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 대회의실. 긴 테이블 주위로 임직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리고 서로 웃음 지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데이비드 본부장이 한서린과 만나고 있을 줄이야. 기사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한테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참 잘 어울리지 않나요? 이참에 한서린과 데이비드 오가 같이 '마이 미러' 모델로 나선다면 엄청나게 화제가 될 것 같은데요?"
"저도 찬성입니다."
웃음소리와 함께 차원과 서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회의실. 그때 차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척해진 얼굴로 임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차원. 임원들은 차원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차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회의가 시작되고, '마이 미러' 최종 모델 선정에 대한 PT가 진행됐다. 앞서 거론된 여러 명의 후보 중 세 명의 여배우가 스크린 화면에 떴다. 두 명의 탑 배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한서린 이었다. 발표자는 세 명의 여배우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마이 미러' 모델로써 누가 가장 적합한지에 관해 설명했다. 서린이 화면에 나오자 마치 이미 모델이 정해진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임직원들. 그런 분위기와 달리 차원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PT를 바라보고 있었다.
PT가 끝나고, 최종 후보 선정을 앞두고 있었다. 투표하기 위해 발표자가 준비하자 차원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리고 모두 차원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 최종 후보 선정에 앞서,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마치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을 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임직원들.
"저와 한서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차원의 발언에 웅성대는 임직원들. 그때 한 임원이 말했다.
"아니, 데이비드 본부장.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럼 인터넷에 뜬 기사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 네, 그렇습니다."
웅성대는 소리가 더욱 커지는 회의실.
"바로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기사에… 저도 많이 당황했습니다. 정정 기사가 나가도록 오늘 연예매체에 정식으로 요청할 예정입니다."
고개를 돌리며 실망한 표정을 짓는 임직원들.
"… 한서린 씨가 '마이 미러' 모델로 이미 낙점이 돼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 모두가 인지하고 계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마이 미러' 출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예정보다 조금 더 늦추도록 하겠습니다. 저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 * *
영화사 회의실에 앉아 있는 아경. 안을 둘러보며 촬영 전 왔던 어리숙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진 한 테이크 아웃 컵에 시선이 멈췄다. 그리고 차원이 자신을 도와주려고 여러 개의 커피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이 곳까지 따라왔던 모습이 떠올랐다. 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아경.
그때 영화사 실장이 들어왔다.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 아경. 그러자 실장이 아경에게 앉으라고 다독였다. 처음 아경이 왔을 때와 다른 대우를 하는 느낌이었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실장과 마주 앉는 아경.
"아경씨, 얼굴이 많이 좋아졌… 을 텐데 오늘은 잠을 못 잤어요?"
아경이 자신의 볼 위에 손을 얹었다.
"… 아, 네… 어제 잠을 좀 설쳐서요."
"응응, 우리 아경 씨 참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해. 역시, 매일 밤 대본 연습에 매진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네."
멋쩍은 미소를 짓는 아경.
"오늘 아경 씨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말똥거리는 눈으로 실장을 바라보는 아경.
"박창호 감독님의 차기작 여주인공으로 선정됐기 때문이야."
"네?… 주, 주인공이요?"
"응, 사실은 감독님이 아경 씨를 오디션에서 뽑은 이유가… 다음 영화 주인공 이미지와 잘맞아서 뽑은 거라 하시더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아경.
"그동안 아경씨 연기를 지켜보니 감독님 생각이 더욱 맞다고 판단하셨대. 그래서 처음 생각 그대로, 진행하기로 하셨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하는 아경.
"… 정말, 감독님이 저를 주인공으로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경 씨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감독님이 발견하신 게지. 아!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님이 곧 오실거야. 아경 씨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 작가님이요?"
"응응, 신한수 작가라고. 곧 올 때가 됐는데…"
손목시계를 살펴보는 실장.
"신한수… 작가님 이라면… 감독님이 가장 아끼신다는…"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아경을 발견하자 한 손을 가볍게 들며 인사하는 남자. 한수 였다. 아경은 한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첫 대본 미팅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남자임을 떠올렸다. 한수를 계속 쳐다보는 아경. 그러자 한수가 아경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실장이 한수와 아경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분… 아는 사이에요?"
"그럼요. 운명처럼 마주친 사이죠."
아경은 그제야 한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신아경 입니다."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 한수.
"축하해요. 주인공으로 선정된 거."
"…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손사래를 치는 한수.
"아이, 감사는 나 말고 감독님한테 해야죠. 음,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나오긴 했는데… 아경 씨를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방향이 더 잘 잡힐 것 같아서요."
"… 네,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준비하겠습니다."
"뭐, 크게 준비할 건 없고… 여권만 잘 준비하면 돼요."
"… 여권이요?"
그때 손뼉을 치는 실장.
"아, 그걸 깜빡했네. 아경 씨, 이번 영화는… 해외 올로케 촬영이에요."
"… 해외 올로케… 촬영이요?
머리를 긁적이며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편으로 꼬는 한수.
"아니, 그걸 아직 말 안 하셨어요?"
"그러게요…. 그 얘길 먼저 했어야 했는데… 아경 씨, 해외에서 촬영하는 거… 문제없죠?"
대답 없이 가만히 눈을 깜빡이는 아경. 한수와 실장이 그런 아경을 숨죽이며 쳐다봤다.
"… 그럼요, 당연하죠. 감독님과 작가님, 그리고 실장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인데, 당연히 가야죠."
한수와 실장이 그제야 웃음을 되찾았다. 아경도 미소 지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내뱉는 아경.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며 두 눈을 또렷하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