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정도만 고민을 하려고 했지만 답이 없는 고민을 하는 시간만 길어지면서 석 달이라는 세월이 후다닥 지나가면서 마치 안도경의 말이 점쟁이 말이나 되는 것처럼 입 주민들이 담합을 한 것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갑갑한 천명구가 허병식을 찾아갔다.
“허사장! 내가 이해를 못하겠어. 소애리 그년이 옥상에 올라간 날부터 이상하게 이사들을 가기 시작해. 아무래도 재수 옴 붙은 것 같아. 내와야겠어.”
허병식이 한숨을 내쉬며 천명구를 위로하며 실토하듯이 말을 했다.
“형님! 왜 가만히 있는 애리씨를 끄집어 내십니까? 허허허!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하다가 혹시 형님이 속상해할 까봐 말을 못했는데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엄한 사람 잡을 것 같아서 얘기해야겠습니다.”
금방이라도 임종할 것만 같은 천명구의 눈이 햇살에 빛나는 깨진 유리처럼 흩어져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던 허병식이 입을 열었다.
“그 동생이 처남과는 백팔십도 다른 잔인한 놈입니다. 그 친구 조상 때부터 부동산가지고 장난치듯이 돈을 버는 데는 세계 최고입니다. 도경이가 그러면 천벌을 받는다고 해도 말을 안 듣고 사람들을 사들여 형님 건물이 성 매매 업소나 다름없다고 소문을 퍼트려버렸습니다. 형님이 고발을 해도 증인으로 나설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형님도 잘 아시겠지만 동생이 전국구 아닙니까! 이 동네 애들도 꼼짝 못합니다. 고발을 해도 증인이 있어야 하는 데 형님이 증인을 찾더라도 애들이 목숨도 목숨이지만 그 친구가 준 돈만큼 형님이 줄 수가 없었다. 형님! 당장 2억을 길바닥에 뿌릴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가는 길에 나오는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물었다.
“그 친구가 내한테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렇게 하는가?”
허병식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푹 숙여 한숨을 내쉬고 마음의 정리가 됐는지 말을 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스크린을 차릴 때 솔직히 돈 욕심도 있었지만 회원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 뒤에 형님이 차리면 저는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형님이 이상한 소문 내는 바람에 제가 화가 나서 바로 형님에게 안 넘기고 미적대다가 형님도 손해를 보고 저도 손해를 봤죠. 형님이 우리 스크린에는 바람난 년 놈들만 온다고 소문 낸 건 인정하죠?”
천명구는 부정은 하지 않았다. 또 신음소리로 대신하면서 변명은 했다.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했겠나? 단지 오는 손님들이 그런 거 아니냐 해서 고개만 끄덕거렸지. 그런데 김인태 그 놈은 진절머리가 날 정도 집요하게 묻더군. 특히 소애리와 무슨 원수가 졌는지 아니면 주두희처럼 데려 놀려고 했는지 끈덕지게 물어보더군. 그렇게 사람을 시달리게 해서 귀찮아서 그렀다고 했어. 그런데 꼭 내 잘못만은 아냐. 그년들이 그렇게 처신했으니 그랬지.”
허병식도 이 말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었다. 자기도 인정하면서 말을 했다.
“저도 뭐! 똑같죠. 주두희야 뭐 먼저 못 먹는 놈이 등신이니 그렇다손 치고 애리씨한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형님에 대해서도 동생이 저하고 친하다 보니까 제 말을 정답으로 여겨서 형님을 돈밖에 모르는 영감으로 판결을 내려버린 거죠. 걔가 단순한 면이 많아요. 한번 아니라고 점 찍어 버리면 절대 안 바꾸는 놈입니다. 어릴 때부터 고생 한번 안 하고 자랐는데 다가 힘세고 주먹이 세다 보니 누구한테 맞아나 봤습니까? 무서울 게 없죠. 만약에 그 놈이 저보다 형님을 먼저 알았다면 지금 반대일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동생이 형님과 저 사이에 대한 얘기는 저한테만 듣는 게 문제죠. 허허허!”
