싸우고 그러냐?"
'죄송해요."
" 너도 빨리 좀 쉬어라.
다들 예민해져서 그래. "
" 선배님."
귀남이 태현을 처다 보지 않고 말했다.
" 집에 아무거나 들이니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
" 집에 아무거나 들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새로 들어 온 식구 있잖아요."
" 이건 또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야. "
윤차장은 귀를 쫑긋 세우고 둘을 쳐다봤다.
" 얼마 전에 집에 들어온 거 빨리 처리하세요.
그거 집에 있으면 안 돼요."
단호한 귀남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 인마. 그러니까 무슨 식구를 말하는 거냐고?
너 어제부터 계속 장난칠래?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미쳐 가지고."
윤차장은 태현에게 흥분을 가라앉히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 아 빡치게 하네.
이 새끼가 진짜 어제부터
병신짓 해서는 회사 난리 난 거 모르고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잖아요."
" 야 말조심해라.
너 안 그런 애가 왜 이렇게 사나워졌어?!"
태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툭 튀어 나온 말에
본인도 놀랐다.
이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 야 대답 안 해? 무슨 소리냐고! "
" 이유를 멀리서 찾지 마세요.
모든 이유들은 가까이에 있어요.
왜 선배님이 예민해 졌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 또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너 진짜 귀신이라도 씐 거야?
말해 봐. 뭐? 나한테 뭐라도 보이냐?
말해 보라니까?"
태현은 약이 바짝 올라 귀남을 다그쳤다.
"선배. 얼마 전에 들어 온 그 고양이 빨리 버리세요."
태현은 한방 맞은 듯 멈춰 섰다.
" 고양이? 무슨 고양이?
너 고양이 키워?""
너 뭐 털 알레르기 있어서
동물 못 키운다고 하지 않았어?"
"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아닌데 아무도 모르는데.
뭐냐 너? 너 스토커냐?
우리 집에 왔었냐?"
윤 차장은 아무도 몰랐던 것을
귀남이 알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 아뇨. 간적 없습니다."
" 근데 고양이가 있다는 거 어떻게 알아?"
" ……."
" 너 말 안 해?
너 이 새끼 말 안 할 거지?"
"……."
귀남의 멱살을 잡아끌어 올리는 태현.
그의 손목을 잡고 뿌리치는 윤차장.
" 너 진짜 왜 이러냐!
그만해! 뭐하는 짓이야!"
" 너 몰래 우리 집에 왔었던 거야?
이 새끼 뭐야 진짜."
윤차장은 멱살을 잡은 손을 겨우 떼어 놓았다.
그리고 바지에 달라붙어 있는 고양이털들을
손으로 뜯으며 말했다.
" 아 너 진짜 왜 그러냐? 점잖은 놈이
너 바지 봐라.
누가 봐도 너희 집에 고양이 있는 거 알겠다.
왜 이렇게 예민하냐. 진짜."
" 네? 고양이 털요?"
" 너 여기 봐. 전부 털이잖아.
너도 손은 또 왜 그래?
알레르기 맞네.
알레르기 있어서 복숭아도 안 먹는 놈이
무슨 고양이를 키워?"
" 고양이 없다니까요."
" 그럼 이건 뭐냐니까?"
" 그 고양이 선배님 것 아니잖아요.
원래 있던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매일 밤 그 고양이가 선배 쳐다보고 있어요.
그 고양이도 밥도 안 먹고 매일 울어요.
그래서 선배가 잠을 못 자는 것이고 잠을 못자니 피곤한 거고
피곤하니 예민해서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 그건 네가 시고를 쳐서……."
" 솔직히 제가 사고를 친 것과 선배가 예민한 거랑은
상관이 없어요. 저도 다 들었어요.
제가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안 쓴다고 말씀하시고
다니시는 것 저도 귀 있으니 다 들립니다.
저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셔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저 때문에 화가 나고 예민해 지는 건 이해가 안 돼요."
" ……."
" 치료부터 받으세요.
지금 온 몸에 두드러기 났잖아요."
" 야! 너 진짜 내 몸 까지 훔쳐봤냐?
너 스토커냐 진짜!"
윤 차장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 그 고양이만 돌려주면 다 끝나요."
# 방송국 옥상.
윤 차장과 귀남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주황빛의 노을과 가을의 바람은
분위기를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윤차장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 너 또 뭐가 느껴졌던 거야?"
" 저도 모르게 그만……."
" 뭐가 보였냐?"
" 고양이요."
" 무슨 고양이?"
" 두려움에 떨고 있었어요.
마치 끌려온 것처럼."
"근데 그 고양이가 태현이를 예민하게 하는 거야?"
" 그 고양이랑 태현선배랑 안 맞아요. 상극이에요.
서로 맞지도 않는 사람과 동물이 한 집에 사니
선배가 예민해지고 있는 거예요."
윤차장은 옥상에서 담배에 불도 붙이지 못하고 얼어 버렸다.
" 그러니까 네 말은 그 고양이가 태현이가 서로 안 맞으니
버리기라도 해야 한다는 소리야?"
" 사람이 나갈 수 없으니 고양이가 나가야죠.
사실 태현 선배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지가 않아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계속 한집에 살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귀남을 바라보던 윤 차장은
소름이 돋았지만 태연한 척을 했다.
" 아주 미스터리한 능력이다.
어떻게 모르고 있었지?"
" 저도 모르겠어요.
점점 컨트롤이 안되는 게……
지금까지 밀어냈는데
더 이상은 안 되나 봅니다."
" 뭘 밀어내고 있었는데?"
" 그들의 세계에 제가 들어가는 거요. "
" 뭐 진짜 신 내림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거야?"
"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이길 겁니다."
" 야 그거 안 받으면 막 아프고 그런다던데??"
" 네.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에요.
온갖 잡신들이 내 몸 위에서 밟아요.
잠도 못 자게 소리치고……
칼로 난도질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워요.
그런 고통은 사실 괜찮아요.
요즘처럼 컨트롤이 안되는 게 걱정이에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와 버리니까요. "
죽을 듯 한 고통을 담담하게 말하는
귀남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윤차장은 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 근데 말이야……내가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건 아니니까 들어봐.
혹시, 보이지 않는 신이 널 선택한 건 아닐까?"
" 신이 선택했다고요?"
" 평범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너에게만 보인다는 건
우리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널 선택했고 네가 뭔가 해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 해서 말이야.
거부하기 힘들 정도의 힘으로 너를 밀어 붙이는 걸
보면 뭔가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해서."
윤차장은 자신도 모른 사이에 너무 심취해 버렸다.
"그러면 그 세계에서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요?"
" 그건 네가 찾아야지.
중요한 건 알 수 없는 세계에 있는 신이
널 중개자로 선택 했다는 거야."
윤 차장은 귀남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눈앞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