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총국 정성화 과장은 미주를 조동기에게 남파 시키고 도청 테잎을 아무리 틀어 봐도 이상한 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또 보위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도 동기가 그동안 용기에게 한 번도 다녀가질 않았다고 써져있다.
미주가 남조선으로 간 후의 동기 활동 상황은 오히려 북조선을 돕는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 많은 돈으로 어떻게 돕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내가 심리학과를 나와 왼 만한 사람은 이야기 몇 번 해 보면 그 사람 심리상태를 정확히 짚는데 저 조동기라는 인간의 심리상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조용기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정성화 과장은 남파간첩 108호에게 동기 감시하는 미주를 역으로 감시 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미주는 식당에도 안 나가니 심심하면 가끔 큰 마트 가서 생활필수품도 사고 쇼핑도 한다.
조금 사더라도 쇼핑삼아 마트를 자주 가는 것이다. 오늘도 마트를 갔다 와서 잔돈이 얼마나 남았나?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거스름돈과 종이쪽지가 나온다.
미주는 의아해 왼 쪽지야 하고 펴 보니 무엇이 써져 있다. 읽어 보니 김우식 군과 더 가까이 지내시오. 사업을 시작했으면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써져있다.
미주는 그것을 보고 아-아니 성과를 내라니 뭐가 있어야 성과를 내던지 말든지 하지?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것을 무슨 성과를 내라는 거야?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야, 나라도 조동기 하는 일에 협조해야 돼, 아니 무슨 일이 건 도와야 돼. 그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 성과를 내?”
미주는 남한으로 온지 10개월째인데 요즈막엔 북한이 뭔가 잘못된 나라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동안 한국은 정권이 바뀌어 지금은 개성공단을 패쇠 시켰고 금강산 관광도 못하게 닫았다. 이런 때 조동기 같은 천사가 나타났다.
그동안 민간단체들이 쌀 도와주기 옷 도와주기 하던 운동마저도 끊어졌다. 그래서 북의 주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북한 정권이 문을 열려고 해도 미국이 반대를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북한이 지난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미주가 그런 생각을 하니 불현듯 자기 어머니 가 떠오른다.
자기 어머니 변 정자는 자기를 위해 형식이 중요 당 간부 감시지 실상은 식모다.
어쩔 수 없이 그 집 밥 빨래 다해야 되는, 나를 위해 다 참고 아-아니 어쩌면 그걸 보람으로 생각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미주는 지금이라도 자기 어머니 또 초대소 고급 위안부들을 그 쇠사슬에서 해방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남한에 와서 10개월이 지나니 내가 이상해진 것인가? 아니야 남조선의 선한 사람들을 만나니 오히려 그 사람들의 높은 이상에 감동되어 거꾸로 저 북의 많은 사람을 해방시키고 싶어진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섬뜩함이 머리를 스친다. 만약 북에서 나의 심리 상태를 알면 감쪽같이 없애 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동기는 이제 자기의 결심을 미주나 호태 현주에게 이야기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선 미주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어쩐 일인지 자기하고 생각이 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동기는 미주 생각도 자기와 같다면 북에 살다왔으니 일이 더 수월해 질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미주와 상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는 어느 날 미주와 서울 시내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경복궁 산책을 하게 되었다.
둘이는 산책을 하다 연못가 벤치에 앉았다. 그날따라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해 실내 있는 것 보다 밖이 휠 씬 좋았다.
“미주씨”
“네-에”
“경복궁 처음 보시죠,”
“네-에, 처음 보니 날씨가 좋아 그런가? 참 좋네요.”
미주씨 저는 중국에 가서 천안문 광장으로 해서 그 안 자금성도 두루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크고 웅장해서 감탄했는데 지금 이 경복궁을 보면 작지만 너무 아기자기하고 한국적 풍미가 넘쳐 경복궁이 더 정감이 가고 좋게 느껴집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세상사가 다 자기 위주로 보여 그런 것 같습니다.
이들은 연못의 금붕어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미주씨 북에는 이런 연못이나 놀이터의 물고기들에게 무엇을 줍니까?
그야 북한도 상층부 사람들은 이런 과자를 줍니다. 그러나 평양 이외의 일반인은 줄 것이 없으니 못 주지요.
“아-아 그렇습니까?” 내가 정말 물어볼 건 안 물어보고.
“우식 군 하고는 잘 돼 갑니까?”
“조 선생님 우식이 하곤 이제 끝났어요.”
“왜요?”
우식이가 끔찍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삼일 전 우식이 아버지를 만난 후로 남조선에 대해 환멸을 느꼈습니다.
나는 우식이가 그 큰돈을 나에게 아니 조 선생님에게 맡겨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북조선에 가서 뜻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예 별로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하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서요,”
글쎄 저보고 빨갱이 년이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자기 아들보고 등신이라고 따귀를 때리는데 하여간 가관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식이 할아버지가 일본군소위였는데 해방되고 남조선을 좌익으로부터 지켜 낸 것이 저희들 친일파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남조선에서 최고의 애국자들은 저희들이고 저희들이 대한민국을 지켰기 때문에 그 대가로 잘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북조선 주민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사는 남조선도 옳은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나라 팔아먹은 인간, 아니 민족의 혼을 빼앗아 버린 친일파가 득세해서 오히려 최고 애국자가 저희들이라는 이 남조선.
나는 남조선의 일반 서민까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삼국이나 도로 북한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기에게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더니 동기를 보고 쉿 하더니 윗옷 소매에 접힌 부분을 까뒤집고 조그만 칩을 때내어 작은 비닐에 싸 연못 물 속에 넣고 자기 옷에 붙어있던 칩도 비닐에 싸 물속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