천명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자네 지금 고해성사하나? 가는 건 순서가 없다지만 그래도 내가 우선 순위를 가졌잖아. 허허허! 그나저나 소문이 안 좋아서 큰일이네. 자네 좋은 묘안 없는가?”
허병식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했다.
“도경이가 오래 전부터 했던 얘기였는데 형님 건물이 강변이잖아요. 지하는 주차장으로 완전히 바꾸고 5층마다 독서실과 도서관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라고 하던데. 꼭 그런데 말고 책이 있는 쉼터 같은 것도 괜찮지 않나 하더군요. 차나 음료가 있는 카페 같은 데는 입 주민들이 조합을 이뤄 운영하면 이미지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 한번 해 보시랍니다.”
천명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허병식이 허리를 소파에 지긋이 기대 눕듯이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럼! 도경이한테 건물 넘기던가…….”
“에라! 이놈아!”
안도경의 매형을 잘 아는 천명구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없이 허병식에게 그들이 말하는 대로 주머니를 털었다.
애리는 그날 이후로 모욕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는 깨끗이 씻으면 들은 말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 하루 종일 목욕탕에서 벗길 수 있는 데는 모조리 벗겨냈다. 흥분한 채 벗긴다고 얼굴까지 때수건으로 빡빡 문질러 버렸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겋게 익어 있었다. 이선근이 깜짝 놀라며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당신 얼굴이 왜이래? 어디 아파?”
머쓱하게 웃으며 볼을 쓰다듬던 애리가 말했다.
“아니! 목욕탕에서 때를 너무 벗겼단 모양이야. 껍데기까지 벗겨져버렸네.”
“왜 갑자기 빠득빠득 밀었어?”
애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다.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었어. 목욕제계하고 고해성사를 해야 내가 제 명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듣기만 해줘!”
이렇게 시작된 애리 얘기를 전부 들은 이선근이 애리 정수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 별 희한한 놈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상사병이 나 있었다 이 말이지?”
“아니! 상사병은 무슨!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자기도 내 같은 경우를 당해봐.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돌면 기분 좋겠어?”
이선근이 이해를 한다며 말을 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도대체 그 놈이 누구인지 궁금해 쫓아다녔단 말이네.”
“아니! 쫓아다닌 게 아니지. 어떤 놈인가 궁금해서 찾으러 다녔지!”
“그래서 못 만났다. 이 말이네?”
“응!”
이선근의 기분은 솔직히 더러웠다. 남편인지 오빠인지 구분을 못하는 이 사람! 귀여울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가슴에 불을 지피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번이 가장 위태위태한 시절이 아닌가?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아내가 솔직히 털어놨으니 이선근도 솔직히 털었다.
“우리 밖에서 밥 먹을까?”
개구쟁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이선근의 코에 부딪힐 정도로 내밀어 물었다.
“당신은 화가 안나? 내가 다른 남자를 찾으러 다녔다는 데 정말 괜찮아? 그런데도 밖에서 밥을 먹어?”
화가 안 날수가 있나? 참을 수 밖에 없지만 솔직히 헷갈렸다. 밥 달라고 칭얼대는 어린 아이처럼 철없는 아이 같은 애리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일까?
이런 식으로 밖에서도, 바깥에서 남자들에게도 한다면 홀려 내려는 짓밖에 더 되냐? 애리야! 오해사기 딱 좋은 행동만 골라서 하는 이 여편네를 어쩌면 좋으냐?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기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이 그저 그냥 그렇게 순수하게 대했는데, 남자들이 오해했다며 변명을 늘여놓을 때를 대비해 할 말을 벌써 한 것처럼 귀속에서 앵앵거리는 것 같아, 소름이 오싹 돋았다.